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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4일(수)
* 시작 기도
(왕상 17:24)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
주님...
시돈 땅 사르밧에 사는 과부의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에 가뭄이 들 것을 아합 왕 앞에서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말씀대로 선포한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대로 그릿 시냇가에 가서 생활하였습니다.
이에 말씀하신 까마귀들이 조석으로 떡과 고기를 날랐습니다.
그리고 그릿 시내의 물을 마셨으나 가뭄으로 인하여 시내가 말랐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시돈의 사르밧으로 가서 한 과부에게 그 집에 머물면서 극심한 가뭄 속에서 먹고 죽을 것도 없는 상황에서 먼저 떡을 만들어 자신에게 가져올 것을 주문하였습니다.
이에 여인은 엘리야의 말대로 행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집에 있는 통의 밀가루가 줄지 않았고 병의 기름도 줄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즈음에 어린 아들이 위중한 병에 걸려 죽게 되었습니다.
과부 여인은 이에 대하여 마음이 상하였고, 당신이 왜 내게 와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내 아들을 죽게 하였느냐고 다그쳤습니다.
이에 엘리야가 그 아들의 시체를 받아서 자기 침상에 눕히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러자 아이의 혼이 몸에 들어와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 아들을 어머니에게 주자 그 여인이 이렇게 고백한 것입니다.
물론 이런 기적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런 기적을 행한 엘리야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기적을 행하였다 할지라도 그것은 완전한 영생의 표지가 아님을 압니다.
다만 죽은 생명을 살려주신 하나님의 행동하심을 높일 뿐입니다.
저 역시 그런 기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 원합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어 거룩한 불구자로 이 하루도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대상 25:1-31
제목 : 신령한 노래를 하며
1 다윗이 군대 지휘관들과 더불어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의 자손 중에서 구별하여 섬기게 하되 수금과 비파와 제금을 잡아 신령한 노래를 하게 하였으니 그 직무대로 일하는 자의 수효는 이러하니라.
2 아삽의 아들들은 삭굴과 요셉과 느다냐와 아사렐라니 이 아삽의 아들들이 아삽의 지휘 아래 왕의 명령을 따라 신령한 노래를 하며
3 여두둔에게 이르러서는 그의 아들들 그달리야와 스리와 여사야와 시므이와 하사뱌와 맛디디야 여섯 사람이니 그의 아버지 여두둔의 지휘 아래 수금을 잡아 신령한 노래를 하며 여호와께 감사하며 찬양하며
4 헤만에게 이르러는 그의 아들들 북기야와 맛다냐와 웃시엘과 스브엘과 여리못과 하나냐와 하나니와 엘리아다와 깃달디와 로맘디에셀과 요스브가사와 말로디와 호딜과 마하시옷이라.
5 이는 다 헤만의 아들들이니 나팔을 부는 자들이며 헤만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왕의 선견자라. 하나님이 헤만에게 열네 아들과 세 딸을 주셨더라.
6 이들이 다 그들의 아버지의 지휘 아래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아 여호와의 전에서 노래하여 하나님의 전을 섬겼으며 아삽과 여두둔과 헤만은 왕의 지휘 아래 있었으니
7 그들과 모든 형제 곧 여호와 찬송하기를 배워 익숙한 자의 수효가 288명이라.
8 이 무리의 큰 자나 작은 자나 스승이나 제자를 막론하고 다같이 제비 뽑아 직임을 얻었으니
9 첫째로 제비 뽑힌 자는 아삽의 아들 중 요셉이요 둘째는 그달리야이니 그와 그의 형제들과 아들들 12명이요
10 셋째는 삭굴이니 그의 아들들과 형제들과 십이 명이요
11 넷째는 이스리이니 그의 아들들과 형제들과 십이 명이요
12 다섯째는 느다냐니 그의 아들들과 형제들과 십이 명이요
13 여섯째는 북기야니 그의 아들들과 형제들과 십이 명이요
14 일곱째는 여사렐라니 그의 아들들과 형제들과 십이 명이요
15 여덟째는 여사야니 그의 아들들과 형제들과 십이 명이요
16 아홉째는 맛다냐니 그의 아들들과 형제들과 십이 명이요
17 열째는 시므이니 그의 아들들과 형제들과 십이 명이요
18 열한째는 아사렐이니 그의 아들들과 형제들과 십이 명이요
19 열두째는 하사뱌니 그의 아들들과 형제들과 십이 명이요
20 열셋째는 수바엘이니 그의 아들들과 형제들과 십이 명이요
21 열넷째는 맛디디야니 그의 아들들과 형제들과 십이 명이요
22 열다섯째는 여레못이니 그의 아들들과 형제들과 십이 명이요
23 열여섯째는 하나냐니 그의 아들들과 형제들과 십이 명이요
24 열일곱째는 요스브가사니 그의 아들들과 형제들과 십이 명이요
25 열여덟째는 하나니니 그의 아들들과 형제들과 십이 명이요
26 아홉째는 말로디니 그의 아들들과 형제들과 십이 명이요
27 스무째는 엘리아다니 그의 아들들과 형제들과 십이 명이요
28 스물한째는 호딜이니 그의 아들들과 형제들과 십이 명이요
29 스물두째는 깃달디니 그의 아들들과 형제들과 십이 명이요
30 스물셋째는 마하시옷이니 그의 아들들과 형제들과 십이 명이요
31 스물넷째는 로맘디에셀이니 그의 아들들과 형제들과 십이 명이었더라.
* 나의 묵상
역대상 24장은 성전 예배를 위한 준비로써 성가대의 직무를 기술한다.
중요한 것은 성전의 성가대원들이 본래 다윗에게 그 기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그들의 위치에 정통성을 부여하려고 한 부분이며, 조직상 제사장, 레위인들과 같은 뿌리를 두고 있다.
성가대원들은 다윗과 군대 지휘관들 곧 예배담당관에 의해 임명된 예배 요원으로 간주하였다.
성전의 성가대원들은 아삽, 헤만, 여두둔 가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그의 자녀들과 함께 여호와를 찬송하는 연습을 하였는데, 모두 288명이었다.
또한 이들은 제비뽑아 임명되었으며 아삽은 네 가문을, 여두둔은 여섯 가문을, 헤만은 14가문을 대표한다.
이들 세 가문은 모두 레위인이며 그 근거는 역대하 5:12에서 분명히 언급된다.
(대하 5:12) 노래하는 레위 사람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과 그의 아들들과 형제들이 다 세마포를 입고 제단 동쪽에 서서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고 또 나팔부는 제사장 120명이 함께 서 있다가
한편 시편 150편 중에서 두 시편(39, 62편)의 제목에 여두둔이 나오고, 아삽이라는 이름은 열두 편(50, 73-83편)에, 헤만이라는 이름은 하나(88)의 시편에 제목이 붙어 있다.
성가대원들은 여러 가지 악기(수금, 비파, 제금, 나팔)로 “신령한 노래”를 부른다.
1, 3절에 나오는 “신령한 노래를 부르다”라는 히브리어 원문에서는 “예언하다”(히, 나바)의 의미를 갖는다(난하주 참고).
아삽의 시로 명명된 시편에서 적어도 다섯 개의 시편(50, 75, 76, 81, 82편)에 ‘예언적 요소’가 들어있다.
이들이 여러 가지 악기로 “예언”한 것은, 예배 예언이나 예언적 시를 의미할 수 있다.
구약에서 ‘예배 예언’의 전형은 여호사밧의 기도에 응하여 레위사람 야하시엘이 한 예언이다.
여호사밧은 모압과 암몬과 마온 사람들이 쳐들어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헀다.
이때 여호사밧은 “이 큰 무리를 대적할 능력도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고 오직 주만 바라본다.”라고 기도하였다(대하 20:12).
여호와의 영이 회중 가운데에서 ‘레위 사람’ 야하시엘에게 임하였다.
야하시엘은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하여,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내게 속한 것이다.”라고 하며 여호와께서 그들과 함께하실 것을 예언하였다.
여호사밧은 여호와 앞에 엎드려(예배하여), 경배하였다.
그리고 레위 자손들에게 심히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였다.
이렇듯 예배 예언(신령한 노래)은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며 드리는 찬송이다.
여호사밧은 노래하는 자들을 군대 앞에 세워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였다.
(대하 20:21)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그리고 이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 여호와께서 친히 전쟁을 치르시고 여호사밧으로 승리하게 하셨다.
신약시대 ‘신령한 노래’ 또는 ‘예배 예언’은 성령충만의 결과로 주어진다.
(엡 5:18-20)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골로새서의 병행 구절에서 ‘신령한 노래’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충만한 결과로 주어진다.
(골 3:16-17)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그러므로 성령 충만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성도 안에 풍성히 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한다.
여기서 말하는 ‘신령한 노래’는 구원의 주 하나님과 그 아들 어린양을 높이는 찬양이다.
곧 구원하신 일로 인해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이다.
(계 7:9-10)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계 15:3)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한편 바울이 ‘성령 충만’과 병행하여 사용하는 ‘그리스도의 말씀’은 ‘복음’을 말한다.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골 1:5)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그리스도의 말씀은 곧 복음이며 그리스도의 메시아적 행위이다.
이는 모든 시대 교회가 전해야 하는 ‘원복음’이며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됨, 부활의 사건이다(고전 15:3-5).
복음의 목적은 생명을 얻는 것이며, 곧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생명을 얻은 자는 왕적 제사장이며 영적 레위인이다,
그는 항상 찬송으로 제사를 드리며, 이는 신령한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날마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며 그리스도의 말씀(복음)이 풍성히 거해야 한다.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죄악과 존재의 비참함, 실존의 한계성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구속 은혜로 하나님의 긍휼을 입는다.
자기도 용납할 수 없는 자를 용납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신령한 노래로 그를 찬양하며, 그에게 감사한다.
항상 현존하는 그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소리 높여 찬양한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고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나는 신령한 노래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자였다.
예배 때나 특별집회 때 열심히 찬송을 부르기도 하였다.
하지만 복음(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히 거하지 않는 찬송은 흥겨운 세상 노래와 다를 바 없었다.
가사보다 분위기를 따라 감정이 고양된 상태에서 부르는 노래였다.
10년여 전 복음이 영으로 계시되고 생명이 실제되었다.
날마다 말씀묵상을 통해 내 죄를 발견하고 그런 자를 용납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부음 받는다.
특히 나 같은 자를 대신하여 아들을 내어주시고 죽게 하신 그 은총에 목이 멘다.
복음을 주시고 생명을 누리게 하신 놀라운 은혜!
생명을 누리면서 이전과 분명히 달라진 일이 있다.
이제는 찬송을 부를 때마다 가사(시) 한 절 한 절이 영혼 깊은 곳을 감동시킨다.
무의미하게 읊조리는 찬송이 아니라 나의 고백이 된 것이다.
연약하고 어리석은 자에게 긍휼을 베푸신 주를 찬양한다.
내 마음이 보이는 것이나 탐욕에 끌리지 않으며 오직 말씀에 끌리기를 간구한다.
오늘도 내가 구하는 한 가지, 평생 아버지 집에 거하며 그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레위인들은 예언을 하며 신령한 노래를 불렀습니다.
저를 구원하셔서 영적 레위인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제는 성취된 예언인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히 거하여 ‘신령한 노래’를 부릅니다.
하지만 저는 신령한 노래를 알지 못하였고 부르지 못했나이다.
복음도 생명도 알지 못했기에 원망과 시비가 제 안에 가득했습니다.
진실로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나이다.
주께서는 사망으로 향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인 복음을 통해 생명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날마다 말씀 앞에 나아가 복음을 주신 영생을 누리게 하십니다.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으리요? 더 바랄 것이 없나이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날, 세월(카이로스)을 아끼며 주의 일에 힘쓰게 하소서.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며, 복음으로 충만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