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오다
김영식
“우리 집 쟈스민나무에 어린 꽃들이 왔어요.”
오늘 아침 당신이 내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지요. 꽃이 피었다가 아니고 꽃이 왔다니 이 얼마나 가슴 따뜻해지는 말인지요. 그러니까 올망졸망한 보랏빛 몽우리들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저곳에서 내가 있는 이곳으로 건너왔다는 것입니다.
자운영 가득한 언덕 저 너머거나, 해오라기 날아오르는 강 저쪽이거나, 아니면 밤하늘의 은하수거나. 강을 건너, 언덕을 넘어, 소풍 오듯 그렇게 꽃이 왔다는 것입니다. 왔다는 말을 들으면 아득해지는 이유가 그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꽃이 왔다’를 입 안에 오래 궁굴려 봅니다. 쟈스민 향기가 천천히 온몸에 번져 옵니다. 피었다는 건 그 주체가 다분히 개별적이거나 배타적이지만, 왔다는 건 더불어, 라는 것, 이타적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내가 여기에 있기 때문에 꽃이, 사람이, 사물이 오는 것입니다. 왔다는 말은 나 외에 항상 타자의 존재를 전재로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면 온다는 건 관계의 철학인 것 같습니다.
춘향전 <사랑가> 첫 대목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이도령과 춘향이 서로를 희롱하는 장면입니다만 저쪽에서 이쪽으로 와야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왔다는 건 저쪽이 있다는 것입니다. 꽃의 저쪽, 저녁의 저쪽, 여름의 저쪽, 그러니까 세상의 모든 사물은 여기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저쪽에서 건너온 것입니다. 언젠가 제가 그렇게 말했지요. 시나 그림이나 음악들은 창조된 게 아니고 발견된 거라고.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나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은 우주 저쪽에 있던 것들이 어떤 인연으로 서정주와 베토벤에 의해 지구 이쪽으로 건너온 것입니다.
들녘을 걸어가면 풍경이 내 안으로 걸어오는 걸 느낄 수가 있습니다. 내가 꽃과 나무와 강과 새를 향해 걸어가면 그것들이 나를 향해 오는 것입니다. 상호작용하는 것이지요. 온다는 건 만난다는 것입니다. 만난다는 건 경계를 허물고 내가 타자와 소통한다는 것이지요. 소통이 없으면 제대로 된 만남도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보인다는 말도 그런 맥락일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당신도 어느 날 문득 내게로 왔습니다. 미지의 시간 저쪽에서, 꽃이 쟈스민나무에게로 오듯 그렇게.
왕래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고 온다는 것이지요. 이처럼 온 것은 그러나 언젠가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회자정리會者定離. 우주의 모든 것은 이 섭리에서 벗어날 순 없습니다. 사물들은 이렇게 가고 오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입니다. 감이 있으면 옴이 있고 옴이 있으면 감이 있지요. 감이 곧 옴이고 옴이 곧 감입니다. 色이 즉 空이요, 空이 즉 色인 것입니다.
그러면 꽃도 언젠가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겠지요. 그러나 갈 때를 염려해 오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게로 온 것에 최선을 다하고 사랑한다면 그 의미는 더 한층 승화되는 것이지요. 꽃이 전심전력으로 현재를 몰입하듯 당신과 나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쟈스민의 꽃말이 사랑스러움이라고 당신이 말했지요. 갑자기 방안에 사랑의 향기가 가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