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우리의 이야기는 지역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것이죠. 왜냐하면 그들은 나름데로 천국와 지옥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국시민이 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당신은 어떻게 그 시민권을 따고 그곳으로 이민을 가서 살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는 많은 사람들이 다른 답을 가지고 살아 간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살아본 사람으로 부터 어떻게 천국에 이민을 오게 되어 어떻게 지금 살고 있는지를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캐나다로 이민을 간다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가장 확실한 것이 실제 캐나다에 살고 있는 내게 전화해서 물어 보면 가장 잘 알 수 있겠지요.
그렇게 볼 때 천국 시민권으로 살고 있는 거지 나사로와 천국이민에 실패하고 아프리카 오지로 이민간 부자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사실 알고보면 부자는 사기를 당했거나 지독한 무지의 삶을 살았을 경우가 높겠죠.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 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눅16:26)
부자와 가나한 자 사이에 있는 것은 구렁(Chasm)이라고 할 수 있다. Chasm은 끝도 없이 깊은 골의 벌어진 간격을 말하고 있는데 이 간격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불가능한 간격인 것이다. 이는 우리가 어떻게 한 두번의 회개를 해서 좁혀 질 수 있는 부분이 아니란 것을 말씀을 통하여 알게 된다.
그럼 여기서 어떻게 부자와 거지 나사로가 세상에 살면서 이런 엄청난 간격이 벌어져 버렸는 것일까? 생각하게 된다. 19,25절을 보면 부자는 살동안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운 연락을 하며 좋은 것으로 받아 살았고 나사로 거지는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며 개들이 그의 상처를 핥기도하고 이렇게 살며 고난을 받았다. 그래서 죽어 장사되어진 후에(22) 부자는 음부에서 고통과 고민을 받고 나사로는 천사의 품에서 위로는 받게 되었다.
여기 성경본문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삶을 살았는가는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대표적인 삶의 형태는 부자는 좋은 것으로 즐기며 살고 거지는 고민을 받으며 살게 되었다. 결국 이 땅에서 살면서 세상의 것으로 육을 살찌우는 삶을 살게 되면 어떤 삶의 결과를 초래하는 것인가를 알게 된다. 무엇이 어떤 것들이 육의 삶인가는 말을 구체적으로 하지 않아도 우리가 영적인 것에 소원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예측을 할 수 있다. 잘 모르면 세상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을 보면 그들이 추구하는 욕구나 욕심을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세상에서 부를 추구하고 권력을 잡고 세상을 즐기는 삶일 것이다. 내가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 상류의 계급들이 하는 것을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나의 마음이 내게 가진 것에 그들과 똑같은 형태를 추구하고 있다면 아마 당신도 부자의 삶을 추구하며 살고 있는 세상의 부자가 되고 만다.
만면 거지 나사로의 삶을 하면 돌아 보게된다. 그의 삶이 어쩔 수 없이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것이 없어 가난한 삶 교육을 받지 못하여 경쟁력이 없는 삶을 살아 오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결과적으로 그는 삶은 온통 고통이다. 이 땅에 사는 것이 고통이라서 이 땅에는 소망도 미련도 없었다. 결국 그는 하나님 나라를 꿈을 꾸게 되었지도 알 수 없다. 하나에 소망이 없으니 다른 것이 눈을 쉽게 돌릴 수 있었는지도 알 수 없지요. 결국 그는 고민을 하고 생각을 하며 세상의 미련을 떨져버리고 소망을 오직 하나님 나라에만 그의 말씀에 위로를 받으며 그의 위로를 사모하며 살게 되었지요. 생물학적으로도 보면 한 쪽이 퇴화를 하게 되면 다른 쪽이 살아남기 위하여 진화를 하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 인간의 몸도 어떤 사람이 시력이 떨어지만 청력이 강화 된다고 합니다. 이것이 자연의 원리인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당신에게도 이 땅에 고통을 받으며 소망이 보이지 않으면 저 땅, 천국으로 소망을 두고 살게 되겠지요. 우리는 어쩌면 아직 이 땅에 소망이 있어서 날마다 눈을 뜨면 이 경쟁 사회 속으로 뛰어들어가서 승리를 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갈 때마다 기도를 하며 하나님 나에게 승리를 주십시오. 그리고 우리 아들 딸도 승리하고 부자가 되게 해 달라고 손이 발바닥이 되도록 기도 하고 목이 쉬도록 그렇게 합니다. 이런 삶이 바로 부자의 삶인 것인 입니다. 그곳에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서 살고 있어요. 이런 생각으로 50년 60년을 살게 되면 거지의 고난의 삶에서 오는 생각 차는 어마어마하게 벌어져서 도저히 알 수 없는 괴물이 되어 버렸을 것입니다. 한국의 이념의 문제와 같을지도 모르지요. 우파 죄파는 세상을 전쟁으로 몰아 가버립니다. 이제 타협이 없을 지경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 그리스도를 죽음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6:4)
결국 로마서 말씀과 같이 그와 함께 나의 세상에 대한 정과 욕심이 십자가 함께 못박혀 죽어 장사가 되어져야 이 천국과 지옥의 갭을 뛰어 넘어 천국백성의 새 생명을 얻게 될 줄을 믿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 거지 나사로의 삶인 것을 알아 차리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