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13일 묵상 본문 : 역대상 24장 1절 - 31절 - 왕이요 제사장으로 부르신 사명을 감당함으로 자신과 공동체를 세우는 자 되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오늘은 비가 내리는 일기 가운데 하루를 시작합니다.
오랜만에 내리는 비라 반갑기도 하지만 이제 비가 그치면 기온이 많이 떨어질 것 같네요.
변하는 날씨의 상황이 시시각각 다르지만 계절의 변화는 변함없이 주어짐을 봅니다.
인생의 모습도 매 순간의 상황을 다르지만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모든 일이 진행되고 있음을 고백하며 주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감이 지혜임을 고백합니다.
오늘도 그 지혜를 얻어 믿음의 삶을 살아가도록 친히 인도하여 주옵소서.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주님 앞에 내어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새 영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주의 음성을 분별하고 따르게 하시며 주님이 주시는 양식으로 풍족하게 하옵소서.
날마다 가장 좋은 길로 이끄시고 생명을 누리게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과 주해
1 아론 자손의 계열들이 이러하니라 아론의 아들들은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이라
2 나답과 아비후가 그들의 아버지보다 먼저 죽고 그들에게 아들이 없으므로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였더라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불이 아닌 다른 불로 담았다가 하나님의 징계로 죽임을 당했다.(레10:1,2) 이에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제사장의 직분을 담당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3 다윗이 엘르아살의 자손 사독과 이다말의 자손 아히멜렉과 더불어 그들을 나누어 각각 그 섬기는 직무를 맡겼는데
다윗 시대에는 사독과 아히멜렉이 제사장 직분을 감당했는데 이들은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의 자손이었음을 보여준다.
4 엘르아살의 자손 중에 우두머리가 이다말의 자손보다 많으므로 나눈 것이 이러하니 엘르아살 자손의 우두머리가 열여섯 명이요 이다말 자손은 그 조상들의 가문을 따라 여덟 명이라
5 이에 제비 뽑아 피차에 차등이 없이 나누었으니 이는 성전의 일을 다스리는 자와 하나님의 일을 다스리는 자가 엘르아살의 자손 중에도 있고 이다말의 자손 중에도 있음이라
당시 엘르아살의 자손들이 이다말의 자손보다 2배 많았다는 사실을 우두머리 숫자를 통해 알 수 있다. 제비를 뽑아 24반차를 정했는데 성전의 일을 다스리는 자와 하나님의 일을 다스리는 자는 반차를 구분하는 의미에서 사용된 말로 볼 수 있다.
6 레위 사람 느다넬의 아들 서기관 스마야가 왕과 방백과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의 아들 아히멜렉과 및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우두머리 앞에서 그 이름을 기록하여 엘르아살의 자손 중에서 한 집을 뽑고 이다말의 자손 중에서 한 집을 뽑았으니
서기관은 중요 사건의 기록을 남기는 관리를 의미한다. 이 직책은 다윗 왕 시대부터 등장한다.(삼하8:17) 아마도 애굽의 관제를 본떠 도입한 관직으로 추정한다.
7 첫째로 제비 뽑힌 자는 여호야립이요 둘째는 여다야요
8 셋째는 하림이요 넷째는 스오림이요
9 다섯째는 말기야요 여섯째는 미야민이요
10 일곱째는 학고스요 여덟째는 아비야요
11 아홉째는 예수아요 열째는 스가냐요
12 열한째는 엘리아십이요 열두째는 야김이요
13 열셋째는 훕바요 열넷째는 예세브압이요
14 열다섯째는 빌가요 열여섯째는 임멜이요
15 열일곱째는 헤실이요 열여덟째는 합비세스요
16 열아홉째는 브다히야요 스무째는 여헤스겔이요
17 스물한째는 야긴이요 스물두째는 가물이요
18 스물셋째는 들라야요 스물넷째는 마아시야라
19 이와 같은 직무에 따라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그의 아버지 아론을 도왔으니 이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하신 규례더라
총 24명의 제사장은 일주일을 기준으로 돌아가면서 성전의 일을 담당한 것으로 추정한다.
20 레위 자손 중에 남은 자는 이러하니 아므람의 아들들 중에는 수바엘이요 수바엘의 아들들 중에는 예드야며
20절부터 31절은 일반 성전 봉사 레위인의 24반열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
21 르하뱌에게 이르러는 그의 아들들 중에 우두머리 잇시야요
22 이스할의 아들들 중에는 슬로못이요 슬로못의 아들들 중에는 야핫이요
23 헤브론의 아들들은 장자 여리야와 둘째 아마랴와 셋째 야하시엘과 넷째 여가므암이요
24 웃시엘의 아들들은 미가요 미가의 아들들 중에는 사밀이요
25 미가의 아우는 잇시야라 잇시야의 아들들 중에는 스가랴이며
26 므라리의 아들들은 마흘리와 무시요 야아시야의 아들들은 브노이니
27 므라리의 자손 야아시야에게서 난 자는 브노와 소함과 삭굴과 이브리요
28 마흘리의 아들 중에는 엘르아살이니 엘르아살은 아들이 없으며
29 기스에게 이르러는 그의 아들 여라므엘이요
30 무시의 아들들은 마흘리와 에델과 여리못이니 이는 다 그 조상의 가문에 따라 기록한 레위 자손이라
앞서 23장에서는 성전 봉사 레위인들에 대한 소개가 제공되고 있으나 본문에서는 앞선 소개보다 10명의 이름이 더 확대되어 소개되고 있다. 그런데 게르손 자손에 속한 반열이 소개되지 않았는데 아마도 이는 필사자의 자료 유실이 그 원인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숫자가 늘어난 이유는 가문 중 새로운 계열이 등장하여 성장했기에 그것을 반영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31 이 여러 사람도 다윗 왕과 사독과 아히멜렉과 제사장과 레위 우두머리 앞에서 그들의 형제 아론 자손처럼 제비 뽑혔으니 장자의 가문과 막내 동생의 가문이 다름이 없더라
성전 봉사 레위인들도 제비를 통해 반차를 뽑았고 이는 차별이 없는 공평한 행정에 의하여 진행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나의 묵상
본문은 제사장 직분을 맡게 된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의 자손에 대한 내용이다.
다윗 당시에는 엘르아살의 자손 사독과 이다말의 자손 아히멜렉의 자손들이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했었음을 보여준다.
이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섬길 자들로써 24명의 사람들이 서로 연합하여 순번을 정하고 성전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담당하는 이들이 되었던 것이다.
이들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섬길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택에 기인한다.
이는 사람의 노력도 아니며 그 사람의 재산에 대한 구분도 아이었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에 의해서 모든 일이 진행되도록 만드셨던 것이다.
부르심 받은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부르심을 따라 순종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자신의 지혜로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순종을 통해 부르심에 반응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되지 않을 때 나타나는 결과는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맞게 된 결과처럼 죽음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신 이유는 복음을 전하도록 하기 위함이며 복음의 선포는 자기 지혜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하는 것임을 증거 한다.
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1:17~21)
때때로 교회 지도자는 자신이 가르치고 양육한 제자들이 자신을 따르도록 독려할 때가 있다.
그리고 때로는 그런 제자들이 많음으로 인해 교회에서 세력을 형성하기도 한다.
그 그룹이 장로가 되기도 하고 안수집사와 그 외 교회 중직들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시도와 집단의 구분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만드는 일이 된다.
바울의 고백처럼 하나님이 바울을 세우신 것은 세례를 베풀고 세력을 형성하도록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서도록 돕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를 주장하는 자가 아니라 부인하는 자가 되어야 하며 오직 자신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해야 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윗이 레위인과 제사장들이 자신들의 직분을 잘 감당하기 위해 질서를 정하고 반차를 따라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도록 돕는 모든 일을 하게 만든 것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이다.
제사를 통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이 목적인 것처럼 성도도 복음을 전함으로써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이 부르심 받은 자들의 목적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관계를 깨달은 베드로는 성도가 어떤 존재로 부름 받았는지를 제시한다.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벧전2:9,10)
신약 시대에서 왕이요 제사장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에 성도가 취할 태도는 다름 아닌 복음을 증거 하는 일에 순종하는 것임을 고백하게 하신다.
그러나 그 일에 순종하지 못하는 연약함이 내 삶에 깊이 뿌리 내려져 있음을 알기에 다시 주의 긍휼과 자비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사명에 순종하는 자로 설 수 있어야 함을 깨닫게 된다.
바울이 복음의 증거는 첫째는 유대인이요 다음이 헬라인이라고 선포한 것처럼 복음은 자신을 비롯한 성도에게 증거 되어야 하며 또한 불신자에게 선포되어야 할 메시지임을 보게 된다.
오늘도 그 복음의 선포를 나의 삶에 선포하고 복음에 연합되어 살아가기를 소망하며 또한 지체들과 주변의 사람들에게 선포하여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자로 설 수 있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늘도 주의 말씀 앞에서 주님이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이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신과 백성들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 가운데 살아가도록 만들기 위한 것임을 봅니다.
그래서 자신의 사명을 감당할 때 공동체가 바르게 설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도의 사명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며 이것을 잘 감당하는 것이 왕이요 제사장으로 부르신 사명에 충실한 모습임을 깨닫습니다.
매번 불충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어리석은 인생을 긍휼히 여겨 주시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다시 충성된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복음을 내 안에 선포하며, 공동체 가운데 증거 하고 주변 사람에게 전하는 자가 되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사명을 감당하는 모습이 되어 주님의 빛을 증거 하게 하시고 사람들이 빛 가운데로 나아가도록 돕는 일에 힘쓰게 하옵소서.
오늘도 함께 하시고 진리의 빛으로 성도를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