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字 隨筆 문득.1325 --- 덕유산 줄기 무룡산 자락의 원추리꽃
팔월에 접어들어 몹시 더운 날씨다. 덕유산을 종주하고 있다. 나리꽃 중에 으뜸인 참나리 꽃이 피었다. 상사화는 잎이 피면 꽃이 지고 꽃이 지면 잎이 피어 끝내 잎과 꽃이 만날 수 없다는 애달픈 사랑을 간직하고 매년 숨바꼭질한다. 펄펄 끓어오르는 몸이고 마음이다. 더는 어쩔 수 없어 꽃대라도 불쑥 치솟아 길게 목을 늘이고 두리번거린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다. 머잖아 눈물을 쏟듯 꽃이 피어날 것이다. 이 모두가 저처럼 달구는 땡볕의 열기를 받으며 열정을 토하는 것으로 덥다고 탓할 수만은 없다. 초목은 더위가 절정으로 치닫는 만큼 성숙한 뿌리에서 줄기로 꽃에서 열매로 영양분을 비축한다. 나리꽃과 원추리 꽃은 칠팔월 한여름에 핀다. 나리는 참나리 외에도 알나리 혹은 백합이라고도 한다. 원추리는 망우초 혹은 익남초라고 한다. 꽃이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많이 재배하며 어린잎은 식용으로 쓸 수 있다. 뿌리는 훤초근으로 대소변을 잘 나오도록 하는 데 쓰이는 약재다. 무룡산 기슭 나무 계단 아래에 섰다. 바로 여기가 오늘 초대받은 원추리 꽃밭이다. 길목 좋은 너부죽한 바위 위에 걸터앉으니 계곡에서 바람이 올라오고 하늘은 짙은 구름에 따가운 햇볕을 피할 수가 있다. 산기슭 초록빛 카펫 바탕에 샛노란 원추리 꽃이다. 보랏빛 옥잠화꽃과 하얀 취나물 꽃이 뒤섞여서 조화를 이룬다. 이 시간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인고의 나날이었을까. 작은장구채, 오이꽃, 산수국, 여로, 동자꽃, 싸리꽃이다. 입가에 뱅뱅 돌지 싶은데 이름이 얼른 튀어나오지 않는다. 그만큼 관심보다는 건성건성 넘겼으니 미안한 마음이다. 그런데 벌 나비는 찾아보기 힘들고 개미들만 넘나든다. 저토록 많은 꽃을 두고 어디로 갔을까. 벌써 고추잠자리와 밀잠자리가 때를 만난 듯 고공비행을 한다. 어디쯤인가 이미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높은 산 깊은 산속은 서둘러 가을맞이 준비를 하고 있다. 그들이 겪어내고 지금껏 살아남을 수 있었던 자연의 법칙으로 인간보다는 한 수 위라고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