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귀지스쿨에 처음 간날...레벨 테스트를 받았다..결과는..거의 모든 한인들이 그렇겠지만..레벨 4.(순전히 독해와 문법으로 올라간 레벨이였고 그 학교는 레벨 5까지 있었으니..상당히 높은 레벨이였다) 일주일동안 수업을 들으며 내가 얼마나 미국식 발음에 익숙한지 새삼느꼈다. 일주일동안 강사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독일말처럼 거친 발음하며...악센트는 왜 그리 또 강한지. 분위기 파악두 잘 되지 않았다.강사가 하는말중 유난히 놋이란 말이 자주 들렸다. 내가 아는영어로는 무슨말인지 알지 못했다 일주일이 지난후 그게 not 의 영국식 발음이란걸 깨달았으니..흠...
우리 클래스에는 한인 3명 (나 포함) 일본인 3명, 그외 유럽인들로 구성되었다. 장기로 끊는 학생은 거의 동양애들이였고 유럽애들은 방학맞이 여행차 연수로와서 공부하기에는 그리 적합하지 않은 몬가 좀 어수선한 분위기였던것 같다.
수업중에 말하는 애들은 거의 유럽애들이였고 영어를 좀 잘하는 일본애, 미국연수하고 온 한국애, 그외 나를 포함한 동양애들은 수업시간엔 왜 그리 조용한지...하지만...문제풀이는 기가막히게 잘했다.
대학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난 집을 옮겨야 겠다는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영어가 짧은 나는 세놓은 집 전화번호를 보고 전화할 용기나 나질않았다. 다시 홈스테이에 들어갔다. 하지만 첫번째 홈스테이 부부와 달리 이번집 주인들은 그리 친절하지 않았다. 음식도 얼마나 성의없던지.(매일 인스턴트 음식 데워서 주고....ㅡㅡ;;)그 집에는 지내는 시간보다 근처 집을 렌트해서 쓰는 한국 언니네서 생활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난 9월에 본머스로 떠나기로 했기에 떠나기 전 한국 언니네 잠시 얻혀살게 되었다.(3번째 이사였다.) 그 집에 살면서 한국음식도 실컷 맛보고, 밤이면 하이네켄이나 포스터스 박스째 사다가 맥주 파티를벌렸다. (기나긴 밤 딱히 할게 없어서...^^; ) 영어보다 술 실력이 더 늘어나구 있었는지도.....
내가 영국에 도착한 것은 1997년 7월...9월까지 런던에서 연수하고 9월에 본머스에서 개강하는 비지니스 스쿨에 들어가기로 되어있었다. 하지만....내가 가자마자 imf는 터졌고, 환율이 엄청 오르기 시작했다. 1 파운드에 1500원경에 갔지만...2000원을 윗돌더니..드뎌..3000원에 임박하기두 하고...환율따지면서 생활하다가는 아무것도 사지도 먹지도 못할 것 같았다. (케이에프씨 햄버거세트값이 8000원 도 넘었으니...)
처음에는 이것저것 따지면서...아꼈지만...먹기라두 잘 먹어야지 서럽지 않을거라 생각해서.정말 잘 먹었던것 같다. 취미가 세인즈버리나 막스엔 스펜서 쇼핑가는거였으니....우리나라에 대형 슈퍼마켓(이마트같은)에 거의 없을 무렵 그 곳에서의 대형 매장은 물건 사는 기쁨을 알게해준것 같다. 1시간동안 쇼핑했으니..^^;
비지니스 코스는 일반 코스보다 학비가 상당히 비싸다.난전공과 연계된 영어를 배우고 싶었기에.가격부담이 되도 비지니스 코스를 신청했었다. 하지만 imf때라 학비걱정이 되었고 1년짜리 코스는 2term으로 바꾸고 런던에서 12월까지 지내기로 하였다. (비지니스 코스는 1월개강으로 바꾸었다. )
내가 생활하던 3zone는 앞서 말했듯이 상당히 평화로운 동네다. 근처에는 알렉산드라 공원이 있었는데 거기 꼭대기에는 궁전(?)(갑자기 이름이 생각안남...)을 개조한 pub이 있었다. 런던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야외에서 기네스의 그 맛이란~~ 저녁에 자주 그 펍에 가서 런던의 수많은 불빛을 보며 맥주를 마시던 생각이 난다.
학교를 바꾸기로 하였다. 우선 칼란에서 일주일의 트라이얼 레슨을 들어보기로 했다. 처음 수업들은날 이미 프리토킹의 수업방식에 익숙해진 나는 적응이 안되 한번 듣고 카란 수업법은 포기하기로 하였다. 런던 중심부에는 가격이 싼 학교가 많다.물론 시설은 학교라기보다 학원수준이였지만..(3존에서 다니던 학교는 주당 95파운드였다) 알아보더중 피카디리 써커스 주변 학교를 골라 2개월을 다녔다. 1존까지 다니는 교통비도 만만치 않았고, 가는 시간도 상당했다. 느릿한 더블데커타고 흔들거리면서 1시간 가야지 도착했으니..(한국버스같았으면...30분도 안되었을 거리인데....)런던에서는 한인을 빼고는 특별히 친하게 지낸 외국학생이 없었다. 언어문제도그랬고 학교도 짧게 옮겨서 다녔으니 친해질 시간도 없었다.
얻혀지낸지 1달쯤되어서 본머스 가는걸 연기한 상태에서 집을 옮겨야했다. 런던에 체류하는 기간이 예정보다 길어져서 더 이상 얻혀살수가 없었다. 2달 있을 집은 쉽게 구해지지가 않았다. 거의 6개월 이상의 장기체류자를 원했기에....집 얻는것두 꽤 힘든 일이다. 특히 나는 항상 정착하지 못하고 그렇게 떠돌이 생활을 하였기에 마음의 안정이 되지 않았다. 포기할 때쯤 그리스 부부집의 방에서 자취를 하게 되었다. 부엌을 같은 자취생인 그리스 아저씨(대학교수 라고 했다)와 쉐어하였는데 ..딱 1명 들어갈만한 조그마한 부엌이 얼마나 지저분한지...인심쓰는셈치고 닦고 치웠지만...대책이 안서는 그런 부엌이였다. 영국에는 참 이상한 방두 많다. 내 방의 전기는 벽에 설치되어있는 통에 동전을 넣어야 쓸수 있었다.(바늘이 움직여서 액수만큼 전기양이 올라간다)1파운드 넣으면 꽤 쓰지만. 히터쓰면 몇시간도 못갔다. 그 집식구 또한 추위에 강했는지 중앙난방은 거의 하지 않았고 외풍은 또 얼마나 쎈지...참다못해 히터기를 구입했지만 1파운드에 몇시간도 작동을 안해서 거의 추위에 떨면서 지냈다.
그렇게 영국에서의 겨울은 나에게 뼈속까지 시린 추위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