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연극사가들은 연출자라는 존재가 나타나게 된 것은 독일 귀족, 작스 마이닝겐 (Saxe-Meiningen) 공작이 연습, 무대장치 등의 제반 사항을 비롯한 연극 제작의 모든 요소들을 통합된 전체 속에다가 조정해 넣으면서 작품 제작을 지휘, 감독하기 시작했던 1874년부터라고 보고 있다. 작스 마이닝겐과 더불어 시작된 연출자의 역사는 모든 기능을 지닌, 없어서는 안될 제작팀의 일원으로 등장해, 극작가, 연기자, 디자이너와 같은 대열 에 들게 되었다.
연출자라는 자리는 이전에 없던 것이었지만, 연출자의 역할은 어떤 식으로든 늘 존재 해왔다. 예를 들어, 그리스 극작가 에스킬러스(Aeschylus)는 자신의 작품을 직접 연출했고, 그리스 극에서의 코러스는 공연 전에 여러 주 동안 지휘자의 감독 하에 연습을 했다는 점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연극사를 살펴보면 여러 시대에, 극단에서 지도자 역할을 하는 배우나 작가가 비록 연출자라고 불리지는 않았지만 연출자의 역할을 했었다. 가령, 몰리에르는 자신의 극단에서 극작가에 주연 배우의 역할까지 했지만, 연출자로서의 역할도 했다. 우리는 몰리에르의 단막극 「베르사이유의 즉흥」에서 배우의 연기 방식에 대한 개념을 정의하였다는 것도 익히 알고 있다. 따라서 그 작품에 적힌 것과 똑같은 조언이 연습 과정 중에 극단의 배우들에게도 종종 주어졌을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17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영국에서는 개인 극단의 경우 강력한 지도력을 지닌 배우 관리자(actor-manager)의 시대가 오랫동안 계속되었고, 이들은 연출자라는 명칭은 아니었지만 많은 부분에 있어 연출자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들 가운데 토마스 베터튼(Thomas Betterton, 1635-1710), 데이비드 개릭(David Garrick, 1717-1779), 찰스 켐블(Charles Kemble, 1838-1905), 월리엄 찰스 맥크fp디(William Charles Macready, 1793-1873), 헨리 어빙(Henry Irving, 1838-1905) 등이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출가라는 호칭이 일반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말에 들면서부터이다. 별도의 창의적인 인물로서 연출가가 출현하게 된 것은 19세기에 사회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중요한 변화와 더불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당시에는 사회 상황이 급변하고 있었는데, 그 첫 번째 변화는 바로 프로이드, 다윈, 막스 등으로 인해 이뤄진 전통적인 사회적, 종교적, 정치적 사상의 붕괴이다. 두 번째 변화는 커뮤니케이션의 현저한 증가이다. 전신, 전화, 사진기, 활동 사진, 그리고 마침내 텔레비전의 등장으로 인해 서로 거리가 멀거나 알려지지 않았던 다양한 문화가 서로 갑작스레 접하게 되었다. 그러한 두 가지 변화로 인한 영향으로 이전에 각 사회가 유지해왔던 획일적이고 질서 정연한 세계관이 변하게 되었다.
이러한 발달이 이뤄지기 전에는, 연극에 있어 일관된 양식을 유지하기가 비교적 쉬웠다. 같은 사회 내에서 작가, 연기자, 관객 사이에는 공통된 배경이 있었다. 예를 들어, 영국 작가 월리엄 위철리(William Wycherley, 1640-1715)와 월리엄 콩그리브(William Congreve, 1670-1719)가 쓴 희극들은 17세기말 왕정복고 시대에 쓰여진 작품들로, 특정 관객 - 가십과 신랄한 말과 매끄러운 문구를 즐겼던 상류의 엘리트 계층 - 을 대상으로 하였다. 그 사회의 행동 강령은 배우와 관객 모두 비슷하게 잘 이해하고 있었으며, 또한 작품을 어떤 양식으로 제작할 것인가 하는 것은 양식에 대한 공통된 접근 방식이 사회의 조직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거의 문제시되지 않았다. 남성이 어떤 식으로 코담배를 집고, 하녀가 어떤 식으로 귀족과 바람을 피우고, 귀부인이 어떤 식으로 부채를 펼치는가 하는 것은 일상 생활 속에 분명히 드러나 있었으므로, 배우는 그저 무대에서 할 연기를 다듬고 완성하기만 하면 됐다. 연출자의 임무는 작품에 어떤 양식을 부여하기보다는 배우들이 과장 연기를 하지 않도록 하고, 배우들이 대사를 적절하게 전달하고 배역진이 결속력 있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감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양식, 통일성, 종합적인 사회관 등이 너무도 다양하기 때문에 연출자의 임무가 보다 중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