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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두이 문화국장(연극배우)
[장두이 문화국장]뮤지컬 역사 100년이 조금 넘는 뮤지컬계에 비주얼의 완결판 [무용 안무의 神]이라면 필자는 ‘제롬 로빈스(1918-1998)’를 우선 상기한다. 안무의 손이 닿은 그의 뮤지컬들은 최고의 춤으로, 노래를 보완하고, 스토리를 가득 채우고, 생생한 춤으로 화폭에 그린 명작명화처럼, 무대에 가득 절세의 향기를 뿌린 ‘안무의 마이다스’다.
안무가이며 연출가, 영화감독, 뮤지컬 극본가, 제작자로 뮤지컬과 발레 안무 작품만 42개의 작품이 넘쳐난다. 당대 최고의 작곡가 Leonard Bernstein, Philip Glass, 뮤지컬 최고의 작곡가 Irving Berlin, Hammerstein, Stephen Sondheim 등과 작업하였고, Tony 상 5차례, 2차례에 걸쳐 ‘아카데미 영화상’과 ‘케네디센터 예술가 영예의 상’, 그리고 그의 삶과 예술을 담은 다큐멘터리 <Something to Dance About>로 ‘에미상’과 ‘피바디상’을 수상하기도 한, 토틀 공연아티스트 ‘제롬 로빈스’.....!
사진: 제롬 로빈스 안무의 신
뉴욕에서 활동할 당시, 필자가 본 작품들 <피터 팬>, <온 더 타운>, <왕과 나>, <파자마 게임>,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집시>, <지붕위의 바이올린> 등 명품명작뮤지컬은 물론, ‘American Ballet Theater’, ‘New York City Ballet’, ‘Joffrey Ballet Company’등에서 안무한 작품들은 지금까지 생생하게 각인(刻印)되어 남아있다.
제롬 로빈스(본명 'Jerome Wilson Rabinowitz')는 1918년 맨하탄 270 East Broadway 유태인 병원에서 태어났다. 1935년 뉴저지에 있는 ‘우드로윌슨 고등학교’ 재학시절, ‘앨리 벤틀리’ 선생에게 현대무용을 배우기 시작. 졸업 후, NYU 대학 화학과에 진학했으나, 학비 문제 등으로 중퇴, 당시 표현주의 현대무용의 권위자 'Senya Gluck Sandor 무용단'에 입단하면서 본격적으로 발레를 수업하고, Helen Veola에게 스페인 무용을, Yeichi Nimura에게 아시아 무용을 그리고 Bessie Schonberg와 함께 무용안무 컴포지션을 작업하기도 하며 다양한 무용을 접하고 다듬는 젊은 시절을 보낸다.
사진: 제롬 로빈스 안무1
1937년부터 ‘제롬 로빈스’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초창기 ‘레뷰’ 스타일 공연 ‘Great Lady and Keep Off Grass'에 발레계의 거장 ‘죠지 발란쉰(George Balanchine)’ 안무 작품에 출연하는 등, 본격적인 브로드웨이 무대에 출연하면서 무용뿐 아니라, 안무에 예리한 눈을 뜨게 된다. 그리고 ‘Strange Fruit'에서 재즈의 전설적인 싱어 ’빌리 할러데이‘가 직접 출연한 작품에 함께 출연, 재즈 음악과 연계되는 재즈무용에도 그 색깔을 더하는 기회를 갖는다.
사진: 제롬 로빈스 안무2
이어서 1941년부터 1944년까지 'American Ballet Theater' 발레단에서 솔로이스트로 ’죠지 발란쉰‘, ’안토니 튜도어‘ 등 명망 있는 안무자들 작품 ‘로미오 줄리엣’, ‘트로이의 헬렌’ 등에 출연. 극적인 무용과 안무 수업을 함께 누리는 시간을 가지며 본격적인 안무자와 연출자로서의 탄탄한 경력과 감각을 키운다.
사진: 제롬 로빈스 안무3
1944년 본격적인 안무 작품으로 당시 젊은 작곡가로 후에 작곡가이자, 명지휘자가 된 ‘레오나르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을 만나, 그가 작곡한 'On The Town'으로 포문을 열고, 재즈 이야기를 담은 'Billion Dollar Baby(1945)', 그리고 이어서 첫 번째 토니 안무상을 받게 된 ‘High Button Shoes(1947)'를 시작으로 브로드웨이 뮤지컬 최고의 품격 있는 안무자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한다.
사진: 제롬 로빈스 안무4
무용 뿐 아니라, 꿈 많은 열정의 ’제롬 로빈스‘는 1947년 당시에 출발한 미국 메소드 연기 최고의 ‘액터즈 스튜디오’에서 ‘말론 브란도’, ‘허버트 버고프’, ‘시드니 루멧’, 그리고 후에 그의 동성애자 중의 한 명이었던 ‘몽고메리 크리프트’등과 함께 연기수업을 들으며, 연기와 무용에 대한 실증적 훈련과정을 통해, 최고의 음악극인 뮤지컬과 발레 안무 그리고 무대 연출가로서의 소양을 확고히 기르게 된다.
사진: 제롬 로빈스 안무5
당시 세계 발레계 최고의 안무자 ‘죠지 발란쉰’과 함께 ‘뉴욕 시티발레단’에서 'The Guest'를 안무하는 등, 발레와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넘나들며 천재적인 안무의 명작들을 서서히 남기게 되는 것이다. 요즘도 그의 안무 작품들이 종종 세계 곳곳의 발레단에서 공연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니, 그의 안무의 천재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진: 제롬 로빈스 안무6
본격적인 그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명작들이 탄생하기 시작했으니, 'The King and I(1951), 'Wonderful Town(1953)', 'Peter Pan(1954), 'Pajama Game(1954)', 'Bells are Ringing(1956)', 'Gypsy(1959)', 'Funny Girl(1964)', 'Fiddler on the Roof(1964)'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무대에서 안무 연습에 너무 열중하다가 오케스트라 피트에 떨어진 적도 있고, 1950년엔 공산주의자 혐의로 블랙리스트에 속해 미하원의원회에 출석을 하기도 하는 정치적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사진: 제롬 로빈스 안무7
그의 뮤지컬 작품 'Funny Girl'은 1348회 장기공연과 동시에 주인공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를 스타로 만들었고, 'Fiddler on the Roof'는 3242회 공연으로 당시 최장기 공연의 역사를 쓰기도 했다. 또한 그의 히트작 뮤지컬 'West Side Story'는 영화감독 'Robert Wise'와 공동연출로 45일 촬영으로 영화로제작되어 1960년도 아카데미 10개 부문 상을 휩쓰는 엄청난 기록과 흥행을 남기기도 했다.
사진: 제롬 로빈스 안무8
특히 뮤지컬 역사상 불후(不朽)의 탁월한 아티스트 ‘제롬 로빈스’..... 그는 1979년 [미국연극 명예의 전당]과 1989년 [국립무용박물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안타깝게도 1994년 심장수술을 받았고, 1996년에 파킨슨병에 걸린다. 그럼에도 1998년 ‘New York City Ballet’단을 위해, 'Les Noces' 작품을 마지막 작품으로 안무하고, 그해 여름 7월 29일 심장마비로 쓰러져 세상을 떠난다. 당일 브로드웨이 모든 극장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고, 유언대로 천재의 유골은 대서양 거친 파도에 뿌려져, 삶의 마지막을 바람과 더불어 허공에 뿌려진 안무로 영면(永眠)한다.
사진: 제롬 로빈스 안무9
발레에서부터 현대무용, 재즈, 아시아 무용 그리고 민속무용을 두루 피땀 흘려섭렵하고, 동시에 창의적인 독창적 무용으로 뮤지컬과 영화, 발레무대를 수놓은 하늘이 내린 토틀 아티스트 ‘제롬 로빈스’....!
사진: 제롬 로빈스 안무10
겉만 화려하고 속빈강정 같은 이즈음 ‘뮤지컬 연극’에 평생을 진지하고 진솔하게 명작명품 유산을 땀 흘려 이룩한 ‘제롬 로빈스’! 그가 있기에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자 하는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무용 안무자들이 지금도 땀 흘려 일하고 있다.
사진: 제롬 로빈스 안무11
선생의 작품들을 뉴욕 현장에서 확인하며 볼 수 있었던 필자는 진실로 행운아 중의 행운아 천운(天運)이 아닐 수 없다. 그의 빛나는 유산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장두이
사진: 제롬 로빈스 안무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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