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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가해 3월11일 토요일 [(자) 사순 제1주간 토요일]
[수도회] 울타리 없는 넉넉하고 온전한 사랑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신명 26,16-19
† 복음 마태 5,43-48
◈ 오늘의 묵상
오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한없는 사랑을 강조하시며 이렇게
덧붙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선하거나 악하거나 모든 이를 똑같게
대하시지요. 다들 당신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모두 귀한 존재이지요.
물론 우리 주변에는 악한 사람도, 선한 사람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차이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누구나 장점도 많이 갖고 있지만, 약점과
아픈 상처마저 있지요. 그런 만큼 상대방의 가능성을 보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기에 상대방의 선한 점은 키워 주고, 아픔은 치유해
주고, 어둠은 씻어 주도록 협력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오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어떠한 상태에 있건 상관없이,
햇빛은 늘 우리를 비추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지요. 어떤 날은 햇빛이 평소보다 더 강하고, 어떤 날은
약하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우리가 햇빛을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요.
우리 일상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적지 않은 경우, 상대방이 무심코
취한 행동 하나에 걸려 넘어질 때가 많지요. 변함없이 사랑하지만
상대방의 하찮은 표현 한 가지나, 말투 하나로 스스로 상처받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따라서 우리는 사소한 오해나 선입관에서 탈피하여, 더 근본적인 문제,
곧 주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문제에 더 집중해야
하겠습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 매일 미사 -
◈ [인천] 주님의 향기만 담고 있으면 안 됩니다.
2017년 가해 3월11일 사순 제1주간 토요일
제1독서
<너희는 너희 주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어라.>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26,16-19
복음
<하늘의 너희 아버지처럼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43-48
제가 어렸을 때 너무나 좋아했던 음료가 있습니다. 바로 바나나
우유입니다. 당시는 바나나가 흔하지 않았던 시기로 고급 과일의
대명사였고 더군다나 영양가 많다는 우유와의 조합이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끌기에 충분했지요. 더군다나 먹기 좋은 달달한 맛과 함께
넉넉한 양은 소풍날과 같이 특별한 날에 먹는 최고의 음료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아십니까? 실제로 이 바나나 우유에는
바나나가 전혀 들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바나나 우유’라고 하지 않고, 바나나 향이 첨가되어 있을 뿐이라서
‘바나나 맛 우유’라고 합니다.
그 과일의 향이 5%만 첨가되어 있을 뿐인데도 그 과일 맛이 나는 것을
보면서, 이것처럼 과대 포장되는 것이 어디 있을까 싶습니다.
질소포장이 되어 있어서 겉으로는 아주 큼지막하지만, 실제로
뜯어보면 몇 개 들어있지 않다고 해서 ‘과대 포장’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이것보다 더 과대 포장되어 있는 것이 바로 향기만으로 그 과일
맛을 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문득 우리 인간 역시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럴 때가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성당 안에서
그렇게 열심한 사람이 없습니다. 열심히 봉사활동도 하고 있고, 평일
미사에도 빠지지 않으면서 뜨거운 신앙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람들의
평가도 받습니다. 그런데 성당 안에서만 그렇게 보일 뿐, 성당 밖에서는
전혀 신앙인 같지 않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바나나 향만 들어 있어도 바나나 맛을 내는 것처럼, 주님의 향기만
가지고 있어도 진짜 신앙인처럼 보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주님을 모시고 있지 않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모습으로는
주님을 제대로 따르고 있다고 말할 수 없으며,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도 아닙니다. 따라서 과대 포장된 가짜 신앙인이 아니라 진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신앙인인 것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진짜 신앙인,
즉 완벽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완전한 사람이 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는 모습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완전한 사랑을
실천할 때 가능하다고 하십니다.
바나나 맛 우유에 진짜 바나나가 들어 있지 않기 때문에 바나나가 주는
영양가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 역시 주님의 향기만 담고 있으면
안 됩니다. 진짜 주님과 함께 하는 삶, 그래서 주님의 뜻을 철저히
따르는 삶을 살아갈 때 비로소 완전한 하느님처럼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우리를 이해하고 사랑한다
(로베르트 발저).
지금도 편의점 판매1위라는 바나나맛 우유.
긍정은 위대하다(‘따뜻한 하루’ 중에서)
인터넷에서 우연히 보게 된 글입니다.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내용이라
이렇게 나눠봅니다.
어느 마을 다리 밑에는 걸인 두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다리 입구
쪽에는 기념 비석이 세워져 있었는데 거기에는 다리를 세우기 위해
기부한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한 걸인은 그 기념 비석에 침을 뱉으며 언제나 욕을 해댔습니다.
“에이! 양심도 없는 놈들! 돈 많은 것들이 생색내기는...”
그러나 한 걸인은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도 참 고마운 사람들 아닌가. 우리에게 비를 피할 수 있도록
해주고 많은 사람을 건너가게 해주니 말일세. 나도 언젠가 이
사람들처럼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후 그 다리 옆에 새로 큰 다리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기념 비석에 새겨진 이름 중엔 늘 고마운 마음을 가졌던 그
걸인의 이름도 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넝마주이를 시작으로 열심히 일하여 마침내는 건재상을 경영하는
부자가 되어 기부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침을 뱉으며 항상 욕을 했던
다른 걸인은 여전히 그 다리 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왜 먼저 부정적으로 생각할까요? 부정적으로 생각해서 나의 미래가
긍정적으로 바뀌는 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더욱 더 부정적으로 변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역시 하나의 습관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나쁜 습관을 벗어 던지고 대신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좋은 습관을 간직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 긍정적인
생각이 바로 지금의 고통과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하고,
언제나 감사하며 사는 행복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어제 강의를 다녀온 인천 신학교입니다.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수도회] 울타리 없는 넉넉하고 온전한 사랑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7년 가해 3월11일 사순 제1주간 토요일 마태 5,43-48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마태 5,46)
울타리 없는 넉넉하고 온전한 사랑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5,48) 하십니다. 앞의
말씀을 보면 완전한 사람이 되라는 것은 흠도 티도 없는 완벽한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완전한 사람이 되라는 것은
온전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뜻합니다.
온전한 사랑은 울타리 없는 사랑입니다. 보이는 것을 좇기 십상인
우리는 좋음과 싫음, 선과 악, 사랑하는 사람과 원수, 동족과 이민족,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을 구별하고 그에 따라 달리 사랑합니다.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사랑의 농도나 표현 방식이 달라지는 것이지요.
분별심의 울타리를 넘지 못한 우물안 개구리식 사랑에 길들여진
우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차별과 울타리를 넘어서라 하십니다. 지금 내가
사랑하는 사람 뿐 아니라 나를 싫어하거나 내가 미워하고 배척하는
사람까지도 사랑하라 하십니다.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 인물들이나
살인죄를 저지를 사람들, 각종 경제범죄와 지능범죄, 사이버 범죄를
통해 수많은 피해를 준 범죄자들도 사랑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마태 5,45)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무리 큰 죄를
지은 죄인이라 해도 자비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무조건
사랑하지는 않으십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정의가 실현된 그 열매로 주시는 자비이지요. 죄의
인정 없는 자비와 용서는 없는 법입니다(자비의 얼굴 7항). 우리는
하느님의 마음으로 모두를 차별 없이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죄인들이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받는 것은 그들의 죄 인정과 회개에
달려 있으니, 우리는 그들의 회개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한편 제1독서에서는 모세가 백성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그것들을 명심하여 실천해야
한다.”(신명 26,16) 하느님 백성은 하느님의 소유가 되었으니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느님 자비의 뜻을 실행하고, 생명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온전한 사랑의 길입니다.
완전함은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느님과 일치할 때
완전하신 그분께서 우리를 충만케 해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완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 우리는 완벽이 아니라 늘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계명을 실천하는 것도 이웃을 사랑하는 것도 적당히 한다면
우리는 ‘사랑의 절름발이’가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마음의 문을 열고, 온전한 사랑을 가로막는 울타리를 과감히
허물고 모두를 받아들이고 차별 없이 사랑하는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죄로 인해 증폭된 우리 사회의 부패와 혼란, 불의의
팽배, 미움과 폭력, 거짓 평화를 극복하는 것은, 정의의 바탕 위에서 온
존재를 던져 사랑하는 길밖에 없겠지요. 울타리 없는 넉넉한 사랑으로
온전함을 갈망하는 오늘입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 [수도회]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 48) 한상우 바오로 신부|오늘의 강론 묵상
2017년 가해 3월11일 사순 제1주간 토요일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 48)
우리의 온전함을 회복시켜주시는 하느님 사랑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좋은 하느님 사랑이 우리 삶속에 시작되었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충만케합니다.
온전함은 온전함으로 이어집니다.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이 우리를 부르십니다.
이 사순시기가 새로워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온전한 사랑으로 우리를 품어주십니다.
완전함의 원천이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사랑은 결코 소멸되지 않습니다.
소멸되지 않는 하느님 사랑이 우리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있음을 깨닫습니다.
하느님 사랑의 완전한 힘을 다시금 생각하는
사순시기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사랑으로 문을 열어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완전하신 사랑으로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
끝내 완전한 사랑으로 우리를 변화시킬 것임을 믿습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서울] 사순 제1주간 토요일
2017년 가해 3월11일 사순 제1주간 토요일 (마태 5,43-48)
우리의 몸에는 여러 지체들이 있습니다. 다들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체는 ‘심장’입니다. 심장은 24시간 쉬지
않고 일을 합니다. 심장은 혈관을 통해서 각 지체들에게 산소와
영양분을 전달해 줍니다. 심장이 멈추면 생명활동을 더 이상 할 수
없기 때문에 생과 사를 가르는 기준이 됩니다. 저의 심장도 55년을
힘차게 뛰고 있습니다. 참으로 고마운 지체입니다.
30일 피정을 함께 했던 신부님이 ‘군종신부’로 가게 되었다고 인사를
왔습니다. 군인들도 여러 병과가 있습니다. ‘보병, 작전, 정보, 행정,
정훈, 포병, 경리, 수송, 의무, 군종, 법무, 군수, 공병, 헌병’등의 병과가
있습니다. 저는 군종병으로 근무했었고, 보직이 변경되어서 행정병으로
제대를 하였습니다. 군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훈련’입니다.
강도 높은 훈련을 받는 군인들이 있습니다. ‘공수부대, 해병대, 특전사,
수색대’와 같은 군인들입니다. 유사시에 적진에 들어가서 적을
제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본당에서 여러 유형의 신자분들을 만났습니다.
기도에 충실한 신자입니다. 가정방문을 해도 기도하는 장소가 따로
있습니다. 성당에서도 늘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신부님이
바뀌어도 늘 변함없이 신앙에 충실하신 분입니다.
체면유지를 하는 신자입니다. 자신이 드러나는 자리에는 열심히
하지만, 봉사하는 자리에는 오지 않는 분입니다.
강직한 신자입니다. 자신의 뜻에 맞지 않으면 본당 신부에게도 직언을
합니다. 목소리가 커서 분위기를 압도하지만 뒤끝은 없는 분입니다.
아부를 잘하는 신자입니다. 분위기를 잘 맞추고, 본당 신부의 말을 잘
받아들입니다. 이런 분들이 있어서 재미가 있지만 뒷담화도 잘 하는
분입니다.
활동적인 신자입니다. 성가대, 제대회, 구역장, 반장, 레지오, 자모회
등 각 단체에서 열심히 봉사합니다. 열심히 활동하는 만큼 내적인
성장을 위해서 기도가 필요한 분입니다.
신앙인들은 부모님의 사랑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전 우주에 하나밖에 없는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선물로 주신
하느님이십니다. 신선한 공기, 하늘의 별, 떠가는 구름, 흘러가는 물,
아름다운 새, 들판의 꽃들 이 모든 것들은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신
선물입니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을까요? 우리는 언제나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소중함과 고마움을 잊어버리고 있을 뿐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아름다운 세상과 비슷한 세상을 찾으려고 우주여행을
한다면 우리는 몇 백만 년을 여행해도 찾을 수 없을 거라 말을 합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이 세상에서 사는 축복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길을
따라 걸으면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아름다운 세상에서의 삶과 영원한
생명이라는 축복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그것도 우리의 능력과
우리의 재능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오늘의 성서말씀은 우리가 그렇게 사랑을 받았으니, 우리도 사랑을
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날숨이 있어야 들숨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사랑은 우리가 살아야 하는 이유이고,
우리가 살기 위한 길입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저는 아름다운 신앙을 보여주는 분들을 보았습니다. 비가 많이 오는
여름날, 성당 창문을 닫고, 하수구의 오물을 걷어내고,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고 가시는 분을 보았습니다.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명절이 되면 어르신들에게 떡을 나누어주시는 분도 보았습니다. 본당
신부가 피정을 가면 매일 성당에 나오셔서 마당을 치우고, 수녀님을
도와주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화가 치밀어 싸움에 이르려는 순간에
본당 신부의 말을 생각하며 용서했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교회가 아름다운 것은 성직자, 수도자들이 있어서만은 아닐 것입니다.
교회가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마음을 삶으로 드러내는 신앙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신부 -
◈ [수원] 복음적인 사랑의 법을 살자 /
조욱현 토마스 신부|오늘의 강론 묵상
2017년 가해 3월11일 사순 제1주간 토요일
복음: 마태 5,43-48: 하느님 완전하심 같이 완전하게 되어라.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44절) 주님께서는 원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다. 원수들이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는 아무도 미워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원수를 귀하게 여기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에게서 나쁜 것을 없애
버리기 위해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다.
원수를 미워하는 것은, 우리가 단지 그를 미워하기만 해도, 우리는
그에 대해서보다 우리의 영에 더 큰 해를 입힌다는 것이다. 우리가
원수를 미워해도 그에게는 아무런 해를 입히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미움이 우리를 더 휘저어 놓게 된다. 그러기에 우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다면, 그 사람보다 우리 자신에게 더 이로운 일을 하는
것이다. 즉 우리 자신을 위해 원수를 사랑하고 자비를 베푸는 것이다.
주님의 법은 모든 법을 뛰어넘는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일도
하느님께는 가능하기 때문이다.(루카 18,27 참조) 스테파노가 수난
당할 때, 자기에게 돌을 던지는 이들을 위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우리는 알고 있다.(사도7,60 참조) 주님께서는 불가능한 일을
법으로 만들지 않으신다. 유대인들에게 많은 고난을 당했던 바오로도
그렇게 하였다.(1코린 4,12-13 참조) 이러한 것을 볼 때, 이 일이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주님께서는 사랑하라고만 이르시지 않고 기도하라고도 하신다. 이것은
원수에 대한 최고의 정점이다.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기까지 하는 것이며 그런 사람에게 선을 베풀라고 하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를 위해 하느님께 기도해 주라고 하신다. 이것이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하여야 할 일이라고 하신다.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어디까지 가야하는 지를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45절)
이 말씀은 당신의 뜻을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요한 1,12 참조)는 말씀과 같은 뜻으로 알아들어야 한다.
그분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받은 우리는 아드님께서 주신 계명을 지킬
때만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이 자녀들은 아드님과 함께 공동
상속자로 불린 것을 표현한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다.
주님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45절) 아드님을
통해 자녀로 부르시는 것은 우리가 당신과 닮은 모습이 되도록
하시려는 것이다. 해와 비는 바로 당신의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은
선인에게나 악인에게나 분명히 드러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가르침을 따라 당신의 자녀가 되고 공동 상속자가 되게 하신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46절) 친구를 사랑하는 삶은 하느님 때문이 아니라 자기 때문에 친구를
사랑하는 것이므로 대단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자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 때문에 사랑한다. 이때에 그는 큰 보물을
지닌 사람이 된다. 자기 본능을 거슬러 행동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친구를 사랑하며 악을 피하고 원수를 사랑함으로써 의로움을 지니라고,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48절)고 하신다. 하느님의
상속자는 행실로써 하느님을 닮아야 한다.
우리가 아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완전한 사랑이라는 선행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셨다. 이런 사랑은 믿지 않는 이들과 죄인들
사이에서도 흔하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는 이들만 아니라 원수까지도 사랑함으로써 복음적인
사랑의 법으로 인간적 사랑을 넘어서길 바라신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아버지의 선하심을 본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삶을 청하며
살아가자.
- 수원 교구 상하 성모세 성당 조욱현 토마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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