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균이 수하 아전을 육지로 심부름 보내놓고는 그 아내를 사통하려 했다. 그러나 그 아내는 원균이 기를 써도 따라주지 않고 밖으로 뛰쳐나가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런 원균이란 자가 온갖 꾀로 나를 모함하려 하니 이 또한 나의 운수로다.
원균이 나를 헐뜯기 위해 쓴 글은 너무 많아 말에 얹혀 조정으로 보내질 정도로, 그 짐이 서울길에 잇닿았을 지경이다. 그렇게 나를 헐뜯는 짓이 날이 갈수록 심하니, 그저 때를 못 만난 것을 한탄할 따름이다. 」
1593년 2월 28일, 원균이 어부들의 목을 찾고 있으니 황당하다.
3월 2일, 원균의 비리를 들으니 더 더욱 한탄스러울 따름이다.
5월 14일, 원균이 함부로 말하고 사람을 속이니 모두 분개했다.
5월 21일, 원균이 거짓 공문으로 군사들을 속이니 정말 흉측하다.
5월 24일, 중국 화전을 원균이 혼자 쓰려 꾀를 내니 우습다.
5월 30일, 위급한 때에 원균 등이 계집을 배에 태우고 논다.
6월 10일, 원균이 흉계와 시기 가득 찬 편지를 보내왔다.
6월 11일, 원균이 술에 취해 정신이 없더라고 한다.
7월 21일, 원균이 흉측한 흉계를 냈다.
8월 2일, 원균이 나를 헐뜯어 망령된 말로 떠드니 어찌 관계하랴!
8월 6일, 원균은 걸핏하면 모순된 말을 하니 우습고도 우습다.
8월 7일, 원균은 항상 헛소문 내기를 좋아하니 믿을 수가 없다.
8월 19일, 원균은 음흉하고 하는 짓이 그럴 듯하게 남을 속인다.
8월 26일, 원균이 음흉하고도 도리에 어긋난 말을 하여 해괴했다.
8월 28일, 원균이 와서 음흉하고 간사한 말을 많이 내뱉었다.
8월 30일, 원균은 참으로 흉스럽다고 할 만하다.
9월 6일, 하루 종일 원균의 흉측스러운 일을 들었다.
1594년 1월 11일, 원균이 취해서 미친 말을 많이 했다. 우습다.
1월 19일, 원균이 남들이 마음에 둔 여자들과 몽땅 관계했다.
2월 18일, 원균이 심하게 취해서 활을 한두 번밖에 못 쏘았다.
3월 3일, 원균의 수군들이 우스운 일로 매를 맞았다고 한다..
3월 5일, 장수들이 이야기하는 중 원균이 오자 가버렸다.
3월 13일, 원균이 거짓으로 왜군 노릇한 놈을 목 잘라 바쳤다.
4월 12일, 원균이 미친 듯 날뛰니 모두들 무척 괴이쩍어 했다.
6월 4일, 임금의 꾸짖는 분부가 내려왔으니 원균 때문이다.
8월 30일, 원균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니, 천년의 한탄이다.
9월 4일, 활을 쏘았는데 원균이 아홉 푼을 져서 술에 취해 갔다.
10월 17일, 순무어사가 원균이 거짓말을 많이 한다고 이야기했다.
1595년 2월 20일, 원균의 악하고 못된 짓을 많이 들었다.
2월 27일, 원균이 너무도 무식한 것이 우습기도 하다.
1597년 5월 2일, 진흥국이 눈물을 흘리면서 원균의 일을 말했다.
5월 5일, 한산도에서 원균이 한 못된 짓을 많이 들었다.
5월 7일, 한산도에서 음흉한 자(원균)가 한 일을 많이 들었다.
5월 8일, 음흉한 원균이 편지 조문을 했다.
5월 11일, 소문들이 많이 들리는데 모두 흉물의 일이었다.
5월 20일, 체찰사(이원익)가 '흉물 탓에 나랏일이 걱정'이라 했다.
5월 23일, 체찰사가 원흉의 그릇된 일에 대해 분개했다.
5월 28일, 하동현감이 원균의 하는 짓이 엄청 미쳤다고 말했다.
6월 17일, 도원수(권율)가 원균의 거짓된 짓을 많이 말했다.
6월 19일, 도원수는 통제사(원균)의 일이 말이 아니라고 했다.
6월 25일, 원균이 적은 한 놈도 못 잡고 먼저 두 장수를 잃었다.
7월 21일, 노량에 이르니, 사람들이 모두 울면서 말하되,
"대장 원균이 적을 보고 먼저 뭍으로 달아났다. 여러 장수들도 힘써 뭍으로 가서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다.
◆ 평택시 공식 블로그에 소개된 원균 기념관 사진
임진왜란기 조선의 대표적 패장으로 꼽히는 원균에 대해 “그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홍보하겠다며 기념관을 지은 평택시가 원씨 종중이 원균에 지내는 제사까지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각에선 역사적 인물에 대한 충실한 검증 없이 지방자치단체가 무분별하게 예산을 사용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평택시는 원균의 생애와 공훈 등을 소개하기 위해 원균 장군묘 인근에 개관한 ‘원릉군기념관’ 건립에 시비와 도비 각각 2억 5,000만원씩 총 5억원이 투입됐다.
건립에 1억 7,000여 만원을 부담한 원주 원씨 대종회 측이 운영비를 부담하되, 평택시에서 문화유적 관광 해설사 배치 비용까지 떠안는 조건이다.
左 원능군 사우에 있는 원균 초상화, 右 원유철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
원유철 전 원내대표는 과거 국회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원균 장군은 전공을 세우고도 전혀 기록을 남기지 않아 그의 공과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습니다”라며 조상인 원균을 향한 비판적인 여론에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조선사를 연구하는 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는 “80년대에 논문 한두 편이 나왔을 뿐, 지금 원균이 학계의 재조명을 받고 있지는 않다”며 “원균에 대한 재평가는 주류 학계가 아닌 소수의 주장”이라고 설명했다.
계 교수는 “인물을 평가할 때는 그 인물이 어떤 지위에 올랐을 때, 그 지위에 요구되는 책임과 역할을 다 했는지 등이 기준이 돼야 한다”며 “원균이 장렬히 전사했다고 그를 높이 숭앙할 일이 아니다. (그의 행적은) 기념할 사안이 아니라 반면교사 삼아야 할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계 교수는 왜군 침략 당시 원균 행적 중 △경상 우수사 재직 시 전쟁에 제대로 대비하고 있지 않다가 전쟁 발발 후 소속 4척의 군함을 직접 수장한 것 △같은 야전 지휘관이면서 왜군을 상대로 전략적으로 출전하고 있지 않던 이순신을 깎아 내리고 ‘수군통제사’ 직에 오르기를 희망한 것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원균 기념관을 운영하고 원균장군묘를 소유ㆍ관리하는 원씨 종중은 “패전의 책임을 400년간 지고 있는 원균에 대한 진실을 알릴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 원주원씨 대종회 관계자는 “이순신에 대한 성역화를 국민 세금으로 하는 것은 문제가 없고, 원균을 기념하는 것은 문제가 되는가”라며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