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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성화사 주지스님 진공스님 취재기)
혹독하던 추위가 풀리고 겨울날씨 답지않게 햇살이 따스한 오후 대구 성당동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 성화사 주지스님이신 진공스님을 찿았다.
대구시민의 휴식처인 두류공원 자락에 위치한 아담한 규모의 성화사의 주지스님 접견실에서
향기로운 녹차를 대접받았다
자애로운 얼굴의 진공스님은 출가하신지 30여년이 되셨고 출가후 지금까지 참선에 몰두하시어
우리나라에 참선을 보급, 전파 하시는 것을 필생의 목적으로 삼고 계신 분이다.
다음은 진공스님과의 일문일답이다..
취재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의 한국 불교계의 현실을 어떻게 진단하고 계신지?
"글쎄요..한마디로 정의 하기는 조금 어렵고 개인의 생각이 한국불교계의 현실이 이것이다 라고 단정하기는 좀 어렵습니다마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마는 현재 우리 불교계의 현실은 격변하는 우리나라의 현실과는 많이 뒤 떨어진,그러니까 한참 예전의 구태의연한 상태에 머물러 있어 체계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오지 않으면 앞으로의 포교활동이나 불교의 존립자체가 크게 위축될 소지가 많다는 생각입니다.
현실에 맞지 않는 포교자세와 비현실적인 사찰 운영자세, 그리고 사회적인 봉사활동의 자세가 많이 뒤떨어진 상태에서 오늘에 이러르지 않았나 생각되는데 앞으로는 우리 불교계도 환골탈태의 어려운 변화를 가져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무엇보다 큰 원인은 불교라는 종교의 특성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는 성경자체에 하느님의 말씀을 널리 전하라는 명령이 있어 그 사명에 따라 열심히 전도를 하고 또 그것이 교인의 덕목이 되어 있는데 반해 불교의 수행방법은 명상과 염불. 그리고 참선 등을 통한 다분히 개인적인 수행과정을 거치게 되어있고 또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전도나 포교활동의 체계가 미약한 실정이라 아무래도 타 종교에 비해 뒤떨어지는 감이 있다고 봅니다. 제가 구태의연한 자세라고 말하는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앞으로 불교가 융성하려면 포교나 전도활동이 다른 종교처럼 맨투맨전략으로 적극적인 행동자세가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스님께서는 출가후 지금까지 참선에 몰두하여 오신걸로 아는데 다른 수행방법보다 유독 참선에 중점을 두신 이유라도 있으신지...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마는 참선이라는 것은 명상을 통해 진아(眞我)그러니까 참된 나의 본질을 찾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어서 모든 삼라만상의 이치와 내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다는 존재론과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 와서 해야할 목적까지를 알아내는 치열한 수행방법이라 생각하고 하나의 화두를 세워 일념으로 그 화두를 참구하는 것으로 나 뿐이 아니라 모든 수행자들이 다 행하는 수행방법입니다.
원래 중국의 달마조사님께서 시작한 수행법으로 염불. 보살 행.간경 등 여러 수행법이 있지만 좀 더 힘들고 어려운 것이지만 직관과 지혜를 구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기도 하지요"
명상이나 인도의 요가 같은 건가요
참선은 명상이나 요가와는 조금 맥락을 달리 합니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명상은 호흡법을 통해서, 요가는 자세를 통해 완성을 추구하는데 비해 참선은 호흡이나 자세에 구애받지 않고 건강위주의 목적이 아니라 화두의정에 몰입하여 일반적으로 앉아서 하는 좌선 법을 통하여 일념(一念)으로 참선에 몰두하여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일심(一心)의 경지. 다시 말하면 동정일여(動靜一如)....일이 있을 때에나 일이 없을 때나 한결같은 마음을 가지게 되는 단계와
오매일여(寤寐一如)...‘깨어 있을 때(寤)나 잠잘 때(寐)나 하나’ 즉 ‘불이(不二)’라는 단계를 거쳐
돈오돈수(頓悟頓修) : 한번 깨달아 더 닦을 것이 없는 완성단계를 이루는 작업을 말합니다.
일반 신도들이 행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것이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다.참선이라고 하니 매우 어렵고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지례 겁먹을 필요는 조금도 없습니다.
텔레비젼에 보면 생활의 달인이란 프로가 있지요 거기에 보면 어떤 작업에 오래 몰두하고 연마하여 보통 사람들이 감히 흉내조차 내기 어려울 정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나오는데..조금 우스운 말로 하자면 그분들은 정신적인 참선이 아니라 작업능률의 참선을 해서 그런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알기 쉽게 말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참선을 통하여 나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일종의 정신통일이 되고 한 가지 화두를 깊이 파고들어 일념으로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나 자신의 존재에 대해 어떤 깨달음을 가질수 있게 되는데 나 자신이라는 존재는 바로 우주의 존재와 같다고 보면 됩니다
왜냐하면 나 자신이 없으면 우주의 존재도 없는 것이니까요 그게 바로 깨달음이요 참선의 진정한 목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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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께서는 찬불가 가사도 직접 쓰신다고 들었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그렇습니다 향토작곡가 이신 이달철 작곡가와 같이 새로운 찬불가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글재주도 없는 사람이 이 작업에 뛰어든 이유는 현재 불리우고 있는 찬불가가 너무 엄숙하고 템포가 느려 일반 신도분들이 따라 부르기에 적합하지 않고 너무 권위적 이라 서요.
예를 들어 기독교의 찬송가는 외국 곡을 번안해서 한 것도 많고 그 곡조가 명랑한것도 많아 신도들이 즐겨 부르는데 비해 찬불가는 템포가 느리고 내용이 엄숙하여 신도들이 따라 부르거나 평소 생활하면서 혼자서 부르기에 부담스럽다는 점이 안타까워 현대에 맞는 찬불가를 좀 만들어 보자는 취지에서 몇개의 찬불가를 만들어 보급하였고 앞으로도 좀더 많은 찬불가를 만들어 보급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점에서 앞으로 현대시문학의 시인 분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청하려 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하시고자 하는 포부가 있으시다면...
우선 앞에 말씀드린 찬불가의 대중성을 이루어 중생들의 삶 깊숙히 불교의 사상이 파고들게 하는 것과 그러기 위해서 부르기 쉽고 친숙한,그러면서도 격조가 있는 찬불가 만들기에 전념할 것이고 인터넷매체를 통하여 불교를 널리 알려 신도들의 연령층을 넓혀 어른들의 종교, 노인들의 종교라는 지금까지의 인식을 바꾸어 젊은 층의 영입에 힘을 쏟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계획은 불교 유치원을 운영하여 어린이들에게도 참선과 부처님의 존재를 알리도록 하여 어릴 때부터 불교 화 된 교육을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선시(禪詩)쪽에도 조예가 깊으시다고 들었는데 현대시문학을 위해 선시소개도 좀 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그리고 오늘도 선시 이야기 하나를 소개 해 주시면 합니다.
조예라고 할 것 까지야 없습니다만 아무래도 참선에 전념하다보니 선시 쪽에도 많은 관심이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좋아하는 선시들을 발췌하여 소개하는 자리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오늘은 어려운 사회 환경으로 우울함에 빠져 마음고생을 하고 있을 중생들에게 마음의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맥락에서 당나라 정관연대에 살았다고 전해지는 인물
로서 문수보살, 보현보살의 화신이라고 일컬어지며 國淸三隱(국청삼은)이란 칭송을 듣는 한산과 습득의 선시를 소개 해 드리겠습니다.
귀한시간 내 주셔서 감사 합니다.그럼 선시소개 부탁드립니다.
<진공스님의 선시소개>
寒山(한산)과 拾得(습득) 寒山(한산)과 拾得(습득)은 당나라 정관연대에 살았다고 전해지는 인물이다. 두 사람은 豊干(풍간) 선사라고 하는 도인과 함께 國淸寺(국청사)에 살고 있었는데, 세상 사람들은 이들 세 사람을 국청사에 숨어사는 "세 사람의 성자"라는 뜻으로 國淸三隱(국청삼은)이라 하였다.
이들 세 사람을 모두 불보살의 화신이라 하며, 풍간은 아미타불, 한산은 문수보살, 습득은 보현보살의 화신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시대의 사람들은 이들의 기이한 언행에만 관심을 두었지 이들이 불보살의 화신인줄은 아
무도 몰랐다고 한다. 한산은 국천사 뒤에 있는 寒巖(한암)이라는 굴속에 살았으며, 항상 다 해어진 옷을 입고, 커다란 나막신을 덜덜 끌며, 식사 때가 되면 국청사에 와서 대중들이 먹다 남은 밥찍기나 나물들을 얻어먹었다. 가끔씩 절 경내를 거닐기도 하고 하늘을 보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욕을 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절에 스님들이 작대기로 그를 쫓아 냈는데, 그러면 한산은 큰 소리로 웃으며 손뼉을 치며 가버렸다고 한다. 습득은 풍간스님이 길에서 주어 왔다고 습득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국청사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는 일을 하였다. 그러다가 남은 밥이나 나물이 있으면, 소쿠리에 모아 두었다가 한산에게 주곤 하였다. 그 시절 여구윤이라는 사람이 그 고을 자사로 부임해 왔는데,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중병에 걸려 어떤 약을 써도 낳지 않약이무효하여 곧 죽게 되었다.이를 안 풍간이가 자사를 찾아가서, 병세를 듣고, 그릇에 깨끗한 물을 받아놓고 주문을 외우니 자사의 병은 씻은 듯이 낳아버렸다.자사가 깊이 감사하고 설법을 청하니「나보다 문수와 보현이 있으니, 그들에게 청하여 보시오.」하였다.「두분 보살님은 어디 계시는지요.」「국청사 부엌에서 그릇을 씻고 불을 때는 한산과 습득이 바로 그 보살입니다. 」자사는 예물을 갖고 국청사로 한산과 습득을 찾아가니, 한산과 습득은 화롯불을 쬐며, 앉아 웃고 있었다. 자사가 그들 가까이 가서 절을 올리자, 그들은 무턱대고 꾸짖기만하였다.옆에서 그것을 지켜보던 다른 스님들이 깜짝 놀라 「대관께서는 어찌하여 이 미치광이에게 절을 하십
니까?] 하였다.그러나 그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산은, 「풍간이 실없는 소리를 하였군. 풍간이 바로 아미타불인 줄 모르고 우리를 찾아오면 뭘하나.」이 말을 남기고 한산은 뒷산 굴속으로 들어간 다음, 다시 절에 오는 일이 없었다.습득도 뒤따라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여구윤은 성인을 만나고서도, 더 많은 법문을 들을수 없었던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그리하여 숲 속 나뭇잎이나 바위에 써 놓은 세분의 시를 모으니 모두 삼백수나 되었다. 그 시 속에 세분의 고결한 가르침이 잘 담겨 있었다.다음 寒山(한산)이 남긴 시 한 수를 읽어보면,
寒山(한산)이 어떠한 사람인지 더욱 잘 알 수 있다. 사람들이 한산을 보고 말한다. 미친 사람이라고 얼굴은 세상의 눈을 끌지 않고 몸엔 다만 베옷을 걸쳤을 뿐 내 말은 납이 모르고 남의 말은 내가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알린다 왕래하는 자는 한산에 가볼 것이라고‥‥‥ 오늘은 이 절 내일은 저 절, 절간 수챗구멍에 흩어진나물가지, 밥 그룻에 붙은 밥티를 그 대통에 담아 그것으로 연명하면서도 부족함이 없고 항상 즐겁기만 한 그들이 었다. 한산과 습득이 서로 만나면 손뼉 치고 노래하며 하늘을 보고 웃는다.개구리를 만나면 놀려주고, 호랑이를 만나면 겁도 없이 때려준다. 무상도 잊고 열반도 잊었던 사람들! 그들의 웃음 속에 지금도 아름다운 菩提(보리)의 꽃이 핀다. 한산의 시 한 수 더 읊어본다. 지저귀는 새 소리에 정을 못 이겨 혼자 草庵(초암)에 누워듣고 있나니 앵두는 알알이 붉어 빛나고 버들은 줄줄이 드리워 있네 아침햇빛은 푸른 산을 머금고 개는 구름은 맑은 못을 씻는다. 누가 저 티끌 세상 능히 벗어나 이 한산 남쪽으로 올라 올 줄 알련고!
寒山拾得
寒山(한산)
중국 당나라 때 사람. 성명은 알 수 없고, 항상 천태 시풍현(始豊縣)의 서쪽 70리에 있는 한암(寒巖)의 깊은 굴속에 있었으므로 한산이라 한다. 몸은 바싹 마르고, 보기에 미친 사람 비슷한 짓을 하며, 늘 국청사에 와서 습득(拾得)과 함께 대중이 먹고 남은 밥을 얻어서 댓통에 넣어 가지고 둘이 서로 어울려 한산으로 돌아가곤 하였다. 미친 듯한 행동을 하면서도 그의 말은 불도의 이치에 맞으며, 또 시를 잘하였다. 어느 날 태주자사(台州刺史) 여구윤(閭丘胤)이 한암(寒巖)에 찾아가서 옷과 약 등을 주었더니, 한산은 큰 소리로 “도적놈아! 이 도적놈아! 물러가라” 하면서 굴 속으로 들어간 뒤에는 그 소식을 알 수 없었다 한다. 그가 죽은 연월도 당 현종의 선천 때(712~713), 태종의 정관 때(627~605), 현종의 원화 때(806~820) 등 여러 설이 있다. 세상에서 한산ㆍ습득ㆍ풍간(豊干)을 3성(聖)이라 부르며, 또 한산을 문수 보살의 재현(再現)이라 한다. 『한산시』 3권이 있다.
拾得(습득)
중국 당나라 때, 천태산 국청사에 있던 이. 풍간(豊干)이 산에 갔다가 적성도(赤城道) 곁에서 주어 온 작은 아이이므로 이렇게 이름. 한산(寒山)과 친히 사귀었고 풍간이 산에서 나온 뒤에 한산과 함께 떠난 뒤로 소식을 모름.
한산과 습득은 당나라 때에 살았다고 전해지는 전설적인 인물들입니다. 이 두 사람은 풍간 선사라고 하는 도인과 함께 국청사에 살고 있었는데, 세상 사람들은 이들을 국청사에 숨어 사는 세 사람의 성자라는 뜻으로 국청삼은(國凊三隱)이라고 불렀답니다. 이 분들은 모두 불보살님들이셨는데 바로 풍간 선사는 아미타부처님, 한산은 문수보살님, 습득은 보현보살님의 나투심이라고 합니다.
한산은 국청사에서 좀 떨어진 한암이라는 굴속에 살았기에 붙여진 이름이었습니다. 그는 항상 다 떨어진 옷에 커다란 나막신을 신고 다녔으며, 때가 되면 국청사에 들러 대중들이 먹다 남긴 밥이나 나물 따위를 얻어먹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가끔 절에 와서 거닐기도 하고 때로는 소리를 지르거나 하늘을 쳐다보고 욕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절의 스님들은 그런 그를 작대기로 쫓아내곤 하였는데, 그러면 한산은 손뼉을 치고 큰 소리로 웃으며 가버리는 것 이였습니다.
습득은 풍간스님이 길을 가다가 버려진 남자 아기를 주워다 길렀다고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습득은 어느 절에 맡겨졌는데 그 절 주지스님은 습득이 자라자 법당 부처님 앞에 있는 촛대와 향로를 청소하는 일을 맡겼습니다.
하루는 스님이 법당 앞을 지나가는데 법당 안에서 말소리가 나는 것 이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습득의 목소리였습니다.
“부처님, 밥 잡수시오. 안 잡수셔? 그럼, 내가 먹지.”
“부처님, 반찬 잡수시오. 안 잡수셔? 그럼, 내가 먹지.”
스님이 이상히 여겨 법당 문을 열어보았더니 습득이 부처님 턱 밑에 앉아 공양 올린 밥을 숟가락으로 퍼서 부처님 입에 갖다 대고는 자기가 먹으면서 연신, “부처님 밥 잡수시오. 안 잡수셔? 그럼. 내가 먹지.” 그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화가 난 스님은 그를 부엌에서 설거지하는 일을 맡겨버렸습니다. 그는 부엌에서 그릇을 씻거나 불을 때는 일을 하였는데, 설거지를 하고 난 뒤에는 남은 밥이나 음식 찌꺼기를 모아 대나무 통에 넣고서는 한산과 어울려 여기저기 돌아다녔습니다. 그들은 일없이 하늘을 보고 웃기도 하고, 큰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미친 사람 짓을 하면서도, 입에서 나오는 말은 모두 불도의 이치에 맞는 말만 하였습니다.
어느 날 주지스님이 멀리 가셨다가 산아래 목장을 지나 돌아오시는데, 한산과 습득이 소 떼와 더불어 놀고 있었습니다. 한산이 먼저 소 떼를 향하여 말을 했습니다.
“이 도반(道伴)들아, 소 노릇하는 기분이 어떠한가, 시주 밥을 먹고 놀기만 하더니 기어코 이 모양이 되었구나. 오늘은 여러 도반들과 함께 법문을 나눌까 하여 왔으니, 이름을 부르는 대로 이쪽으로 나오게. 첫 번째, 동화사 경진 율사!”
그 소리에 검은 소 한 마리가 ‘음메~’하며 앞으로 나오더니, 앞발을 꿇고 머리를 땅에 대고 나서는 한산이 가리키는 위치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다음은 천관사 현관법사!”
이번에는 누런 소가 ‘음메~’하고 대답하더니 절을 하고는 첫 번째 소를 따라 갔습니다. 이렇게 서른 몇 번을 되풀이하였습니다. 백여 마리의 소 가운데 서른 마리는 스님들의 환생(還生)인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시주밥만 축내며 공부를 게을리 한 과보로 소가 된 것입니다.
몰래 이 광경을 지켜 본 주지 스님은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끼고 마치 쫓기는 사람처럼 절로 올라가며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한산과 습득이 미치광이인줄만 알았더니 성인의 화신임에 틀림없구나.’
한편 그 고을에는 여구윤이란 사람이 지방관리로 임명되어왔는데 그만 병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병은 어떠한 약과 의술로도 효과가 없었습니다. 이를 알게된 풍간 선사가 그의 병을 깨끗이 고쳐 주었고, 이에 여구윤은 크게 사례하며 설법을 청했습니다. 하지만 풍간 선사는
“나 보다는 문수와 보현께 물어 보시오.”
“두 분께서는 어디 계신지요?”
“국청사에서 불 떼고 그릇 씻는 한산과 습득이 바로 그분들입니다.”
그리하여 자사는 예물을 갖추고 국청사로 한산과 습득을 찾아가니, 한산과 습득은 화로를 끼고 앉아 웃으며 떠들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절을 올리자 한산은 자사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풍간이 실없는 소리를 지껄였군. 풍간이 바로 아미타불인줄 모르고 우리를 찾으면 뭘 하나?”
이 말을 남기고 한산과 습득은 절을 나와 한암굴로 들어 가버렸는데, 그들이 굴로 들어가자 입구의 돌문이 저절로 닫기고 그후로 두 사람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합니다.
또한 그들은 시에도 능했는데 시를 지어서는 나뭇잎과 바위 등에 써놓았다고 합니다.
한산과 습득의 천진난만한 생활을 알 수 있는 시(詩)가 하나 있습니다.
寒山拾得二聖(한산습득이성) 寒山 拾得 두 성인께서
降亂時曰(항난시왈) 항란시에 이르길
可可可(가가가) 하하하 허허허 웃으며 살자.
我若歡顔少煩惱(아약환안소번뇌) 걱정않고 웃는 얼굴 번뇌 적도다.
世間煩惱變歡顔(세간번뇌변환안) 이 세상 근심일랑 내 얼굴로 바꾸어라.
爲人煩惱終無濟(위인번뇌종무제) 사람들 근심 걱정 밑도 끝도 없으며
大道還生歡喜間(대도환생환희간) 대도는 도리어 기쁨 속에 꽃피네.
國能歡喜君臣合(국능환희군신합) 나라가 잘 되려면 군신이 화합하고
還喜庭中父子聯(환희정중부자연) 집안이 좋으려면 부자간에 뜻이 맞고
手足多歡刑樹茂(수족다환형수무) 손발이 맞는 곳에 안되는 일 하나 없네.
夫妻能喜琴瑟賢(부처능희금슬현) 부부간에 웃고 사니 금슬이 좋을시고
主賓何在堪無喜(주빈하재감무희) 주객이 서로 맞아 살맛이 나는구나.
上下情歡兮愈嚴(상하정환혜유엄) 상하가 정다우니 기쁨속에 위엄 있네.
呵呵呵(가가가) 하하하 허허허 웃으며 살자.
<寒山詩>
해설) 우리가 이 세상을 나올때는 사바세계에서 근심과 슬픔으로 살려고 온 것이 아니다다. 이왕 온 것이면 잘살아서 사바세계의 무대를 자유자재 누리면서 하하하 허허허
웃으면서 살다가 갈려고 온 것이다.
사람의 근심과 슬픔은 왜 오는가? 욕심과 성취욕과 지배욕이 때문에 올수가 있다.
첫 번째 욕심은 소유욕입니다.
소유욕이란 무언가를 가지고 싶어 하는 욕심입니다. 좋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더 좋은 것을 갖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가지고자 하는 욕심이 끝이 없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두 번째, 성취욕입니다.
뭔가 해 보고 싶고 못하면 직성이 안 풀립니다. 내 대신 다른 사람이 해 주면 편할 텐데 안 그럽니다. 자기 할 일이 없어지면 괴롭습니다. 성취욕이 충족되지 않아서입니다. 내가 해서 뭔가를 이루어 냈을 때 행복하지, 다른 사람이 해서 이뤄 놓은 건 괴롭습니다. 인간은 성취욕이 매우 강하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지배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주 고약한 욕심인데 다른 사람을 부리고 싶어 하는 마음입니다. 이른바 권력이지요, 권력을 좋아하고 한번 권력의 맛을 보면 내놓지를 않습니다. 함께 살고, 같이 즐기고, 같이 놀고, 내가 해 줄 수 있다면 내 능력껏 다른 사람을 돕고 섬길 때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누리고 부리려고 하는 사람 중에 성공한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을 부리려고 억지로 억눌러서 성공한 사람은 역사 이래로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중생들은 부리고자 하는 욕망을 버리지 못합니다.
끝으로 아름다운 말을 소개하겠습니다.
=오드리 헵번이 사랑하는 아들에게 들려준 말(인과에 대한 이야기)
사랑스런 눈을 가지고 싶으면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보거라.
날씬한 몸매를 가지고 싶으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누어라.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가지고 싶으면 하루에 한 번 어린이가 손가락으로 너의 머리를 쓰다듬게 하거라.
아름다운 자세를 가지고 싶으면 결코 너 혼자 걷고 있지 않음을 명심하거라.
사람들은 상처로부터 복구되어야 하며, 낡은 것으로부터 새로워져야 하고,
병으로 부터 회복되어져야 하고, 무지함으로부터 교화되어져야 하며,
고통으로부터 구원받고 또 구원받아야 한단다. 결코 누구도 버려서는 안된단다.
기억하거라... 만약 누군가 도움의 손을 필요로하다면 너의 팔끝에 있는 손을 이용하면 된단다.
네가 더 나이가 들면 손이 두 개라는 걸 알게 될것이다
한 손은 너 자신을 돕는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는 손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