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입금지 존zone
우리는 현재보다 실체 없는 지나온 과거와,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현재 이 순간보다도 지나칠 정도로 머리를 쓰고 있기 때문에,
현재에 쓸 에너지를 그곳에 충당하기에 늘 활력고갈상태가 되고 있다.
“진보하려고 하는 자는 고민한다”라고 하는 괴테(1749-1832, 독일 작가 등)의 말이 있다.
우리들은 미래에 대하는 발전진보의 의욕이 있기 때문에, 미래를 걱정하고, 과거를 후회하는 것이다.
자신을 보다 좋게 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고민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리차드칼슨(1912-1977 미국소설가)은,
“과거의 기억에 진입금지의 푯말을 세우고, 그곳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말을 하는 그 자체가, 즉, 자기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고민한 것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들은 순간 과거의 일에 대해 생각을 꺼낸다. 습관이다.
이 ‘꺼낸다’고 하는 것이, 마음이 쓰리도록 아프게 한다.
사람에 따라, “좋은 것만 상기하면 되지 않나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우리들이 상기하는 것 9할은 싫은 기억이라고 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싫은 기억, 불쾌한 추억은 인상이 강열하다. 상당히 기억에 남기 쉽다고 한다.
그 한편 즐거운 기억은, 순간적인 기억으로 남을 뿐이다.
그리고 또 즐거운 기억 중에도 싫은 추억이 섞여 있다.
예를 들면, ‘그 사람, 참 나한테 잘해주었는데, 참 보고 싶다.
그런데, 동시에 나를 힘들게 한 것도 사실이야.
그 생각만 하면 진짜 꼴도 보기 싫어.’라는 식이다.
원래는, 과거의 즐거운 추억거리만 떠올리려고 하고 있지만, 순간 나도 모르게 싫은 것이 더 잘 상기된다.
또, 과거의 즐거운 추억은 쭉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것일까.
이와 같이 상기한다고 하는 행위가, 자신의 기분을 망치는 것이다.
불교의 석존은, “지나간 것을 쫓지 말고
아직 오지 않은 일은 마음에 두지 마라”라고 말하고 있고,
기독교의 예수는, “내일의 일까지 걱정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스스로 걱정한다.
그 날의 고생은 그 날만으로 충분하다”라고 말하고 있다.
육조혜능 대사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생각하지 마!”라고 말하고 있고,
또 禪師들은, “막망상(莫妄想 망상하지 마)”,
“방하착(放下着 내려 놓아라”,
“전후제단(前後際斷 과거 미래를 끊어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일본의 반규 선사는, “기억이 불행의 근원이다. 기억없으면 전부 좋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인가, 칼슨은, “진입금지의 신호를 눈앞에 떠올리고,
‘進入禁止’라고 읊조리라”고 말하고 있다.
뭔가가 떠오르려고 할 때에, ‘진입금지’라고 자신에게 명령하는 것이다.
과거와 미래는 ‘진입금지 존’이다.
여기에 들어가면, 벌금도 낼 수 있고,
다른 자동차와 충돌해 큰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그 상처는 우리들의 뇌에 위축을,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감히 말하고 싶다.
과거=지혜
현재=행복
미래=이익.
‘의상조사 법성게’에 “파식망상필부득叵息妄想匹不得”,
즉, ‘망상은 하지 않을 수 없다’라는 정도의 의미이다.
그래서 나는, 늘 머리가 터질 듯이 망상한다. 이것도 저것도.
망상하고 또 해서 망상을 하나로 모아 터뜨려 지혜로 승화시키려 하고 있다.
구애되는 것이 아니라, 망상을 지혜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언젠가는 자연히 될 것이다.
무심으로...
하지만 하지 않은 듯이.
‘번뇌즉보리’, ‘생사즉열반’의 경지...
원래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은 방편이다.
병에 따라 복용하는 약인 것이다.
약이 필요없는 사람은 복용 안 하면 되고,
필요한 사람만 필요할 때 복용하면 되는 것이다.
진입금지라도, 마음만 먹으면 들어갈 수 있다.
단 책임질 마음만 있으면.
자신의 판단에 의하여.
말과 글은 곧 ‘공空’이기 때문이다.
그 ‘공’은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려야 하는 것이다.
자기 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