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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더기가 된 인생에 은혜를 담으시는 하나님(창세기 49:5-7)]-김관성 목사(11월 8일)
□ 본문 레위지파의 운명이 저희의 운명과 같습니다.
- 본문은 야곱이 죽기 전에 유언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유언이라고 하기에는 좀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유언은 보통 좋은 말을 남기는데, 야곱은 자식들 중 시몬과 레위에게 저주를 퍼붓습니다. 사실 이것은 하나님이 시몬과 레위의 인생을 평가하셔서 야곱의 입을 통하여 전달하는 내용이라고 봐야 합니다. 시몬과 레위는 한평생 폭력의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평가를 받습니다. 우리가 두 번 살지 않고 한 번 삽니다. 우리 인생은 어떤 식으로든 하나님으로부터 평가를 받게 될 것입니다.
- 7절에 시몬과 레위가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게 되는데, 그 벌의 내용은 흩어지고, 나눠지고, 쪼개지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벌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살펴보기 위해 민수기 1장에 보면, 20세 이상 50세 이하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인구를 조사하라고 합니다. 시몬지파의 인구가 59,300명으로 계산됩니다. 24장에서 다시 인구조사를 하게 되는데 시몬지파가 22,000명으로 줄었습니다. 12지파 중에 인구가 줄어드는 폭이 가장 심했습니다. 그리고 각 지파에 할당된 땅이 있었는데 모든 지파는 정복했는데, 시몬지파만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여호수아 19장을 보면 시몬지파는 유다지파로 흡수 통합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야곱의 흩어지고 나눠지고 쪼개지는 저주가 그대로 실현된 것입니다.
- 레위지파도 똑같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레위지파는 우상 숭배한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이 처단하라고 한 명령에 순종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는 지파로 선정됩니다. 그래서 레위지파는 복도 받고 저주도 받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신명기에 레위지파가 하나님 앞에 헌신해서 받게 되는 복의 결과로 제사장 지파로 임명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각 지파를 가르치고 제사를 집전하는 영광스러운 직분으로 임명되어집니다. 그러면 저주는 어떻게 실현되었는가? 나머지 11지파는 지파끼리 공동으로 모여 살았지만, 레위지파는 11개 지파로 흩어지고 나누어져 직분을 수행하게 됨으로 쪼개지고 흩어짐의 저주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레위지파가 받은 저주는 그들의 순종으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었고, 주의 도구로 쓰이는 은혜의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레위지파의 운명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저와 우리들의 운명과 같습니다. ‘예수 믿는 신자의 영광이 반드시 형통하고 성공한 삶의 내용을 가져야만 하는 것인가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봐도 마음에 들지 않는 인생, 눈물과 한숨과 고통으로 점철된 인생,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걸어왔다면, 하나님은 이것을 복으로 전환시키십니다. 우리가 그 영광된 자리로 초대받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에 근거해서 간증하고자 합니다.
□ 우리 가족 5남매는 참 처절한 인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 저는 올해 48세입니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도 많고, 저보다 힘든 고통의 과정을 통과해 오셨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런데 저도 48세라고 하기엔 어울리지 않는 참으로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 저는 결혼해서 방 두 칸에 처음 살아봤습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방 한 칸에서 살았고, 이사는 30여 번 했습니다. 아버지는 한평생 알콜중독, 노름중독으로 사시다가 마지막에는 간암으로 하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 시대 아버지는 자기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에 술과 노름으로 자기 인생을 내던진 분들이 꽤 많았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그런 분들 중에 동급 최강이었습니다. 아버지가 경제력이 없으니 어머니가 우리를 먹여 살리려고 새벽 4시만 되면 새벽시장에 가서 나물도 파시고, 고기장사도 하셔서 우리를 키웠습니다.
- 제가 초등학교 후 제일 공포스러웠던 것은, 아버지가 바깥에서 술 마시고 노름하다가 꼭 마지막에는 우리 집으로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술과 노름을 새벽까지 매일 즐기는 것이었습니다. 저희 집은 단칸방이었습니다. 1년 중에 300일 이상 저녁 7시부터 새벽까지 노름하는 집이 되었습니다. 담배연기가 방안에 자욱했습니다. 어머니와 제가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없어 왼쪽 구석 책상 밑에 웅크리고 어머니와 잠을 잤습니다. 아버지가 돈을 따면 괜찮은데, 잃으면 어머니를 깨워 괴롭혔습니다. 육두문자를 날리고 때리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 아버지는 주로 숟가락과 포크로 어머니를 구타했는데, 포크로 머리를 찌르면 피가 흘렀습니다. “아들아, 내가 너만 아니면 벌써 어디론가 도망쳤을 거야.”라고 어머니가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한 번은 제가 술에 취한 아버지의 손을 잡고 주저앉혀 힘으로 막았습니다. 순간 놀랬는지 잠시 멈추셨습니다. 어머니와 제가 끌어안고 자려고 하는데, 부엌에서 칼 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을 힘으로 눌렀다는 생각에 빈정이 상하셨던지 잠시 후 칼을 들고 들어옵니다. 저는 팬티 차림으로 뛰쳐나가 도망가야 했습니다. 돌아다니다가 울산침례교회 교육관에 앉아 있었습니다. 4시 정도 되면 새벽기도 시간이라 성도들이 오기 때문에 나와서 전봇대 뒤에 숨어 있었던 기억을 지금도 떠올리면 끔찍합니다.
- 아버지 밑에 도저히 살 수 없어서 시집간 누나 집에 가서 못 살겠다고 하니, 누나들이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너가 지금 당하는 것은 우리가 당한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며 다시 집으로 들어가라고 합니다. 누나가 아픈 이야기를 한 토막 들려줍니다. “관성아, 누나들 셋 다 초등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노름 밑천 마련하려고 서울로, 부산으로, 대구로 식모살이를 보냈다는 것입니다. 1년치 또는 몇 달치 월급을 미리 받아 아버지가 노름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청춘이 그렇게 다 흘러갔다고 합니다. 그것까지는 괜찮은데 일요일에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주인집 밥 차리고, 청소하고, 저녁에 아파트 베란다에서 고향땅 울산을 바라보며 울면, 달이 떠오르는데, 그 달 안에 엄마 얼굴이 같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누님들 인생이 다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누나들 인생에 좋은 낙이 없었습니다.
- 또 저보다 열 살이 많은 형님이 계시는데, 형님은 남자라 중학교를 보냈습니다. 중학교 2학년말 가출해서 형님의 인생도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평생 주먹을 사용해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온 몸에 문신을 하고 있었고, 칼자국과 담배 지진 자국이 있었습니다. 형님에게 최선의 선택은 가출이었던 것입니다. 누님과 형님들의 인생이 다 망가졌습니다.
- 2남3녀 중 제가 가장 똑똑한 편이었습니다. 그러면 저는 공부에 미쳐 그 보상을 찾았을까요? 아닙니다. 저는 도둑질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습니다. 테니스 가방을 가지고 슈퍼마켓에 들어가 초콜릿 300개를 훔치고 나오다가 잡혔습니다. 학교 담임선생님이 불려 오셨고, 초범이고 나이가 어려 훈방조치가 내려졌습니다. 경찰서에서 부모님을 오시라 했는데, 어머니는 글자를 몰라 못 오시고, 결국 형님이 대표로 오게 되었습니다.
□ 깡패 형님의 말 한 마디가 저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 담임선생님이 저를 형님에게 인계하면서 가정교육을 잘 시켜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형님이 나를 우물가로 데리고 가서, 옷을 다 벗기고, 물을 붓고, 온갖 욕을 하면서 전기줄로 3시간을 때렸습니다. “어떻게 너까지 이렇게 살 수 있냐?” 하면서 깡패 형님도 나까지 그렇게 살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형님이 뜬금없이 던진 말 한 마디가 저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너, 이 새끼! 내일부터 교회 안 가면 때려죽인다.”고 합니다. 저는 전 세계 최초로 불신자에게 전도 받아 교회 목사가 된 사람입니다. 형님의 두 번째 말이 더 웃겼습니다. “헌금은 걱정 마라. 내가 챙겨줄 것이다.” 형님도 교회 시스템을 연구한 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 형님이 챙겨준 돈을 갖고 울산 침례교회로 갔습니다. 처음엔 따뜻하게 받아주셨습니다. 그러나 내 몸에서 담배냄새가 나고 외모도 그렇고, 시간이 지날수록 ‘너 같은 애는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묘한 분위기가 느껴져서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래도 주일학교 담임선생님이 따뜻하게 해주셔서 다녔습니다. 사실 그것보다도 형님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계속 나갔던 것 같습니다. 하루는 목사님의 설교 말씀 중에 예수를 바르게 진실하게 믿으면 하나님이 개인에게 복을 주실 뿐만 아니라, 가정을 바꾸고 가문을 바꾼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설마 목사님이 거짓말을 하시겠나?’ 생각하면서 목사님이 시키는 대로 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고향 교회 70년 역사상 신앙생활을 가장 열심히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모든 공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저희 담임목사님보다 신앙생활을 더 열심히 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간 신앙생활을 하니, 주변에서 “너는 신학대학을 가라.”고 합니다. 저 역시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영광스러운 삶을 살기로 마음먹고 신학교에 갔습니다.
- 교회 다닌 지 6-7년 동안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는데, 저희 집은 바뀐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 두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첫 번째 질문으로 “전에 예수를 바르고 진실하게 믿으면 하나님이 개인만이 아니라 가정과 가문에 복을 주신다는 설교를 하셨죠?” 물으니 목사님이 했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목사님, 우리 교회에서 하나님 앞에 신앙생활을 가장 열심히 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관성이 너다.” 그러면 “목사님, 왜 저와 우리 집은 복을 못 받습니까?” 제가 목사님을 외통수로 몰았지만, 목사님들은 참 말씀을 잘 하십니다. 그 외통수를 빠져 나가십니다. “관성아, 그것은 하나님의 때가 있다.” 기분은 나쁜데, 왠지 설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까지 더 정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신학대학에 들어가 초라하고 험난한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 제가 침례신학교를 하나님께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참 열심히 다녔습니다. 신학을 다 끝내고 교회를 개척해야 했습니다. 교회개척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예, 저는 돈이 없었습니다. 마음 맞는 전도사님들과 영어학원 교실 한 곳을 빌려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런데 이 개척교회가 ‘하나님의 때’가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늘 그랬듯이 한 사람의 확신은 위험합니다. 그래서 아내에게도 물었습니다. 그런데 아내도 똑같은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뜨거운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1년, 2년, 5년이 가도 우리의 생활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처음 시작도 거지였는데, 5년이 지나고 나니 진짜 알거지가 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니 자괴감, 열등감, 가장으로서의 부끄러움, 혈기와 짜증이 늘었습니다. “하나님, 초지일관 하나님만 붙들고 열심히 했는데, 제 인생에 한 번이라도 도움을 주시면 안 되나요?” “한 번이라도 도움을 주시고, 은혜를 베풀고, 길을 여신 적이 있습니까?” “왜 저는 매일 울고 번민하고, 울면서 인생을 통과해야 합니까?” 하고 간절한 통곡의 기도를 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묵묵부답이었습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부끄럽지만 제가 개척했던 교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 개척교회보다야 삶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부끄럽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의 조그마한 교회 목회자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는 성도도 있고, 예배당도 있었습니다. 솔직하게는 사택을 공짜로 준다는 것이 마음에 들어서 갔습니다. 교회 집사님에게 교회를 소개받고 사택을 소개받았는데 지하였습니다. 계단 16개를 깊숙이 내려가는 지하에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것도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의욕은 넘쳤지만 환경이 열악하다 보니 마음이 점점 쪼그라들기 시작했습니다. 여름에 장마가 오면 1층 창문에서 물이 흘러 넘쳐 지하로 내려와 사택이 침수되는 것입니다. 여름만 되면 집사람과 흘러넘치는 물을 막느라 전전긍긍한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장마를 보통 낮에 주시나요? 밤에 주시나요? 보통 새벽에 장마가 찾아옵니다. 새벽에 일어나 밤새 물을 퍼내야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멈추면 현관의 낮은 턱을 통해 지하계단으로 물이 흘러 들어왔습니다. 초등학생인 아들이 “아빠, 나는 내일 학교 가야 하는데 그만하면 안 될까?” 그러면 제가 “임마, 나는 이제 새벽기도 가야하는데, 계속해!” 우리 둘이 울면서 물을 퍼냈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여름이면 온통 집안에 곰팡이가 피었습니다. 걸레로 곰팡이를 닦는 것이 아침 일과였습니다. 아들과 딸은은 폐렴을 달고 살았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너무 고통스러웠고, 내 삶과 인생이 더욱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 홍수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더한 것은 지하 사택에 화장실이 없다는 것입니다. 화장실을 가려면 계단 16개를 올라가 교회 문을 열고 오른쪽으로 삥 돌아 교회 밖의 공동화장실로 다녀야 했습니다. 어른들과 아들은 할 수 있으나 딸이 너무 힘들어 했습니다. 특히 겨울밤에 가려면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에 가면서 영감이 떠올랐습니다. ‘아, 요강이 있었구나.’ 우리 집의 작은 쓰레기통을 요강으로 사용하기로 하고, 요강 사용법을 이야기 했습니다. 2가지 규칙을 꼭 지켜달라고 했습니다. ‘첫째는 오줌만 누어야 한다. 둘째는 3분의 2까지 차면 스톱한다.’ 왜냐하면 새벽기도 가면서 버리러 가는데 너무 많으면 출렁출렁 손에 오줌이 흘러넘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미 여러 번 경험이 있었습니다. 이런 삶이 못 견디게 힘들었습니다. 더 이상 달려갈 힘이 없었습니다. 목사로서 부끄럽지만, 하나님께서 진짜 살아계신지 그 사실까지 흔들렸습니다.
- 그 때 어머니께서 살아계셨는데 주일 저녁만 되면 전화 와서 교회에 대해 잘 모르시니 “관성아, 이번 주는 손님 많이 왔니?” “내가 너를 낳아 기른 장본인인데, 관성아, 너는 목사 스타일이 아니다. 노가다 스타일이다. 엄마 죽기 전에 제발 울산 내려와서 평범하게 살면서 돈 벌어 애들 교육시키는 거 한 번 보여주면 안 되겠나?” 하며 우시면서 사정하십니다. 그래도 꿋꿋하게 버티는 사람은 아내뿐이었습니다. “하나님, 저 이제 목회, 여기서 내려놓겠습니다. 고향 내려가 평범하게 돈 벌며 살겠습니다.” “제가 고향 내려가면 교회를 다닐지 안 다닐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내 평생에 한 번도 은혜를 베푸시거나, 따뜻하게 저의 삶을 책임져 주시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이렇게 마음먹고 교회에 사표를 제출하기 일보직전이었습니다.
- 그 때 아들 지호가 폐교 직전의 작은 초등학교에 다녔는데, 고양시 글쓰기 대회에 나가서 일등을 했다고 교장선생님께 연락이 왔습니다. 울산 고향으로 내려가려고 하는데, 아들이 집에 와서 경기도 대표로 글쓰기 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현실을 가르쳐주기로 마음먹고, 아들을 세워놓고 기를 죽였습니다. “김지호, 잘 들어! 고양시에서 너에게 상을 준 것은 너희 학교가 어려워서 할당한 거야, 근데 경기도는 달라. 논술학원 다닌 교수님 아들도 있고, 선생님 아들도 있고, 큰 교회 목사님 아들도 오는데, 너가 되겠니?” “아빠, 이 대회가 그렇게 큰 거야?” “그래, 경기도 대회에서는 상 탈 꿈도 꾸지 마라. 아빠가 만원 줄 테니까, 떡볶이 사먹고 학교 안가고 출전한다는 자부심으로 갔다 와라.”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아빠가 하는 말을 따라 해라. 나는 안 된다! 바로 그거야, 절대 비관정신! 그래야 상을 못 타도 상처받지 않는다, 알겠지?” “자, 여기 만원 줄 테니, 재미있게 놀다와.” 하고 보냈습니다. 결과가 그날 바로 나온다고 합니다. 지호가 그날 저녁에 왔는데 “아빠~ 나, 대상 먹었어!”, “야, 아빠가 눈치가 몇 단인데, 너 그 말에 아빠가 속겠니?” 하고 말하니 지호가 상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너무 깜짝 놀라서 어떻게 일등상을 탔냐고 물으니, 아빠가 가르쳐준 대로 시험장에 “나는 안 된다! 나는 안 된다!” 그런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심사위원 선생님이 초등학교 글쓰기는 문법, 논리를 보지 않고, 스토리가 얼마나 감동적인지 위주로 심사한다는 것입니다. 그 때 지호에게 영감이 떠올랐다는 것입니다. ‘홍수와 요강‘이라는 글 제목이 떠올라 그 내용을 썼다는 것입니다. 물 퍼낸 이야기, 한 번은 요강 버리기 싫어 지호에게 요강을 맡겼는데 요강 들고 올라가다가 계단에서 엎어진 이야기였습니다. 스토리는 재미있는데, ‘홍수와 요강’이라는 단어가 제 심령에 팍 꽂혔습니다. ’홍수와 요강‘은 제 인생의 결론이었습니다. ‘아무리 몸부림치며 살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찾아도 안 되는 인생’ 그것을 상징하는 단어가 ‘홍수와 요강’이었습니다. 눈물과 한숨으로 통과한 인생, 내가 생각해도 마음에 들지 않는 초라한 인생, 막막한 이 삶의 내용도 능하신 하나님 손 위에 올려지면 하나님을 드러내는 영광이 되는군요. 그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다시 결심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시면, 한 평생 요강을 버리면서라도 이 길을 가겠습니다. 그러나 큰 교회에서 불러주면 바로 가겠습니다.”
□ 초라하고 별 볼일 없는 삶, 그 삶도 하나님의 영광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 사랑하는 다니엘기도회 믿음의 가족여러분, 아무리 열심히 살고 성실하게 땀을 흘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진지하게 하나님을 찾고 기도했는데도 불구하고, 눈물과 한숨으로 자기 인생을 통과해야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저는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되어 너무 힘들었습니다. 제가 인생의 바닥을 통과할 때에, 항상 열 받았던 것이 있습니다. 연예인 시상식에서 상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들인데, 저 사람은 성실하게 살아서 화려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나는 무슨 삶의 내용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지, 성공도 없는 내 인생이 괴로웠습니다. 그런데 ‘홍수와 요강’이라는 이 사건을 통과하면서 깨달은 것은, 가장 초라한 인생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성공하고 형통한 무엇을 이루어내야만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사는 모든 순간이 하나님 영광의 재료’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다니엘기도회 참여 성도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기도해도 달라지지 않습니까? 정말 고통스럽습니까? 매일 매일 기도해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까? 괜찮습니다. 그것에 걸맞는 상을 하나님이 준비하고 계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죽음을 재료로 삼아 부활을 만들어 내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몸부림치며 성실하게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인생의 남은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그 시간 앞에서 탄식하며, “하나님, 이 인생 이제 끝입니까? 반전은 없습니까?” 외쳐 보셨나요? 여러분, 반전은 없습니다. 초라한 그 인생을 살다가 인생을 끝내십시오. 머리 뜯고, 한숨으로 통과하는 그 인생에도 그리스도 예수를 버리지 아니하고 나아가면, 하나님이 여러분의 그 인생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 <하나님을 기뻐하라>는 존 파이퍼 목사님 책의 기가 막힌 표현으로 제 간증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그 분을 가장 만족해 할 때, 하나님 그분이 우리 안에서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신다.’ 여러분, 삶의 성취와 성공과 찬란함의 업적으로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신 그 삶 중에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고난과 눈물과 한숨으로 점철된 삶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끝까지 그 삶을 경주한 자의 생애를 붙잡아 하나님께서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십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그 초라하고 별 볼일 없는 삶, 그 삶으로 끝까지 신실하게 경주해 주시기를 우리 구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초라하고 별 볼일 없는 삶을 통하여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실 줄 믿습니다.
□ 결어 및 기도
- 오늘 목사님을 통해 많은 목회자들이 도전받고, 새롭게 목회를 정리하며 출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다니엘기도회 기간 동안에 목사님을 세워주셨는지 목사님 말씀을 들으면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값싼 복음에 속으면 안 됩니다. 우리 삶이 이해되지 않고 눈물로 점철되고, 어쩌면 세상이 나를 버린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십자가를 붙들고 선한 싸움을 싸우며, ‘주님만이 나의 이유가 되십니다.’ 외치며 달려갈 길을 달려간다면 여러분, 그 삶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보다는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내가 주님 없이는 살 수 없고, 주님만이 나의 삶의 이유가 된다고 고백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고, 그 자체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목회를 하면서 목사님처럼 ‘왜 내 인생의 목회는 열리지 않을까?’ ‘왜 내 목회는 열매가 없을까?’ 해서 목회를 포기할까 생각하시는 목회자들이 참 많은데요, 오늘 이 밤에 귀한 종을 통해서 그분들에게 귀한 음성을 들려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비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은 비교하지 않는 것입니다. 갈렙이 언제 여호수아와 비교했습니까?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 사는 사람은 내 인생을 다른 사람의 인생과 비교하지 않습니다. 야망에 따라 사는 사람이 비교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야망에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라 비전에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누구처럼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제 인생길이 어려워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을 살지라도 내가 주님 한분만으로 족합니다.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게 하시고, 어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주님만이 나의 삶의 이유가 되시고, 주님만이 나의 유일한 소망이시라고, ‘주님 없이는 내가 살 수 없다.’며 고백하는 자로 살기 원합니다. 여러분 화려한 것만이 영광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우리 삶 자체가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주여! 한번 부른 다음에 합심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기도하겠습니다.
-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세우신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믿음의 본질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귀한 깨달음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을지라도, 아니 내가 원하는 삶이 되지 않을지라도, 내 인생 가운데 여전히 한숨 짓고, 눈물로 점철될 일이 연속될지라도, 좌절하지 말게 하시고, 그 상황 속에서도 ‘주님만이 내 삶의 이유이십니다. 주님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유일한 소망이십니다.’ 하며 십자가를 붙들고 묵묵히 이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렇게 살아가는 삶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것을 잊지 않게 도와주소서. 주님, 개척교회를 하면서, 너무나 큰 어려움들을 겪으면서 ‘나는 왜 이렇게 목회의 열매를 맺지 못할까?’ 좌절하고 절망하며 목회사역을 내려놓으려고 하신 목회자들의 마음을 돌려 새롭게 도전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새 힘을 얻게 하시고, 다시 한 번 십자가를 붙들고 일어서게 도와주시옵소서. 다른 사람과 내 자신을 비교하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우리 교회와 다른 교회를 비교하지 않게 도와주옵소서.
- 우리는 주님 때문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마땅한 자인데, 레위지파처럼 저주에서 복된 자리로 옮겨진 사람입니다. 주님이 내 안에 계신다는 사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뻐할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 시간은 하나님의 권세를 사용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우리는 그 권세로 명령하고 선포할 것입니다. 이 시간은 간구하고 부르짖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권세로 명령하고 선포하십시오. 나는 어떤 상황에도 기뻐하며 살리라. 넘어진 자가 있습니까? 명령하고 선포하십시오. 나는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서리라. 성경에는 마귀를 대적하라고 합니다. 여러분 마귀를 대적하십시오. 분명히 마귀는 여러분의 가정을 무너뜨리고, 여러분 자신을 넘어뜨리는 간사한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명하십시오. 내 몸된 교회를 향한, 자녀를 향한 마귀의 모든 간사한 계획들이 수포로 돌아갈지어다. 명하십시오. 일곱 길로 떠나갈 것입니다. 편두통이 있습니까? 명하십시오. 편두통도 떠나갈 것입니다. 여러분, 이 시간에는 성령님의 인도함에 따라 당당하게 명하십시오. 여러분, 자신을 위하여 명하십시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나는 기뻐하리라. 나는 일어서리라. 나는 그 상처에 매임을 당하지 않으리라. 오늘 찬양의 가사처럼 믿음의 고백이 원수를 묶는다고 했습니다. 내가 명하는 그들은 묶임을 당하고 하나님의 영은 자유함을 얻을 것입니다.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고 주의 영은 자유케 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가지셨습니까? 그러면 당당하게 선포하고 명령하시기 바랍니다.
- 하나님 아버지, 자녀 삼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녀된 권세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이 내 안에, 그리고 우리 안에 있음을 감사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나를 향한, 그리고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거룩한 비전을 향한, 몸된 교회를 향한 마귀의 계획은 수포로 떠나갈지어다.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을지어다. 편두통도 떠나갈지어다. 잃어버린 시력과 청력도 회복될지어다. 태의 문이 예수의 이름으로 열릴지어다. 우리 앞에 있는 큰 산이 평지가 될지어다. 사탄의 참소 앞에 무릎 꿇고 내 인생은 끝났다고 실의에 빠진 사람이 있습니까?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설지어다. 슬픔 가운데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제 일어나 기뻐 뛰며 춤추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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