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잔> 한글 공식 홈페이지
http://www.disney.co.kr/tarzan/index.html
<타잔: 잃어버린 도시> 홈페이지
http://www.tarzan-lostcity.com/
인터넷 속의 타잔 홈페이지
http://www.ac.wwu.edu/~stephan/Tarzan/
에드거 라이스 버로 홈페이지
http://www.bridgewater.edu/~sgallowa/450/burroughs/burroughs1g2.htm
이번에 선보인 디즈니의 <타잔>을 포함해 지금까지 만들어진 공식적인 <타잔>영화는 총 50편.
여기에 <타잔>의 아이디어를 이용한 <조지 오브 정글> 등 이른바 ‘외전’들까지 포함한다면 그 숫자는 100편을 훨씬 넘는다.
그러한 <타잔>영화의 역사에 첫장을 장식한 작품은 첫 <타잔>소설과 같은 제목의 였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의 고정관념과는 전혀 달리 거대한 몸집을 가진 엘모 링컨이라는 배우가 무성영화 시절의 타잔을 연기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영화촬영중 진짜 사자를 죽인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엘모 링컨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타잔을 연기한 배우는 20여명에 이른다.
그중에서도 가장 ‘타잔답다’고 평가받는 배우는 1932년 이라는 영화를 시작으로 모두 12편의 <타잔>영화에 등장한 조니 와이즈뮬러다.
5개의 올림픽 금메달을 받은 수영선수 출신인 그는 제인을 연기한 머린 오설리번과 함께 <타잔>영화를 최고의 흥행작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두 배우가 알몸으로 물 속에서 춤추는 장면이 등장해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1934년작 를 마지막으로, <타잔>영화는 가족관객을 대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 즈음 미국영화계에 불어닥친 검열의 바람을 피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와이즈뮬러 이후, 타잔 역은 운동선수 출신 배우들의 몫이 되었다. 우선 SF영화 <플레시 고든>에도 출연했던 수영선수 출신의 버스터 크라베가 1933년부터 타잔을 연기했으며, 1935년에는 10종경기선수 출신의 허먼 브릭스가 바통을 이어받아 타잔을 연기하기 시작했다.
이어 1959년엔 UCLA 출신의 농구스타 데니 밀러가, 1966년엔 미식축구선수 마이크 헨리가 이 전통을 이어갔다. 그러나 마이크 헨리의 뒤를 이은 또다른 미식축구선수 출신인 론 엘리가 연이은 부상을 이유로 더이상의 출연을 포기하면서, <타잔>영화는 한동안 만들어지지 않는다.
론 엘리 주연의 1970년작 를 마지막으로 <타잔>영화가 만들어지지 않은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론 엘리는 1966년부터 68년까지 에서 방영한 <타잔> TV시리즈에도 출연했는데, 총 57회가 만들어진 이 TV시리즈의 성공으로 더이상 관객들이 <타잔>을 보기 위해 극장에 가지 않게 된 것이 첫 번째 이유였다.
두 번째 이유는 론 엘리가 현대적인 타잔의 전형으로 인식돼버려 그를 능가할 만한 대안을 찾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그 TV시리즈가 방영된 이후 론 엘리가 타잔과 동일시되었던 적이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1976년 론 엘리가 새로운 <타잔> TV시리즈에 출연했지만, 이미 식어버린 <타잔>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그뒤로 타잔을 소재로 만든 영화는 단 세편밖에 없다. 그중 1984년 크리스토퍼 램버트와 앤디 맥도웰 주연의 (국내에선 <그레이스토크>로 개봉)는 타잔에 대한 현실적인 접근을 한 작품이었지만, <타잔>의 인기를 부활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를 만든 스탠리 캔터는 지난해 <스타쉽 트루퍼스>의 캐스퍼 반 디엔과 <연인>의 제인 마치를 기용해 좀더 현대적인 <타잔>영화를 만들어 타잔의 부활에 도전했다. 그 작품이 영국에서 교육받고 살아가던 타잔이 자신이 자란 정글이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막기 위해 돌아간다는 이야기의 <타잔과 잃어버린 도시>다. 하지만 이 영화는 타잔의 부활은 고사하고, 관객들의 시선을 끄는 것조차 실패하고 말았다.
이렇게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거나 다름없는 타잔에게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타잔>은 새로운 생명력을 불러넣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더불어 여성에 대한 비교적 ‘정치적으로 올바른’ 시각을 보여줘 높이 평가를 받은 <뮬란>처럼, 기존의 <타잔>영화들이 가지고 있던 제국주의적인 시각을 과감히 버린 점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제인을 잡아간 원주민(또는 흑인)들을 동물들의 도움을 받아 죽이거나 쫓아버리는 것이 전부였던 과거의 <타잔>영화들과 비교해보면, 디즈니의 <타잔>은 개과천선의 경지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이다. 비록 세기말의 분위기 속에서 문명비판적이고 자연친화적인 동시에 정치적으로 올바른 <타잔>의 모습이 흥행에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한 디즈니의 흥행전략이 낳은 결과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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