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32 주일(평신도 주일)-묵상과 기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신도의 역할을 크게 부각하면서, 평신도를 통하여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오늘 평신도들의 사도직의 사명을 깨닫고 선교에 임합니다. 평신도는성직자가 아닌 모든 신자를 가리캅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1968년 ‘한국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한국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단체 협의회’)의 결성, 1970년부터는 연중 마지막 주일의 전 주일을 ‘평신도 주일’로 지내 오다가, 2017년 부터 연중 마지막 전 주일이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이 되면서, 2017년부터 한 주 앞당겨 지내고 있다.
엘리야 예언자의 먹을 것의 요청에 사렙타 과부는 단지의 밀가루 한 줌과 병 조금 기름으로 작은 빵 하나를 만들고, 엘리야와 자기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엘리야는 과부의 자비심을 보고, 주님께서 이땅에 비를 다시 내리는 날까지, 밀가루 단지 비지 않고 기름병은 마르지 않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그분께서 마지막 시대에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치시려고 단 한 번 나타나셨다. 당신을 고대하는 이들을 구원하시려고 죄와 상관없이 두번째로 나타나실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성전 헌금함에 가난한 과부의 렙톤 두 개 봉헌을 칭찬하셨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풍족한 데서 얼마씩을 넣었지만, 그는 궁핍한 가운데 가진 것을, 생활비를 다 넣었다.고 하였습니다.
말씀 성찰
-. 지난 시간을 되돌아 봅니다. 어제 등. 지난 시간 걸어온 길, 자리, 만남, 대화 등 나의 모습과 말, 행위를 바라봅니다.
-. 사랑과 자비, 진리와 선을 중심으로 나의 허약함과 허물, 그릇됨과 악습 등을 바라 봅니다. 회개와 함께 자선의 길을 찾습니다.
-. 내 안에 살아계신 주님, 자비하신 그분의 현존을 바라봅니다. 그분의 말씀을 듣습니다. 나의 바람을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또 그분의 말씀을 듣습니다.
-. 들음을 바탕으로 감사의 마음으로 나의 다짐과 실천의 내용을 기도로 바칩니다.
말씀 묵상
그 무렵 엘리야 예언자는 일어나 사렙타로 갔다. 그가 성읍에 들어서는데 마침 한 과부가 땔감을 줍고 있었다. 엘리야가 그 여자를 부르고는, “마실 물 한 그릇 좀 떠다 주시오.” 하고 청하였다. 그 여자가 물을 뜨러 가는데 엘리야가 다시 불러서 말하였다. “빵도 한 조각 들고 오면 좋겠소.”
여자가 대답하였다. “주 어르신의 하느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구운 빵이라고는 한 조각도 없습니다. 다만 단지에 밀가루 한 줌과 병에 기름이 조금 있을 뿐입니다. 저는 지금 땔감을 두어 개 주워다가 음식을 만들어, 제 아들과 함께 그것이나 먹고 죽을 작정입니다.”
엘리야가 과부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당신 말대로 음식을 만드시오. 그러나 먼저 나를 위해 작은 빵 과자 하나를 만들어 내오고, 그런 다음 당신과 당신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드시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소. ‘이 주님이 땅에 비를 다시 내리는 날까지, 밀가루 단지는 비지 않고 기름병은 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자 그 여인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다. 과연 그 여자와 엘리야와 그 여자의 집안은 오랫동안 먹을 것이 있었다. 주님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대로, 단지에는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병에는 기름이 마르지 않았다. 1열왕 17,10-16
그리스도께서는, 참성소의 모조품에 지나지 않는 곳에, 곧 사람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 앞에 나타나시려고 바로 하늘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대사제가 해마다 다른 생물의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듯이, 당신 자신을 여러 번 바치시려고 들어가신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세상 창조 때부터 여러 번 고난을 받으셔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분께서는 마지막 시대에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쳐 죄를 없애시려고 단 한 번 나타나셨습니다.
사람은 단 한 번 죽게 마련이고 그 뒤에 심판이 이어지듯이,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고대하는 이들을 구원하시려고 죄와는 상관없이 두 번째로 나타나실 것입니다. 히브 9,24-28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이르셨다.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시어,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 많은 부자들이 큰돈을 넣었다.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다. 그것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마르 12,38-44
말씀 실천
마음이 가난한이는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하였습니다. 마음의 가난함은 마음의 평화와 함께 세상의 물질적 가치의 초연함을 말합니다. 더욱 구체적으로 선과 사랑, 정의와 거룩함을 위한 평정과 중용과 실천의 마음입니다. 사렙타 마을의 과부는 그날 자신과 아들이 먹어야할 마지막 양식을 예언자 엘리야의 요청에 기꺼이 그에게 내 놓았습니다. 복음에서 가난한 과부는 하느님을 향하여, 예루살렘 성전의 헌금함에 그날 생활비를 렙톤 두 개를 몽땅, 봉헌하였습니다.
가난함은 세속과 물질적 가치를 우선하고 따르는 세상 사람들의 발걸음과 다릅니다. 그 가난한 마음은 자비와 사랑의 하느님의 마음이며, 항구한 선과 사랑의 거룩한 마음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이는 하느님을 그리워하고 그분을 만날 원의와 희망 때문에 모든 세속의 가치와 법을 넘어 행동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진복팔단 첫 말씀에서 마음이 가난한 이는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하였습니다.
마침 기도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을 바칩니다.
이재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