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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신청해둔 대구시티투어를 하라는 연락이 하루전에 왔다. 토요일 아침 두류공원내에 있는 대구관광정보센터 앞에 도착하니 9시 30분이다. 30분이 남았지만 전날밤에 새벽쯤에 들어와서 밤새 먹은 술들을 다시 돌려주느라 야단법석인 사람 때문에 잠을 설치고 아침을 거르고 온지라 삶아온 고구마와 방울토마토와 김밥천국에서 사 온 김밥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보니 대구시티투어 버스가 이쁜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예약한 건 2코스다. 현풍과 비슬산쪽으로 평소에 우리가 지나쳐가기만했지 내려서 이모저모를 살펴볼 기회는 적은 곳이다. 본래는 아이들에게 추상적이긴해도 역사적인 의미가 깊은 유물과 유적들을 보게하는게 목표였는데 우리 아이들의 출발전 반응은 시큰둥하다. 그래서 미성년이니 그들을 이끌어야하는게 부모의 할 바인지 모른다. 아직은 힘이 있으니 윽박질러서 끌고 가면 또 잘 돌아다니겠지 싶다. 꼭 아이들이 아니어도 어른들 끼리 온 팀도 꽤 있었다.
고속도로를 타고 제일 먼저 현풍곽씨 십이정려각에 도착했다. 대구는 7개의 구와 1개의 군으로 되어있는데 달성군이 대구에 편입되었으니 현풍도 행정 구역은 대구다. 정려는 충신, 효자, 열녀들을 나라에서 표창했던 상패인 셈이고 조선시대 제도라고 한다. 한 가문에 이렇게 많은 정려가 내려진 경우는 그 당시에도 유례가 드문 일이었다고는 하나 대부분 나라를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싸우다 죽은 아들이나 남편이 죽자 따라 죽은 아내 등 죽음으로써 어떤 메시지를 남긴 것이다. 해설을 들으면서 창살 사이로 정려를 들여다 보던 나는 참 기분이 묘했다. 저 나무에 새겨진 표창의 의미가 무엇이길래 수 많은 사람들이 체면과 위신 때문에 그 길을 강요받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했다. 돌아오면서 아들이 상기시켜준 내용 중에 참으로 재미있는 것이 있다. 열녀의 예 중에 기억나는 것이기도 하다. 밤에 집으로 도둑이 침입했는데 남편 대신 싸우다가 죽었다는 열녀의 얘기다. ---그 남편 정말 모~~~야.--- 대부분 그들은 목숨을 끊는 의기를 보이고나서야 사후에 저런 표창이 내려졌을 것이다. 그들이 삶을 보람차게 엮어가고 사회에도 귀감이 되게 살아내게 하는 방법은 없었을까. 건너다 보이는 곳에 박문수 나무가 참 멋졌고 마당에 자라고 있는 몸통 굵은 소나무는 무엇을 보고담고 있을까 싶었다.
도동서원의 거대한 은행나무는 400년 세월을 견뎌내느라 굵은 콘크리트로 기둥을 받쳐 몸을 의지하고 있었지만 유구한 세월을 받친 강건함이 느껴졌다. 은행나무 정말 대~~단했다. 언제한번 도동 서원에는 꼭 가보시길. 은행나무는 원래 서원(옛날의 학교) 앞에 꼭 심었다고한다. 가을이 되면 은행이 열리듯이 학생들도 열심히 공부해서 꼭 결실을 맺으라는 의미였다지. 조선5현의 수장인 한훤당 김굉필 선생을 모신 서원이기에 그 역사적인 의미가 더 크다고 한다. 문희갑 전 대구시장과 계명대직원인듯한 팀들이 그곳에서 열심히 해설가의 설명을 들으며 박수로 정중히 답하는 모습도 이채로웠다. 대구시티투어는 문시장의 업적 중 하나지싶다. 무엇보다 신비로운 것은 수막새와 암키와를 군데군데 끼워넣어 쌓은 아름다운 토담이 몇백년 세월에도 끄덕없이 보존되어 담장으로는 드물게 보물 350호로 지정되었다는 것이었다. 도동서원에는 이 외에는 보물이 더 있었는데 사진을 박아왔으니 나중에 수능 끝나고 한번 봐서 소개하던지 하겠다. 조금씩 나이가 드니 토담이나 은행나무나 단청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는 사실이 새삼 기분이 좋다. 이래서 사람은 어릴 적이나 나이들어서나 나름대로 살아가는 의미나 기쁨을 찾게 되어있는것 같아서 세상이 어쩜 공평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비슬산. 이제는 대구로 편입된 달성군 유가면에 소재한 곳. 팔공산이 대구의 북동쪽을 둘러치고 있다면 대덕산과 비슬산이 서남쪽을 감싸고 있는 아름다운 산이다.(방향이 맞나 모르겠다.) 산이 깊어서인지 날씨도 매우 쌀쌀한듯했지만 우리 모녀는 겨울옷으로 무장했기에 아들과 남편을 차에 두고 모처럼 환하고 즐거운 산책길을 걸었다. 가는 군데군데 썩소(아이들 말: 떨떠름한 미소)와 카리스마를 담은 표정으로 사진기앞에 서서 서로를 보며 우리는 한껏 웃었고 이제는 아이에서 청소년으로 커가는 우리 딸이 친구같은 기분이 들려고도 해서 꽤 말이 통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늘 무표정한 우리 딸이 그렇게 환하게 웃고 재미있어하는 걸 오랫만에 봤기에 나도 덩달아 기분이 가벼웠다. 주차장에서 소재사까지의 산책로를 걸으면서 사진을 찍고 얘기를 나누는 우리 모녀를 보는 한 무리의 아저씨들이 부러움 담긴 말을 던지기도 했다.
"빨간 마후라"라는 공군전투기조종사 영화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했던 유치곤 공군 준장의 기념관은 답사코스 중 아들이 가장 관심을 보인곳이지 않을까 싶다. 최무룡과 또 이름이 아사무사한 잘생긴 유명배우가 나오는 그 영화를 잠깐보고 그분의 유품도 보고, 비행기도 조종해 보고 하니 아무래도 흥미가 좀 가는 모양이다. 하기사 아직 역사적인 일들에 관심이 깊을 나이는 아니다.
현풍 석빙고가 마지막 코스다. 그 옛날 깊은 계곡에 얼음이 얼면 그것을 떠다가 일년내내 보관하며 사용했다고 하는데 그 깊었다는 계곡이 바로 앞에서 청태를 끼고 안타까이 흐르고 있는 조금 폭이 넓어보이는 냇가였다. 태풍 매미때 비슬산의 돌자갈들이 흘러내려 강이 많이 변하기도 했다지만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없나보다. 석빙고 내부는 돌을 짜 맞춘 기술이나 크기나 바닥설계가 참으로 놀라웠다. 천정에 환기구를 낸 솜씨도 참으로 섬세했다. 시에서 열쇠를 가지고 다니기때문에 평소에는 꼭 왕릉처럼 생긴 겉모습 밖에 못보겠지만 우리는 안까지 들어가서 다 봤고 사진도 찍었다. 경주의 석빙고 보다 100년이 앞선 기술이라고 하는데 그 역사적인 조명이 늦은 듯하다.
대구 근교에 이런 유적들이 있는 줄은 정말 몰랐다. 사람들이 해외로 멀리멀리 여행을 떠나지만 정작 아주 가까운 곳에 이런 역사적인 유물들이 보존되어 있음을 간과하고 있다. 나도 전라도로 경기도로 강원도로 멀리 돌아다녔기에 오늘의 시티투어는 아이들보다 오히려 내게 의미로웠는 것도 같다.
어린 아이가 셋이나 있는 규익이나 이제는 손잡고 다닐 나이가 지났다고는 하나 딸과 친구처럼 팔장을 끼고 바람도 맞으며 돌아다니며 좋을 숙화. 자상하고 자녀 사랑이 깊을 듯한 해중이, 인동이, 병태, 영화, 광진이..... 폼나게 썬그라스를 끼고 패션을 휘날리며 우정을 나누면 좋을듯한 미경이, 정애, 해동이나 진지하게 인생이 뭐며 역사는 무엇일까 고뇌하고 싶을 듯도 한 종진이나 모모모씨들..... 사진기를 들고 다니며 유서깊은 사물들을 담아내다가 멋진 여자가 지나 가면 슬쩍 찍어 보고 싶을듯도 한 주정이나 오덕이나 명화나 해중이나....하여간 모든 친구들도 한번 가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더라. 꼭 대구가 아니어도 부산이나 서울쪽에도 분명 있을 것이다. 오늘 코스는 특히 대구사는 사람들이 아무래도 쉽겠지. 끄~~~~읕.^^ |
첫댓글 팔딱팔딱 뛰는듯 생기있는글 잘 읽었다^^
생동감,넘치는 이야기들 ~~~그래,친구처럼 팔장끼고,우정을 나누며 진지하게 인생이 뭐여 ~하면서 여행하고 싶네~~~^^
고맙데이~~! 덕분에 힘들이지않고 앉아서 뜻깊은 여행을 하게 되었네~! 다음에 버스 한 대 빌려서 친구들이랑 함께하면 좋겠다~~ 점화가 안내하구...^^
자신 있습니다.!!! 불러만 주이소. 공짜로 다 하고 친구들 사진사 노릇도 다 해 줄 수 있음다.^^
곧 그날이 오겠지~ 가지끈 기대된다^^
퇴직하고 문화유적지 해설가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했는데... 한 수 배워야겠다. 안 가봐도 눈에 선하네.
햐! 좋은데.잘봤다. 늦가을분위기와도맞고, 원주에도있나, 함알아봐야겠다.
서울은 확실히 있다
울산도 있다^^
대구에 한 10년을 살았는데 이런곳들이 있었나 보구나... 난 여자가 지나가면 작업부터 시작하는데..
좋은 정보구나. 나도 나름대로 많이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가까이 있는데를 못 가봤네... 올 겨울엔 꼭 도동서원엘 가봐야겠다. 아직은 아이들이 어려서인지 뛰어 노는데를 좋아하는 것 같더구나.
다들 욕봤다. 긴 거 읽느라고... 그래도 안 심심하고 좋~~잖아. 숙화하고 병태는 보다가 중간에 자는거 맞지? 괘안타 마 ^^*
우째 알았노...아이고 챙피시러워레이``...내 저녁잠 많은거 우예알았노...읽다가 자고 지금 다읽었다.....언제 시간되면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보자꾸나...니는 글을 써라 나는 걸을 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