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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누가복음 11:1-13
오늘 말씀은 기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여러분 기도를 많이 하십니까? 기도하면 정말 하나님께서 들어주실까요? 왜 우리는 기도를 잘 안할까요?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모범 기도문입니다. 주기도문을 묵상해 보면 깊은 뜻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어떤 내용을 가지고 어떤 자세로 기도해야 하는가? 를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또한 여기에는 ‘우리가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 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오늘 말씀 통하여 어떻게 기도하여야 응답을 잘 받을 수 있는가를 배우심으로 응답받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주기도문에 근거해서 기도해야합니다. 1절에는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누가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장면이 여러 곳에 나옵니다(3:21, 5:16, 6:12, 9:18, 9:28,29, 11:1, 22:32, 22:41,44) 예수님의 삶은 기도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누구보다도 기도를 많이 하셨고 기도하기에 힘쓰셨습니다. 어떤 때는 이른 새벽에 조용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고 주로 하루 일과를 마치고 밤을 새우며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는 기도하는 것이 몸에 배여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처럼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기도하거나 기도를 중언부언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뜨겁고 진실 되고 절실하였습니다. 히브리서에는 예수님의 기도를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5:7) 예수님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셨고,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덧입으셨으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모습은 겟세마네 기도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하시며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는 크게 하나님을 위한 기도와 우리를 위한 기도로 나누어집니다.
(1) “아버지여!” 이 호칭은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이 누구인가? 하는 것을 말해줍니다. 기도하는 것은 막연하게 하늘을 쳐다보면서 기도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기도의 대상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하며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신 것은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인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동안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감히 부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다는 것은 하나님이 하나님으로서 대접을 받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지으시고 그 뜻대로 유지시켜 나가시는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로부터 마땅히 영광과 존귀와 찬송을 받으셔야만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타락한 인간들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거나 감사하기는커녕 하나님을 모욕하고 있습니다(롬1:21). 그러므로 우리 믿는 자들은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이름이 존귀하게 여겨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 받고 영광 받도록 해야 합니다. 저 여자분은 하나님을 믿더니 참 남편을 잘 섬겨! 재는 교회를 다니는데 참 반듯해! 저 가정은 하나님을 믿더니 참 화목하게 되었어! 저분은 하나님 믿는데 참 사람이 모범적이야! 이렇듯 우리 삶을 통해 하나님이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해야 합니다.
반면에 “저분은 교회다니는데 왜 저모양이야” 믿지않는 분들이 이렇게 말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였습니다(고전10:31). 우리는 먹고 마시는 일에서 뿐만 아니라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학생은 공부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고, 직장에 다니시는 분들은 직장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도록 해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들을 말씀과 기도와 사랑으로 양육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건강이 좋을 때나 좋지 않을 때나, 축복의 때나 환난의 때나, 성공할 때나 실패할 때나 어떤 경우에든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려야 기도응답을 받습니다.
욥은 사단의 시기로 인해 하루아침에 수많은 재산과 사랑하는 자식들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는 절망 가운데 하나님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의 때에 하나님께 경배하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라”(욥기1:20,21) 어떤 성도들은 조금만 어려움이 생기면 화내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반면에 어떤 성도들은 욥처럼 슬픔과 고난과 절망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송명희 시인은 뇌성마비 환자이지만 인생을 저주하지 않고 시로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지선아 사랑해!” 주인공 이지선 자매님은 예쁜 여학생이었지만 대학 4학년 때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추한 몰골이 되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인생을 비관하고 하나님원망하다가 자살하기 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지선 자매님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선하신 하나님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을 믿고 불평하기보다 감사하고 원망하기보다 찬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성도님들은 힘든 가운데서도 감사하고 진득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이런 우리들을 통해서 거룩히 여김을 받으십니다. “참 예수믿는 사람은 다르구나” “우리 며느리는 교회를 다녀서인지 생각이 참 깊고 배려심이 많아” 이런 칭찬이 바로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나라이 임하옵시며”는 “하나님께서 다스려 주옵소서” 하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왕이 되셔서 내 마음을 다스려 주시고, 가정을 다스려 주시고, 우리 모임을 다스려 주시도록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주권이 이 땅에 온전히 회복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아담의 범죄 이후에 사단이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사단이 각 사람의 내면을 다스림으로 그 내면은 거짓과 미움과 다툼과 음욕과 강포같은 죄악들로 가득합니다.
사단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떠나면 새처럼 자유로운 인생이 되는 것처럼 속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편안하게 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오히려 죄의 노예가 되어 비참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반면에 회개하고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께 배우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게 되면 그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사랑이 싹트고 용서가 되고, 기쁨과 희망이 있고 생명과 평화가 가득하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을 때 죄인들이 변하여 거룩한 자들이 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게 되었을 때 이기적인 세리 레위가 성 마태가 되었고 귀신들렸던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붓는 아름다운 여인이 되었습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에 잦은 불화가 생기는 것은 그 가정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가정은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을 공경합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사랑과 기도를 받으며 건강한 하나님의 자녀들로 성장합니다. 천국과 지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곳이 천국이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 곳이 지옥입니다. 국가를 보아도 하나님의 통치가 없는 북한은 얼마나 비참합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4) 육체의 삶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이 기도에서 우리는 두 가지의 중요한 교훈을 배웁니다. 1) ‘우리’라는 사상입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초대 성도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모이기에 힘을 썼고,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함으로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물건도 서로 통용하였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한 형제 한 가족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개인주의 시대에 나 혼자 신앙생활을 잘하기만 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함께 잘해야 합니다.
2) 예수님은 매일 필요한 양식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매일 필요한 양식은 빵이나 의복뿐만 아니라 직장 문제, 결혼 문제, 자녀 양육 문제 등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말합니다. 우리가 영적인 문제로 인해서 고통에 처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실제 생활에서 부딪히는 작고 사소한 문제들로 인해서 마음이 상하고 고통을 당하며 때로는 넘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실제 생활에서 필요한 것들을 아주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결혼 적령기에 있는 사람들은 합당한 배우자를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자녀들을 둔 부모들은 악한 세상에서 자녀들이 신앙적으로 자라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5) 우리영혼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는 매일 죄를 짓고 또 짓고 또 짓고 반복해서 짓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반복해서 죄를 지을 때마다 부끄럽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죄 사함을 구하기가 민망스럽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가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지은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에 지을 죄까지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다 속죄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라는 이 말씀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들을 용서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사람들 사이의 가장 큰 문제는 용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마음에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지 못해서 미워하고 이로 인해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마음으로부터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용서를 하지 못하면 불행하게 되는 것은 상대방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입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의 내면에는 행복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를 받은 것을 기억하면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6) 마귀에게 속지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이 말씀은 우리가 시험에 들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말씀입니다. 사단은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면서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동물의 왕국을 보면 숨어서 이리 저리를 살피다가 달려가서 먹이를 낚아채는 사자를 볼 수 있습니다. 사자가 영양이나 얼룩말떼를 지켜보다가 먹이를 발견하고 달려갑니다. 사자는 이러 저리 몰아가다고 한 마리에게 집중적으로 달려가서 잡아먹습니다. 여기서 사자가 잡아먹는 먹이감은 주로 새끼들이나 병든 것입니다. 아무리 힘센 사자라도 건강한 영양이나 얼룩말은 잡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사단도 우리가 영적으로 건강하면 공격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도망을 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어린 분들, 이리 저리 세상의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기웃거리는 사람들, 음욕과 물질욕과 명예욕으로 병든 사람, 믿음을 잃어버리고 의심하고 불신하는 사람들을 공격합니다. 그중에서도 마음이 교만해진 사람은 공격 목표 1순위입니다. 성경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이 높아진 사람은 쉽게 사단의 유혹에 넘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잘 될 때에도, 성공했을 때에도, 사람들로 인정받을 때에도 마음을 낮추고 겸손으로 허리를 동여매야 합니다. 깨어 자신을 살피고 시험에 들지 않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이때 우리는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시간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의 마음이 높아져 있다면 회개하고 겸손으로 허리를 동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끈질기게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받습니다. (5-13)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의 내용을 가르치신 후 계속해서 어떤 자세로 기도해야 할 것인가를 비유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5절을 보면. 한 밤 중에 벗이 찾아왔는데, 그는 몹시 굶주려 있어서 당장에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먹이고 싶어도 먹일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찌하든지 친구의 배고픈 문제를 해결하고자 이웃에 사는 친구에게 찾아갔습니다. 문을 두드리면서 “친구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주라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그러자 잠자고 있던 친구가 일어나 대답했습니다. “이보게!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 없노라” 그는 친구로부터 거절을 당하여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굶주린 친구를 생각할 때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면서 “친구여! 제발 좀 주라 ” 하며 간청을 했습니다. 결국에는 이웃친구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8절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잠자던 친구는 친구됨을 인하여서는 주지 않았지만 끈질기게 청하여 귀찮아서 주었습니다. 여기서 ‘간청’이라는 말은 부끄러움을 모르고 끈질기게 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우리가 기도할 때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기도해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스펄젼은 “기도는 아래서 줄을 당겨 하늘 위에 있는 큰 종을 하나님의 귓전에 울리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스펄젼의 말처럼 기도가 줄을 당겨 큰 종을 하나님의 귓전에서 울리는 것과 같다면, 우리는 영적으로 굶주려 죽어가는 양들을 위해 계속해서 강청함으로 하나님의 귀에 종이 울리도록 해야 합니다. 이러할 때 하나님은 그 기도소리에 신실하게 응답하십니다.
9,10절을 보면.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이는 주실 것을 믿고 적극적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지만 “응답하시면 좋고 응답하지 않으시면 어쩔 수 없다”는 자세를 가지고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오직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낙심하여 기도할 수가 없게 됩니다. 믿음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끈기를 가지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입니다.
11-13절을 보면.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로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주시되 가장 좋은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좋은 선물은 성령입니다. 성령을 받을 때 인격이 변화되고 삶이 변화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시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 존재 자체가 변화되기를 원하시고 이를 위해서 성령을 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내용을 끈질기게 간절히 기도하심으로 마침내 응답받으셔서 영광을 돌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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