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북에서 배운 노래가운데 '축복하노라'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결혼 축가라는데, 지금껏 들어 본 축가 중에 최고였어요.
"축복하노라. 그대들 새 가정, 축복하노라. 오늘의 이 기쁨
좋은 때, 좋은 날, 맺어진 사랑, 한 송이 꽃으로 활짝 피었네.
..."
나중에 모든 가사는 물론 가락까지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재은이 아우가 태어났다니, 참 경사가 났습니다.
벌써 내가 병원심방을 다녀와야 했을텐데, 평양에 다녀오느라
늦었습니다.
부럽군요. 아, 이럴 때 속에서 솟는 감정이 '샘'이던가?
재은이 말처럼 '딸 부자'가 되었군요. 반가운 일입니다.
두 딸있는 가정이 내외간 금슬이 좋다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또 딸을 낳았으니 땡잡았다는 말도 틀리지는 않군요.
그렇게 좋다는데 왜 우리 집에는 기회가 안올까... 퍽 아쉽습니다.
우리집 첫째 아들이 태어나던 해에 <말>지에 북의 천재화가
오은별에 대한 기사가 났습니다. 당시 은별이는 4살이던가 했는데,
임신 중이던 류은경씨에게 "여보, 우리 아이가 딸이면 은별이라고
이름을 짓자" 했지요.
물론 그 아이의 이름은 은별이가 아닌 민규가 되었습니다만.
둘째는 반드시 은별이로 낳기로 하고, 떠들고 다녔습니다.
이름특허등록을 낸 것은 아니었지만 은별이라고
딸 이름을 짓는 것은 적어도 제 주변에서는 금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도 한규가 되었군요.
물론 그 두 놈의 '규'자에는 '별'이란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은별이 아닌 두 별이 된 셈이지요.
이번에 평양에서 오은별 소식을 들었지요.
저희 일행을 돕던 지도원 박동무가 자기 아내가 고등중학교 교사인데
은별이가 제자라고, 그래서 자기 집에 놀러온 적도 있다는 거예요.
지금은 벌써 대학생이라던데... 참 세월이 빠르죠?
그 동무가 애를 쓴 끝에 만경대소년궁전에서 드디어 은별이
일곱 살 때 그림 한 점을 찾아 내었고,
나는 아낌없이 구입했습니다.
또 한 아이, 그 만경대소년궁전에서 우리를 안내하던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이름이 권경희였어요.
자그만한데 민규랑 동갑이더군요.
딸 삼고 싶을 만큼 아이가 좋아보였어요. 내가 독일에 가서
사진도 보내주고, 편지도 쓰겠다고 주소를 알아왔지요.
평양에서 또 한 번 마주치지 않을까 내내 신경이 쓰이더라니까요.
참 그 아이한테 노래를 하나 배웠습니다.
"춘향 도령 사랑에도 방자가 방자가 있어야지.
견우 직녀 만나자면 오작교 오작교 있어야지.
랄랄라라 누구나 혁신자 이라면
어디서나 만나게 오작교 놓아주리"
나는 평양에서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이 노래를 불러보라고 하고
또 함께 불렀습니다.
우리 안깐(안해의 연변사투리, 안해는 아내의 북쪽 표준말)이 딸을
마련하지 않으니 멀쩡한 남의 딸들에게 뜬금없는 인정을 보내게
되는군요.
물론 기회가 없으려니 생각은 안합니다. 아직 내 나이 오십이 되려면
한창인걸요, 뭘.
아, 재은이의 여자 동생이 태어났다는 사실이 참 부럽군요.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진희씨, 우섭씨
"언제나 다정한 길동무"로 행복하세요.
축복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