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바라보기는 하려니와 들어가지는 못하리라
신명기 32:52, 네가 비록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을 맞은편에서 바라보기는 하려니와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하리라 하시니라
찬송가 240장(주가 맡긴 모든 역사)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약속의 땅 가나안을 눈앞에 둔 모압 평지에서 그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느보산 비스가 꼭대기에 올라 그 땅을 바라보게는 하지만 그 땅에 발을 딛고 들어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모세는 못내 아쉬워 하나님께 여러번에 걸쳐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그 땅에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청하였는데, 하나님은 그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시고 이렇게 불가함 통보를 다시금 최종적으로 베푸시는 것입니다.
사실 모세는 그 동안 40년 동안 하나님께 충성하였고 그 맡은 백성들을 위하여서도 지극히 헌신했던 터라 저희들이 보기에도 참 아쉬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께서 행하신 데에는 분명한 교훈들이 있음이 분명합니다.
모세는 구약 율법의 전달자로서 율법을 대변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 말씀은 모세의 율법으로서는 구원을 이룰 수 없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신명기 27:26 말씀에 보면, 에발산의 저주를 선포할 때에 그 저주의 마지막 말씀에
“이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 대하여 율법 학자였던 사도 바울은 이렇게 다시 한번 인용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3:10 말씀에서 이르기를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율법 책에 기록된 규례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면 누구든지 예외없이 모두 저주 아래 있게 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모세가 반석을 물을 내어 백성들을 마시게 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반석을 두 번 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역정을 낸 것은 그의 사역 중 유일한 실수였습니다. 그런데 그 단 한번의 잘못 때문에 이러한 화가 그에게 임한 것입니다. 물론 모세가 구원받은 것은 분명한 일이지만, 그가 그 단 한번의 잘못으로 그토록 수고하고도 정작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간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단 한번이라고 율법을 어기는 자는 영원히 저주 아래에 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율법은 비록 선하고 의롭고 거룩하지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항상 지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자는 다 저주 아래로 밀어넣고 살리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약속의 땅에 못 들어가고 죽은 일은 율법이 가지는 그 한계를 그의 삶을 통하여 입증해보인 셈입니다. 우리도 모세처럼 아무리 충성하고 헌신했다 해도 우리 자신의 헌신과 수고를 가지고는 끝내 구원을 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는 그 출애굽 백성들을 이끌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갔으니, 이 일 역시 상징적인 교훈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죽을 때 그의 시종 여호수아를 그를 이어서 이스라엘을 이끌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어 가나안 땅의 일곱 족속들을 차례로 정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에 인도하는 일에 성공하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백성을 이끌고 그 땅에 들어간 것은 사람이 누구든지 모세의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는 천국에 들어갈 수는 없지만 훗날 여호수아라는 히브리 이름의 동일한 헬라어 이름인 예수님이 오셔서 저 하늘의 가나안 땅으로 그를 믿는 자들이 데리고 들어가게 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출애굽 1.5세대와 출애굽 2세대는 여호수아의 인도로 은혜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복을 받았는데, 이와 같이 아무런 조건없이 두 번째 여호수아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도 그 믿음을 통하여 하늘의 가나안 땅인 천국에 은혜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율법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도리어 율법은 우리의 무능함을 드러내며 우리의 도덕적 실패와 영적 실패를 드러내어 구원의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할 뿐입니다. 비록 율법이 거룩하고 의롭고 신령할지라도, 그 율법을 온전히 다 지킬 육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율법은 우리를 죄 아래 가두어버리고 우리로 심판 아래 몰아넣고 맙니다.
오직 우리가 구원받는 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그를 믿는 자들이 은혜로 값없이 구원받는다는 복음만으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모든 죄와 저주와 사망과 심판이 다 속량됨으로써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값없이 은혜로 구원받아 죄사함을 받고 의롭다 여김을 받고 죽은 자의 부활과 영생 천국을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완전하고 부족하고 연약하여도 우리 앞에 서서 우리의 죄와 저주와 사망과 영벌을 없애시려고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하사 우리를 속량하시고 삼일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영광스러운 몸으로 승천하셔서 닫혔던 하늘 길을 활짝 열어놓아서 하나님 아버지께로 담대히 갈 수 있게 하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을 다하여 찬양해야 하겠습니다.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는 우리를 위하여 생명을 내놓고서 홀로 싸우시고 결국 우리를 그 무서운 죄와 저주와 사망과 영벌에서 우리를 건져내주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히 찬양하며 사랑합니다.
때로 우리가 이 땅에서 신앙 생활하는 중에 이런 저런 고생을 만납니다. 시험과의 격렬한 싸움도 만납니다. 세상의 유혹과 마귀의 시험과 육신의 연약함이 우리를 흔들어댑니다. 그런 것들과 끊임없는 싸움을 우리가 싸우면서 흔들리면서 천국을 향한 길을 걸어갑니다. 하지만 이러한 고난을 겪으면서 믿음으로 행하는 것, 이런 고생을 하는 것은 우리의 구원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의 싸움은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표하여 싸워 이미 이기셨습니다. 그가 단 한번으로 영원히 이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 땅에서 우리 자신의 구원을 위한 싸움을 싸우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남겨주신 고난은 우리의 신앙이 온전해지도록 주님이 허락해주신 것이요 그 싸움을 싸움으로 우리는 성숙해집니다. 온전해집니다. 그리고 그 싸움을 통하여 우리는 장차 주님 앞에 서는 그 날에 귀한 상급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과 함께 고난을 당할 때 기뻐합시다. 이런 저런 시험을 당할 때 주님을 의지하여 잘 인내합시다. 율법의 저주 아래, 구원을 이루는 무거운 짐 아래 허덕이다가 결국 멸망당할 우리를 건지시려고 이 땅에 오시어 우리의 싸움을 다 싸워 이기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 크신 사랑과 은혜를 영원히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