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은 23세 때 큰 형인 정약현의 처남 이벽을 통해 천주교에 관심을 가졌지만 신유박해 당시에는 천주교를 믿지 않던 상황이었습니다. 신유박해로 정약용의 셋째 형인 정약종은 목숨을 잃었고, 둘째 형인 정약전과 정약용은 유배를 가게 되었지요.
정약용은 1801년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전라남도에서 18년 동안 갇혀 살게 됩니다. 500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과 실학의 집대성이라는 그의 학문성과는 실은 그 유배생활이 낳은 작품이었다. 기나긴 유배생활이 아니었다면 그 같은 몰입과 정진이 불가능했겠기에 하는 말이다. 18년의 유배는 그 자신에겐 고통의 시간이었으나 역설적으로 정약용을 정약용이게 만든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시간 동안, 정약용 곁을 지킨 여인이 있었다. 이름도 나이도 모르고, 정약용과의 사이에 낳은 홍임(紅任)이라는 딸아이 이름을 따서 ‘홍임이 모’라고만 알려진 여인이다. 꼿꼿하고 정갈한 선비, 존경스럽기만 한 대학자 정약용이 어찌 정실부인 아닌 여자를 가까이했겠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백범 김구도 중국에서 도피 시절 뱃사공 처녀와 같이 살며 아들까지 낳았는데, 소실 두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조선 시대 사람 정약용이 그랬대서 놀랄 일은 전혀 아니다. 놀랄 일은 오히려 그런 사실이 밝혀지지 않고 묻혀 있었던 점이다.
묻혀 있던 ‘홍임이 모’의 존재를 입증해준 건 최근 국문학자 임형택이 발굴한 한 편의 연작시였다. 제목은 <남당사(南塘詞)>. 지은이는 누군지 알 수 없으나 강진의 문인이라고 짐작된다. 다행히도 지은이는 시 앞에 홍임이 모에 대한 짤막한 설명을 붙여놓았다. 몇 줄 안 되는 설명이지만 그것으로 ‘홍임이 모’는 구전 야사(野史)의 주인공에서 실제 인물로 되살아났다.
▲주막집 동문매반가의 주인 할머니와 딸. 다산 정약용이 유배봇짐을 풀 수 있도록 골방을 내어준 은인이다. 사의재 뒷편에 동상으로 서 있다.
홍임이 모는 정약용의 유배시절 소실이었다. 친정은 강진 남당으로 정약용이 다산초당에 살았던 10여 년 동안 홍임이 모는 정약용을 지극정성으로 모셨다. 밥 짓고 빨래하고 드나드는 손님들 맞이하고 철따라 자라는 찻잎을 땄다. 유배가 풀려 정약용이 경기도 마현의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홍임이 모는 낭군을 따라나섰다. 딸 홍임이도 함께였다.
그런데 무슨 사연에선지 홍임이 모는 내침을 당했다. 그리고 친정인 남당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아녀자 홀로 경기도에서 전라도까지 가야 할 먼 길이 염려되었는지 박씨 성 가진 남자를 붙여 데려다주게 했다. 박씨를 따라 전라도 장성에 이른 홍임이 모를 그곳 명문 집안인 김씨 집 남자가 탐을 내어 범하려 했다.
"내 비록 천한 몸이나 조관(朝官)을 지낸 분의 첩실이다. 어찌 감히 이럴 수 있느냐?"
홍임이 모는 그길로 정약용과 살던 다산초당으로 갔다. 날마다 연못과 정자, 수풀 사이를 서성이며 눈물을 흘렸다. 비록 첩이지만 헌신하던 남편에게 버림받고 또 모르는 남자에게 넘보임 당한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하릴없이 여겨졌을까. 그 후 홍임이 모는 다산초당에서 홀로 아이를 기르며 살았다.
"나는 듣고서 몹시 슬프고 안타깝게 여긴 나머지 <남당사> 열여섯 구를 지었다. 이 노래는 한결 같이 여인의 마음을 파악해서 표출한 것이요, 하나도 부풀린 말은 없다. 읽는 이들은 살피기 바란다."
<남당사>의 지은이는 이렇게 설명을 맺었다. 그리고 자신이 홍임이 모가 되어 시를 써내려갔다.
천고에 빛나는 문장 세상에 특출한 재주(絶代文章間世才)
만금을 주고도 한번 만나기 어렵거니(千金一接尙難哉)
갈가마귀 봉황과 어울려 짝이 될 수 있으랴.(寒鴉配鳳元非偶)
미천한 몸 복이 넘쳐 재앙이 될 줄 알았지요.(菲薄心知過福災)
갈가마귀처럼 미천한 몸이 봉황새 같은 정약용을 만난 것은 복이 아니라 재앙이라고 홍임이 모는 자탄하고 있다.
어린 아이 총명도 해라 그 아비 닮았는가(幼女聰明乃父如)
아빠를 부르고 울먹이며 "언제 와요?"(喚爺啼問盍歸歟)
한나라는 소통국도 속해 왔다는데(漢家猶贖蘇通國)
무슨 죄라고 이 아이는 유배지에 남아 있나요?(何罪兒今又謫居)
정약용은 딸아이를 거두지 않았나 보다. 자신의 신세보다 딸아이의 앞날이 더 걱정이던 홍임이 모는 흉노에게 잡혀 흉노 여인과의 사이에 소통국이란 아들을 낳고 살았던 한나라 사람 소무의 고사를 들먹이며 무심한 부정(父情)을 원망한다. 소무는 몸값을 바쳐 자식을 거두었다는데 당신은 어찌 침묵만 하냐고. 하지만 원망도 잠깐, 어느새 솟구치는 그리움에 진한 눈물을 흘린다.
고적한 집 홀로 그림자를 끌어안으니(孤館無人抱影眠)
등잔 앞 달빛 아래 옛 인연이로다(燈前月下舊因緣)
서재며 침실이며 꿈결에 어렴풋이(書樓粧閣依俙夢)
베개 머리에 눈물 흔적만 남았구나(留作啼痕半枕邊)
그러다 지친 홍임이 모는 체념과 절망으로 마음을 닫는다. 나를 저버린 당신만이 저버린 진짜 이유를 알 거 아니냐고 정색의 물음을 던지며.
남당 노래 여기서 그치나니(南塘歌曲止於斯)
이 노래 마디마디 절명의 소리(歌曲聲聲絶命詞)
남당의 노래 들어볼 것도 없이(不待南塘歌曲奏)
저버린 마음이야 저버린 사람이 잘 알겠지(負心人自負心知)
정약용은 떠나보낸 홍임이 모녀에게 어떤 배려를 했을까? 강진 시절의 제자가 마현으로 찾아왔을 때, 정약용은 "이엉은 새로 했는가? 우물 축대의 돌들은 무너지지 않았는가? 못 속의 잉어 두 마리는 더 자랐는가?" 하고 시시콜콜 물으면서도 그곳을 지키고 있는 홍임이 모녀에 대해선 한 마디도 묻지 않았다. 그런 일을 입 밖에 내는 건 체모에 어긋나서였을까? 아니면 차마 못 물은 걸까? 구전에 따르면, 홍임이 모는 매년 새로 돋는 찻잎을 정성스레 따서 차를 만들어 마현으로 보냈단다. 매년 올라오는 차를 본 정약용, 시를 한 수 지었단다.
▶ 사의(四宜)란 용모, 말씨, 성품, 행동
기러기 끊기고 잉어 잠긴 천리 밖에(雁斷魚沈千里外)
매년 오는 소식 한 봉지 차로구나( 每年消息一封茶
정약용은 고향집으로 돌아간 지 18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에게 정치적 재기의 기회는 영영 오지 않았다. 홍임이 모와의 재회도 영영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약용이 죽은 뒤 홍임이 모는 어찌 되었을까? 초당에서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언제 세상을 떴는지, 홀로 남았을 홍임이는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강진 남당포 출신의 그녀가 초당에 왔을 때, 유배 10여 년 차의 다산은 심신이 위태한 상태였다. <시경강의> 12책 저술에 의욕을 쏟은 것이 무리였는지 수족과 언어에 마비가 왔다. 절망한 다산은 아들에게 준 당부의 글에서 오래지 않아 당도할 자신의 상장례를 의논하기까지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막 조성되던 해배 분위기가 무산되었다는 소식이 왔다. 제자들이 돌아가며 식사 당번을 하지만 누군가 작심하고 섭생과 수발을 맡아야 할 형편이었다. 그 무렵의 상황을 전해주는 <매조도>에 “묵은 가지 다 썩어 그루터기 되려더니 푸른 가지 뻗어 나와 꽃을 다 피웠구나.”라는 시가 있어, 소실과의 만남으로 다산의 스러져가는 심신이 되살아났음을 알 수가 있다. <논어고금주> 등 다산의 대표적인 저술들이 그녀를 만난 이후 쏟아지듯 나온 사실은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이숙인 서울대 규장각 책임 연구원>
그러나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홍임이 모의 존재는 근 200년의 세월을 넘어 홀연 한편의 시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정약용에게 정실 아닌 소실이 있었다 해서, 그리고 마흔 살 나이에 시작되어 한두 해도 아닌 20년 가까이 걸린 유배생활 동안 수발든 여인이 있었다 해서, 정약용의 인품과 학문이 빛 바래는 건 전혀 아니다. 위인이라고 무오류의 완벽함으로 치장시킬 필요는 없다. 완벽함으로 치장된 위인은 그 자신을 왜곡시킬 뿐더러 그 그늘에 수많은 인간들을 가두기 마련이다. 그늘에 갇힌 이들을 양지로 끌어낼 때, 위인도 비로소 인간의 얼굴을 갖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유학은 실천이 없는 껍데기이다.
그래서 조선 500년을 지배했던 유학이 사라진 것이다.
삼서삼경을 앞뒤로 줄줄 외워 과거시험에 합격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아빠가 보고 싶어 그리워하며 우는 딸(홍임)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민다.
유학 2, 500역사에서 인(仁)를 가장 멋지게 해석한 인물이 다산이라고 한다.
“인(仁)이란 사람과 사람 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정의 했다.
이렇게 멋진 말을 했지만 생명의 은인인 소실과 핏줄인 딸을 야멸차게 대하는
모습은 다산을 인격도 품격도 없는 인물로 만들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새싹을 틔우는 건 따뜻한 기운이다.
생명을 움트게 하는 따뜻한 기운이 곧 사랑이다.
출처: 한국여성단체연합 참조
첫댓글 佛法僧 三寶님께 歸依합니다.
거룩하시고 慈悲하신 부처님의 加被와 慈悲光明이 비춰주시길 至極한 마음으로 祈禱드립니다. 感謝합니다.
成佛하십시요.
南無阿彌陀佛 觀世音菩薩()()()
I return to Buddha, Law, and Seung Sambo.
I pray with all my heart that the holy and merciful Buddha's skin and mercy light will be reflected. Thank you.
Holy Father.
Avalokitesvara Bodhisattva ()()()
향상일로 시인님의 좋은글 "다산 정약용과 홍님이 모(少室)"와 름다운 영상 즐감하고 갑니다.
오늘은 미소를 더하면 명품이래요. 우리 명품한번 됩시다....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관세음보살.
마하반야바라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