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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여행의 시작은 언제나 즐겁다.
같이 가는 사람과 즐거운 추억을 쌓을 수도 있고, 또다른 사람과의 만남도 소소한 재미를 더해준다.
가고자 했던 곳에서의 멋진 풍경들도 각각의 느낌이 살아있고,
생각지도 못했던 아름다운 이야기거리도 만들 수 있으니까 말이다.
개학 시즌으로 바빠지기 직전이던 2월의 어느 날, 어딘가로 다시 떠났다.
시작 전부터 잡음이 많았던 여행이었기에 조금 지치기도 했지만 잘 해결되서 무사히 떠날 수 있었던 여행이었다.
한참 전부터 가보고 싶었지만 군대 배차(...)로밖에 가보지 못했던 곳,
그래서 원래의 모습이 더 궁금했던 그 곳으로 떠난다.
그 첫번째 여행지는 보은-상주 경계의 조그만 언덕 마을, 화령이었다.
군대에 있을 때 '화령장 전투'로 익히 들었던 곳이지만 직접 가보지는 못했던 동네여서 더 설렌다.
막상 와보니 예상보다 너무 고요하고 한적했다.
거의 하늘을 날 듯이 산 위로 뻥뻥 이어지는 직선길의 향연인데다 차도 얼마 없어 드라이브하기도 딱 좋다.
화령IC에서 나오자마자 나오는 고갯길의 동네지만 추풍령과 비슷하게 별로 고개라는 생각은 들지 않다.
주변을 둘러싼 높은 산만 얼핏 보일 뿐,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시골풍경이다.
더욱이 화령정류장 앞 사거리에서 엄청난 양의 유리파편과 널부러진 차체가 가장 먼저 우릴 맞이하고 있었다.
이 여정, 결코 무난하지만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한다.
하하호호 웃고 있는 두 소녀의 해맑은 모습을 보니 금세 긴장이 풀리고 기분이 더 좋아진다.
검붉은 벽돌과 하얀 기둥이 우뚝 솟은 2층 기와건물을 이리저리 뛰놀고 있었는데,
바로 여기가 '화령공용버스정류장'이다.
보은과 상주를 잇는 중간 길목에 마을이 있어서 잠시 쉬어가기엔 여기만큼 좋은 공간이 없다.
다만 동네 모습은 정말 어딜가도 흔히 볼 수 있는 시골이어서,
버스정류장 앞에서조차 LPG 가스통, 다 쓴 연탄, 청소도구와 자전거가 홀로 서 있는 정겹고도 소소한 일상이 눈에 들어온다.
경북 쪽에 유달리 기왓장을 얹은 정류장이 많이 보이는데, 왠지 이런 형태가 좋다.
80년대 한창 지어지던 다세대주택처럼 생겨서일까 뭔지 모를 친근감이 느껴진다.
내부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좁지 않으면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 평범하면서도 뭔가 다른 느낌이다.
얼마 전에 리모델링을 한 번 거친 듯 매표소도 유리창으로 깔끔하게 개방되어 전혀 답답해 보이지 않고,
역시 그 안에선 간단한 음료와 담배도 팔고 있다.
상점으로 쓰기는 공간이 너무 좁고 창고로 쓰는 것 같기는 하지만 문짝 생김새를 보니 원래부터 창고로 썼을 것 같지는 않다.
대합실 중간에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는 보통의 정류장과는 다르게
벽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자리잡은 의자들도 인상적이다.
한창 승차공간을 찍는 와중에 청소하러 나오시면서 묻는다. '뭐 하는데 사진을 그렇게 찍어요'
나쁜 뜻이라기보단 이런 데서 카메라 드는 사람이 없으니 신기해서 물으시는 거다.
역시나 이런 데서 들을 수 있는 전형적인 질문이다. 답변도 거의 같다.
'여행 온 김에 기념 삼아.. 시골 정류장 분위기도 좋고 해서 찍어요'
'찍을게 뭐가 있다고...ㅎㅎ 구경 잘 하다 가요'
버스정류장 다니면서 수도 없이 지나왔던 패턴이지만, 이런 소리 듣는게 나쁘진 않다.
사실 조금 민망하기도 하다. 버스정류장에서 사진 찍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걸 필자도 잘 알고 있으니까.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울 때도 많고, 이런 곳에 관심 없는 친구들 끌어다 데려올 땐 미안한 마음도 든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정을 나누며 하루의 일상이 돌아가는 이런 풍경이 참 좋다.
멋진 관광지의 수려한 경치도 좋고 맛집에서의 화려한 식단도 좋지만,
사람들이 잘 주목하지 않는 소소한 일상의 냄새도 썩 나쁘진 않다. 특히 시골 버스정류장일 수록 말이다.
오랫만에 버스 사진도 찍어본다.
상주와 보은 버스가 만나는 유일한 장소여서인지, 보은 버스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여기가 상주 땅이고 상주 생활권이긴 하지만 보은으로도 자주 나간다고들 하시는데,
저 군내버스가 아주 요긴하게 잘 쓰일 테다. 예상대로 수도권에서는 보기 힘들어진 대우 로얄패밀리 구형차다.
이 외에도 상주시내로 나가는 노선이 무려 '상주 주요노선'으로 군림하는 중이며,
화동, 모서, 화남, 화북 등등 주변 동네로 가는 시내버스의 거점이기도 하다.
타는 승객은 많지 않지만 동네 사람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노선일 것이다.
대부분 보은-상주를 잇는 노선이 중간경유를 하기 때문에 '당연히' 여기를 기/종점으로 삼는 노선은 없고,
주로 남서울-청주-보은-상주, 대전-보은-상주 노선이 많이 들어온다.
점촌, 영주, 태백까지 가는 노선까지 있지만, 경상북도 땅임에도 대구로 가는 노선이 없다.
여담이지만 필자보다 동생이 먼저 화령정류장을 와 봤었다.
동생이 한 번도 면회를 온 적이 없어서 와 달라고 징징대던 통에 마침 상주에 있는 겸 만나자 했었는데,
하필 화령에서 대구로 넘어가는 노선이 없어서 상주까지 나와서 갈아타야 하는 불편을 겪었다.
설상가상 가는 날이 장 날이라고 '버스 총파업'으로 난리났던 때여서 아예 갇혀버리는 것 아니냐, 기차 있으니까(...) 택시타고 나와서 시간맞춰 타라는 얘기까지 하다가 하루 전 날 다행히 파업이 풀려서 북대구에서 간신히 만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추억인데 당시엔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르겠다.
그 것도 터미널-터미널까지, 버스 기다리는 시간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만큼 경북에서 동 떨어져 있고 많이 다른 생활권을 가진 반 충청도 반 경상도인 동네다.
그래서 '화령공용버스정류장'은 뭔가 시끄럽고 분주할 것 같지만,
그 어떤 버스터미널보다 조용하게 일상을 이어가는 지극히 평범한 곳인 것 같다.
* P.S. : 정류장 사진 다 찍고 사고가 났던 사거리로 나와서 반대편의 고등학교와 가로수길을 찍으려는데,
그쪽 집에 사시던 할머니께서 자꾸 말을 걸으셨다. 무슨 일로 여행왔냐부터 시작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셨다.
처음엔 그냥 몇 마디 하고 끝날 줄 알았는데 집까지 초대하시는게 아닌가.
지은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보이는 깔끔한 1층 주택에 내부도 고풍스럽게 정리되어 있어 동네에서 부유한 축에 속하는 분 같았다.
여유롭고 늠름하신 할아버지께서도 반갑게 맞아주시며 커피도 주시고 친절하게 환대해주셨다.
통성명으로 시작하여 지역의 생활상도 많이 엿들을 수 있었는데,
200~300m쯤 되는 고지대에서 겨울엔 난방비가 장난 아니고 여름엔 시원하다는 이야기부터,
'화서'로 대표되는 화령과 '모동-모서'지역의 지역감정 (포도, 감과 같은 농사 관련) 이야기,
뭔가 없을 것 같은 여기서도 '땅값' '공장' 운운하며 공장이 많아진 음성이 부럽다면서도 약간의 기대를 갖는 이야기도 하셨다.
역시나, 이 동네에서 내세울 만한 '화령장 전적비' 이야기도 빼놓지 않고 이야기 하신다.
(하지만 군대에 있을 때 그걸로 크게 행사를 치뤄서 그다지 가보고 싶진 않다. -_-)
말투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뭉뚱그려 말하는 '경상도 사투리'와는 거리가 멀다.
경상도 억양이 없진 않지만 충청도처럼 굉장히 느릿느릿하게 말씀하시고, 대구나 부산처럼 억세지도 않다.
충청도 사람이 경상도 말을 흉내내는 것 같은, 혹은 그 반대의 느낌이 들 정도로 이질감이 크다.
거의 한 시간동안 앉아있다가 사거리 뒷쪽 언덕에 전망 좋은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 번 가보자 했는데,
집에서 나와서 인사를 드리고 나서도 계속 따라오시며 친절하게 안내해 주신다.
조심하라는 얘기도 몇 번이고 강조하시면서 아쉬운 인사를 부담스러울 정도로 계속 하신다.
낮지만 경사가 급해 헉헉대며 올라갔던 '동네 언덕'은,
정상의 정자 빼면 하나 볼 건 없었다. 나무가 가릴 데로 가린데다 미세먼지로 뿌옇게 흐린 날씨였기 때문.
결국 이거 하나 남기고 쓸쓸히 내려와 생각보다 질질 끌어버린 시간을 빠르게 끌어당기며 다음 장소로 이동.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할머니의 따스한 말씀과 할아버지의 인자한 미소에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 어떤 여행에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낯선 사람에게의 초대, 정말 감사했고 잊혀지지 않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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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가 보지 않아도 님 덕분에 소소한 얘깃거리 잘 읽고 갑니다.
늘 수고해 주시는 덕분입니다.
다음은 어디를 소개해 주실지 궁금해지기도 하구요.
암쪼록 건강 하십시요.
감사합니다.
항상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남서울에서 오는 버스도 있던가요?
속리산가려면 여길 이용하면 좋을텐데요.
남서울에서도 물론 있습니다. 약 1시간 정도 배차라서 이용하는데 크게 불편하진 않을 것이고, 청주-보은-화령-상주 구간이 완행으로 운행되어서 소요시간은 3시간 정도 잡으시면 될 거에요~ 속리산 국립공원까지 바로 가는 버스도 있으니 확인하시면 더 좋구요.
감사합니다.
소상히 알려주셔서요^^
전 보은가려고 늘 상주서 시내버스타고 이곳화령에서 보은군내버스타고 가요.보은장날은 가끔 자리가 많이차서 간다고하네요.그리고 경북은 경남지방과다르게 워낙지역이 넓다보니 충청도,강원도쪽 영향도많이받고 같은경북이라도 말투도 다르고 지역이나 실생활권이다른곳이 많은곳이네요
같은 상주 서부권인 화령, 모동 지역도 서로 다른 동네로 인식할 정도니 함창, 낙동, 공성 같은 지역은 아예 남남 취급하는 수준이라고 봐도 문제없는 것 같아요. 보은-상주쪽이 시내버스로 가기 편해서 서울-부산 시내버스 투어 할때도 많은 분들이 가는 것 같더군요. 언젠가 한 번 타보고 싶은 노선입니다. ^^
맥시멈님의 날카로운 눈썰미 덕에 좋은 글이 완성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상주 지역 사투리가 다른 대구라든가 경남 지역의 사투리와는 많이 다르지요. 약간 강원도 억양이 섞인 듯한 경상도 사투리에다 쓰이는 사투리 단어들도 다른 경상도 분들에게 얘기하면 잘 모르실 정도로 이 지역 언저리에서만 쓰이는 독특한 억양이 있습니다. 상주 주변의 김천, 구미 쪽도 이런 억양이 많이 나타나더군요. 화령은 지리적으로도 청주, 보은에 가까워서 대구나 구미, 김천보다는 주로 청주 쪽으로 나가는 경우가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상주가 생활권이 나뉘면서 지역민들 사이에서 생각보다 공통분모가 적은 것도 사실이기도 하지요.
화령과 비교적 가까운 낙동, 낙서 지역도 생활권역이 조금씩 다르다보니 동네 느낌도 많이 다른데, 완전 반대편인 모동, 모서 지역과 화령은 정말 다르지요. 상주 시내를 중심으로 모든 생활권이 형성되어 있지 않아 지역 내부간의 교류 역시 적다보니 그런 모습들이 나타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입대 전까지만 해도 경상도 사투리는 다 똑같은 줄 알았는데, 입대하고 주변 사람들 말투를 들어보니 미묘하게 차이가 느껴지더군요. 그리고 이번 여행을 통해서 더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충청도와 가까운 경북 북부, 서부 일대가 성조 변화가 적고 속도도 느린 편인데, 화령에선 유독 심하게 느껴졌습니다. 충청도 사투리라고 해도 크게 어색하지 않을 만큼요. 문경갔을 때에도 언급은 안 했었지만 비슷한 느낌을 받았고요. 물론 화령 쪽하고는 다르지만요.
모동, 모서 지역과 화령이 같은 상주 서부 고지대기에 어느 정도 동질감은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더군요. 거기서 조금 놀랐었던 것 같네요 ㅎㅎ 상주 땅이 워낙 넓다보니 지역마다 분위기도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화령 쪽으로 배차 나가신 적이 있군요. 많이들 나가시나 봅니다. ^^
말씀하신 대로 경북 안에서도 말투가 큰 차이가 납니다. 북부지역(안동, 영주 등)과 서부지역, 그리고 대구 등지 말과 세세하게 들어가면 영천, 경주쪽도 조금씩은 어감이 다르고요... 화령에선 과거에 북대구로 가던 시외버스 노선이 있었습니다. 북대구-왜관-약목-김천-추풍령-황간-화령 노선인데 이 노선이 수요 급감과 운수사 사정 등으로 폐선되고 대신 황간-화령 구간은 상주여객이 운행해서 명맥을 잇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운행사도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시외버스 회사인 대한교통이었습니다. 대한교통은 지금 김천시내버스만 운행하고 있지요..
처음 경상도 사투리를 구분했던게 대구-부산-경북서부+북부(구미,안동) 말투였습니다. 마산 포항 진주 울산 사람들도 봤지만 이 쪽은 상대적으로 적어서인지 아직 잘 모르겠네요. 화령은 유독 충청도 억양이 많이 섞여서 놀랐더랬죠. 추풍령으로 넘어가는 노선이었다면... 폐지될만한 경로였군요. 대한교통이 지금까지 운행하고 있었더라면 한 번 타볼만한 가치있는 노선이지 싶습니다.
예전에는 대구가는 버스가 있었습니다....화령정류장 들를때마다 대한교통이라고 대구로 가는 빨간색줄무늬 버스가 항상 주차되어 있는거 봤었죠...ㅋㅋㅋ 대전가는 버스타고 화령 들르면 대전가시는분들 많아요...아무래도 대도시로 나갈려면 대구보다는 대전이 편하죠...무정차는 1시간 20~30분 걸리죠.......태백행은 대전발 노선이죠...
북대구 노선이 상주가 아닌 황간-김천으로 운행했었군요. 거기에 대한교통... 수계로도 화령, 모서 지역은 영서 땅인데 확실히 그쪽으로의 이동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합니다. ㅎㅎ
삭제된 댓글 입니다.
지금도 그런 계통의 노선이 있으면 하는 생각이 괜히 드네요. 한 번 타보고 싶어지기도 하고...ㅎㅎ 네 개의 회사가 하나로 줄 만큼 시의 위상이 내려간 것이 많이 아쉽습니다. 그만큼 인구가 빠지고 자가용이 늘었다는 이야기겠지요.
화령이 행정구역상 경북 상주이나 백두대간 서쪽이다 보니 더 특이하군요
날씨가 가장 다른 것 같습니다. 화령에 있다가 상주로 가니까 공기부터 달라지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