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는 인생 항로의 배
의식과 육체는,
이 현상계에 있어서는 색심불이,
즉 육체와 마음이 일체라는 것이다.
의식과 육체는 차원이 다른 세계이며,
영원히 변하지 않는 혼인 수행자가,
육체라고 하는 배를 타고 인생을 건너가는 과정에 불과하다.
그것은 이 현상계에 있어서 에너지와 물질이 같은 것으로 다른 점은,
에너지는 일을 성취하는 능력이 있지만,
자기적인 의지는 갖지 않는다고 하는 점이다.
육체는, 약 60조로 이루어지는 세포 집단에 의해,
모든 기관과 오체로 구성되어 있고,
그것은 에너지의 보급을 받아,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지키고 있다.
하지만, 오체 자신은 의지를 갖는 것은 아니다.
각 세포 제기관은 각각 의식을 갖고 있지만,
단독으로 활동은 할 수 없다.
물질과 에너지의 관계와 매우 흡사한 점이다.
육체는, 지배자인 의식이 돌아와야 비로소
그 의지에 의해 오체의 행위가 현상화되도록 되어 있다.
이와 같이 육체를 혼이 타는 배라고 하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우리의 오체는 신불의 명령에 의해, 혼을 수행하는 인간이 타는 배로서,
사명을 달성하기 위해, 신불과 약속하고,
모체 안에서의 정자와 난자의 조화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또 이 현상계에 적응한 인생 항로의 배는,
신불의 의지에 근거하여, 신불의 자식의 수행의 장으로서,
생식 본능이 주어져, 자손 보존이 허락되어 있다.
우리의 의식(혼)은,
차원이 다른 의식의 세계에서 수행하러 나와 있는 것으로,
이 현상계에서는, 거기에 존속하고 있는 육체라는 배를 타지 않으면,
인생에서의 사명과 목적을 이룰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신체(神體)의 일부인 이 지구상에,
인류의 마음과 마음의 조화를 꾀해,
만상 만물에게, 평등한 자비와 사랑이 주어진다.
투쟁과 파괴가 없는 사회를 건설하는 사명과,
과거세에서 만들어 온 자신의 업을 수정하여,
보다 고차원의 세계로 진화할 목적을 갖고,
자신을 연마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우리인 것이다.
종래의 종교 지도자의 대다수는,
눈에 보이는 육체적 현상에서, 신앙의 대상을 찾아왔다.
그 결과, 육체 선조가 전부인 것처럼 생각해,
혼까지도 육체 선조에게서 받은 것처럼 착각을 범해 왔다.
그 때문에 신앙은, 선조에 대해 훌륭한 계명을 올리고,
훌륭한 묘지에 매장하고, 경문을 공양하면,
성불할 수 있다고 하는 듯이 변해 버렸다.
그러한 행위에 의해 자손도 구원된다고 생각하도록 되어 버렸다.
결국 장례 불교, 의식(儀式)에 의한 선조 공양으로 빠졌다고 하는 것이다.
일종 일파(一宗一派)의 교조라고 칭하는 사람들도 그런 식으로 가르쳐,
그 교의를 또한 신앙하고 있는 신자가 얼마나 많은가,
신심(信心)이란,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행사를 하는 것이 아니다.
매일의 생활 속에서, 주어진 그 환경에 있어서,
힘껏 노력하고, 매일매일 생각한 것과,
행위에 대해서의 선악(善惡)을,
중도의 마음을 갖고 반성하고 감사와 보은의 실천이 아니면 안 된다.
올바른 신심이라 함은,
거기에 존재한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은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수도, 석가도, 선조를 숭배하라고는 가르치지 않았다.
물론 우리는, 선조나 양친의 인연에 의해 육체를 받은 것이므로,
감사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 표현은, 양친에 대해서 보은의 행위에 의해 보답할 수 있다.
형제자매가 사이좋게 생활하는 것도, 그 효행의 하나이다.
정신적, 경제적으로 조화된 생활을 하고 있는 것도 효의 하나이다.
돌아가신 육체적 선조에 대해서는,
감사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좋은 계명을 붙여! 라든가, 좋은 묘를 쓰라! 든가,
좋은 불단을 만들어 제사하라! 든가, 하는 선조가 있다면,
이 선조는 100% 지옥에 있던지,
영매에 빙의하고 있는 부조화한 영(靈)이 말하고 있는 것이므로,
우리는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주로 동물령의 소행이다.
만약 선조의 영이 지옥에 떨어져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경우라도,
생활을 하고 있는 자손이,
정법을 깨달아 그들 선조의 영에게,
인간으로서 지상계에서 생활하고 있었던 당시의 마음의 바른 자세,
인간으로서 태어난 사명, 목적을 잘 이야기해주는 것에 의해,
그 방황하는 마음을 구원해 줄 수가 있다.
죽은 사람들이 경문의 의미도 모르는데,
어려운 경을 낭송하여도 의미는 없다.
상대가 납득할 수 없어서는 성불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
이 현상계의 묘나 불단에 미련이나 집념을 갖고 있는 영은,
지옥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가족의 부조화한 어두운 상념에 빙의하여,
집안을 더욱더 부조화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 먼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상념과 행위를 신리에 적합한 생활에 두어,
그것을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기의 영역(靈域=오로라)이 조화되지 않기 때문에,
부조화한 영을 불러들이고 마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한다.
돌아가신 선조의 영에게,
이 현상계에서 집념을 버리도록 가르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가족을 정법으로 귀의시켜 빛이 있는 즐거운 가정을 만드는 것에 의해,
돌아가신 선조의 영도 그 안에서 배워 깨닫게 된다.
불단 앞만이 공양의 장소는 아니다.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