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정읍(井邑) 내장산(內藏山) 단풍산행(丹楓山行) 4
-단풍의 결정판 내장사 단풍-
오후 2시 52분, 내장사 일주문을 통과합니다.
아, 내장사! 10여년 전에 한 번 찾아와 참배했던 기억이 있는데 10여년 만에 다시 와 참 배하려니 감개무량합니다. 그것도 단풍이 절정이 이때 찾으니 더욱 더 그러합니다.
물밀듯한 인파
무려 10만의 인파가 운집했다고 합니다.
내장사 단풍터널
내장산에서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 바로 이곳이 아니가 합니다. 일찍이 1892년, 내장사 스님들이 경내 일주문에 이르기가지 108그루의 단풍을 심어 오가며 108번뇌를 음미하고 벗어나고자 심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단풍터널을 이루어 장관을 이루고 명소 가 되어 각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인파가 너무 많아 사진 담기에도 벅찼는데 단풍과 사람이 안데 어울려 일대 장관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특히 내장산 일대는 애기단풍이 많은데 이 애기단풍을 일명 내장사단풍이라 한다고 합니다.
모두 내려오는 추세인데 우리는 흐름을 거슬러 내장사 경내로 진입합니다.
부도전의 단풍
반야교(般若橋)에 들어섭니다
반야교를 건너면 바로 천왕문입니다.
내장사 연혁
『내장사는 지금으로부터 1300년 전 백제 제30대 무왕(600-640)37년인 서기 636년(백제 멸망 660년 24년 전)에 당시 도승이신 영은조사(靈隱祖師)께서 지금의 절 입구 부도전 일 대로 추정되는 자리에 대웅전 등 50여동에 이르는 대가람으로 백제인의 신앙적 원찰로서 영은사(靈隱寺)란 이름으로 창건되었고, 1098(고려조 숙종3년) 행안선사(幸安禪師)께서 전각당우를 중창했다는 기록이 있을 뿐 자세한 연혁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1557년(조선 제13대 명종12년) 희묵대사(希默大師)가 법당과 요사를, 1639년(인조17년) 부용대사(芙蓉大師)가 사우를 중창하고 불상을 개금했으며,1779년(정조3년) 영운대사 (靈雲大師)가 대웅전과 시왕전을 중수하고 요사를 개축하였다.
1923년, 백학명선사(白鶴鳴禪師)가 사세를 중흥시킨 뒤, 1938년 매곡선사(梅谷禪師)가 대웅전과 명부전, 요사등을 신.개축하여 현 위치에 내장사의 면모를 일신시켰으나, 한국 전쟁으로 인하여 1951년 1월12일 소실된 것을 마지막으로 창건이래 5화 7건으로 역사가 있다.
1957년, 주지 야은스님께서 요사, 1958년에 현 대웅전을 중건하였다. 1964년 무량수전을 세우고 1965년 대웅전 불상과 탱화를 조성 봉안 하였다.
그 후 1974년 국립공원 내장사 복원계획에 따라 일주문, 명부전, 정혜루를 복원하고 사천 왕문이 신축되었다. 조선조 성종때 석학 성임(1421-1484)은 정혜루기에서 영은사는 고려 말엽 지엄선사의 개산에서 비롯된다고 기록한 뒤, 정혜루는 당시 영은사의 문루로 1467 년(세조12년)에 시작하여 다음해 준공된 3간으로 그 규모나 형태가 장엄무비하다고 전하 고 있다.
최근 내장사는 향적원과 정혜원, 요사등을 신축하고 1994년 10월에는 사리탑을 건립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했다.』
정혜루(定慧樓) 탄허(呑虛)스님의 글씨. 앞면.
정(定)은 선정(禪定)이니 마음을 한 곳에 머물게 함이요, 혜(慧)는 지혜를 말함이니, 바른
지혜를 일으켜서 理(본체)와 事(현상계)를 밝게 관조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정혜루의 아름다움. 뒷면
정혜루를 지나면 3층 석탑이 나오고 바로 대웅전입니다.
내장사 3층 석탑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3층 석탑입니다. 이 탑은 1997년 범여스님이 조성한 탑으로 1932년 영국의 고고학 발굴조사단에 의해 발굴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인도의 고승 지나 라타나 스님의 주선으로 내장사에 봉안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유골을 말하는 것으로서, 불자들에게는 깊은 신앙의 대상이 되는 영골(靈骨)을 일컫는 말입니다.
단풍이 화려합니다.
대웅전 풍경.
636년 백제무왕 37년 영은 조사 (靈隱祖師)가 이 절을 영은사(靈隱寺)라는 명칭으로 창건 한 이래 역사 속에 부침을 계속하다가 1958년에 중수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주지 야은 스님이 정읍시 입암면에 있던 보천교의 보화문을 그대로 옮겨 중수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서울의 조계사 대웅전은 보천교의 십일전(十一殿)을 옮겨 지은 것이라고 하 는데 보천교의 건물이 불교 건물로 환골탈태한 것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극락전(極樂殿)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