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집단 뚱딴지의 외젠 이오네스코 원작 박형섭 번역 황이선 연출의 코뿔소
공연명 코뿔소
공연단체 공상집단 뚱딴지
작가 외젠 이오네스코
번역 박형섭
연출 황이선
공연기간 2019년 9월 28일~10월 12일
공연장소 마포아트센터 플레이맥
관람일시 9월 29일 오후 4시
마포아트센터 플레이맥에서 공상집단 뚱딴지의 외젠 이오네스코 작, 박형섭 번역, 황이선 연출의 <코뿔소>를 관람했다.
번역을 한 박형섭(朴亨燮, 1957~)은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졸업. 파리 8대학 불문학박사(현대극 전공). 현재 부산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 역서로는 『베케트 연극론』『노트와 반노트』『이오네스코 연극미학』『잔혹연극론』『기호와 몽상』등이 있다.
황이선은 서울예대 출신의 작가 겸 연출가다. <안녕 아라발> <후산부 동구씨> <팩토리 왈츠> <바람이 들려준 이야기>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비잔틴 레스토랑> <러닝머신 타는 남자의 연애갱생 프로젝트> <봄은 한철이다> <리어> <모든 건 타이밍II> <앨리스를 찾아서> <프로메테우스>를 집필 또는 연출한 장래가 발전적으로 기대되는 건강한 미녀 작가 겸 연출가다.
외젠 이오네스코 (Eugène Ionesco, 1909~1994)는 유년시대를 프랑스에서, 청년시대는 루마니아에서 보냈고 1938년 이후 파리에 정주하였다. 1950년 <대머리 여가수>가 공연된 이래 이른바 반 연극파(反演劇派)의 선단에 섰다. 이후 <수업> <의자> 등의 뛰어난 단막물로 종래의 것과는 좀 다른 초현실주의적인 희곡을 차차 인식시키고, 그 후에는 <코뿔소> <빈사(瀕死)의 왕> <갈증과 기아> 등의 장막물(長幕物)로 국립극장에 들어가게 되었다. 앙티테아트르 작가로 사무엘 베케트와 더불어 호칭되고 오늘날에 와서는 프랑스의 대표적 극작가로 확고한 명성을 지니고 있다
<코뿔소>는 무엇보다도 작가 이오네스코의 개인적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 경험은 부조리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이며 현실적인 것이다. 루마니아 출생의 이오네스코는 역사적 사실을 간과한 인물들이 붙인 “부조리극”이라는 꼬리표를 사양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즉 작가는 인간성을 위협했던 잔혹한 전쟁과 나치즘의 광기를 직접 체험했던 역사적 사실을 <코뿔소>에서 그려냈다. 이 작품은 독일의 나치와 같은 파시즘에 대한 풍자이며, 그와 흡사한 독재 권력의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며 번민하는 인간의 드라마다. 고독하고 실존적인 한 인간, 그러나 매우 현대적인 한 인간을 작품에 그려냈다.
또한 <코뿔소>는 하나의 풍자극이다. 비극성의 주조가 저변에 깔려 있는 인간-코뿔소, 사납고 그로테스크한 동물 마스크를 쓴 인간들의 운명에 관한 얘기다. 마치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들-미노타우로스, 스핑크스, 넵투누스처럼 짐승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인간-코뿔소의 연극인 것이다. 하지만 고대 신화와는 달리 이 작품에서의 비극성은 인간과 신의 관계를 통해 구현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외적 상황이나 삶의 조건에 따라 인간성을 상실함으로써 동물로 타락해가는 과정, 즉 극한 상황에 직면한 인간들의 내부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통해 그러난다. 여기서 외적 상황이란 이성을 짓누르는 폭력,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온갖 제도와 권력, 광신적 이데올로기를 일컫는다.
이오네스코는 <코뿔소>라는 제목에 관해 언급하면서 이 동물의 성향이 공격성과 복종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음을 강조했다. 여기에 집단성이라는 특질을 첨가할 수도 있다. 폭력이 가공할 힘을 발휘하는 것은 그 집단적 성격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청년 시절 대부분은 유럽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였을 때이며, 정신적으로 불안했던 시기였다. 그 시대적 상황은 수많은 지식인들로 하여금 코뿔소로 상징되는 어떤 힘의 이데올로기에 마취되도록 유도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이데올로기의 공격성과 전염성, 집단성에 무기력하게 방조 혹은 참여하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자신의 정신을 포기했던 것이다. 결국 이 작품은 바로 그러한 비인간적인 폭력에 별 저항없이 추종하여 집단의 익명에 가담하는 비인간성, 혹은 거기에 동참하여 스스로 그 세계에 안주하는 아류들을 고발한 연극이다. 우리의 현대사와도 비교된다.
무대는 Z자 형태의 언덕이 배경에서 객석 앞까지 연결되고, 출연진이 북과 북채를 들고 등장해 북을 두드리며 코뿔소 역할을 맡아 해낸다. 검은 의상에서 백색의상으로 바꿔 입고 Z자 형태의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열연을 한다. 수많은 의자가 배치되고, 출연진이 의자를 이동시키고 뒤집어 놓으며 장면변화에 대처한다.
연극에서 코뿔소가 나타나기 직전까지 배경이 되는 작은 마을의 카페에는 여러 사람들이 등장한다. 논리학자와, 식료품 가게 주인, 카페를 운영하는 부부 등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소시민들이다. 그 와중에 코뿔소가 나타나 순식간에 작은 마을을 혼란에 빠트리고 마을 사람들 역시 하나 씩 코뿔소로 변해간다.
이 혼란의 와중에 코뿔소가 과연 어디 출신인지 혹은 뿔의 개수가 몇 개 인지만을 따지는 사람들의 모습은 낯설지만 동시에 현대의 우리 모습을 반영하는 듯싶다. 사태의 본질은 보지 못한 채, 피상적인 화두에만 집중하며 무게 중심 없이 부유하듯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그려냈다. 어린 아기를 안은 여인이 등장하고, 지팡이를 짚은 중년남성, 그리고 주인공을 사랑하는 여인이 등장하지만 결국 그 여인마저도....대단원은 자신만은 결코 코뿔소로 변신하지 않겠다는 주인공의 독백이 전해지지만 그것을 믿는 관객은 없는 듯싶다.
리우진, 전중용, 김지원, 윤광희, 이인석, 노준영, 이의렬, 이현주, 슬리배, 오윤정 등 출연진의 혼신의 열정이 어린 열연과 타 악 행렬은 관객을 극에 심취시키는 역할을 하고 갈채를 이끌어 낸다.
조연출 박지은 권용태, 기획 김유정, 무대 김혜지, 조명 김용호, 연희 소경진, 음악 류승현, 사진 이정훈, 의상 심태영, 오퍼레이터 김지현 등 스텝진의 열정과 기량이 제대로 드러나, 공상집단 뚱딴지의 외젠 이오네스코 작, 박형섭 번역, 황이선 연출의 <코뿔소>를 연출가와 출연자의 기량이 조화를 이룬 한편의 창아기발(創雅奇拔)한 수준급 연극으로 창출시켰다.
9월 29일 박정기(朴精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