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화(山有花)
김소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시집 『진달래꽃』, 1925)
[작품해설]
「진달래꽃」과 함께 소월의 대표시로 손꼽히는 이 작품은 기·승·전·결의 완벽한 구성과 평범하면서도 함축성 있는 시어를 구사하여 서정시로서의 정수를 보여 주고 있다. 먼저 제목으로 쓰인 ‘산유화’는 어떤 꽃의 이름이라기보다는 ‘산에 피어 있는 꽃’이라는 뜻으로 ‘산’과 ‘꽃’을 함께 제시하는 조어(造語)이며, 모든 생명체를 대표하는 대유로서의 기능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인간’을 제외시킨 채 다만 ‘꽃’과 ‘새’와 ‘산’으로 대표되는 자연만을 노래한 서정시가 아니라, 꽃이 피어 있는 공간으로서의 자연과 생명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서의 꽃을 포괄하는 수준 높은 존재론의 서정시이다.
첫째 연은 산이라는 자연의 질서 속에 꽃이 피어난다는 평범한 사실을 제시한다. 자연의 질서는 ‘갈 봄 여름 없이’라는 구절처럼 계절의 변화이자 순환의 원리를 뜻한다. 따라서 생성과 소멸이라는 두 축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자연의 원리에 따라 꽃도 존재하므로, ‘산에는 꽃이 피네 / 꽃이 피네 / 갈 봄 여름 없이 / 꽃이 피네.’ 라는 시행 속에는 산과 꽃, 즉 자연과 생명이 공간적 질서돠 시간적 질서의 결합위에 놓여 있으며, 그것은 바로 순환의 원리에 근거한다는 소월의 깨달음이 나타나 있다.
둘째 연에는 자연과 생명의 공간적 존재성이 형상화되어 있다. ‘산’이라는 공간 속에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는 꽃은 모든 존재들의 숙명적인 개체성 또는 실존적 존재성을 표상한다. 따라서 다의적(多義的)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한 ‘저만치’는 실제의 공간적 거리라기보다는 꽃을 바라보는 시적 화자의 심리적 거리이자, 꽃과 꽃, 인간과 인간, 즉 모든 존재들이 숙명적으로 지니고 있는 실존 상호간의 거리를 의미하며, 이는 결국 혼자일 수밖에 없는 모든 존재의 고독한 모습을 상징하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연에서는 다시금 모든 사물의 상대적 존재성을 제시한다. ‘새’는 ‘꽃이 좋아 / 산에서 살’지만,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는 꽃으로 인해 ‘꽃’과 하나가 될 수 있으므로 ‘꽃’과 ‘새’는 모두 고독한 존재로서의 모습을 보여 줄 뿐이다.
넷째 연은 첫째 연과 호응하면서 주제를 제시한다. 첫째 연에서의 ‘피는’ 행위가 넷째 연에 이르러 ‘지는’ 사건으로 마무리되면서 탄생과 죽음, 생성과 소멸이라는 우주 만상의 존재 원리를 강조한다. 따라서 시적 화자도 자신이 인간과 자연으로부터 ‘저만치’ 떨어진 곳에 존재하는 유한적(有限的) 존재임을 인식하고, 무한적이고 영원한 자연과 결코 합일되거나 동류(同類)가 될 수 없음에 절망한다. 그는 ‘갈 봄 여름 없이’ 피었다 지는 ‘꽃’을 통하여 인생의 무상함과 자연의 원리를 깊이 깨닫게 된다.
[작가소개]
김소월(金素月)
본명 : 김정식(金廷湜)
1902년 평안북도 구성 출생
1915년 오산중학교 중학부 입학
1923년 배재고보 졸업
1924년 『영대(靈臺)』 동인 활동
1934년 자살
시집 : 『진달래꽃』(1925), 『소월시초』(1939), 『정본 소월시집』(1956)
첫댓글
산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
감사합니다
무공 김낙범 선생님
댓글 주심에 고맙습니다.
오늘도 추운 겨울날 잘 이겨내시며
무한 건필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