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 두레박 신부의 영적일기(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
다른 형제들의 눈에 티가 보입니까?
1568년 네덜란드 화가인 ‘피터 브뢰겔’가 그린 작품으로‘장님을 인도하는 장님’이라는 제목의 풍자화가 있습니다.
이 그림을 보면, “사람들이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의 어깨를 잡고, 때로는 지팡이를 잡고 줄줄이 가는데 모두 다 장님입니다.
그런데 맨 앞에 가던 장님이 구덩이에 빠졌고, 바로 뒤에 장님도 넘어질 위기에 처해 있는 순간을 포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뒤에 있는 시각 장애인들은 이를 알지 못하고 앞 사람의 어깨를 잡고 오는 장면입니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너무 불쌍해 보이기도 하고 어리석어 보입니다.”
이 작품은 예수님의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라는 비유 말씀을 토대로 한 그림으로, 눈이 먼 사람들이 서로를 인도하는 것을 통해, 지도자가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지 못할 때 사회 전체가 잘못된 길로 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라는 비유 말씀을 통해 육체적으로 눈먼 이가 아니라 영적으로 눈먼 이들인 유다교 지도자들의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지도자들은 자기들이 ‘눈먼 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비유 말씀은 다른 사람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에 관한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는 ‘큰 허물을 지닌 주제에 늘 남의 허물을 고치겠다.’라는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위선자야, 먼저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들보’는 나무로 집을 지을 때, 지붕을 이루는 목재 가운데 가장 큰 목재이고, 보통은 ‘대들보’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지금 자기 눈에 큰 들보가 박혀있는데, 그것도 모르면서 남의 눈의 티를 빼주려는 사람은 너무나 교만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혹시 예수님의 이 비유 말씀을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당시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제자들도 이 비유 말씀이 바리사이들이나 율법 학자들을 향한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들을 향한 것이 아니라, 바로 주님 앞에서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제자들을 향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남의 눈에 있는 아주 작은 티는 보면서도 자기 눈 속에 있는 큰 들보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바로 저희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성령 안에서 저희의 들보를 보게 하소서.’ 아멘.
사랑하는 고운님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원죄의 영향으로 생긴 ‘교만’은‘ 스스로에 힘과 노력으로 자기의 본래 모습을 볼 수 없게 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자기의 본래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주는 2개의 거울을 주셨답니다.
하나의 거울은, 내가 본받고 싶고 마음에 드는 사람입니다.
또 하나의 거울은, 내 마음에 안 들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두 개의 거울 중에 하느님께서 고운님들에게 보내주신 ‘환상의 짝꿍’은 어느 거울일까요?
바로 두 번째 거울입니다.
유난히 잘못된 말과 행동으로 마음에 안 들고 힘들게 하는 거울이 있다면, 고운님들의 마음 안에도 들보가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고운님들 안에 성령’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요한복음 16장 13절).”
이제 다른 이들의 눈에 티, 즉 결점이나 허물이 보이십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우리가 선한 사람이 아니기에 자기 안에 들보가 있는지 살펴 깨끗하게 하라는 주님의 신호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있는 티를 볼 때에 좋은 마음으로 그들의 아픔을 헤아리고, 더 깊은 아픔이 되지 않도록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고운님들이 의롭고 선한 사람이 아니라 죄인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와 같이 고백합니다.
“나는 그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죄인입니다(티모테오 1서 1장 15절).” 아멘.
저 두레박 사제도 죄인 가운데 첫째가는 죄인임을 고백하면서 몸과 마음이 아픈 고운님들과 아픈 이들을 돌보는 고운님들, 그리고 고운님들의 자녀에게 주님의 치유와 회복의 은총이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영적일기를 마무리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있는 티를 볼 때 자기 안에 있는 들보를 살피면서, 고운님들은 기도하는 선한 마음으로 그들의 아픔과 나약함을 위로하고 함께 아픔을 나누는 사랑을 실천하면서 죄를 용서받고 치유와 회복의 은총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강복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 성자와 성령께서는 고운님들에게 강복하시어 길이 머물게 하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첫댓글 ‘주님, 성령 안에서 저희의 들보를 보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