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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113 평화—우리의 소유
다른 사람의 결정을 존중하십시오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판단하지 마십시오.”—로마 14:1.
성구 해설. 하느님의 세 번째 속성은 존재성, 영원성과 더불어 무한성이다. 모든 사물은 존재하고 있으며 영원히 존재하려는 속성을 지닌다. 이와 더불어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공통적 성질을 소유하면서도 완전히 같은 것은 없다. 이것은 하느님의 무한한 속성에서 비롯되는데, 사물은 수와 양에 있어서 무한하며 각 사물의 관계와 양상에 있어서도 무한하다. 원인과 결과가 무한하게 나타나며 사물 간에 서로 다른 관계를 유지하며 필연적인 것과 우연적인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처럼 그분의 무한한 속성으로 인해서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은 완전히 같은 사람이 없으며 완전히 같은 생각을 가지 사람도 없다. 이렇게 무한한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그 근원이 동일하기 때문에 공통적 요소들에 의해서 하나로 연합될 수 있다. 무한하게 다르므로 무한한 작용이 일어나게 되고 그 작용 안에 갈등과 투쟁, 그리고 협동이 있게 된다. 만일 모든 것이 완전히 동일하면 더 이상 작용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존재의 의미를 잃게 된다. 그것은 곧 정지된 상태이며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 사회에 있어서 하느님의 무한한 속성으로 인하여 존재해 왔던 사람 중 누구도 동일인이 없으며 동일한 생각을 가진 사람도 없다. 이와 같이 다양하고 무한한 생각의 차이로 인해 서로 갈등과 투쟁이 일어나지만 공통성을 기준으로 서로 협동하여 연합할 수 있다. 공통성을 많이 가질수록 연합되기 좋은 상태이며 서로 다른 활동과 생각의 차이를 이해하고 포용함으로써 연합력을 높일 수 있다. 여기에 매우 중요한 촉매제는 사랑의 감정이다. 사랑의 감정이 차원을 높여 사랑의 정신으로 승화시킬 때, 그 사랑은 어떤 사물이라도 끈끈하게 들어붙게 하는 아교(glue)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사랑은 받음에서 비롯되지만 줌으로써 그 사랑을 높은 차원으로 확고하게 승화시킬 수 있다.
| 요점 형제자매들이 내 생각과는 다른 결정을 내리더라도 그러한 결정에 대해 어떻게 존중심을 나타낼 수 있는지 알아보십시오. |
1-2. 때때로 우리가 형제자매들과 서로 다른 결정을 내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존재한다는 것은 활동, 곧 작용한다는 것이며 작용하기 위해서는 서로 차이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모든 것이 완전하게 같다면 전혀 상호 작용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그것은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된다.
당신이 내린 결정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좋지 않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반대로, 다른 사람이 내린 결정을 당신이 안 좋게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분명 우리 대부분이 그 두 가지 경험을 다 해 보았을 것입니다.
2 때때로 우리는 형제자매들과 서로 다른 결정을 내립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한 명 한 명이 서로 다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라 온 가정 환경이나 문화도, 살아오면서 한 경험도 저마다 다릅니다. 그래서 서로 생각하는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처럼 생각이 다른 것이 회중의 평화와 연합에 걸림돌이 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에베소 4:3.
3. 다른 사람이 잘못된 결정을 내린 것 같을 때 어떻게 하게 될 수 있습니까?
상호 간의 작용은 한쪽에 자극을 주어 파괴시키거나 방향을 선회시키거나 또는 합쳐지게 만든다. 인간의 반응도 자기의 의사를 관철시키려는 쪽으로 작용하는데, 힘의 원리에 의해서 상호 의견이 조정되거나 병합되며 또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갈라지게 된다. 힘에는 인간의 감정이나 정신이 포함된다.
3 어떤 형제나 자매가 내가 보기에 잘못된 결정을 내린 것 같을 때 그 사람에게 생각을 바꾸라고 말해 주고 싶을지 모릅니다. 또는 그가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그를 정말 사랑하고 그가 잘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걱정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할 것입니다. (잠언 17:17) 그가 나중에 영적으로 해를 입거나 후회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4-5. 어떤 형제나 자매가 내 생각과는 다른 결정을 내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물은 근원이 같다는 점과 그러면서 독립된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상호 작용의 거시적 방향은 존재성이 무한히 커지는 쪽으로 향하지만 미시적으로는 굴곡과 존재성이 약화되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주가의 흐름을 볼 때, 아무리 롱 포지션의 방향으로 진행하더라도 짧은 시간을 두고 관찰할 때는 숏 포지션이 존재하는 것이다.
4 다른 형제나 자매가 잘못된 결정을 내린 것 같을 때 꼭 그 사람에게 이야기해야 합니까? 상황에 따라 그래야 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가 하려고 하는 일이 하느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라면 사랑에서 우러나와 그가 생각을 바로잡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잠언 27:5, 6) 하지만 그가 하려고 하는 일이 하느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고 단지 내 생각과 다른 것이라면 어떠합니까? 그 답이 이 기사의 주제 성구에 나옵니다. 그 성구에서 알려 주듯이, 우리는 자신과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로마 14:1.
5 그런데 때때로 다른 사람이 내린 결정을 존중하기가 어렵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이 기사에서는 다른 사람이 내린 결정을 왜 존중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알아볼 것입니다. 먼저, 다른 사람이 내린 결정을 판단하게 되기가 쉬운 몇 가지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결정을 판단하게 될 수 있습니까?
6-7. 다른 사람이 내린 결정을 판단하게 될 수 있는 어떤 상황이 있습니까?
육칠 항의 파수대 해설은 주로 시계탑 교리를 기준으로 예를 들고 있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은 술을 마시는 사람을 좋지 않게 보고 있으며, 병에 걸린 사람에게 자기의 경험으로 조언하며, 다른 종파의 문화에는 근처도 얼씬 거리지 못하게 하려는 경향을 보여준다. 이러한 예들에서 하느님은 어느 것도 간섭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이며, 순수하게 상호 작용으로만 세계가 진행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또 수염을 기르거나 여자가 바지를 입는 문화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보이며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이 시계탑의 시간이 엉터리라는 것을 알게 되자, 시계탑 옹호자가 흥분하여 고등 교육을 방해하려고 한다.
6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는 자라 온 배경이나 경험한 일 때문에 어떤 문제에 대해 강한 의견을 갖게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나와 의견이 같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상황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상황 1: 한 형제는 진리를 배우기 전에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하루는 다른 형제자매들과 시간을 보내는 자리에서 그들이 술을 마시는 것을 봅니다. 그는 몹시 실망해서 그들에게 술을 마시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상황 2: 한 자매가 심각한 병을 잘 이겨 내고 다시 건강해졌습니다. 나중에 그는 다른 자매가 같은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자매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던 치료법을 따르라고 강하게 권합니다. 어쩌면 특정한 식이 요법이나 병원 치료나 자연 요법을 권할지 모릅니다. 상황 3: 한 형제는 예전에 거짓 종교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거짓 종교와는 어떤 관련도 맺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동료 그리스도인이 교회에서 열리는 장례식에 참석했다는 것을 알고 흥분합니다.a
7 또 다음과 같은 상황들도 생각해 보겠습니다. 상황 4: 한 형제가 사는 나라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형제들이 수염을 기르거나 자매들이 신권 행사에서 바지를 입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여겨 왔습니다. 형제는 최근에 이 문제에 대한 조직의 견해가 조정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여전히 형제들이 수염을 길러서는 안 되고 자매들은 신권 활동을 할 때 치마를 입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상황 5: 한 장로 형제는 추가 교육을 받았다가 진리를 떠난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장로 형제가 속한 회중의 한 젊은 형제가 추가 교육을 받기로 결정합니다. 장로 형제는 걱정이 된 나머지 그 젊은 형제와 부모에게 추가 교육을 받지 말라고 설득합니다.
8. (ㄱ) 어떻게 다른 부모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될 수 있습니까? (ㄴ)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태도가 회중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습니까?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종파적 교육이 우선이 아니라 자녀가 훌륭한 가치관을 가지고 선한 사람이 되며 근면하며 지혜로운 사람이 되도록 인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우리의 존재를 강화시켜 번영을 이룩하게 하는 방법이다. 시계탑의 교훈들은, 오로지 시계탑 주위에만 모여 시계탑을 옹호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려 한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 시계가 고장난 중국제라는 사실이다.
8 부모라면 다음과 같은 상황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십시오. 상황 6: 당신은 자녀를 “여호와의 징계와 훈계로” 양육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에베소 6:4) 그런데 다른 그리스도인 부모를 보니 당신보다 자녀에게 좀 더 많은 자유를 허락하는 것 같습니다. 자녀가 집에 더 늦게 들어오는 것을 허락해 주거나, 폭력적이지 않은 온라인 게임을 하게 해 주거나, 아직 어린데도 휴대폰을 갖게 해 줍니다. 그래서 당신의 자녀는 그 부모에 비해 당신이 너무 엄격하다고 생각합니다. “엄마 아빠는 왜 다 못하게 해요? 쟤네 엄마 아빠는 허락해 주는데” 하고 불평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당신은 그 부모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누군가가 내 생각과는 다른 결정을 내리면, 그 결정을 판단하게 되기가 쉽습니다. 사실 언급된 상황 외에도 다른 사람을 판단하게 되는 상황이 너무나 많습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돈을 어디에 쓰는지, 여행을 얼마나 자주 다니는지, 어떤 여가 활동을 즐기는지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지나치게 앞세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러한 태도는 회중의 연합에 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9. 다른 사람이 내리는 결정에 대해 무엇을 기억해야 합니까? (또한 삽화 참조)
성경에서 가르치는 일치란, 획일적 사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생각을 조화시켜 연합을 이루려는 의도이다. 단단한 결속력은 그 연합의 구성 요소가 갖지 못한 새로운 창조력을 발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로 다른 의견이 있을 때, 의견 조율이 안 되면 각각의 의견을 인정한 채 연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타협이고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이다.
9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다른 결정을 내리는 경우, 반드시 한쪽은 맞고 한쪽은 틀린 것은 아닙니다. (로마 14:5) 물론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치된 생각을 하라”고 권고합니다. (고린도 후서 13:11) 하지만 이 말은 우리 모두가 여호와의 법을 따라야 한다는 뜻이지, 모든 문제에 대해 똑같은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것을 특정한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해 우리가 선택하는 다양한 방법에 비할 수 있습니다. 보통 어느 목적지에 가는 방법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입니다. 각자가 자신의 상황에 맞고 자신이 선호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와 비슷하게 그리스도인들도 개인적인 문제에 있어서 다양한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의 목적지는 동일합니다. 바로 여호와를 기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내리는 개인적인 결정을 판단하지 않습니다.—마태 7:1; 데살로니가 전서 4:11.
동일한 목적지에 가기 위해 사람마다 다양한 방법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와 비슷하게 그리스도인은 여호와를 섬기면서 서로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9항 참조)
왜 다른 사람의 결정을 존중해야 합니까?
10. 야고보서 4:12에 따르면 우리에게는 어떻게 할 권한이 없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야고보는 우리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상대방을 멸망할 대상으로 깎아내리는 말로 폄훼해서는 안 된다고 알려준다. 흔히 시계탑 교인들은 그들의 교리 전달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아마겟돈에서 멸망될 사람으로 분류하는 우를 범한다.
10 성경에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 내린 개인적인 결정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들을 알려 줍니다. 그중 몇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개인적인 결정을 판단할 권한이 없습니다. (야고보서 4:12 낭독) 여호와만이 의로운 입법자이시며 재판관이십니다. 우리에게 무엇은 해야 하고 무엇은 하지 말아야 하는지 명령할 권한은 그분에게만 있습니다. 따라서 형제자매들은 자신이 내린 결정에 대해 우리에게가 아니라 여호와께 답변해야 합니다. (로마 14:10) 우리는 자신의 기준이나 견해에 따라 다른 사람의 결정을 판단하거나 비난할 권리가 없습니다.b
11. 우리는 어떻게 회중의 연합에 기여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또한 삽화 참조)
공동체의 연합을 잘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공동체가 가지는 이념에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 시계탑 주위에 모여 시계만 쳐다 보면서 세상의 멸망 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시계가 고장난 중국제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연합에서 흩어지게 될 것이다. 물론 그 중에는 시계탑이 고장난 줄은 알지만 기다리는 동안 주위에 친구가 생겨 교리와 관계없이 교제를 즐기려고 연합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공동체가 단단히 연합되기 위해서는 그 공동체가 추구하는 이념이 영원하고 유익한 가치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공동체의 권위가 위로부터 왔다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왔다는 느낌을 가져야 할 것이다.
11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가 똑같기를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 연합되기를 바라십니다. 사실 그분은 다양성을 매우 좋아하십니다! 창조물을 보면 그 점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셀 수 없이 많은 눈송이 중에 구조가 똑같은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십시오. 80억이 넘는 인류 가운데 외모와 성격이 똑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를 서로 다르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누군가의 복제 인간이 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로 연합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내 생각과는 다른 행동을 할 때 부정적인 감정을 가질 것이 아니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나 자신의 기호와 견해보다 회중의 연합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로마 14:19.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를 서로 다르게 창조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우리가 하나로 연합되기를 바라십니다 (11항 참조)
어떻게 다른 사람의 생각을 존중할 수 있습니까?
12-13. 누군가가 “걸음을 잘못 내디딘”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무엇을 기억해야 합니까? (갈라디아서 6:1. 또한 “다른 사람의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제하의 내용 참조)
하느님의 법이란, 객관적으로 입증된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며 마음으로 그렇게 느낀 사람의 신앙 고백인 것이다. 즉 그것은 어떤 기록이나 문구를 하느님의 말씀 또는 법이라고 객관적으로 인정시키려 들거나 강요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믿는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고백하는 형태인 것이다. 그러므로 상대에게 조언할 때는 자기의 믿음을 온화하고 친절하게 알려주는 형태로 이야기하는 방식이 권장된다.
12 다른 사람이 개인적인 결정을 내릴 때. 이렇게 자문해 보십시오. ‘그 사람은 “걸음을 잘못 내딛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단지 나와 다른 걸음을 내딛고 있는 것인가?’ 만약 그가 정말 걸음을 잘못 내딛는 것이라면, 다시 말해 하느님의 법을 어기는 행동을 하는 것이라면 이렇게 자문해 보십시오. ‘나는 그 사람을 바로잡아 주기에 적합한 사람인가? 아니면 영적 자격을 가진 다른 누군가가 그 일을 해야 하는가?’ 당신이 그 사람을 바로잡아 주어야 할 입장이라면 온화하고 친절한 태도로 도와주십시오. (갈라디아서 6:1 낭독) 하지만 많은 경우, 다른 사람들이 내리는 결정은 잘못된 결정이 아니라 내 생각과는 다른 결정일 뿐입니다. 그런 경우라면 그 사람의 동기나 영성에 대해 의문을 품거나 그의 결정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하지 마십시오.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스스로 결정을 내릴 그의 권리를 존중해 주십시오.—로마 14:2-4.
13 이런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친구와 함께 식당에 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친구에게 내가 주문한 메뉴를 똑같이 주문하라고 강요하겠습니까?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친구가 자신이 원하는 메뉴를 고르게 해 줄 것입니다. 그가 당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메뉴를 선택하더라도, 그것은 그의 자유이고 당신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습니다. 당신이 먹을 음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분명 당신도 친구가 자신의 기호대로 당신의 메뉴를 정해 주기를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와 비슷하게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음으로 스스로 결정을 내릴 그들의 권리를 존중해 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어떤 형제나 자매가 내린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다음과 같은 점들을 자문해 보십시오. 그렇게 하면 불필요한 걱정을 하지 않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갈라디아 6:5.
그 결정은 하느님의 법을 어기는 것인가?
그는 성장 배경이 나와 달라서, 내 생각과 다른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닌가?
그 결정 때문에 그가 정말 해를 입을 것인가? 내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최악의 상황을 걱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 결정에는 어떤 장점이 있을 수 있는가?
그는 정말 “걸음을 잘못 내딛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단지 나와 다른 걸음을 내딛고 있는 것인가?
그가 정말 걸음을 잘못 내딛는 것이라면, 나는 그의 생각을 바로잡아 줄 영적 자격을 가진 사람인가?
14. 개인적인 결정을 내릴 때 어떤 점에 유의해야 합니까? (고린도 전서 8:12, 13)
개인적 결정이 공동체의 이념과 다를 때, 상대방에게 그 점을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공동체 이념과 무관할 때는 가장 좋은 방법을 논할 수 있으며 또한 각자의 방법을 택할 수 있을 것이다. 미시적으로는 차이를 느낄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의견이 다른 대부분의 경우, 평소에 더 똑똑하고 더 많은 지혜를 발휘하는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게 될 것이다.
14 당신이 개인적인 결정을 내릴 때. 우리 각자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함으로 회중의 연합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 전서 8:12, 13 낭독) 어쩌면 당신이 내리려는 결정이 하느님의 법에 어긋나지 않기 때문에 “허용되는”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지 모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면 그것이 과연 “유익한” 결정이겠습니까?c (고린도 전서 10:23, 24) 그런 경우 자신의 기호를 내세우지 말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배려해 주십시오. (로마 15:1) 물론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결정을 존중하듯 그들도 우리의 결정을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로마서 12:18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성경 말씀도 적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십시오.” 이 말씀과 일치하게,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평화를 유지하고 그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만한 일을 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15. 장로들은 어떻게 회중의 연합에 기여할 수 있습니까? (고린도 전서 4:6)
공동체를 이끄는 권위자들은 가능한 한 인간의 평화로운 관계로써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것이며, 많은 규칙을 만들어 벌칙을 가하는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규칙 때문에 순종하는 것보다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15 장로들은 다른 사람의 결정을 존중해야 합니다. 장로들은 성경에 “기록된 것들에서 벗어나지” 않고 개인적인 문제에 있어서 규칙을 만들지 않음으로 회중의 연합에 기여합니다. (고린도 전서 4:6 낭독) 더 나아가 그들은 우리 출판물에 나오는 성경에 근거한 교훈에서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떤 형제나 자매가 도움을 요청할 때, 자신의 생각이나 경험에만 근거해서 조언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근거해서 조언을 베풉니다.—이사야 48:17, 18.
16. 장로 각자는 장로의 회가 내린 결정에 어떻게 존중심을 나타낼 수 있습니까?
공동체의 합의로 이루어진 권위를 가진 자들에게 순종해야 하지만, 이 역시 그 권위들이 위로부터 온 것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 더욱 순종하게 된다. 다양한 의견에는 충돌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일시적 숏 포지션이므로 비록 오류가 있다 하더라도 거시적인 롱 포지션의 입장에 순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6 장로들 각자는 장로의 회가 내린 결정에도 존중심을 보여야 합니다. 장로의 회는 여호와께 기도로 성령을 청하고, 관련된 성경적 지침을 검토한 다음 그에 따라 결정을 내립니다. 그렇게 결정이 내려졌다면, 각 장로는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더라도 그 결정을 지지해야 합니다. (에베소 5:17) 그에 더해 장로들은 신권 지침을 확대 해석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하기 위해, 출판물의 전체 맥락은 무시한 채 일부분만을 근거로 내세우지 않아야 합니다.
17. 다른 사람이 내리는 결정을 존중할 때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이 나의 결정을 존중해줄 때, 나는 그 사람을 존중하게 된다. 내 생각이 옳기 때문에 상대방을 까는 행위는 친구를 적으로 만들게 되어 이익보다 손실을 가져온다. 중요한 점은 의견의 차이가 인격의 차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의견이 다르더라도 인격은 동일하게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다.
17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우리 한 명 한 명은 저마다 서로 다른 존재입니다. 우리는 서로 생각도 다르고 기호도 다릅니다. 우리가 그처럼 다양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정말 좋지 않습니까! 서로 배경과 성격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회중은 다채로우면서도 편안한 곳이 됩니다. 따라서 서로 다르다고 해서 멀어질 것이 아니라 계속 평화롭게 지내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자신이 내리는 결정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다른 사람이 내리는 개인적인 결정을 존중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은 정말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일입니다. 우리의 노력을 통해 회중은 더 끈끈하게 연합되고, 행복이 넘치는 곳이 될 것입니다.—시 133:1; 마태 5:9.
다른 사람의 생각과 결정을 존중하는 데 다음의 성구들이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
노래 89 잘 듣고 순종하여 축복을 받으라
에필로그. 100년이 넘는 시계탑 종파는 그 동안 성원들의 수를 늘리는 데 총력을 다해 왔으며 그 수단으로서 항상 시계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시간 약속이 너무 자주 틀리게 되었으며, 이제는 한 세대라는 최후의 보루까지도 함락된 지경이므로, 더 이상 시계에 의존할 수 없게 되자, 이제는 작전을 바꾸어 이미 확보된 성원만이라도 결속을 다지며, 2세대가 가능한 한 이탈되지 않도록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여기에 필요한 연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성원들의 인간 관계를 좋게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들의 중심 교리에만 어긋나지 않는다면 무엇이나 자유를 주고 서로의 인권을 존중해주자는 쪽으로 선회하려고 한다. 사실 이러한 방향이 초기부터 이루어졌어야 하는 것이다. 숫자보다 연합력이 중요한 것이고, 그 연합력은 참된 이상을 향하여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지 "늑대가 나타났다"는 양치기 소년의 외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는 '좋은 소식'이란 '하느님의 나라'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며 하느님의 나라는 구성원들의 숫자에 달린 것이 아니고 구성원들의 인간 관계로써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숫자를 먼저 늘여서 하느님의 나라를 완성시키겠다는 생각이 잘못된 것임은 명확히 증명될 수 있다. 그것은 한 국가나 세계 전체를 한꺼번에 이상 사회로 만들 수 없음이 분명한 것으로써 입증된다. 하나의 사회가 이상적인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의식 구조가 변화되는 것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한 사회가 통채로 그렇게 되기란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어떤 이념에 의해서 모인 성원들이 어느 순간에 가서 비로소 통채로 하느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나라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숫자 증가를 우선적으로 추구해서는 안되며, 소수의 사람이라도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며 사랑하는 공동체가 되어서 그것을 확장하는 방식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실패한 이유도 그것이다. 야곱의 열두 아들이 서로 좋은 관계를 가지고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는 상태로 만들어서 야훼 숭배에 전념하는 방식을 취했다면 성공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형식적으로만 야훼 숭배를 선택했을 뿐, 실제 그들의 삶은 '속이는 저울 추'의 삶인 우상 숭배가 혼합되었기 때문에 하느님의 나라가 이루어질래야 이루어질 수 없었다. 작금의 시계탑 종교의 방식은 100년 동안 모여진 물적 자원과 인적 자원에 미련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버리지 못하는 아쉬움에서 나오는 자구책에 불과하며, 2천년 동안 소위 기독교 종파가 걸어온 길을 반복하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본다.
노래 113 평화—우리의 소유
다른 사람의 결정을 존중하십시오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판단하지 마십시오.”—로마 14:1.
성꾸 해설. 하느님의 세 번째 속성은 존재성, 영원성과 더불어 무한성이다. 모든 사물은 존재하고 있으며 영원히 존재하려는 속성을 지닌다. 이와 더불어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공통적 성질을 소유하면서도 완전히 같은 것은 없다. 이것은 하느님의 무한한 속성에서 비롯되는데, 사물은 수와 양에 있어서 무한하며 각 사물의 관계와 양상에 있어서도 무한하다. 원인과 결과가 무한하게 나타나며 사물 간에 서로 다른 관계를 유지하며 필연적인 것과 우연적인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처럼 그분의 무한한 속성으로 인해서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은 완전히 같은 사람이 없으며 완전히 같은 생각을 가지 사람도 없다. 이렇게 무한한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그 근원이 동일하기 때문에 공통적 요소들에 의해서 하나로 연합될 수 있다. 무한하게 다르므로 무한한 작용이 일어나게 되고 그 작용 안에 갈등과 투쟁, 그리고 협동이 있게 된다. 만일 모든 것이 완전히 동일하면 더 이상 작용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존재의 의미를 잃게 된다. 그것은 곧 정지된 상태이며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 사회에 있어서 하느님의 무한한 속성으로 인하여 존재해 왔던 사람 중 누구도 동일인이 없으며 동일한 생각을 가진 사람도 없다. 이와 같이 다양하고 무한한 생각의 차이로 인해 서로 갈등과 투쟁이 일어나지만 공통성을 기준으로 서로 협동하여 연합할 수 있다. 공통성을 많이 가질수록 연합되기 좋은 상태이며 서로 다른 활동과 생각의 차이를 이해하고 포용함으로써 연합력을 높일 수 있다. 여기에 매우 중요한 촉매제는 사랑의 감정이다. 사랑의 감정이 차원을 높여 사랑의 정신으로 승화시킬 때, 그 사랑은 어떤 사물이라도 끈끈하게 들어붙게 하는 아교(glue)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사랑은 받음에서 비롯되지만 줌으로써 그 사랑을 높은 차원으로 확고하게 승화시킬 수 있다.
| 요점 형제자매들이 내 생각과는 다른 결정을 내리더라도 그러한 결정에 대해 어떻게 존중심을 나타낼 수 있는지 알아보십시오. |
1-2. 때때로 우리가 형제자매들과 서로 다른 결정을 내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존재한다는 것은 활동, 곧 작용한다는 것이며 작용하기 위해서는 서로 차이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모든 것이 완전하게 같다면 전혀 상호 작용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그것은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된다.
당신이 내린 결정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좋지 않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반대로, 다른 사람이 내린 결정을 당신이 안 좋게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분명 우리 대부분이 그 두 가지 경험을 다 해 보았을 것입니다.
2 때때로 우리는 형제자매들과 서로 다른 결정을 내립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한 명 한 명이 서로 다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라 온 가정 환경이나 문화도, 살아오면서 한 경험도 저마다 다릅니다. 그래서 서로 생각하는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처럼 생각이 다른 것이 회중의 평화와 연합에 걸림돌이 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에베소 4:3.
3. 다른 사람이 잘못된 결정을 내린 것 같을 때 어떻게 하게 될 수 있습니까?
상호 간의 작용은 한쪽에 자극을 주어 파괴시키거나 방향을 선회시키거나 또는 합쳐지게 만든다. 인간의 반응도 자기의 의사를 관철시키려는 쪽으로 작용하는데 힘의 원리에 의해서 상호 의견이 조정되거나 병합되며 또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갈라지게 된다. 힘에는 인간의 감정이나 정신이 포함된다.
3 어떤 형제나 자매가 내가 보기에 잘못된 결정을 내린 것 같을 때 그 사람에게 생각을 바꾸라고 말해 주고 싶을지 모릅니다. 또는 그가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그를 정말 사랑하고 그가 잘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걱정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할 것입니다. (잠언 17:17) 그가 나중에 영적으로 해를 입거나 후회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4-5. 어떤 형제나 자매가 내 생각과는 다른 결정을 내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물은 근원이 같다는 점과 그러면서 독립된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상호 작용의 거시적 방향은 존재성이 무한히 커지는 쪽으로 향하지만 미시적으로는 굴곡과 존재성이 약화되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주까의 흐름을 볼 때, 아무리 롱 포지션의 방향으로 진행하더라도 짧은 시간을 두고 관찰할 때는 숏 포지션이 존재하는 것이다.
4 다른 형제나 자매가 잘못된 결정을 내린 것 같을 때 꼭 그 사람에게 이야기해야 합니까? 상황에 따라 그래야 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가 하려고 하는 일이 하느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라면 사랑에서 우러나와 그가 생각을 바로잡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잠언 27:5, 6) 하지만 그가 하려고 하는 일이 하느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고 단지 내 생각과 다른 것이라면 어떠합니까? 그 답이 이 기사의 주제 성구에 나옵니다. 그 성구에서 알려 주듯이, 우리는 자신과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로마 14:1.
5 그런데 때때로 다른 사람이 내린 결정을 존중하기가 어렵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이 기사에서는 다른 사람이 내린 결정을 왜 존중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알아볼 것입니다. 먼저, 다른 사람이 내린 결정을 판단하게 되기가 쉬운 몇 가지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결정을 판단하게 될 수 있습니까?
6-7. 다른 사람이 내린 결정을 판단하게 될 수 있는 어떤 상황이 있습니까?
육칠 항의 파수대 해설은 주로 시계탑 교리를 기준으로 예를 들고 있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은 술을 마시는 사람을 좋지 않게 보고 있으며, 병에 걸린 사람에게 자기의 경험으로 조언하며, 다른 종파의 문화에는 근처도 얼씬 거리지 못하게 하려는 경향을 보여준다. 이러한 예들에서 하느님은 어느 것도 간섭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이며, 순수하게 상호 작용으로만 세계가 진행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또 수염을 기르거나 여자가 바지를 입는 문화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보이며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이 시계탑의 시간이 엉터리라는 것을 알게 되자, 시계탑 옹호자가 흥분하여 고등 교육을 방해하려고 한다.
6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는 자라 온 배경이나 경험한 일 때문에 어떤 문제에 대해 강한 의견을 갖게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나와 의견이 같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상황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상황 1: 한 형제는 진리를 배우기 전에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하루는 다른 형제자매들과 시간을 보내는 자리에서 그들이 술을 마시는 것을 봅니다. 그는 몹시 실망해서 그들에게 술을 마시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상황 2: 한 자매가 심각한 병을 잘 이겨 내고 다시 건강해졌습니다. 나중에 그는 다른 자매가 같은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자매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던 치료법을 따르라고 강하게 권합니다. 어쩌면 특정한 식이 요법이나 병원 치료나 자연 요법을 권할지 모릅니다. 상황 3: 한 형제는 예전에 거짓 종교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거짓 종교와는 어떤 관련도 맺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동료 그리스도인이 교회에서 열리는 장례식에 참석했다는 것을 알고 흥분합니다.a
7 또 다음과 같은 상황들도 생각해 보겠습니다. 상황 4: 한 형제가 사는 나라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형제들이 수염을 기르거나 자매들이 신권 행사에서 바지를 입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여겨 왔습니다. 형제는 최근에 이 문제에 대한 조직의 견해가 조정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여전히 형제들이 수염을 길러서는 안 되고 자매들은 신권 활동을 할 때 치마를 입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상황 5: 한 장로 형제는 추가 교육을 받았다가 진리를 떠난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장로 형제가 속한 회중의 한 젊은 형제가 추가 교육을 받기로 결정합니다. 장로 형제는 걱정이 된 나머지 그 젊은 형제와 부모에게 추가 교육을 받지 말라고 설득합니다.
8. (ㄱ) 어떻게 다른 부모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될 수 있습니까? (ㄴ)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태도가 회중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습니까?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종파적 교육이 우선이 아니라 자녀가 훌륭한 가치관을 가지고 선한 사람이 되며 근면하며 지혜로운 사람이 되도록 인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우리의 존재를 강화시켜 번영을 이룩하게 하는 방법이다. 시계탑의 교훈들은, 오로지 시계탑 주위에만 모여 시계탑을 옹호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려 한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 시계가 고장난 중국제라는 사실이다.
8 부모라면 다음과 같은 상황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십시오. 상황 6: 당신은 자녀를 “여호와의 징계와 훈계로” 양육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에베소 6:4) 그런데 다른 그리스도인 부모를 보니 당신보다 자녀에게 좀 더 많은 자유를 허락하는 것 같습니다. 자녀가 집에 더 늦게 들어오는 것을 허락해 주거나, 폭력적이지 않은 온라인 게임을 하게 해 주거나, 아직 어린데도 휴대폰을 갖게 해 줍니다. 그래서 당신의 자녀는 그 부모에 비해 당신이 너무 엄격하다고 생각합니다. “엄마 아빠는 왜 다 못하게 해요? 쟤네 엄마 아빠는 허락해 주는데” 하고 불평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당신은 그 부모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누군가가 내 생각과는 다른 결정을 내리면, 그 결정을 판단하게 되기가 쉽습니다. 사실 언급된 상황 외에도 다른 사람을 판단하게 되는 상황이 너무나 많습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돈을 어디에 쓰는지, 여행을 얼마나 자주 다니는지, 어떤 여가 활동을 즐기는지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지나치게 앞세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러한 태도는 회중의 연합에 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9. 다른 사람이 내리는 결정에 대해 무엇을 기억해야 합니까? (또한 삽화 참조)
성경에서 가르치는 일치란, 획일적 사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생각을 조화시켜 연합을 이루라는 뜻이다. 단단한 결속력은 그 연합의 구성 요소가 갖지 못한 새로운 창조력을 발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로 다른 의견이 있을 때, 의견 조율이 안 되면 각각의 의견을 인정한 채 연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타협이고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이다.
9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다른 결정을 내리는 경우, 반드시 한쪽은 맞고 한쪽은 틀린 것은 아닙니다. (로마 14:5) 물론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치된 생각을 하라”고 권고합니다. (고린도 후서 13:11) 하지만 이 말은 우리 모두가 여호와의 법을 따라야 한다는 뜻이지, 모든 문제에 대해 똑같은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것을 특정한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해 우리가 선택하는 다양한 방법에 비할 수 있습니다. 보통 어느 목적지에 가는 방법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입니다. 각자가 자신의 상황에 맞고 자신이 선호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와 비슷하게 그리스도인들도 개인적인 문제에 있어서 다양한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의 목적지는 동일합니다. 바로 여호와를 기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내리는 개인적인 결정을 판단하지 않습니다.—마태 7:1; 데살로니가 전서 4:11.
왜 다른 사람의 결정을 존중해야 합니까?
10. 야고보서 4:12에 따르면 우리에게는 어떻게 할 권한이 없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야고보는 우리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상대방을 멸망할 대상으로 깎아내리는 말로 폄훼해서는 안 된다고 알려준다. 흔히 시계탑 교인들은 그들의 교리 전달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아마겟돈에서 멸망될 사람으로 분류하는 우를 범한다.
10 성경에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 내린 개인적인 결정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들을 알려 줍니다. 그중 몇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개인적인 결정을 판단할 권한이 없습니다. (야고보서 4:12 낭독) 여호와만이 의로운 입법자이시며 재판관이십니다. 우리에게 무엇은 해야 하고 무엇은 하지 말아야 하는지 명령할 권한은 그분에게만 있습니다. 따라서 형제자매들은 자신이 내린 결정에 대해 우리에게가 아니라 여호와께 답변해야 합니다. (로마 14:10) 우리는 자신의 기준이나 견해에 따라 다른 사람의 결정을 판단하거나 비난할 권리가 없습니다.b
11. 우리는 어떻게 회중의 연합에 기여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또한 삽화 참조)
공동체의 연합을 잘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공동체가 가지는 이념에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 시계탑 주위에 모여 시계만 쳐다 보면서 세상의 멸망 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시계가 고장난 중국제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연합에서 흩어지게 될 것이다. 물론 그 중에는 시계탑이 고장난 줄은 알지만 기다리는 동안 주위에 친구가 생겨 교리와 관계없이 교제를 즐기려고 연합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공동체가 단단히 연합되기 위해서는 그 공동체가 추구하는 이념이 영원하고 유익한 가치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공동체의 권위가 위로부터 왔다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왔다는 느낌을 가져야 할 것이다.
11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가 똑같기를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 연합되기를 바라십니다. 사실 그분은 다양성을 매우 좋아하십니다! 창조물을 보면 그 점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셀 수 없이 많은 눈송이 중에 구조가 똑같은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십시오. 80억이 넘는 인류 가운데 외모와 성격이 똑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를 서로 다르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누군가의 복제 인간이 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로 연합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내 생각과는 다른 행동을 할 때 부정적인 감정을 가질 것이 아니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나 자신의 기호와 견해보다 회중의 연합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로마 14:19.
어떻게 다른 사람의 생각을 존중할 수 있습니까?
12-13. 누군가가 “걸음을 잘못 내디딘”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무엇을 기억해야 합니까? (갈라디아서 6:1. 또한 “다른 사람의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제하의 내용 참조)
하느님의 법이란, 객관적으로 입증된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며 마음으로 그렇게 느낀 사람의 신앙 고백인 것이다. 즉 그것은 어떤 기록이나 문구를 하느님의 말씀 또는 법이라고 객관적으로 인정시키려 들거나 강요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믿는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고백하는 형태인 것이다. 그러므로 상대에게 조언할 때는 자기의 믿음을 온화하고 친절하게 알려주는 형태로 이야기하는 방식이 권장된다.
12 다른 사람이 개인적인 결정을 내릴 때. 이렇게 자문해 보십시오. ‘그 사람은 “걸음을 잘못 내딛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단지 나와 다른 걸음을 내딛고 있는 것인가?’ 만약 그가 정말 걸음을 잘못 내딛는 것이라면, 다시 말해 하느님의 법을 어기는 행동을 하는 것이라면 이렇게 자문해 보십시오. ‘나는 그 사람을 바로잡아 주기에 적합한 사람인가? 아니면 영적 자격을 가진 다른 누군가가 그 일을 해야 하는가?’ 당신이 그 사람을 바로잡아 주어야 할 입장이라면 온화하고 친절한 태도로 도와주십시오. (갈라디아서 6:1 낭독) 하지만 많은 경우, 다른 사람들이 내리는 결정은 잘못된 결정이 아니라 내 생각과는 다른 결정일 뿐입니다. 그런 경우라면 그 사람의 동기나 영성에 대해 의문을 품거나 그의 결정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하지 마십시오.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스스로 결정을 내릴 그의 권리를 존중해 주십시오.—로마 14:2-4.
13 이런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친구와 함께 식당에 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친구에게 내가 주문한 메뉴를 똑같이 주문하라고 강요하겠습니까?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친구가 자신이 원하는 메뉴를 고르게 해 줄 것입니다. 그가 당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메뉴를 선택하더라도, 그것은 그의 자유이고 당신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습니다. 당신이 먹을 음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분명 당신도 친구가 자신의 기호대로 당신의 메뉴를 정해 주기를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와 비슷하게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음으로 스스로 결정을 내릴 그들의 권리를 존중해 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어떤 형제나 자매가 내린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다음과 같은 점들을 자문해 보십시오. 그렇게 하면 불필요한 걱정을 하지 않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갈라디아 6:5.
그 결정은 하느님의 법을 어기는 것인가?
그는 성장 배경이 나와 달라서, 내 생각과 다른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닌가?
그 결정 때문에 그가 정말 해를 입을 것인가? 내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최악의 상황을 걱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 결정에는 어떤 장점이 있을 수 있는가?
그는 정말 “걸음을 잘못 내딛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단지 나와 다른 걸음을 내딛고 있는 것인가?
그가 정말 걸음을 잘못 내딛는 것이라면, 나는 그의 생각을 바로잡아 줄 영적 자격을 가진 사람인가?
14. 개인적인 결정을 내릴 때 어떤 점에 유의해야 합니까? (고린도 전서 8:12, 13)
개인적 결정이 공동체의 이념과 다를 때, 상대방에게 그 점을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공동체 이념과 무관할 때는 가장 좋은 방법을 논할 수 있으며 또한 각자의 방법을 택할 수 있을 것이다. 미시적으로는 차이를 느낄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의견이 다른 대부분의 경우, 평소에 더 똑똑하고 더 많은 지혜를 발휘하는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게 될 것이다.
14 당신이 개인적인 결정을 내릴 때. 우리 각자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함으로 회중의 연합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 전서 8:12, 13 낭독) 어쩌면 당신이 내리려는 결정이 하느님의 법에 어긋나지 않기 때문에 “허용되는”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지 모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면 그것이 과연 “유익한” 결정이겠습니까?c (고린도 전서 10:23, 24) 그런 경우 자신의 기호를 내세우지 말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배려해 주십시오. (로마 15:1) 물론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결정을 존중하듯 그들도 우리의 결정을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로마서 12:18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성경 말씀도 적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십시오.” 이 말씀과 일치하게,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평화를 유지하고 그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만한 일을 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15. 장로들은 어떻게 회중의 연합에 기여할 수 있습니까? (고린도 전서 4:6)
공동체를 이끄는 권위자들은 가능한 한 인간의 평화로운 관계로써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것이며, 많은 규칙을 만들어 벌칙을 가하는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규칙 때문에 순종하는 것보다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15 장로들은 다른 사람의 결정을 존중해야 합니다. 장로들은 성경에 “기록된 것들에서 벗어나지” 않고 개인적인 문제에 있어서 규칙을 만들지 않음으로 회중의 연합에 기여합니다. (고린도 전서 4:6 낭독) 더 나아가 그들은 우리 출판물에 나오는 성경에 근거한 교훈에서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떤 형제나 자매가 도움을 요청할 때, 자신의 생각이나 경험에만 근거해서 조언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근거해서 조언을 베풉니다.—이사야 48:17, 18.
16. 장로 각자는 장로의 회가 내린 결정에 어떻게 존중심을 나타낼 수 있습니까?
공동체의 합의로 이루어진 권위를 가진 자들에게 순종해야 하지만, 이 역시 그 권위들이 위로부터 온 것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 더욱 순종하게 된다. 다양한 의견에는 충돌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일시적 숏 포지션이므로 비록 오류가 있다 하더라도 거시적인 롱 포지션의 입장에 순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6 장로들 각자는 장로의 회가 내린 결정에도 존중심을 보여야 합니다. 장로의 회는 여호와께 기도로 성령을 청하고, 관련된 성경적 지침을 검토한 다음 그에 따라 결정을 내립니다. 그렇게 결정이 내려졌다면, 각 장로는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더라도 그 결정을 지지해야 합니다. (에베소 5:17) 그에 더해 장로들은 신권 지침을 확대 해석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하기 위해, 출판물의 전체 맥락은 무시한 채 일부분만을 근거로 내세우지 않아야 합니다.
17. 다른 사람이 내리는 결정을 존중할 때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이 나의 결정을 존중해줄 때, 나는 그 사람을 존중하게 된다. 내 생각이 옳기 때문에 상대방을 까는 행위는 친구를 적으로 만들게 되어 이익보다 손실을 가져온다. 중요한 점은 의견의 차이가 인격의 차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의견이 다르더라도 인격은 동일하게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다.
17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우리 한 명 한 명은 저마다 서로 다른 존재입니다. 우리는 서로 생각도 다르고 기호도 다릅니다. 우리가 그처럼 다양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정말 좋지 않습니까! 서로 배경과 성격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회중은 다채로우면서도 편안한 곳이 됩니다. 따라서 서로 다르다고 해서 멀어질 것이 아니라 계속 평화롭게 지내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자신이 내리는 결정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다른 사람이 내리는 개인적인 결정을 존중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은 정말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일입니다. 우리의 노력을 통해 회중은 더 끈끈하게 연합되고, 행복이 넘치는 곳이 될 것입니다.—시 133:1; 마태 5:9.
다른 사람의 생각과 결정을 존중하는 데 다음의 성구들이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
노래 89 잘 듣고 순종하여 축복을 받으라
에필로그. 100년이 넘는 시계탑 종파는 그 동안 성원들의 수를 늘리는 데 총력을 다해 왔으며 그 수단으로서 항상 시계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시간 약속이 너무 자주 틀리게 되었으며, 이제는 한 세대라는 최후의 보루까지도 함락된 지경이므로, 더 이상 시계에 의존할 수 없게 되자, 이제는 작전을 바꾸어 이미 확보된 성원만이라도 결속을 다지며, 2세대가 가능한 한 이탈되지 않도록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여기에 필요한 연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성원들의 인간 관계를 좋게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들의 중심 교리에만 어긋나지 않는다면 무엇이나 자유를 주고 서로의 인권을 존중해주자는 쪽으로 선회하려고 한다. 사실 이러한 방향이 초기부터 이루어졌어야 하는 것이다. 숫자보다 연합력이 중요한 것이고, 그 연합력은 참된 이상을 향하여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지 "늑대가 나타났다"는 양치기 소년의 외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는 '좋은 소식'이란 '하느님의 나라'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며 하느님의 나라는 구성원들의 숫자에 달린 것이 아니고 구성원들의 인간 관계로써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숫자를 먼저 늘여서 하느님의 나라를 완성시키겠다는 생각이 잘못된 것임은 명확히 증명될 수 있다. 그것은 한 국가나 세계 전체를 한꺼번에 이상 사회로 만들 수 없음이 분명한 것으로써 입증된다. 하나의 사회가 이상적인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의식 구조가 변화되는 것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한 사회가 통채로 그렇게 되기란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어떤 이념에 의해서 모인 성원들이 어느 순간에 가서 비로소 통채로 하느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나라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숫자 증가를 우선적으로 추구해서는 안되며, 소수의 사람이라도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며 사랑하는 공동체가 되어서 그것을 확장하는 방식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실패한 이유도 그것이다. 야곱의 열두 아들이 서로 좋은 관계를 가지고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는 상태로 만들어서 야훼 숭배에 전념하는 방식을 취했다면 성공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형식적으로만 야훼 숭배를 선택했을 뿐, 실제 그들의 삶은 '속이는 저울 추'의 삶인 우상 숭배가 혼합되었기 때문에 하느님의 나라가 이루어질래야 이루어질 수 없었다. 작금의 시계탑 종교의 방식은 100년 동안 모여진 물적 자원과 인적 자원에 미련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버리지 못하는 아쉬움에서 나오는 자구책에 불과하며, 2천년 동안 소위 기독교 종파가 걸어온 길을 반복하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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