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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계주의 비유
(1)오백 아라한의 기쁨과 자책
37 爾時五百阿羅漢 於佛前 得授記已 歡喜踊躍 卽從座起 到於佛前
이시오백아라한 어불전 득수기이 환희용약 즉종좌기 도어불전
頭面禮足 悔過自責
두면예족 회과자책
爾時五百阿羅漢이 於佛前에 得授記已하고
그때 오백 아라한이 부처님 앞에서 수기를 얻어 마치고
歡喜踊躍하야 卽從座起하야 到於佛前하야
歡喜踊躍해서 곧 자리로부터 일어나가지고서 부처님 앞에 이르렀었다.
5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촥~ 수기를 받았으니까 얼마나 기뻐요? 그래 부처님 앞에 딱 와가지고서
頭面禮足하고 悔過自責하니라
머리로써 부처님 발에다 예배를 올리고 스스로 허물을 뉘우쳐. 스스로 자책해.
아 이 참 정말 그동안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우리가 정말 잘못 생각했구나. 부처님이 다~ 이야기 할 것 했는데 왜 머리 총명하고 소견이 트이고 마음 넓은 사람들은 얼른 얼른 다 알아버렸는데, 아 우리는 어쩌다가 이렇게 소견이 좁아가지고 이렇게 이제사 알았는가?’이렇게 자책하는거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그래요.
38 世尊 我等常作是念 自謂已得究竟滅度 今乃知之 如無智者
세존 아등상작시념 자위이득구경멸도 금내지지 여무지자
世尊하 我等常作是念하대 自謂已得究竟滅度러니
세존이시여, 우리들이 항상 이러한 생각을 하대. 스스로 여기기를 自謂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미 얻었다고 생각했습니다. 究竟滅度 최상의 열반을 얻었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한 사람 그저 번뇌가 다 사라져서 마음 편안한게 이게 전부라고 생각을 했다 이 말입니다. 그러다가
今乃知之호니 如無智者니다
지금에 이에 그것을 알았으니 무지한 사람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자기 그 개인의 인격은 부처님이나 똑같은데 그 생각은 안하고 부처로서 살 생각은 꿈에도 생각 못하고, 그만 번뇌가 사라지고 고통이 사라져가지고 편안하게 내 혼자 일단 내 한 몸 편안하면 그만 그것이 다인양으로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무지한 사람입니까? 그래 스스로 무지한 사람과 같았었습니다. 이제 500명이라도 지금이라도 이렇게 자신의 처지를 알게되고 거의 솔직하게 고백을 하니까, 이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죠.
39 所以者何 我等應得如來智慧 而便自以小智爲足
소이자하 아등응득여래지혜 이변자이소지위족
所以者何오 我等應得如來智慧어늘
까닭이 무엇인고 하면은? 여기 있잖아요. 우리들이 응당히 여래의 지혜를 얻어야 하는데
如來智慧란 뭡니까?‘사람 사람이 그대로 부처님이다.’이건 이제 말은 쉬워도 제목은 아주 간단한데 그 에 들어있는, 왜 부처님인가? 부처님의 이유가 뭐가 있는가? 도대체 사람 사람의 그 본성의 그 궁극적 차원은 도대체 어떻기에 우리를 부처님이라고 하는가?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자꾸 공부하고 또 사유하고 이러한 것을 통해서 확신을 가져야 되겠죠.
그래서 我等이 응당히 如來智慧 여래지혜란게 그것입니다. 여래의 지혜를 응당히 얻어야되는데‘모든 사람이 부처님이다.’라고 하는 사실에 대해서 정말 추호의 그런 틈도 없이 확신을 가져야 되는데
而便自以小智爲足이니다
곧 스스로 작은 지혜로써 만족을 여겼습니다. 작은 지혜라고 하는 것은‘아 내가 번뇌가 사라지고 아무 걱정없이 그저 내 한 몸 그저 편안하면은 뭐 그걸로써 끝이다.’라고 하는 아주 이기적이고 소승적인 그런 생각으로써 그만 만족을 여겼다는 철저한 고백입니다. 그러니까 대승불교와 소승불교의 그 다른 점을 이런데서도 아주 확연히 선을 긋고 있습니다. 500명이라고 하는 아라한들은 사실은 소승이었거든요. 거기다가 이제 모든 사람이 공히 부처님이라면 모든 사람을 공히 또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길 줄도 알아야 되는거죠. 이게 이제 대승적인거여. 그게 이제 큰 지혜가 되는거죠.
그래서 스스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자기들의 걸어온 길이고 개인의 그 자책이지만은 이것을 이제 아주 조리정연하게 부처님께 이야기하면 이것이 기록으로 남아서 뒷사람들에게도 큰 교훈이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거죠. 그래서 이들이 비유를 들어서 이야기를 합니다. 예 아주 유명한 비유에요. 이걸 이제 맬 계(繫)자, 구슬 주(珠)자, 비유 유(喩)자 계주유(繫珠喩)라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구슬을 저기 주머니 속에다 매주고 갔다.
(2)비유를 들다
40 世尊 譬如有人 至親友家 醉酒而臥 是時親友 官事當行 以無價寶珠
세존 비여유인 지친우가 취주이와 시시친우 관사당행 이무가보주
繫其衣裏 與之而去
계기의리 여지이거
世尊하 譬如有人이 至親友家하야 醉酒而臥러니
세존이시여, 비유하건대 어떤 사람이 아주 그 가난하고 거지로 사는 사람이라.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아주 거지고 한 사람은 아주 거부장자야. 그래서 이제 어떤 이 거지로 사는 친구가 친구의 집에 親友家에 이르렀다 이 말이요. 어떻게 돌아다니고 얻어먹고 다니다가 친구, 부자인 친구 집에 떡 이르렀어. 친구 집에 이르니까 이거 옛날 친구 만났다고 부자인 그 친구는 잔뜩 그냥 배불리 대접하고 술도 대접하고 그러는거요. 그래 저녁에 잔뜩 먹고는 이제 술에 취해가지고 누워서 잠이 들어버렸어.
是時親友는 官事當行일새
그때 親友는 또 이제 아침에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관청의 일이 있어가지고서 어디에 가게됐어. 마땅히 가게됐다. 그러니 친구는 모처럼 참 잘먹고 술도 많이 마시고 곯아 떨어졌거든, 그래서‘저 사람한테 뭔가 평생 거지생활 벗어날 수 있는 그런 돈을 좀 주고가야 되겠다.’이 생각을 한거야.
以無價寶珠로 繫其衣裏하고 與之而去러니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그런 보배 구슬로써 그 사람의 옷 속에다가 매줬어. 단단히 그 옷 속에다가 저 옷 속에다가 매줬어. 그래 그에게 주고는 가버렸다.
그러니까 일찍이 관청에 볼 일이 있으니까 부자니까 일도 많을거 아니에요. 그래서 가버렸다 이거여. 그래서 이 거지인 친구는
41 其人醉臥 都不覺知 起已遊行 到於他國 爲衣食故 勤力求索
기인취와 도불각지 기이유행 도어타국 위의식고 근력구색
甚大艱難 若少有所得 便以爲足
심대간난 약소유소득 변이위족
其人醉臥하야 都不覺知하고
그 사람은 취해서 누워 잠들어서 도무지 깨달아서 알지를 못하고
아주 어마어마한 값이 나가는 그런 그 구슬을 주머니에 이제 넣어줬는데 이 사람은 술에 취해놓으니까 알 길이 없지.
起已遊行하야 到於他國하야
일어나서는‘아이구 참 친구덕택에 대접 잘 받고 잘 먹었다고 잘 잤다.’고 하고는 그만 또 자기 본래의 모습대로 이제 돌아다니게 됐다. 다른 나라에까지 이제 돌아다니면서 역시 이제 하던 거지생활을 그대로 밥을 얻어먹으면서 돌아다니게 되었다.
爲衣食故로 勤力求索에
옷과 밥을 위한 까닭으로 부지런히 부지런히 그 뭐 얻어 먹는 것도 쉽나요? 일찍 가야 겨우 이제 밥 조금 얻을 정도니까, 부지런히 이제 힘을 써서 求索 밥과 옷을 구색하며 구함에
甚大艱難이라 若少有所得이면 便以爲足이러라
매우 크게 어렵고 어려웠다. 艱難 어렵고 어려웠다. 조금 소득이 있을 것 같으면은 곧 만족을 여겼더라.
그 조금 밥 몇 숟가락 얻어먹으면‘아이구 됐다.’하고 감지덕지하고 그저 어디가서 그저 입던 옷 버린거 하나 주우면은 그 고맙게 생각하고 그것으로 만족을 여겼더라.
제42강-2(42-50)
http://cafe.daum.net/yumhwasil/8NPB/103
(http://yumhwasil.linkone.co.kr/skc-v1/금요법회/20100305법화경(보)2.wmv)
42 於後親友 會遇見之 而作是言 咄哉丈夫 何爲衣食 乃至如是
어후친우 회우견지 이작시언 돌재장부 하위의식 내지여시
我昔欲令汝得安樂 五欲自恣 於某年日月 以無價寶珠 繫汝衣裏
아석욕령여득안락 오욕자자 어모년일월 이무가보주 계여의리
今故現在 而汝不知 勤苦憂惱 以求自活 甚爲癡也 汝今可以此寶
금고현재 이여부지 근고우뇌 이구자활 심위치야 여금가이차보
貿易所須 常可如意 無所乏短
무역소수 상가여의 무소핍단
於後親友가 會遇見之하고
그 뒤에 또 이 부자인 친구가 그 사람을 또 만났어. 會遇야. 그 사람을 만나서 보니까 역시 거지로서 그대로 살거든, 기가 찰 거 아녀.
而作是言하대 咄哉丈夫여
스스로 이러한 말을 하대“하~ 안됐다.”咄哉라 하는 것은‘아이구’咄哉라. 丈夫야. 참 안됐다. 불쌍하다. 이 장부야.
何爲衣食하야 乃至如是오
어찌하여 의식을 위해서, 옷과 밥을 위해서 여기까지 이러한 경지까지 이르렀는가?
我昔欲令汝得安樂하야 五欲自恣일새
내가 옛날에 그대로 하여금 安樂을 얻도록 하기 위하여‘그 좋은 집 뭐 백 평 넘는 아파트도 사고 그냥 막 은행에 돈도 몇백 억 그냥 예치해놓고 할 수 있도록’그렇게 해서 오욕락을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그렇게 내가 했것만은 했을새
於某年日月에 以無價寶珠로 繫汝衣裏라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날에 無價寶珠로써, 그래 내가 너를 그렇게 할려고 실컷 잘먹고 잘살도록 하기 위해서 無價寶珠로써 그대의 옷 속에다가 매어 줬거늘
今故現在어늘 而汝不知하고
그 어디 내가 넣어준데 찾아보자하고 손을 넣어서 거기 이제 그 구슬 넣어준데를 찾아보니까 그대로 있는거야. 그거 뭐 거지가 되어놓으니까 뭐 제대로 옷을 갈아입을 수가 있나?
지금도 짐짓 나타나 있다 이 말이여. 지금도 그대로 있더라 이거여. 그 보물, 그 어마어마한 보물을 그대로 지금도 있거늘 그러나 그대는 그것을 알지를 못하고
勤苦憂惱하야 以求自活하니
부지런히 고통스럽게 살면서 그저 먹고 입고 할 것을 근심걱정하면서 스스로 스스로 살 것을 구했으니
甚爲癡也로다 汝今可以此寶로
매우 매우 어리석고 어리석도다. 그대는 지금 가히 이 보물로써
貿易所須하면 常可如意하야 無所乏短이니다
이것을 貿易 팔아가지고 所須 필요한 것을 구할 것 같으면은 항상 가히 如意 뜻대로 될 것이다. 뭐 자가용 사고 싶으면 자가용 사고 아파트 사고 싶으면 아파트 사고 무슨 기사두고 싶으면 기사두고, 마음껏 조금도 모자라거나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여기까지가 비유에요. 그럼 비유하고 법하고 합해서 이야기합니다.
(3)비유에서 법을 밝히다
43 佛亦如是 爲菩薩時 敎化我等 令發一切之心 而尋廢忘 不知不覺
불역여시 위보살시 교화아등 영발일체지심 이심폐망 부지불각
旣得阿羅漢道 自謂滅度 資生 艱難 得少爲足 一切智願 猶在不失
기득아라한도 자위멸도 자생 간난 득소위족 일체지원 유재불실
佛亦如是하야 爲菩薩時에
부처님도 또한 이와 같아서 과거 보살이 되었을 때
敎化我等하야 令發一切之心커늘
우리들을 교화해서 우리로 하여금 일체 지혜의 마음을 발하게 했거늘, 一切之心 이게 중요한 거죠. 지혜의 마음, 일체를 아는 지혜의 마음을 내도록 했는데 실컷 그렇게 가르쳤는데
而尋廢忘하고 不知不覺하며
곧 바로 잊어버리고 그 말입니다. 우리가『법화경』통해서 무수히 그런 것을 이제 글로 보고 말로 듣고 한 번 생각하고 눈으로 보고 그렇게 하지만은, 그만 그저 그 구절 지나가면 또 잊어버리고 책장 넘겨버리면 잊어버리고 일어서면 잊어버리고 집에가면 잊어버리고 시장가면 잊어버리고 그저 잊어버릴거 뿐이야. 그냥
즉시 廢亡이야. 곧바로 잊어버리고, 廢亡이란건 그 말입니다. 잊어버리고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며
旣得阿羅漢道라하야 自謂滅度나
이미 아라한도를 얻었다. 나는 뭐 그정도 불교안에서 기도해서‘우리집 아이 학교잘가면 됐다. 뭐 이렇게 이정도로만 살면 됐다. 바라던 바 성취하면 됐다.’요렇게만 생각한다 이거지.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자기들의 그 어떤 마음의 안녕만, 개인의 마음 안녕만 취하면은 됐다라고 이렇게 이제 생각을 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 예를 들어서 거지로 어디가서 밥을 한 숟가락 얻고 옷 하나 얻고 그럼 뭐 그러면 만족해 여기는거 똑같거든, 그 거지가 그 그렇게 그 한들 또 밥 다음끼 또 얻어먹어야 되잖아. 그럼 그 다음끼 또 얻어먹어야 되는거야. 아 자기 재산이 넉넉히 있으면은 이거 뭐 세세생생 자기 재산으로 살텐데 거지가 돼놓으니까 또 얻어먹어야 되고 또 얻어먹어야 되고 내일되면 또 얻어먹고 모레되면 또 얻어먹고, 이렇게 되는거야. 이건 이제 무슨 뜻인고 하면?
이 소승의 어떤 아라한도라고 하는 것은 이 자기 그 본성에 대해서 깊이 있게 이해를 못하니까 이거가지고는 그야말로 한 끼 먹고 나면 또 한 끼 다음끼 걱정해야 되고 또 다음끼 걱정해야 되고 하는 것과 똑같다는 뜻입니다. 여기, 阿羅漢道라고 하는 것은 그래요. 소승불교라고 하는 것은 그와 같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멸도, 열반이라는 거죠. 열반을 얻었다고 하나
資生이 艱難하야 得少爲足하나
살아가는데 살아가는 일이 艱難이여. 그 저기 거지처럼 한 끼 얻어먹으면 그 다음끼 또 걱정해야 되고 그 다음끼 또 걱정해야 돼. 그래서 한 끼 얻으면 일단은 그걸로 만족하죠. 작은 것을, 적은 것을 얻어서 만족을 여기나
一切智願은 猶在不失이니라
일체의 뜻과 원은, 그야말로 기존의 보물이죠. 지혜와 원은 오히려 잃어버리지 않는데 있다.
결국 가지고 있다 이 말입니다. 사실은, 자기 본성은 그대로 가지고 있는데 그거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불성인간(佛性人間) 인간의 지고한 가치 그~ 지극히 고귀한 그 가치는 정말 그대로 가지고 있다. 猶在不失이야. 잃어버린 적이 없다 이 겁니다.
그 저기 친구가 준 보물을 잃어버리지 않고 내 지금도 가지고 있듯이 그렇게 우리의 본성은 누가 뺏어가지도 못하고 누구에게 주고 싶어도 주는 것도 아니고 그런 존재에요. 그러니까 사람 사람이 다 평등한 거요. 사실은, 다 존경받아 마땅한거야. 다 부처님처럼 존경을 받아야 돼. 그래 서로 해줘야 돼. 또, 서로 그렇게 위해줘야 되는거죠.
44 今者世尊 覺悟我等 作如是言 諸比丘 汝等所得 非究竟滅
금자세존 각오아등 작여시언 제비구 여등소득 비 구경멸
我久令汝等 種佛善根 以方便故 示涅槃相 而汝 謂爲實得滅度
아구령여등 종불선근 이방편고 시열반상 이여 위위실득멸도
今者世尊이 覺悟我等하사 作如是言하사대
지금 세존께서 우리들을 깨닫게하사 이와 같은 말씀을 하대
諸比丘야 汝等所得은 非究竟滅이라
여러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얻은 바는 究竟의 최상가는 그 멸도, 최상가는 열반이 아니다.
我久令汝等으로 種佛善根일새
내가 오랫동안 그대들로 하여금 부처님의 선근, 부처라고 하는 그 선근을 심게했을새
以方便故로 示涅槃相이어늘
방편을 쓴 까닭에, 그래서 방편을 쓰다보니까 그런거죠. 그런데 방편마저 안쓰면은 그나마 다 떨어져나가 버리는 거죠. 그 방편을 안쓸 수 없었던 거요. 사실은, 그 방편이 진실은 아니지만은 방편마저 안쓰면은 다 떨어져나가 버리지. 선불교도 그런 말이 있어요.‘최상승법만 가지고 이야기하기로 하면은 법당 앞에 풀이 한 길이나 자라가지고 놉을 해서 법당에 풀을 뽑아야 할 처지가 될 것이다.’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그 법당 앞에 풀이 없고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발자국이 많고 반짝반짝하면은‘아 틀림없이 방편을 많이 쓰는구나.’그렇게 알면 돼. 방편 많이 쓰는데는 그냥 구름떼처럼 모이는거요. 어디 어디 다 기억나죠? 눈에 선하죠? 방편 잘쓰는 곳일수록 구름떼처럼 모이는거요. 그래 선사스님들이 그랬다니까‘방편을 안쓰고 진실법만 말하기로 하면은 법당 앞에 풀이 한 길이나 자랄 것입니다.’아무도 절에 찾아오는 놈이 없을 것이다. 이 말이여. 허허허 그래 그런거 지금 우리는 이렇게 늦은 시대에 사니까 다 알게되는 거라. 알아야되요. 그래서『법화경』은 부처님 교설의 완결판이다라고 할 수 있으니까 이런 이야기를 다 하는거죠.
그래서 방편을 쓴 까닭에 열반상을 보였거늘
而汝는 謂爲實得滅度라이니다
그러나 그대는 謂 생각하기를 실로 멸도를, 진실로 이제 멸도를 얻은 것이다. 열반을 얻은 것이다라고 했다 이 말이여.
사실은 방편으로 한 것인데, 그 불교가 여기까지 이것이다. 끝도 없습니다. 이게, 끊임없이 우리가 그 안목을 넓히고 견문을 넓히고 해서 진실한 불교, 바른 불교, 정법 불교를 만나야 이게 이제 서로 소득이 있습니다. 진짜 우리 불자들에게 진짜 소득이 있는 거요. 방편은 우선 입에는 달콤할지 몰라도 그것은 큰 소득은 아닌거죠. 그래 이제 정말 정법을 이해해야 진짜 큰 소득이 있는거죠.
말하자면 밥 한 끼 그저 사주는 것하고 세세생생 뭐 평생 잘먹고 잘살 수 있는 그런 큰~ 보물 덩어리를 하나 얻는 것하고 이 비교가 안되죠. 도저히 비교가 안되는거요. 이제 그런 것을 이제 이 제자들이 지금 내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면은, 앞에서 비유로 든거와 같이 그러한 삶을 살았노라하는 그런 솔직한 고백이죠. 참 아주 극적인 장면이죠. 그래서 이『법화경』은 참 구석구석이 이야기할거리도 많고 재밌는 비유도 많고 교훈이 되는 점도 많고 그렇습니다.
45 世尊 我今 乃至實是菩薩 得受阿耨多羅三藐三菩提記 以是因緣
세존 아금 내지실시보살 득수아뇩다라사먁삼보리기 이시인연
甚大歡喜 得未曾有
심대환희 득미증유
世尊하 我今에 乃至實是菩薩로 得受阿耨多羅三藐三菩提記하고
세존이시여, 우리가 지금에 이에 실로 보살로서 阿耨多羅三藐三菩提의 기록 얻은 것을 알고
以是因緣으로 甚大歡喜하야 得未曾有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매우 크게 환희해서 미증유를 얻었습니다.
이렇게 아주 솔직하게 500명 제자들이 그렇게 고백을 합니다. 이러한 것은 비단 500명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 모든 불자들에게 다 해당되는 거죠.
그래 우리 도반 한 분은 그 그전 선방에 있을 때 보면은 하도 사사한 소리를 많이 해. 그 타고난 성품은 참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가지고 아주 삿된 그 생각이 있어. 그 자기 나름대로 뭐 삿된거 하나 이렇게 본 것이 있는데 그게 그렇게 달콤하고 좋은가봐. 그 우리가 기탄없이 지적을 해주거든요. 그건 소견이 잘못된거다. 잘못된거다. 그 생각은 잘못된거다라고 그렇게 해주면 이 스님이 또 진실해. 사람이 아주 솔직해가지고 자기도 그것이 이 바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안다는 거요. 아는데 아 고게 고소한 맛이 있다는데, 달콤한 맛이 있어서 쉽게 버려지지 않는다는 거요. 자기 얻은 소견에 대해서 달콤한 맛이 있어서 이게 쉽게 스스로 부정할 수가 없다는 거지. 그 솔직하게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구. 우리가 그냥 사정없이 지적하거든요. 그러면 이제 이 스님은 사람이 아주 좋은 사람이라.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이제“아 자기도 알긴 아는데 쉽게 버려지지가 않는다.”
그렇죠. 우리 불자들도 이제 그런 점에 대해서 갈등하는 일이 아주 많을거야. 대승불교를 안배우면 모를까, 공부해놓고 나니까 아 그다음에 또 이제 그동안의 그 자기가 익혀온 불교가 있거든 그 불교에 대해서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또 그야말로 이걸 또 최상의 불교라고 믿고 따를 수도 없고 또 그동안 공들여 온게 있고 투자한게 있으니까, 용기. 보살의 제일 덕목이 뭐라고? 용맹 그랬습니다. 하하 용기가 필요한 거죠.
그 다음에 이제 중송입니다.
6.게송으로 거듭 밝히다
(1)오백아라한의 기쁨과 자책
46 爾時阿若憍陳如等 欲重宣此義 而說偈言
이시아야교진여등 욕중선차의 이설게언
爾時阿若憍陳如等이 欲重宣此義하사 而說偈言하니라
그때 아야교진여 등이 이 뜻을 거듭 펴려고 게송으로써 설하대. 시 형식으로 이제 설하는 거죠.
47 我等聞無上 安隱授記聲 歡喜未曾有 禮無量智佛 今於世尊前
아등문무상 안은수기성 환희미증유 예무량지불 금어세존전
自悔諸過咎 於無量佛寶 得少涅槃分 如無智愚人 便自以爲足
자회제과구 어무량불보 득소열반분 여무지우인 변자이위족
我等聞無上 安隱授記聲하고
우리들은 들었습니다. 최상가는 편안한 그 授記聲 수기하는 소리를 듣고
歡喜未曾有하야 禮無量智佛이니다
미증유를 환희해서, 일찍이 있지 않던 것을 기쁘게 받아 들여서 한량없는 지혜의 부처님에게 예배드립니다.
今於世尊前에 自悔諸過咎니다
지금 부처님 세존 앞에 스스로 모든 허물들을 뉘우치대
於無量佛寶에 得少涅槃分호니
한량없는 佛寶에 조그만한 열반이라고 하는 그 부분을 얻었습니다. 그러니까 옛날에 자기가 알았던 그 불교입니다.
如無智愚人하야 便自以爲足이니다
그것은 마치 無智한 어리석은 사람과 같아서 곧 스스로 만족을 여겼습니다.
(2)비유를 들다
48 譬如貧窮人 往至親友家 其家甚大富 具設諸肴饍 以無價寶珠
비여빈궁인 왕지친우가 기가심대부 구설제효선 이무가보주
繫着內衣裏 默與而捨去 時臥不覺知 是人旣已起 遊行詣他國
계착내의리 묵여이사거 시와불각지 시인기이기 유생예타국
求衣食自濟 資生甚艱難 得少便爲足 更不願好者 不覺內衣裏
구의식자제 자생심간난 득소변위족 갱불원호자 불각내의리
有無價寶珠 與珠之親友 後見此貧人 苦切責之已 示以所繫珠
유무가보주 여주지친우 후견차빈인 고절책지이 시이소계주
貧人見此珠 其心大歡喜
빈인견차주 기심대환희
譬如貧窮人이 往至親友家하니
비유하자면, 앞에서 들었던 비유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친구 집에, 부자인 친구 집에 가가지고서
其家甚大富라 具設諸肴饍하며
그 집은 매우 큰 부자라. 여러 가지 그 안주와 반찬 등과 음식들을 베풀어서 베풀며
以無價寶珠로 繫着內衣裏하고
無價寶珠로써 속옷에다가 매어주고
默與而捨去하대 時臥不覺知라
묵묵히 주고는 가버렸다. 볼 일로 밖에 나갔다 이거죠. 그 때 그 사람은 누워가지고 잠에 취해서 알지를 못했더라.
是人旣已起에 遊行詣他國하야
이 사람은 이미 일어남에 遊行하면서 멀리 他國에 나아갔어.
求衣食自濟하니 資生甚艱難이라
의식을 구해서 스스로 그것을 제도하니 살아가기가 資生 살아가는 생활이 매우 어렵고 어려움이라.
得少便爲足하고 更不願好者하며
작은 것을 얻고 곧 만족을 여기고 다시는 더 이상 더 좋은 것을 원하지 아니했으며
不覺內衣裏에 有無價寶珠러니
내의 속에 있는 것에 대해서 깨닫지 못하고, 無價寶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그런 것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더니
與珠之親友가 後見此貧人하고
그 구슬을 준 친구가 뒤에 이 가난한 사람을 보고
苦切責之已에 示以所繫珠어늘
아주 심하게, 苦는 아주 괴로울 '고'니까, 아주 심하게“야이 등신아! 바보야! 이 멍청아! 네가 무슨 팔푼이냐!”이런 식으로 아주 뭐 그 표현할 수 있는데까지 한껏 그저 꾸짖고 욕하고 뭐라고 막 그냥 핀잔을 주고 하는 그런 것을 苦, 苦라고 해요.
아주 괴롭게 심하게 간절히 책망한 뒤에, 그 사람에게 자기가 넣어준 그 보물을 구슬을 꺼내가지고 이렇게 보여주게된 거죠.
貧人見此珠하고 其心大歡喜라
그 가난한 친구가 이 구슬을 보고는 그 마음이 크게 환희했다.
참 아주 극적인 장면입니다. 이게 사실은‘우리가 아주 부족하다. 모자란다. 뭐가 어떻다. 뭐 나는 내 팔자는 어떻다. 내 신세는 어떻다.’이런 그 자기 처지에 대해서 우리가 불만족스럽게 여기고 있는데 사실은 그것보다도 우리 어떤 처지에 있든지간에 우리 개개인이 그~대로 우리 본성, 우리 심성, 나의 그 내 인격의 궁극적 차원에 있어서는 정말 뭐 부처도 부럽지않고 하나님도 부럽지 않고 세상의 어떤 거부장자도 어떤 대통령도 부럽지않는 그것보다도 훨씬 더 값지고 뛰어난 그런 그 존재라고 하는 이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거요.
그래 貧人見此珠하고 가난한 사람이 이 구슬을 보고 이 보물을 보고 하는 것은, 말하자면 우리 본성에 대한 그러한 사실을 알고 그럼 뭐라고? 見性이죠. 그게, 其心大歡喜라. 그 마음이 크게 환희했다. 기쁠 수 밖에 없죠 뭐. 세상에 무엇을 얻은들 그보다 더 기쁘겠어요. 이것은 모든 것을 다 능가하는 것입니다. 그 어떤 세상 가치로써는 뭐 천 배, 만 배를 거기서 더 보탠다 하더라도 이 가치에 비교가 안되는데
그래서 우리가 이러한 그 가치에 사실은 눈을 떠야되고 설사 눈을 못뜨더라도 이러한 이야기를 자꾸 귀로 스쳐가는 이근공덕(耳根功德), 귀로 스쳐가는 그저 스쳐가고 말더라도 귀로 스쳐가는 이 사실이 정말 가치있고 값진거요. 그래서 이것은 이제 내가 가끔 말씀드리지만은 이러한 그 최상승의 법문은 마치 다이야몬드를 삼키는 거와 같아서, 다이야몬드는 삼키면 소화되는 것도 아니고 저~기 뭐 똥이나 어디 거름으로 아무리 돌아다녀도 그 다이야몬드는 결코 손상이 없고 그대로 그 가치를 가지고 있듯이, 이 궁극적 인간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이런 대승법문은 귀로 한 번 스치고만 가도 이거 이근공덕이라고 해서 그 어떤 귀에 달콤한 그런 그 법문보다도 천 배, 만 배 가치있다. 이런 이야기를 이제 경전에서 많이하고 있습니다. 그런 어떤 그 믿음이 있어야 되는 거요. 그런 소신이 있어야되요.
그래서『법화경』은 좋아할 수 밖에 없고,『법화경』의 내용이 아주 그 불교의 완결판이다. 이런 표현을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3)비유에서 법을 밝히다
49 富有諸財物 五欲而自恣 我等亦如是 世尊於長夜 常愍見敎化
부유제재물 오욕이자자 아등역여시 세존어장야 상민견교화
令種無上願 我等無智故 不覺亦不知 得少涅槃分 自足不求餘
영종무상원 아등무지고 불각역부지 득소열반분 자족불구여
富有諸財物하야 五欲而自恣이니다
이제 부자가 돼가지고서 여러 가지 재물을 소유하고 있어. 오욕락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됐습니다.
我等亦如是하야 世尊於長夜에
우리들도 또한 이와 같아서 세존이 길고 긴 인생의 밤 長夜 긴 밤에
常愍見敎化하고 令種無上願이어늘
항상 우리를 불쌍하게 여겨서 우리를 교화해가지고서 최상가는 願을 심도록 했거늘
我等無智故로 不覺亦不知하야
우리들은 무지한 까닭에 깨닫지도 못하고 또한 알지도 못해서
得少涅槃分하고 自足不求餘니다
작은 열반의 분을 얻고는, 열반이라고 하는 아주 소승들이 얻는 아주 조그만한 거에요. 우리 불교에 막 귀의해가지고 뭐 어떤 소원, 작은 소원 성취한 그거하고 똑같습니다. 얻고는 스스로 만족하게 여겨가지고서 나머지를 더 이상 구하지 아니했노라.
그래 뭐 유치원만 나왔다하고는 좋다고 까부는거하고 똑같죠 뭐.‘아이고 나는 더 이상 초등학교도 다닐 것도 없다.’하고‘아 유치원 나왔으면 됐다.’하고 이런거하고 똑같은거야. 이게, 참 얼마나 안타까워요. 끊임없이 정진해야 되는거요.
50 今佛覺悟我 言非實滅度 得佛無上慧 爾乃爲眞滅 我今從佛聞
금불각오아 언비실멸도 득불무상혜 이내위진멸 아금종불문
授記莊嚴事 及轉次受決 身心徧歡喜
수기장엄사 급전차수결 신심변환희
今佛覺悟我하사 言非實滅度라하시니
그래서 부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覺悟케해서, 우리를 깨닫게해서 말씀하시기를 진실한 멸도, 진실한 열반이 아니다라고 그렇게 과감하게 말씀하셨습니다.
得佛無上慧하고서 爾乃爲眞滅이니라
부처님의 그 위없는 지혜를 얻고사 이에 그 眞滅을 삼았나니라.
그러니까 우리가 그 불교안에서 어떤 그 경지를 터득하더라도 거기에 만족할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나아가고 정진하는 그런 그 자세 그것이 이제 무엇보다도 필요한 거고, 그 자기의 그 작은 그 보물 얻은 것을 과감하게 스스로 부정할 수 있는 그런 용기가 있어야 되는거요. 그랬을때 발전하는 거지.
좋은 유치원에 다녔다고 그게 마음에 걸려가지고 내~ 그 유치원에서만 나이 한 살 더먹고 두 살 더먹고 그래도 내~ 그 유치원에만 맴돌고 그 유치원에만 간다면 그 꼴이 뭐겠습니까? 그런 사람 세상에 없잖아요. 하나도, 그런데 불교에 그런 사람이 많은거야. 불교안에는 내 그 유치원에 맴돌고 있는거요. 몇 년을 아니 몇십 년을 그렇게 맴돌고 있는거에요.
我今從佛聞 授記莊嚴事와
우리는 지금 부처님으로부터 들었다 말이요. 뭘? 授記‘그대도 또한 부처다.’또한 이 사실 그것은 아주 장엄스러운 일이야. 授記인 莊嚴事와 장엄스러운 그 일과 그리고
及轉次受決하고 身心徧歡喜이니다
轉次 차례차례대로 수기하라는 그런 그 말하자면은, 뭐라고 할까? 비결같은거죠. 결정(決定) 수기하라는 그런 결정적인 그런 말씀 하시는 것을 듣고, 그러니까 1200명 그리고 500명이‘너희들이 앞으로 이렇게 이렇게 너가 받고 그 다음에 이렇게 이렇게 하라.’그 다음 사람에게까지 수기주는 것을 다 부처님이 말해줬거든요. 그럼 이제 그 얘기를 우리가 안해주면은 이게 이제‘아 이건 부처님이 하는 일이지.’하고 말면은 이게『법화경』이 제대로 전해지는게 아니야.
‘부처님이 하는 일이지.’하고 말면『법화경』을 제대로 이해한 것도 아니고『법화경』을 제대로 이해했다면은 과감하게『법화경』의 이치대로 아무리 말세라 하더라도 2000년, 3000년, 4000년 뭐 몇만 년이 흐른 뒤에라도『법화경』의 원리대로‘사람이 부처님이다.’하는 그런 확신을『법화경』에 근거해서 심어줘야되는 거요. 심어줘야되고 그것을 이해하도록 해줘야하는 것입니다. 이게 그거에요.
轉次受決이라고 하는 것이 차례대로 차례대로 또 우리 차례되면 우리가 하고 다음 또 세대가 되면 다음 세대 차례에서 또 이야기해줘. 그래서 어떤 그 결정, 결정적인 그런 그 가르침을 받고 받는 것을 이제 듣고는 몸과 마음이 아주 크게 기쁘게 됐습니다.
1.고독한 양치기
https://www.youtube.com/watch?v=tpcRJV5qLHI&nohtml5=False
2.Evergreen - Susan Jac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