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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깨어 창문을 여니 선선한 바람과 함께 맑은 하늘 아래에 가을 햇살이 가득하였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토해 낸 말은 아~ 가을이 왔구나였습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저절로 신장으로 가 트레킹 슈즈를 현관 앞에 내려놓고 베란다 구석에 있는 창고로 가 오늘 걷기에 알맞은 배낭을 선택해 방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이어서 세면실로 이동 면도와 양치, 샤워 후 산에서 사용하는 용기를 꺼내 반찬 3가지를 담고 밥과 더운물도 준비한 후 작은 컵라면과 생수 한 통을 준비하여 배낭 안에 넣어 두었습니다. 다시 여벌옷으로 반바지, 티셔츠, 윈드쟈겟, 양말를 잡주머니에 넣어 배낭 외따로 달린 잡 공간에 스틱과 함께 넣어 짐꾸리기를 완성한 후, 시계와 핸드폰, 모자를 챙긴 후 걸어 나왔습니다. 가로수 아래 길, 가을햇살이 참 좋군요. 공원에서 흘러나오는 숲 향기는 숨 쉬기를 편안하게 해 주었고 대나무는 여름내내 곧고 굵게 자라 눈 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아직 늦 더위가 남아 있겠지만 여름을 잘 이겨낸 모습들이 보기 좋습니다. 한 참 피어 있는 꽃도 보기 좋았습니다.
두 번의 환승을 하며 산으로 가는 교통 동선을 확보하고 앉은 후 잠시 눈을 감았습니다. 화살기도의 시간을 남 모르게 갖어 보았습니다 요즈음 성가시게 하는 마음 몸살 때문에 하는 기도였습니다. 순간적인 기도문은 아니었습니다. 거의 기도를 끝낼 무렵 누군가 황급하게 옆 자리에 앉는 낌새가 느껴졌습니다. 행낭 같은 잡 주머니에서 책 한 권을 꺼내더니 조용히 책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 모습은 솔밭역까지 이어졌습니다. 가을은 책 읽기 좋은 계절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듯 그 잔상을 남겨 놓고 홀연히 사라져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어느 방향 둘레 길을 걸을까? 남쪽방향? 북쪽방향? 어느 방향이라도 다 좋지만 나라면 북향으로 걸음을 옮길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솔밭과 북향으로 연결된 길에는 우이동 도선사로 가는 옛길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름다운 솔밭 길을 지나면 커다란 느티나무 곁을 지나 자수박물관 길을 돌아 천천히 오르면 서서히 숲 사이로 전해오는 환희심이 몸을 휘감다 끝자락에서 천도교 봉황각 정문을 만나게 됩니다. 길을 건너 넘어서면 우이령으로 가는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숲 길로서 손색이 없는 길입니다. 이런 사이 전철은 나를 에스컬레이터 앞에 세웠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작동되면서 횡단보도에 단박에 나를 세웠습니다. 늘 그렇듯 시선은 오봉과 우이암에 고정되었습니다. 정면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좌측으로 고개를 돌려야 건물 사이로 보이는 삼각산은 여러 갈래로 잘려 보여 이 지점에서는 잘 찾지 않는 시선입니다. 신호등은 자신이 만든 약속대로 푸른빛으로 바꿔주어 길을 건너 직선으로 1km를 이동했습니다 다시 우이천과 우이령 물이 서로 합수되는 다리를 건너 우이암으로 가는 길목을 지키 던 송월여관 자리를 지나쳤습니다. 지금은 가족 켐프장이 들어섰습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왜 이리로 온 것인가? 자신에게 묻고 섰습니다. 잠재의식 [潛在意識]이 방향으로 이끌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리적으로 의식이 접근할 수 없거나 부분적으로 밖에 의식되지 않는 정신 영역의식과 무의식의 중간 상태를 잠재의식이라 하는데... 추억의 그림자가 나를 이 길로 이끌었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잡초에 섞여 있는 꽃을 보며 행장을 수습한 후 주능으로 접근하기 위하여 서서히 고도를 놓였습니다. 원래 길은 두 길이었습니다. 계곡으로 올라 삼거리 휴식터에서 절로 가는 외길을 통해 우이암으로 가는 길과 줄 곳 주능으로 가는 길을 밟아가며 휴식처를 지나 절에 들러 샘물에 목을 적신 후 우이암으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후자를 선택 후 주능으로 가는 길을 이용하여 고도를 높이며 주능 초입 반석에 올라섰습니다. 이곳은 삼각산의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는 좋은 장소입니다. 여러 번의 경험이 있고 설경과 봄 새싹 연두 빛이 물감 퍼지듯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 곳이며 삼각산의 의상대주능과 인수봉, 백운대, 만경대를 동시에 볼 수 있는 멋진 자연적 전망대랍니다. . 옛적에는 그린 파크 놀이공원에서 들려오는 악동들과 청소년들이 놀이기구를 타며 지르는 소란스러운 소리가 잘 들리던 곳이었습니다. 지금은 호텔이 사라진 후 그 자리에 고층 아파트 여러 동이 들어서서 적막하기만 합니다. 암반에 서서 가만히 삼각산 일대를 조망해 보니 어느새 숲은 문명에게 침범당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오봉이 눈에 찾아 들자 자신도 모르게 바위고개를 부르고 서 있었습니다. 우이령에 서면 우측으로 바위산이 불쑥 나타납니다. 송추폭포 방향이지요. 여성봉을 이어서 나타나는 다섯개의 봉우리 봉우리마다 걸맞은 감투를 쓰고 있는 것이 오봉의 매력입니다.
바위고개는 이 홍렬 작곡 이 서향 작곡입니다.
바위고개 언덕을 혼자 넘 자니 옛 님이 그리워 눈물 납니다 고개위에 숨어서 기다리던 님 그리워 그리워 눈물 납니다
바위고개 핀 꽃 진달래꽃은 우리 님이 즐겨 즐겨 꺾어주던 꽃 님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님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바위고개 언덕을 혼자 넘 자니 옛 님이 그리워하도 그리워 십여 년간 머슴살이 하도 서러워 진달래꽃 안고서 눈물집니다
오봉을 바라보다 바위고개 노래가 떠올라 조용히 불러 보았습니다.
잠시 쉬던 바위 지나 본격적으로 우이주능 선상에 섰습니다. 산 아래 집이 생기면 산은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됩니다. 접근성이 좋아지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옛적에는 우이령에서 밤나무 골을 지나 올라 오봉샘 경유하고 캠프사이드 사이를 지나 작은 산언덕을 넘으면 제3봉에 다다르게 됩니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이동하여 일봉에서 오봉까지 릿지 암벽등반을 한 후 거북암 - 도봉동으로 내려가곤 하였습니다. 아니면 우이주능을 이용하여 우이암을 경유한 후 계곡길이나 주능을 이용하여 우이동으로 내려 가거나 우이암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원통사에서 좌측계곡으로 떨어져 무수골을 경유하여 도봉역 방향으로 하산하는 길이 유일하였습니다. 도봉역 건너에는 군 공병대 물류창고가 있었으며 그 옆으로 천축사로 가는 옛 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도봉천으로 따라 오르다 보면 도봉동 수영장 옆으로 길이 이어지면서 산 길 초입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의정부로 가는 신작로 길이 열리면서 마을 길로 바뀌었지만 서쪽 인부에는 자연 생태계가 살아 있는 마을이 있습니다.
원래 방학동 산 기슭에는 연산군 묘를 비롯하여 내시무덤과 상궁, 나인 들의 무덤이 많이 있던 곳입니다. 당골이라 하여 무당골도 있었으며 무수골도 무수리들 묘자리가 있던 곳으로 알고 있었는데 자치단체에서는 무수골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무수 골이란 마을유래는 1477년 성종8년 세종의 17번째 아들인 영해군의 묘가 조성되면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옛 이름은 수철동(水鐵洞)이라 영해군의지명문에 표기되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무수 동(無愁洞)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속명으로는 무시올이라 불렸으며 읫말 중간 말, 아랫 말로 나뉘었는데 윗말은 전주 이씨 마을로 조성된 지 500년이 넘는 마을이 되었고 이 마을과 더불어 조성된 안동 김씨 마을은 10여호가 옹기종기 모여 살아 서울에서는 보기 드물게 토박이 중심으로 순수성의 집성촌으로 유지되는 마을이다. 국립공원화 되면서 개발의 명분을 벗어나며 300년 이상 된 마을로서 자연 생태계가 온전히 살아 있는 마을이 되었습니다. 서울둘레 길이 이 마을 중심으로 지나가면서 정의공주 묘와 연산군 묘와 우이동까지 이어져 나갑니다.
쉬지 않고 걸어 삼거리 휴식터에 도착하였습니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휴식 시간 포함하여 1시간 10분이 소요된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우이암까지 0.6km 남았습니다. 이곳에서 추억을 회상하며 쉬다 익숙한 모퉁이 길을 돌아섰습니다. 제일 좋아하는 길입니다. 계곡을 아래로 두고 걷다 보면 물소리가 참 청아하게 들리는 곳입니다. 그리고 우이 암 모습이 숲을 받침으로 아름답게 조망된 곳이라 이 길에 서는 곳을 좋아한 하였습니다. 우이암을 처음 찾았을 때 제 나이는 16세였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당시 감격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당시에는 우이암이 전신 그대로 보였지만 지금은 나무들이 성장하여 우이암은 2/3 정도만 볼 수 있습니다. 마침 부채 살 같은 구름이 휘감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아 가던 길을 멈추고 여러 장의 사진을 찍어 두었습니다. 우이암은 최초로 암벽등반을 시작한 곳입니다. 이어서 오봉에 올랐으며 인수봉으로 자리를 옮겨, 백운대, 만경대를 비롯하여 노적 봉, 숨 은벽, 설교벽을 섭렵해 나가다 도봉산 선인 봉 허리길을 시작으로 박쥐, 표범 길 등을 오르다 만장봉과 주봉을 오르기도 하였던 곳입니다. 우이암에서는 인공 암장도 즐겨 하던 곳입니다. 우이암을 소 귀를 닮은 바위라 붙여진 이름이며 우이동을 대표하는 거석입니다. 이 바위와 주변에 놓여 있는 바위들이 불교의 성물처럼 느껴져 협곡 사이에 오랜 고찰이 있습니다. 원래 절 이름이 보문 사였다가 원통사로 변경된 절입니다. 절 마당에 서서 우이암을 보면 부처님 모습으로 다가오지만 주능 서쪽 방향에서 바라보면 성모님을 많이 닮았습니다. 저는 후자 쪽으로 인식하고 있는 산꾼입니다.
이 책은 등산이라 월간지 창간호입니다. 이 바위가 바로 우이암 트레파스 암벽 길입니다. 배경으로 보이는 산은 도봉산 자락입니다. 암벽등반 중인 모델은 유명한 사진 작가 임 응식 선생의 동생 임 경식입니다. 설악산 죽음의 계곡에서 훈련 중 눈사태를 만나 사망한 10동지중에 한 사람입니다. 등산이란 책은 계간 형태로 발행되다가 절판의 위기를 겪으면서 조선일보에서 발행을 이어받아 산이란 제호로 바꾸어 지금 월간지로서 계속 발행되고 있는 전문 산악 잡지입니다. 등산이란 책이 발행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종로서적으로 달려 가 구매할 때 나이가 바로 16세 때였습니다. 엣 기억이 새롭습니다. 지금도 보관하고 있는 책입니다.
오랜 경험에 의한 등산로를 기준으로 소요시간과 거리를 측정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이동 - 원 통 사(2.5km. 소요시간 40분) 이면 충분하게 오르곤 하였지만 지금 나이를 중심으로 체크해 보니 휴식시간 포함 1시간20분 걸렸습니다. 원 통사- 도봉산역 7호선(5.8km. 1시간 20분)이면 가능하였지만 오늘 체크해 보니 중간 계곡에서 40분 간 휴식시간 포함하여 2시간 40분이 걸렸습니다. 이젠 느림보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도 오를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합니다. 인내해야 하는 시간이 자주 필요하고 휴식의 간격도 배낭을 벗고 앉아 쉬는 사이 사이에 서서 잠시 쉬는 방법도 생각해 두어야 합니다.
지금도 악동시절 산으로 가던 환희심이 파노라마가 되어 마음에 열기가 느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깍 아 지른 L 자형 바위 공간이 있어 그곳에 밥상을 차렸습니다. 마들 평야가 있던 자리와 더불어 수락 산, 불암 산 자락이 호기 있게 보이는 자리입니다. 하늘은 흰구름이 파란 하늘에 수를 놓으며 이리저리 몰려 다녔습니다. 가을하늘답다 라는 생각을 하며 점심을 챙긴 후 무수골로 내려섰습니다. 맑은 물이 흐르고 새소리가 정겹고 가을바람이 폭염의 기억들을 지우고 있었습니다. 맨발를 물에 적시면 한 동안 걸어온 노독을 풀어줄 심사로 정성껏 마사지를 해주며 보내다 다시 스틱을 들고 일어섰습니다. 이어지는 무수골까지의 숲 길, 참 아름다운 곳입니다. 이 지역은 성신여대가 많은 숲을 소유하고 있고 관리를 잘하여 아름다운 숲으로 보존되고 있는 곳입니다. 경계선을 의미하는 담장 마다 생태와 관련된 사진을 붙여 놓아 암시적으로 생태보호지역임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길을 기분이 좋아지는 길이라 명명해 놓고 아름다운 생태와 전원의 정취를 보고 싶을 적 마다 찾는 곳입니다. 이 부근에 김 수영 시인의 묘 가 있습니다. 문학관도 이 부근에 있고 시비는 도봉 서원 앞 공원 앞에 세워져 있습니다. 도봉서원과 거리는 꽤 있습니다. 묘는 도 봉 역 건너 마을을 벗어난 외진 곳에 있습니다. 참배를 생각해 두었다가 오늘은 스쳐 지나가기로 하였습니다. 문학관을 찾는 날 찾아보려고 합니다. 대신 도봉서원 앞에 세워진 시비의 시를 외우는 것으로 대신하였습니다. 김 수영의 풀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도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시를 외우며 들녘에 섰습니다. 숲 너머로 내가 찾았던 우이암이 점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우측 끄트머리에 도봉산 암 능이 시작되는 칼바위가 흐릿한 모습으로 다가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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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너머 그 모습을 확대하여 줌 인 시켜 보니 신선 대, 자운 봉, 만장 봉, 선인 봉이 오라 손 짓을 보내오는 것 같았습니다. 손 때를 묻히지 않은 바위가 없었습니다. 주봉은 키가 작아 좌측 숲에 가려졌고. 작지만 매운 바위 길을 갖고 있는 암봉입니다. K크랙은 주봉 바위길 백미이고 오버행 또한 멋진 담력을 요구하는 곳입니다. 남측 반침니는 담력이 없으면 오르기 벅찬 곳이지요.
다시 줌 아웃을 시켜 보니 자연의 모습이 건강하면 아름다운 조합을 이룬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선인 봉 허리 길을 처음 오를 때 느꼈던 고도감에서 오는 쨔릿한 순간과 외줄 로프를 신뢰해야 바위걸음을 옮길 수 있는 기억을 떠 올려졌습니다. 확보물 위치에 서서 긴장속에 확보장비를 꺼내 확보를 마치면 나도 모르게 내 밷던 긴 호흡의 간격이 그리워졌습니다. 선등 자의 위치에서 후등 자가 안보이면 조바심이 밀려왔고 후등 자와의 간격은 긴장의 의미를 처절하게 느끼는 순간이 바로 그때였습니다 후등 자가 바위 뒤에서 앞으로 짠하고 나타나면 안도의 기쁨이 산처럼 밀려오곤 했었습니다. 글라이밍은 순발력과 친화력이 돋보이는 팀엌이 필요한 우정의 소산입니다.
다시 줌 아웃으로 밀어내자 바위산은 저만치 멀어져 있었습니다. 다시 솟구치는 모습정도로 보이는 구도를 잡은 후 서서 가을빛이 아름다운 숲 구경 삼매경에 빠져 들었습니다. 익어가는 전답 들녘에 아름다움은 수확이란 자연의 선물 앞에 서 있다는 자체만으로 행복감이 차 올랐습니다.
익어가는 곡식도 근사하였지만 숲과 숲에서 들리는 소리도 오후 들어 근사 해져갔고 하늘엔 구름이 퍼져 나가는 속도에 바람이 들어 있었습니다. 멋진 초가을의 풍경입니다. 스스로 선택한 가을 동선에 만족해하고 서 있었습니다. 조금 더 익은 가을날 도반들을 모시고 찾고 싶은 곳입니다. 이젠 걸음 여행을 접을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발 길을 돌려 개울 사이로 난 길을 찾아 걸었습니다. 그러다 동선을 접은 후 귀경을 위한 길을 모색하다. 어느 집 담벼락에 걸려 있는 글을 발견하게 됩니다.
명문입니다. 반론의 글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 글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렇게 굴러야 쓰겠는가! 하는 것이 나의 구차한 반론이었습니다. 해는 이미 서산을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아쉽지만 내일 또 볼 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안심속으로 이어졌습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도봉 옛길을 걷다
참한 식당이 있어 다가섰다. 성큼 들어 가 착석 후 우거지 감자탕을 시켰습니다. 익는 사이 막걸리를 시켜 단숨에 마셨습니다. 양은 잔이 정겨워 다시 한 모금, 목이 마르다는 핑계로 다시 마시자 그제서야 음식이 익었습니다. 한 술 떠서 입에 넣자 몇 해 전 안개 낀 용 늪을 걷고 대암 산에 오른 후 귀경 길에 양구 시래기 음식을 먹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우거지 맛이 흡사하여 물으니 양구 것이랍니다. 입 맛은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귀가 후 산행 용품 전체를 꺼내 닦고 조이고 정리하여 원래의 자리로 수납시켰습니다. 비로소 걸음 여행이 종료된 것이지요. 아직도 가을빛이 마음을 시리게 합니다. 눈을 감고 회상의 줄기를 따라 가다 잠에 빠져 추억의 길을 이어 나가고 있었습니다. 종일 시간이 나비 모양으로 이곳저곳으로 날아다닌 하루였습니다. 나 역시 잠이라는 줄에 걸려 맥을 목 추는가 보다 하며 잠의 마술에 걸려 들어갔습니다.
무수골 오염되지 않은 맑은 계곡에 간이 천 의자를 나란히 붙여 놓고 앉아 책을 읽던 노 부부가 자꾸 어른거렸습니다. 그림 같은 그 사실만으로도 많은 것이 공감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뒤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살며 시 다가 가 사진을 찍으려다 셨다 음 소리에 놀라 뒤로 넘어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우려에 접은 순간의 판단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잔상으로 남아 있어 행복합니다. 보는 것이 행복하면 마음은 잔상을 만들어 보여주기를 거듭하는 것 같습니다. 다음에도 가을 빛을 따라 걸음을 옮길 곳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약 30회 정도를 준비한 것 같습니다. 가을 노래를 준비하였습니다. 함께 듣겠습니다.
못내 아쉬운 이별이 어느새, 그리움 되어, 설레 이는 더운 가슴으로 헤매 어도 바람일 뿐, 끝내 못 잊을 그날이, 지금 또 다시 눈앞에, 글썽이는 흐린 두 눈으로, 둘러봐도 하늘일 뿐, 아 ~ 나의 사랑은 때로는 아주 먼 곳에 ~~ 영원히 찾을 수 없는 곳에 던져버리고 싶을 뿐, 하지만 저 쯤 멀어진 그리운 우리의 사랑, 대답이 없는 너의 뒷모습, ~ 이 마음 다시 여기에
아 ~ 나의 사랑은 때로는 아주 먼 곳에~~ 영원히 찾을 수 없는 곳에 던져버리고 싶을 뿐, 하지만 저 쯤 멀어진 그리운 우리의 사랑, 대답이 없는 너의 뒷모습, 이 마음 다시 여기에~ 이 마음 다시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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