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허 (Ben-Hur)
1925년 미국 MGM 제작
감독 : 프레드 니블로
원작 : 루 윌리스
조감독 : 윌리암 와일러 외 다수
출연 : 라몬 노바로, 프란시스 X 부쉬맨, 메이 맥어보이
베티 브론슨, 클레어 맥도웰, 캐슬린 케이
한국인이 가장 사랑한 외국영화는 무엇일까요? 아마 1959년 작품 '벤허' 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은 존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이 '벤허'가 갖고 있는 여러가지 기록은 다양한데, 우선 국내 최장기 상영영화입니다. 1962년 서울 대한극장에서 개봉하여 무려 175일을 상영했고, 당연히 그 해 흥행 1위를 차지했습니다. 놀랍게도 10년뒤인 1972년 재개봉에서도 무려 93일을 상영하는 기록을 세우며 다시 흥행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어 9년뒤인 1981년에 3번째 공식 수입에서도 인파가 몰리며 그 해 흥행 3위를 차지했습니다. 재개봉한 영화가 흥행 1위를 차지한 것도 놀라운데 3번의 개봉에서 총 상영일수만 따져도 300일이 넘는 기간이니 얼마나 시대불문하고 관객을 모은 영화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요즘 '어벤져스' 시리즈 처럼 1천만 관객영화가 있지만 60-70년대의 '벤허의 인기에 비할 수 없습니다. 서울인구 200만명 안팎의 시대에 지금과 달리 '단관개봉'에서 6개월의 장기상영으로 관객을 모은 것은 유래없는 일이며 그래서 대한극장을 '벤허 극장'이라고 부르기도 했고, 70mm 대형 화면으로 상영할 수 있는 극장도 서울에 대한극장 밖에 없었습니다.
원래 '벤허'는 미국 남북전쟁 시대의 북군 장군이었던 루 월리스 라는 작가가 지은 소설입니다. 원작이 존재하고 1907년 단편영화제작 그리고 1925년 무성영화로 제작하였기 때문에 1959년 작품은 사실상 리메이크 영화인데 그럼에도 워낙 흥행에 크게 성공했고 스케일도 컸고 아카데미 11개 부문수상이라는 업적을 세웠고, 전 세계적으로 흥행을 하다 보니 '벤허'하면 원작소설이나 1925년 영화보다는 1959년 영화를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1925년 영화도 결코 만만치 않은 작품이며 어찌되었든 이 영화가 1959년 칼라 유성영화 대작을 만들때 많은 참고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늘은 59년 작품에 묻혀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1925년의 무성영화 '벤허'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성모 마리아
아기 예수 탄생 장면
종교적 장면 일부를 놀랍게도
테크니칼라 촬영으로 처리했다.
벤허와 에스더
반갑게 재회한 멧살라와 벤허
사실 이 영화를 보면 이게 과연 무성영화 시대에 만드는게 가능한 스케일인가 싶을 정도로 놀랍습니다. 1920년대 무성영화 시대의 할리우드 MGM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는 영화지요. 나름 본 사람들이 제법 있을만한 찰리 채플린이나 버스터 키튼의 무성영화와는 스케일 자체가 다른 대작이지요. 40-50년대 시대극들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는 규모가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는 우리나라에서 크게 히트했던 40년대 후반 작품 '삼손과 데릴라'보다 오히려 규모가 큽니다. 상영시간도 2시간 20분이 넘는 장편이지요.
1959년 '벤허'도 종교영화적 색채가 짙었지만 무성영화 '벤허'는 그 비중이 더 큽니다. 예수의 탄생으로 시작해서 예수의 죽음으로 끝나는 내용이니. 물론 영화의 주인공은 유다 벤허입니다. 하지만 벤허의 이야기도 결국 예수의 복음과 사랑을 위한 도구로 쓰이고 있지요.
로마가 유럽 곳곳을 점령하고 위세를 떨치던 시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탄압속에서 구세주의 탄생을 기다립니다. 목수인 요셉과 아내인 마리아는 베들레헴이 가서 아기 예수를 출산하게 되고 동방박사 3명이 예수의 탄생을 경배합니다. 이후 세월이 어느 정도 흐르고, 유대인 부자인 벤허는 어릴적 친구 멧살라를 만나서 회포를 풀지만 거만한 로마군인으로 변한 멧살라의 모습을 보고 실망합니다. 새로운 로마 총독이 부임하고 행진을 하는데 그 광경을 구경하던 벤허는 실수로 기와장을 떨어뜨리게 되고 그로 인하여 가족 전체가 체포됩니다. 친구인 멧살라는 오히려 그런 벤허를 돕기는 커녕 냉정하게 체포를 묵인합니다. 어머니와 여동생은 지하 감옥에 갇히고 벤허는 노예로 끌려가는데 예수의 집을 지날때 예수가 쓰러진 벤허에게 물을 떠주는 선행을 베풀어줍니다. 그로 인하여 힘을 얻은 벤허는 악착같이 생존해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벤허의 가족과 절친했던 멧살라였지만
결국 로마병사와 유대인이라는 신분차이로
불화가 생기는 벤허와 멧살라
체포되는 벤허
예수로부터 위로를 받는 벤허
함선의 노예가 된 벤허
이렇게 초반부 벤허의 이야기는 59년 작품과 유사하지만 상당히 빠른 진행이 됩니다. 기와장을 떨어뜨린게 여동생이 아닌 벤허 자신이라는 점이 다르죠. 이후 벤허는 로마 해군의 배에서 노를 젓는 노예가 됩니다. 함선이 해적의 공격을 받게 되고 벤허는 물에 빠진 총독을 구해주게 되어 그의 환심을 사고 양자가 되어 신분상승을 합니다. 고향집으로 돌아온 벤허는 자기집의 재산을 관리하던 시모니데스의 딸 에스더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들 부녀로부터 어머니와 여동생이 죽었다고 듣게 됩니다. 복수심에 불타는 벤허는 멧살라와의 전차경기에서 승리하고 멧살라는 큰 부상을 입게 됩니다. 벤허는 로마를 몰락시키기 위해서 전 재산을 군대를 양성하는데 쓰고 벤허의 군사는 날로 늘어갑니다. 그런 와중에 나병에 걸린 어머니와 여동생이 감옥에서 나오게 되지만 차마 벤허를 만나지 못합니다. 빌라도 총독이 부임하여 예수를 처형시키도록 명령하고 십자가를 지고 끌려가는 예수였지만 그런 와중에서 믿음을 보여주는 사람들에게 기적을 일으킵니다. 에스더의 손에 이끌려온 벤허의 어머니와 여동생은 끌려가는 예수를 영접하게 되고 그러자 기적처럼 나병이 낫게 됩니다. 죽은줄 알았던 어머니, 여동생과 벅찬 재회를 한 벤허, 그에게 복수대신 사랑을 하라는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이렇게 해서 벤허는 증오대신 사랑을 찾게 됩니다.
59년 벤허를 많이 축소한 내용이지만 중요한 장면인 해상 전투장면과 마차경주 장면은 고스란히 보여지는데 그 규모가 장난이 아닙니다. 1925년 무성영화라는 것을 감안하면 정말 대단한 규모지요. 해적과의 전투장면에서는 수많은 인원을 동원하여 박진감있는 백병전 장면이 전개됩니다. 이 해전장면에서만 48대의 카메라가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전차경주 장면은 더 스케일이 큰데 일단 59년 작품과 동일한 규모의 거대한 경기장도 압권이고 그곳에 모여든 엑스트라 관객의 규모도 대단합니다. 그리고 실제 여러대의 마치가 끄는 마차경주의 박진감도 상당히 길고 실감나게 전개됩니다. 물론 59년 영화보다는 짜임새나 드라마틱한 것이 떨어지지만.. 이 전차경주장의 엑스트라를 비롯하여 영화에 참여한 엑스트라는 당시 MGM 꿈나무 예비스타들이 대거 포함되었는데 게리 쿠퍼, 클라크 게이블,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캐롤 롬바드, 자넷 게이너, 존 길버트, 조안 크로포드, 존 배리모어, 라이오넬 배리모어 등 다수입니다. 심지어 헨리 킹 감독조차 엑스트라 목록에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가 유성영화 초기 시대 거물들의 산실역할이 된 셈이죠. 전차경주 장면에는 무려 42대의 카메라가 설치되었고, 바닥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서 말이 위로 지나가는 장면을 실감나게 보여줍니다. 무성영화 시대의 역대급 제작비인 390만 달러가 투입되었고, 당시 조감독으로 참여한 윌리암 와일러가 나중에 유성영화 칼라버전 '벤허'를 직접 감독하게 됩니다.
거대한 전투장면
이게 무성영화 시대의 연출이라니
해군총독을 구한 벤허
에스더와 재회한 벤허
결국 다시 만나게 된 벤허와 멧살라
옛날과 달리 원수지간이 되었다.
규모가 어마어마했던 만큼 1959년 영화처럼 호평과 성공을 거둔 무성영화입니다. 1925년 최고 흥해작으로 알려져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일제 강점기 시대에 개봉되어 제법 오래 상영했다고합니다. (뭐 그래봐야 당시는 2-3일 상영이 보편적이라서 10일 정도 상영했다고 하죠. 물론 재개봉도 되었고) 영화만 성공한게 아니라 루 윌리스의 원작 소설 역시 19세기에 출판된 소설중 엄청난 베스트셀러로 기록되었는데 워낙 1959년 영화가 유명하다 보니 그런 유명 소설이었음에도 영화가 소설을 잡아먹어버린 셈입니다.
좀 더 놀라운 사실하나는 이 영화에서 '부분적 칼라촬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많은 분량은 아니지만 종교적인 장면(예수탄생, 최후의 만찬 등) 에서는 칼라로 화면이 나옵니다. 실제 테크니칼라 기술로 촬영되었고, 물론 지금 보면 상당히 열악한 칼라화질이지만 엄연히 칼라영상을 실현한 영화입니다. 세계 최초의 칼라영화 작품이 1935년 작품 '베키 샤프(Becky Sharp)' 라는 영화로 알려졌으니 무려 10년이나 일찍 칼라영상이 가능함을 선보인 것입니다. 엄청난 업적이지요. 사실상 1925년 '벤허'가 최초의 칼라영화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현재 우리가 직접 구해서 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칼라영화는 마를레네 디트리히 주연의 1936년 작품 '사막의 화원' 이지요.
벤허 역에는 멕시코 출신 라몬 노바로 라는 배우가 연기했는데 59년 작품의 찰톤 헤스톤이 190cm의 건장한 장신이었던 것과는 달리 178cm 의 다부진 체격의 미남배우입니다. 당시 26세의 젊은 배우였고, 이 배우는 그레타 가르보의 대표작 중 하나인 '마타하리'에서 남자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멧살라 역의 프란시스 X 부시맨이라는 배우는 무성영화 초기의 상당한 스타였다고 합니다. 벤허 역에는 전설의 미남배우 루돌프 발렌티노가 고려되기도 했습니다.
거대한 규모의 전차경기장 세트
1925년 당시 무성영화 시대에
최고 제작비를 투입했던 영화
달려라 벤허~
1959년 영화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히
박진감 넘치게 전개된 마차경기 장면
"너희들 중 죄없는 자, 저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성경의 유명한 구절이 등장하는 장면
1959년 영화에 비해서 종교적 색채가 훨씬 짙다.
예수에게 구원받는 벤허의 어머니와 여동생
십자가에 끌려가는 와중에도 신자를 구원하는 예수
나병이 나은 어머니, 동생과 반가운 재회를 하는 벤허
1959년 '벤허'가 50년대까지의 가장 규모가 큰 역대급 대작이었는데 1925년 '벤허'는 무성영화 사상 전례없는 최고의 대작이었고, 원작 소설 역시 19세기의 미국 소설중 역대급 베스트셀러였다고 하니 '벤허'라는 이름은 비단 우리가 잘 아는 59년 작품뿐만이 아닌 굉장히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이름이 된 것입니다. 물론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는 2016년 리메이크 '벤허'는 거기 낄 영화는 아니겠지만요.
평점 : ★★★☆ (4개 만점)
ps1 : 1940년대까지도 거의 대부분의 영화가 흑백이었고 50년대에도 칼라와 흑백영화 비중이 미국영화중에서도 반반 정도였으니 '벤허'에서 시도한 일부일망정 칼라촬영이 얼마나 혁신적인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ps2 : 59년 벤허와 확실히 다른 부분이 전차경기 이후 멧살라가 죽어가면서 벤허에게 마지막 저주를 퍼붓는 장면이 없고, 벤허가 전차경기 이후 군대를 조직하여 로마를 공격할 계획을 세우는 내용은 59년 작품에 아예 없습니다. 예수의 정면 얼굴이 등장하지 않는 부분은 두 영화 모두 동일합니다. 멧살라의 비중은 59년 작품에 비해서 적은 편입니다.
ps3 : 제목에 '그리스도 이야기(A tale of the Christ)' 라는 부제가 붙은 것을 봐도 상당히 종교적 색채가 진한 영화라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처음부터 대놓고 종교적인데 59년 영화는 후반부에 갑자기 종교홍보영화로 변한듯한 느낌이었다는 부분이 다른 점입니다.
ps4 : 제가 평생 극장에서 세 번 본 유일한 영화가 1959년 '벤허'입니다. 두번 본 영화는 많았지만. 물론 TV포함 3번 이상 본 영화는 많지요.
[출처] 벤허(Ben-Hur, 1925년) 무성영화 사상 최고의 대작|작성자 이규웅
첫댓글 엑스트라는 당시 MGM 꿈나무 예비스타들이 대거 포함되었는데 게리 쿠퍼, 클라크 게이블,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캐롤 롬바드, 자넷 게이너, 존 길버트, 조안 크로포드, 존 배리모어, 라이오넬 배리모어 등 다수입니다. 심지어 헨리 킹 감독조차 엑스트라 목록에 있습니다
쿠퍼, 게이블, 페어뱅크스, 롬바트, 게이너, 길버트, 크로포드, 배리모어(이상 배우)와 헨리 킹 감독이라면 9편의 영화가 만들어 질 텐데.
그 시대 예비배우들이 훗날 할리우드를 이끌갈 줄 몰랐겠지만 이유불문, 기라성이란 말로도 모자랄 정도의 배우들인데, 지금은 천상에서 멋진 연기를 펼치고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