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문소 유래
구문 소 는 황지에서 발원한 낙동강이 황지천 을 이루며 휘돌아, 문 곡 장성을 지나 동점에 이르러 정면으로 가로막힌 절벽을 뚫고 지나가면서 생긴, 그 깊이와, 생성 연대를 알 수 없는 소를 말한다. (태백의 지명-동점-구문소..참조)
또 한 주변에는 고생대의 화석이 출토 되어서 지질 연구 및 자연학습장 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으며, 인근(철암 쪽 으로 약1.5km)에 화석 박물관을 건립하고, 이곳 뿐 아니라 태백 전역(주로 석탄광산)에서 출토되어 개인이 소장하고 있던 희귀한 화석들을 모아서 전시를 하고 있다.
인근의 지형을 살펴볼 때 예전에는 물이 우측으로 약 5km정도를 돌아서 흘러갔을 것으로 추정되나 어느 순간에 물길이 바뀌었으니 자연의 위대함을 어찌 말로 다 설명할 수 있으랴....
도로가 된 자연터널은 강원도와 경상북도를 잇는 관문으로서 수백 년을 흘러오다, 증가하는 교통량을 소화하기 위해 옆에다 또 하나의 터널을 개설하여 이제는 새로운 명소가 되고있다.
1935년 삼척개발주식회사의 사장이었던 내등태희(內藤態喜)가 석문위에 우혈기(寓穴奇)라 새기고 "우혈기"라 이름해 부르다 해방이후 강원도 경찰국장이 왜 색 을 없앤다고 바위의 각자를 지우고 다시 "구멍 소, 구무 소, 또는 구문 소"로 불려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으나, 바위에는 아직도 희미하게 그때의 글자가 남아 있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로 이곳 구문 소에도 몇 가지의 전설이 유래하고 있는바, 대략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싸리나무 전설"
옛날 안동에서 영호루 를 지을 때 대들보 감으로 화전 동 금대봉에서 싸리나무를 베어서 물길을 이용해 운반도중 불어난 물로 미쳐 방향을 틀지 못하고 석벽을 들이받아 천지가 진동하면서 구멍이 뚫리고 깊은 소가 생겼다는 전설이 있다.
"청룡 백룡의 전설"
또 다른 이야기는..오래 전에 물이 혈내촌 안의 사군다리 쪽으로 휘돌아 흐를 때, 그 절벽 양쪽에는 깊은 소가 있고 동쪽에는 청룡이, 서쪽에는 백룡이 살아서 절벽을 사이에 두고 수시로 싸움을 하던 어느날 절벽이 뚫어지면서 청룡이 죽는 바람에 백룡은 싸움에서 이기고 승천을 하였다는 전설이 전해 진다.
또 다른 전설이 있으니 이른바 "백구 백병"(흰개 흰떡)이라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옛날 인근에 엄종한(嚴宗漢) 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그물로 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고 한다.
하루는 아침 일찍 그물을 건지려고 나가보니 그물이 없는지라 그물을 찾아서 이리 저리 헤메다 실족하여 깊은 물에 빠지고 말았다.
한참 후에 정신을 차려보니 커다란 연못가에 나와있고 햇살이 눈부시고 주위에는 금빛 모래사장이 펼쳐 저 있는지라 어리둥절 하다가 정신을 수습해 보니 커다란 기와집이 늘어서 있는데 꼭 용궁 같은 생각이 드나 사위가 너무나 조용하여 이리 저리 거닐다가, 어느 큰 대문 위에 걸려있는 자신의 그물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서 자세히 살펴보는데 안에서 백발노인이 나오더니 “이곳은 인간 세상이 아닌데, 어떻게 왔으며 그것은 왜 만지느냐.?” 고 물었다.
이에 엄종한은 그물을 찾다가 물에 빠져서 이곳까지 오게 된 연유를 소상하게 고하니, 노인이 말하길 “내게 두 아들이 있는데 놀러 갔다가 그물에 발이 걸려서 죽을 뻔 하고, 화가 나서 그물을 가지고 와서 그물은 이곳에 두고, 병이 나서 앓다가 오늘에야 일어나서 지금은 사냥을 나갔는데, 이제 돌아올 때가 되었소. 아마 당신을 보면 화가 나서 당신을 죽이려 들지도 모르니 어서 빨리 돌아가시오” 라고 하는지라, 엄종한은 당황하고 놀라서 얼떨결에 “길을 몰라서 갈 수 없다”고 하자, 노인은 흰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와서 “이 강아지가 길을 일러 줄 터이니 따라가면 될 것이고, 가다가 배가 고프면 이걸 먹으라”고하며 흰떡을 한 덩이 싸 주는지라 고맙게 받아 가지고 얼마나 왔는지 기진 했을 즈음에 주위를 돌아보니 강아지는 어디로 가고, 바로 물에 빠졌던 그 자리라, 기뻐하며 집으로 가는데 동네에 사람이 들 끌어서 다가가 본즉 ‘아들이 실종되어 삼년을 기다리다가 오늘 그 장사를 치른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장례음식은 돌아온 아들을 위한 잔치 음식으로, 온 동네가 웃음판이 되어 함께 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그때 흰떡이 생각나서 찾아보니 딱딱한 돌처럼 굳어서, 그냥 집에 모셔두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그 집은 살림이 일어서 의식이 걱정 없게 되었다.
이런 일이 있은 뒤, 경상도 봉화군 대현리에 사는 조씨네 집안으로 시집을 간 딸이 댕기러 왔다가. 친정 아버지가 용궁에 가서 떡을 가져왔다 하니 그걸 보여 달라고 졸랐다. 그렇지만 아무리 딸이라도 그걸 안 보여줬는데, 아버지가 안 보여주니 이번엔 어머니한테 자꾸 조르니....어머니는 딸을 더 귀여워 하니까 안 보여줄 수 가 있나? 그래서 그 돌을 보여 주었는데.. 그만 깜 쪽같이 그걸 훔쳐가 버렸다. 그 뒤로 엄씨네는 살림이 찌들기 시작하니 이상해서 쌀독을 열어보고 그 돌이 없어진걸 알았다. 그래서 엄씨네는 망해 버렸는데 엄씨가 죽자 등골(인근의 지명)에 장사 지냈다.
그런데 뒤에 이 묘자리를 옮겨야 될 사정이 생겨서 어디로 옮길까 걱정을 하던 중... 그 사위의 묘가 대현리에 있었는데 그 산소는 아주 유명한 명당 터였다. 가난해진 엄씨네의 후손들은... 자기네가 이렇게 몰락한 것은 사위 조씨네가 그 돌을 훔쳐간 때문이라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서 엄씨의 유골을 조씨의 무덤 위에다 첨장을 해 버렸다. 그러자 조씨네는 자기들 조상의 묘 위에 엄씨네가 무덤을 옮겨 쓴 것을 알고 펄펄 뛰면서 묘를 파내려고 하자 집안의 어른 한분이 이건 옛날 우리 할머님이 친정에서 돌을 가져와서 살림이 일고 그댁은 살림이 줄어 들었는데 지금 이렇게 사는 것도 다 그 어른의 덕이니 그걸 생각해서라도 우리가 참는게 도리가 아니겠느냐..?" 이렇게 만류하니 그 후손들은 그제서야 흥분을 가라 앉히고 눈감아 주기로 했다고 한다..
첫댓글 좋은곳에 다녀오셨네요? 애써 찍어올리신 사진 잘~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구경 잘 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정성스럽게 찍은사진 잘보고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