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조>
고산구곡가
이이
<序曲>
고산구곡담(高山九曲潭)을 사람이 모르더니
주모복거(誅茅卜居)하니 벗님네 다 오신다.
어즈버 무이(武夷)를 상상(想像)하고 학주자(學朱子)를 하리라
<一曲>
일곡(一曲)은 어드메오 관암(冠巖)에 해 비친다.
평무(平蕪)에 내 걷으니 원산(遠山)이 그림이로다
송간(松間)에 녹준(綠罇)을 놓고 벗 오는 양 보노라
<二曲>
이곡(二曲)은 어드메오 화암(花巖)에 춘만(春晩)커다
벽파(碧波)에 곳을 띄워 야외(野外)로 보내노라
사람이 승지(勝地)를 모로니 알게 한들 엇더리
<三曲>
삼곡(三曲)은 어드메오 취병(翠屛)에 닙 퍼젓다
녹수(綠樹)에 춘조(春鳥)는 하상기음(下上其音)하는 적의
반송(盤松)이 바람을 받으니 녀름 경(景)이 업시라
<四曲>
사곡(四曲)은 어드메오 송암(松巖)에 해 넘거다
담심암영(潭心暗影)은 온갖 빗치 잠겨세라
임천(林泉)이 깁도록 됴흐니 흥(興)을 계워하노라
<五曲>
오곡(五曲)은 어드메오 은병(隱屛)이 보디 둏다
수변정사(水邊精舍)는 소쇄(瀟灑)함도 가이없다
이 중에 강학(講學)도 하려니와 영월음풍(詠月吟風)하리하
<六曲>
육곡(六曲)은 어드메오 조협(釣峽)에 물이 넓다
나와 고기와 뉘야 더욱 즐기난고
황혼(黃昏)에 낙대를 메고 대월귀(帶月歸)하노라
<七曲>
칠곡(七曲)은 어드메오 풍암(楓巖)에 추색(秋色)이 죳타
청상(淸霜)엷게 치니 절벽(絶壁)이 금수(錦繡)ㅣ로다.
한암(寒巖)에 혼자 안자셔 집을 잇고 잇노라
<八曲>
팔곡(八曲)은 어드메오 문산(文山)에 세모(歲暮)커다
기암괴석(奇巖怪石)이 눈 속에 무쳐세라
유인(遊人)은 오지 아니하고 볼 것 없다 하더라.
♣어구풀이
<序曲>
-고산(高山) : 황해도 해주에 있는 산.
-구곡담(九曲潭) : 아홉 번 굽이 굽이 감돈 계곡
-주모복거(誅茅卜居) : 풀을 베어 내고 집터를 닦아 살 곳을 지음.
-벗님네 : 친구분들.
-어즈버 : 아, 감탄사
-무이(武夷) : 중국의 복건송(福建省)에 있는 산이름. 주자(朱子)가 이 산에 정사(精舍)를 짓고 학문을 닦았음. 그 곳에는 구곡계(九曲溪)가 있어 경치가 뛰어나게 좋은데 주자가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를 지었다.
<一曲>
-일곡(一曲) : 첫째 골짜기에 대한 노래.
-어드메오 : 어느 곳이요?
-관암(冠巖) : 갓머리처럼 우뚝 솟은 바위. 즐 갓바위
-평무(平蕪) : 잡초가 무성한 들판.
-내 : 연기 안개
-원산(遠山) : 멀리 보이는 산
-송간(松間) : 소나문 숲 사이.
-녹준(綠鐏) : 푸른 술통, 즉 맛있는 술을 뜻한다.
<二曲>
-화암(花巖) : 꽃이 피어 있는 바위. 꽃바위
-춘만(春晩)커다 : 봄이 늦었구나! 늦봄이로구나! ‘커다’는 ‘하거다’의 준말
-벽파(碧波) : 푸른 물결
-야외(野外) : 들판
-승지(勝地) : 명승지(名勝地)의 준말로 경치가 뛰어난 곳.
<三曲>
-취병(翠屛) : 푸른빛 병풍같이 나무나 풀로 덮인 절벽
-녹수(綠樹) : 푸른 나무
-춘조(春鳥) : 봄 새
-하상기음(下上其音) : 아래 위에서 우짖음.
-반송(盤松) : 키가 작고 가지가 퍼진 소나무
-녀를 경(景) : 여름다운 풍치
<四曲>
-송암(松巖) : 솔 바위
-담심암영(潭心暗影) : 물에 비친 바위 그림자.
-임천(林泉) : 수풀 속의 샘. 여기서는 은거하는 선비가 사는 곳. 즉 벼슬을 물러나
산골에서 살고 있는 율곡선생의 거쳐를 가르킴.
-계워노라 : 이기지 못하는 듯하구나.
<五曲>
-은병(隱屛) : 굽이진 곳에 있어 눈에 뜨이지 않는 절벽
-수변정사(水邊精舍) : 물가에 세워진 정사.
-소쇄(瀟灑) : 맑고 깨끗하여 속되지 않음.
-가이없다 : 그지없다.
-강학(講學) : 학문을 가르키고 연구함.
-영월금풍(詠月今風) : 시를 짖고 읆으며 즐겁게 노는 것.
<六曲>
-조협(釣峽) : 낚시질 하기에 적당한 골짜기.
-뉘야 : 누가. ‘야’는 강세 조사.
-황혼(黃昏) : 해가 저무어 어둑어둑할 때.
-대월귀(帶月歸) : 달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감
<七曲>
-풍암(楓巖) : 단풍으로 덮인 바위.
-추색(秋色) : 가을 경치
-청상(淸霜) : 맑은 서리
-금수(錦繡) : 비단에다 수를 놓은 듯이 아름다운 것.
-한암(寒巖) : 차가운 바위
<八曲>
-금탄(琴灘) : 거문고나 가야금을 타듯이 물 흐르는 소리가 흥겹게 들리는 여울목.
-옥진금휘(玉軫琴徽) : 옥으로 만든 진(軫)과 금박으로 만든 휘(徽), 즉 아주 값지고 좋은
거문고. ‘진(軫)’은 거문고 줄을 떠받는 받침.
-수삼곡(數三曲) : 서너 곡조
-고조(古調) : 옛가락
<九曲>
-문산(文山) : 산 이름
-세모(歲暮)커다 : 섣달이 되었구나. 즉 겨울이 깊었다는 뜻.
-기암괴석(奇巖怪石) : 생김새가 기이한 바위와 괴상한 돌.
-유인(遊人) : 경치 좋은 곳을 찾아다니는 사람. 즉 유람객(遊覽客).
♣해설
<序曲>
-초장 : 고산(高山)의 아홉 굽이 계곡의 아름다움을 사람들이 모르더니
-중장 : 내가 비로소 풀을 베어 헤치고 집터를 닦아 살고 있으니 친구분들이 모두들
찾아오는구나.
-종장 : 아! 주자(朱子)가 읊은 무이산(武夷山) 구곡계(九曲溪)를 생각하면서 주자학
(朱子學)을 연구하리라.
<一曲>
-초장 : 첫째로 경치가 좋은 계곡은 어디인고? 것머리처럼 우뚝 솟은 관암에
아침 해가 비쳤도다.
-중장 : 잡초 우거진 들판에 안개가 걷히니 멀리 가까이의 정경이 그림같이 아름답구나.
-종장 : 소나무 숲속에 술동이를 놓고 벗들이 찾아오는 모습을 바라보노라.
<二曲>
-초장 : 둘째로 경치 좋은 곳은 어디인고? 꽃이 무성한 바위의 늦은 봄의 경치로다.
-중장 : 푸른 물결에 꽃을 띄워 멀리 들판으로 보내노라
-종장 : 사람들이 경치 좋은 곳을 모르니, 알게 하여 찾아오게 한 들 어떠리.
<三曲>
-초장 : 세 번째로 경치 좋은 곳은 어디인고? 푸른 병풍을 둘러친 듯한 절벽, 취병에
녹음이 짙어졌다.
-중장 : 푸른 나무 사이로 봄 새는 위아래에서 우짖는데
-종장 : 가로 포진 소나무가 마주치는 바람을 이기지 못하는 듯싶더니, 시원스런 풍경
이라고는 할 수 없구나.
<四曲>
-초장 : 네 번째로 경치 좋은 곳은 어디인고? 솔 바위에 해가 넘어가는 경치로다.
-중장 : 못 속에 비친 바위 그림자는 온갖 빛과 함께 잠겨 있구나.
-종장 : 수풀 속의 샘물은 깊을수록 좋으니 흥을 이길 수가 없구나
<五曲>
-초장 : 다섯 번째로 경치 좋은 곳은 어디인고? 굽어진 곳에 눈에 띄지 않는 절벽이
보기 좋다.
-중장 : 물가에 지어 놓은 정사(精舍)가 그지없이 깨끗하구나
-종장 : 이 가운데서 학문 연구도 하려니와 아름다운 자연을 시로 읊기도 하겠다.
<六曲>
-초장 : 여섯 번째로 경치 좋은 곳은 어디인고? 낚시하기 알맞은 골짜기에
물이 넓은 경치로다.
-중장 : 나와 고기 중에서 어느 편이 더욱 즐겨 놀 것인가?
-종장 : 하루종일 즐기다가 해가 저물 거든 낚시대를 메고 달빛을 데리고 함께
집으로 돌아가리라
<七曲>
-초장 : 일곱 번째 경치 좋은 곳이 어디인고? 단풍으로 덮인 바위, 풍암에 가을빛이 짙었다.
-중장 : 게다가 깨끗한 서리가 엷게 덮였으니 낭떠러지로 이루는 풍암이 마치 수놓은
비단처럼 아름답구나
-종장 : 차가운 바위에 혼자 앉아서 집에 돌아가는 것도 잊고 있구나.
<八曲>
-초장 : 여덟 번째 경치 좋은 곳은 어디인고? 거문고 소리를 내며 흐르는 여울목에
달이 밝다.
-중장 : 좋은 거문고와고 같은 금단 여울목 물소리에 맞추어 서너 곡조 노래해 보았으나
-종장 : 운치 높은 옛 곡조를 알 사람이 없으니 혼자서 즐길 따름이다.
<九曲>
-초장 : 아홉 번째 경치 좋은 곳은 어디인고? 문산에 겨울이 깊었다.
-중장 : 생김새가 기이한 바위와 야릇한 모양의 돌들이 그렇게도 보기 좋더니
이제는 모두다 깊은 눈에 묻혀 버렸구나
-종장 : 유람객들이 눈에 덮인 이곳을 찾아 보지도 아니 하고서 볼 것이 없다고만
하니 안타까운 노릇이로구나.
♣전체감상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는 작가가 대사간(大司諫) 벼슬에서 물러나 황해도 해주에 있는 고산에 은거하면서
정사(精舍)를 짓고 제자들을 교육하고 있을 때 주자(朱子)의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를 본따서 지은 작품이다.
서시 1수에 이어 1곡부터 9곡까지 관암(冠巖), 화암(花巖), 취병(翠屛), 송암(松巖), 은병(隱屛), 조협(釣峽),
풍암(楓巖), 금탄(琴灘), 문산(文山)의 구곡을 차례로 노래하였는데, 그것은 지명이자 곧 특색의 설명도 되어
중의법이 되도록 표현하였다. 즉 이 연시조는 강학(講學)의 즐거움과 고산(高山)의 아름다운 경치를 노래한
것이다.
-序曲 : 이 시조의 서시로, 아홉 굽이의 계곡이라 한 것은 주자의 ‘무이구곡(武夷九曲)’에 매추기 위한 것이라
생각된다. 서시에는 자연을 벗하며 주자학(朱子學)을 연구하겠다는 작가의 학구적 열의가 잘 나타나 있다.
-一曲 : 관암의 아침 해가 솟은 후의 절경과, 소나무 아래 술을 놓고 벗을 맞는 심정으로 그러한 절경을 맞는다는
작가의 풍류스로운 운치가 잘 나타나 있다.
-二曲 : 꽃으로 수놓은 듯 바위를 감싸고 잇는 늦봄의 경치를 묘사하고 이를 혼자 즐기기에는 아까와 널리
알리고 싶은 심정을 읊은 것으로, 도연명의 ‘도화원기’ 곳에 나오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을 연상시키는 노래이다.
-三曲 : 취병(翠屛)을 노래한 것으로 못 속에는 푸른 소나무, 붉은 단풍잎, 푸르른 하늘 등이 그림과 같이 어리어
여름이라도 더운 줄을 모르게 한다.
-四曲 : 녹음이 짙은 숲속에서 못 속에 비친 온갖 자연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며 흥에 겨워하는 작가의
심경을 엿볼 수 있다.
-五曲 : 작가가 거처히거 있는 정사 주변과 거기에서의 생활을 노래한 것으로 앞에는 맑은 시내가 흐르고 정사
주위를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 서 있는 곳에서 학문도 닦고 풍월도 읊겠다는 것이다.
-六曲 : 낚시터를 노래한 것으로 작가의 수면에 낚시를 들우고 있는 것은 고기를 잡기 위한 것이 아니고
청한(淸閑)을 즐기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둠이 깃들 무렵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고기를 싣고 오는 것이
아니고 달빛을 싣고 오는 것이다.
-七曲 : 단풍으로 뒤덮인 바위의 경치를 읊은 것으로 그 자연의 경치에 너무 몰입된 나머지 집으로 돌아가는
것조차 까마득히 잊고 대자연에 취해 있는 것이다.
-八曲 : 거문고 타는 소리를 내며 흐르는 여울목, 즉 금탄을 노래한 것으로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큰 교훈을
주는 노래하 하겠다. 작가는 종장에서 ‘고조(古調)를 알 이 없으니’하고 한탄했는데, 이는 옛 성현들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경박한 신풍(新風)에만 빠져들고 있는 그 당시의 세태를 안타까이 여기고 있는 것이다.
-九曲 : 문산에 한 해가 저물어 가는 겨울, 기암괴석이 눈 속에 묻혔으니 세상 사람들은 볼 것이 없다 하고
오지 않는데, 이는 그들이 못전의 현실에만 급급한 때문이라 생각하며 안타까이 여기고 있는 것이다.
♣작가소개
이이(李珥, 1536~1584) :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 또는 석담(石潭), 본관은 덕수(德水), 어머니는
시화(詩畫)에 뛰어난 사임당 신씨. 명종 19년(1564년) 식년시(式年試)에 장원. 선조 때에 호조, 이조.
병조 판서를 차례로 역임하고 우찬성에까지 이름. 만년에 해주 고산에 들어가 정사(精舍)를 짓고 주자(朱子)의
사당(祠堂)을 지어 후학을 교도함. 이황과 함께 우리나라 성리학의 쌍벽을 이루며, 일원적(一元的)인
이통기국설(理通氣國說)을 주장했다. 저서로는 「성학집요(聖學輯要)」, 「격몽요결(擊蒙要訣)」 등과 시조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