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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플레마르코스: 올바름이란 친구에게는 이로움을 주고 적에게는 해로움을 주는 기술이다(P.19).
트라시마코스: 올바름은 나쁨이라 하기보다는 고상한 순진성이라 하고 올바르지 못함은 악의 보다는 분별력이라 한다(P.36).
올바름이란 훌륭함이자 지혜라는 것, 그리고 올바르지 못함이 나쁨이자 무지라는 것(P.38).
소크라테스: 올바름이란 영혼의 뛰어난 상태이며 올바르지 못함이란 그 나쁜 상태라는 것. 올바른 사람은 행복하지만 올바르지 못한 사람은 불행하다(P.42).
나의 의견은 올바름이란 남에게 피해를 안주고 항상 옳고 정당하다.
2권
글라우콘: 좋은것은 첫째 기쁨이나 해롭지 않은 즐거움, 둘째 그 자체도 좋고 결과도 좋은 것으로써, 지혜나 시각 또는 건강함 따위이다(P.45). 올바름의 본질은 법을 제정하고 계약을 맺는 이유이며, 이런 것들에 의해 내려지는 지시를 합법적이며 올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법은 강제력 때문에 평등을 존중할 뿐이다(P.47). 올바른 사람은 태형이나 사지가 뒤틀리는 고문 등 온갖 고초를 겪은 뒤에야 깨달으리라는 겁니다. 친구들에게 이로움을 주고 적에게는 해로움을 주며, 신들에게 제물도 넉넉히 바칩니다(P.50).
아데이안토스: 올바름과 훌륭함은 아름답지만 수고스러운 것이며 나쁨과 올바르지 못함은 달콤하지만 수치스러운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합니다(P.52). 평판이 아니라 그 본성 때문에 올바름이 좋음에 속한다는 말씀이셨지요(P.54).
소크라테스: 많은 사람들이 서로 필요한 것을 충족시키면서 같은 곳에 모여 살게 된 것이지 이것이 나라 또는 도시국가이다(P.55). 나라가 수립하는 데는 우리의 필요가 커다란 역할을 한다. 그 필요 가운데 으뜸은 생존을 위한 음식물이고 다음은 주거이며 의복과 같은 것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본성이 서로 달라서 저마다 다른 일을 하는 데에 적합하다(P.56). 시장, 화폐, 임금노동자 전쟁의 기술도 생겨난다(P.57, 60).
수호자의 신체적 조건과 기개라는 심적 조건이 분명히 밝혀졌다(P.61). 수호자에 비유한 동물 즉 개는 혈통 좋은 개들은 낯익은 사람에게는 아주 온순하지만 모르는 사람에게는 무척 사납다. 배움을 사랑한다는 것은 지혜를 사랑한다는 것. 친근한 사람에게 온순하려면 배움을 좋아하고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훌륭한 수호자가 되려면 지혜를 사랑하면서도 기개를 지녀야 한다(P.62).
이들을 양육하고 교육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자. 교육을 보면 몸을 위한 교육인 체육과 마음을 위한 교육인 음악이 있다(P.63).
체육보다 음악에 대한 교육을 먼저 실시해야 한다. 모든 일에는 시작이 가장 중요하며 어린이의 경우 특히 더 그러하다는 것을 잘 안다. 그 시기에 가장 유연하고 남의 이야기를 가장 잘 받아들인다. 훌륭한 내용을 받아들이고 그렇지 못한 것은 거절해야 한다(P.64).
어린 사람들은 무엇이 숨은 뜻이고 무엇이 아닌지를 판별할 수 없고, 또 어릴 적에 굳어진 생각은 씻어 내기 어렵기 때문이지. 그런 까닭에 이들에게는 처음부터 훌륭함에 관하여 가장 훌륭하게 지어진 것들만 들려주도록 하야야만 한다(P.65).
시인들이 이야기를 지을 때 따라야 할 규범을 만들어야 한다. 첫째 규범은 신은 선이다. 선함은 이로운 것이며 따라서 행복의 원인이 된다(P.66). 둘째 규범: 내적, 외적 영향을 가장 덜 받는 것은 가장 건강하고 가장 강하다. 영혼도 가장 용감하고 분별 있는 경우엔 외부의 영향을 적게 받는다. 신은 모든 면에서 가장 훌륭하다 그리고 이미 완벽하게 아름답고 훌륭한 존재이다. 세상에 스스로 속으려는 사람은 없다(P.67).
3권
소크라테스: 훌륭한 사람은 자족할 수 있다(P.72).
이야기나 시는 모두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일들을 풀어내는 화법이다. 이에는 단순 화법의 방식과 모방의 방식, 그리고 양쪽을 모두 이용한 방식이 있다(P.76). 시인이 자신을 숨기지 않고 이야기하면 이는 모방이 없는 단순 화법이다(P.77). 이외에 모두 모방으로만 이루어지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즉 비극이다. 비극이니 희극이니 하는 것은 모두 모방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시가는 시인 자신의 단순 화법으로 이루어지고 또 서사시는 같은 것은 양쪽 모두 이용한 것이다(P.78). 가수도 배우도 되는 것은 불가능하며 희극배우도 비극배우도 된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모방을 한다면 용감하고 절제있고 경건하며 자유로운 사람만을 모방할 것이지 비굴한 짓이나 창피스런 것을 모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야기 전개방식과 이야기의 말투를 놓고 볼 때 훌륭한 사람이 함직한 스스로 말하는 방식과 그 반대되는 사람이 함직한 의존적인 방식이 있다. 절도 있는 사람이라면 훌륭한 사람의 말투와 행동을 모방할 뿐 아니라 이런 모방을 부꾸러워하지는 않을 것이다(P.79). 절도가 없고 비천한 사람은 온갖 것들을 이야기하면서 모든 것을 진지하게 모방하려 한다. 심지어 천둥소리라든가 도르래 소리 같은 시끄러운 소리나 악기 소리와 새소리까지 말이다. 이야기에 리듬을 붙인다면, 옳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의 한 가지 리듬만 사용한다. 같은 말투에 변화가 작으니까. 하지만 이와 반대되는 사람은 거의 모든 화음과 리듬을 사용할 것이다(P.80). 시인이나 이야기 작가를 채용한다면, 그는 우리에게 훌륭한 사람의 말투를 모방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규범도 있어야 한다. 이로써 우리는 음악 속의 이야기나 신화에 관한 논의를 끝맺었다.
이제 음악과 서정시의 양식에 관해 논의해야겠다. 노래가 노랫말, 화음과 리듬으로 이루어진다. 노랫말은 우리가 앞서 논의할 규범은 이 노랫말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화음과 리듬은 또한 노랫말을 따라야 하고 우리의 이야기에는 비탄이나 한탄이 결코 필요 없다(P.81). 자네는 음악에 밝으니 비탄조의 화음이라든가 유약함이나 주연에 맞는 화음이 어떤 것들인지 알고 있다. 나는 화음에 대해 모른다. 하지만 용감한 사람의 어조와 억양이라든가 자신의 불운을 끗끗하게 막아 내는 사람의 어조와 억양을 적절하게 모방하는 화음을 남겨 둘 필요가 있다. 기도하듯 겸손하며 절제 있게 행동하는 사람의 어조와 억양을 모방하는 화음 또한 남겨두는 필요가 있다. 기도하듯 겸손하며 절제 있게 행동하는 사람의 어조와 억양을 모방하는 화음 또한 남겨 두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노래와 서정시에 모든 화음을 연주 할 악기가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복잡 미묘한 리듬이나 온갖 종류의 운율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예절 바르고 용감한 삶을 나타내는 리듬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이 좋다. 그들 리듬이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의 노랫말을 따르도록 해야 한다(P.82).
글라우콘: 리듬이 조성되는 방식에 세 가지가 있다(P.82).
소크라테스: 우리는 음악 이론가 다몬과 상의할 수 있다. 비굴함이나 오만함 같은 나쁜 상태에 적절한 선율은 무엇이며 이와 반대되는 것에 적합한 것은 어떤 리듬인지에 대해 말이다. 우아함과 품위 없음이 좋은 리듬과 나쁜 리듬을 따른다는 것을 구별된다. 좋은 리듬과 나쁜 리듬은 좋은 말투와 나쁜 말투를 닮고 화음과 불협화음도 말투를 닮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원칙에 의해서 리듬과 화음이 노랫말을 따른다. 노랫말과 말투는 다시 영혼의 성품을 따른다. 말투의 아름다움과 화성의 우아함과 좋은 리듬은 좋은 성품을 따른다. 좋은 성품이란 어리석음을 완곡하게 표현할 때의 순진함이 아니라 진정 훌륭한 성품을 말하는 것이다(P.83). 그림과 같은 기예를 비롯한 직조기술과 자수와 건축술과 각종 장식물 제작기술에도 있고 인체의 구조를 비롯한 모든 생물의 구조에도 있다. 품위 없음과 나쁜 리듬과 부조화는 나쁜 말씨와 나쁜 성격을 닮은 반면, 그 반대의 것들은 절제있고 좋은 성격을 닮고 모방한 것이다. 아름다운 작품들을 접하게 됨으로써 어린 시절부터 아름다운 말을 닮고 이에 친근해지도록 한다. 음악교육이 중요한 것은 리듬과 화음은 마은의 내면 깊숙이 젖어 들어, 옳게 교육을 받는 사람은 우아한 사람으로 만들며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 반대로 만든다는 이유이다(P.84) 또 음악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이라면 좋지 못한 것들을 잘 알아채서 이를 싫어하는 반면 좋은 것들을 칭송하면서 마음 속에 받아들임으로써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한다. 논거는 없어도 어려서부터 추한 것을 미워했던 사람인 경우, 음악 교육을 받음으로써 그 논거를 알게 되어 기뻐할 것이라는 이유이다. 글의 이치를 깨닫게 되는 것은 글의 형식을 간과하지 않으면서도 내용을 파악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 때문에 음악교육도 이와 같다. 수호자가 되는 교육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음악에 밝은 사람, 교양이 있는 사람이 되는 과정도 이와 같다네. 절제와 용기와 자유로움과 고매함 따위의 것들이나 또한 그 반대되는 것들이 어디에서 나타나고 어디에 담겨있는가를 깨달아야 한다. 어떤 사람의 영혼과 외모에 훌륭한 성품이 깃들어 있다면 가장 아름다운 것은 가장 사랑스런 것이고 음악에 밝은 사람은 이런 사람을 사랑한다(P.85). 올바른 사람은 본디 질서 있고 아름다운 것에 대해 절제 있고 교양 있게 사랑하는 것이다. 올바른 사랑에 어떤 광적인 것이나 무절제함을 갖다 붙일 수 없다.(P.86).
젊은이들은 음악 다음에 체육 교육을 받아야 한다. 체육 교육도 어릴 적부터 올바르게 받아야한다. 훌륭한 마음이 몸을 후륭하게 만들어 준다(P.87).
수호자들은 술을 삼가야 한다. 선수들이 틈만 나면 졸고 정해진 일과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큰 병을 앓는다. 전사들에게는 한결 정교한 단련이 필요하다. 이들은 잠이 적어야 하고 예리하게 보고 들으며 전투에 임했을 때에는 물과 음식과 태양열이나 혹한 따위의 잦은 변화에도 건강을 유지해야 한다. 최선의 체육은 음악과 유사하다. 호메로스한테서도 그런 것들을 배울 수 있다. 그는 원정에 나선 영웅들이 생선이나 삶은 고기 대신 구은 고기만 먹는 것으로 묘사했다(P.88). 몸이 좋은 상태가 되려면 양념과 같은 것을 삼가해야 한다. 복잡하고 호화로운 요리, 매춘부 그리고 다양한 맛좋은 과자를 비난해야 한다. 식사와 일상생활을 화음과 리듬으로 만들어진 노래에 비유한다. 다양성은 음악과 관련해서 마음에 무절제를 낳고 체육과 과련해서는 몸에 병을 낳지만, 단순성은 마음에 절제를 낳고 몸에 건강을 낳는다. 의사와 재판관이 필요하다는 것은 나쁘고 부끄러운 교육의 증거이다. 재판관이 정해 주는 것을 올바름으로 삼으니 부끄러운 일이자 교양 없음의 증거이다(P.89). 의사는 마음으로써 몸을 치료하기 때문에 마음이 나빠서는 치료가 불가능하다(P.92). 재판관은 마음이 훌륭하고 올바르며 건전하게 판단하려면 그 자신 그런 체험도 없고 또한 그런 것들로 더렵혀지지 말아야 한다. 훌륭한 재판관은 젊은 사람이 아닌 나이 든 사람이어야 한다. 올바르지 못함은 늦게야 배우기 때문이다. 또 자신의 영혼에 올바르지 못함이 친숙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낯선 영혼들 속에 있는 낯선 것이 어떻게 나쁜지를 오랜 노력을 통해 알게 되며, 자신의 경험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이용하기 때문이다(P.93).
글라우콘: 체육만 해온 사람은 필요 이상으로 사나워지는 반면, 음악만 해온 사람은 또한 지나치게 부드러워진다.
소크라테스: 온순함은 지혜를 사랑하는 경향이 있고 너무 느슨해지면 필요 이상으로 부드러워지지만, 훌륭하게 양육되면 온순하고 단정하게 된다(P.95). 양면이 조화를 이룬 사람의 영혼은 절도가 있고 용감하다. 스스로를 음악에 내맡기고는 달콤하거나 비단조의 화음으로 이루어진 노래를 평생 흥얼거린다면 그가 만일 기재를 가진 사람이라면, 처음에는 쓸모없이 단단하던 그의 성향은 차츰 부드러워져 갈수록 쓸모 있는 것이 되어 갈 것이다(P.96). 신이 음악과 체육이라는 교과목을 인간에게 주었다면 기개의 측면과 지혜를 사랑하는 측면을 위한 것이다. 영혼과 육신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기개와 애지의 조화를 위해서이다. 음악과 체육을 가장 훌륭하게 혼합시켜 이를 영혼에 제공해 주는 사람은 가장 조화로운 사람이다. 이것들이 교육과 양육의 규범이라 하겠다(P.97).
통치자들은 수호자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사람 즉 나라를 가장 잘 지키는 사람이어야 한다, 슬기롭고 유능한 사람이며, 나라에 대해 마음쓰는 사람들이다. 나라를 위해 무엇인가 할 일을 해야 한다는 소신을 가장 훌륭하게 지킬 수호자가 누구인지 우리는 찾아야 한다(P.98).
누가 좀처럼 유혹에 빠지지않고 의젓하며, 자신과 스스로 배운 음악의 훌륭한 수호자로 보이며, 단정하고 조화로운 모습을 잃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자신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 가장 유용한 사람이다 즉 임명할 통치자나 수호자이다. 이것이 통치자와 수호자의 선출 및 임명 방법이다(P.99).
통치자들과 수호자들은 땅 속에서 만들어지고 양육됐으며, 그들의 어머니인 대지가 그들을 지상에 올려 보냈다는 이야기이고, 그래서 누군가가 그들의 고장을 공격해 오면, 그들이 마치 어머니를 위하듯 자기네 고장을 위해, 그리고 마치 같은 흙에서 태어난 형제들을 위하듯 시민들을 위해 적을 막아 내도록 설득한다. 다스림의 기능을 수행할 사람에게는 태어날 때 황금을 섞고 보조자들에게는 은을 섞었고, 농부나 다른 장인에게는 쇠나 구리를 섞었다. 쇠나 청동의 성분을 지님 수호자가 나라를 지키게되면 나라가 멸망하리라는 신탁의 말씀이 있다(P.100).
흙에서 태어난 자들을 무장시켜 통치자들의 지도를 받도록 해야 한다. 내국민이 국법을 어길 경우 이들을 잘 통제할 수 있다. 반면 외적의 침입도 막아 낼 수 있을 거점이다(P.101). 그러기 위해 삼가야 할 삶의 방식이나 거주생활은 첫째 어떠한 사유재산도 가져서는 안되며, 아무나 출입할 수 없는 집이나 곳간을 갖고 있어서도 안 된다. 생활필수품은 필요한 정도만을 시민들로부터 보수로써 받아야 한다. 또한 이들은 야영하는 군인들처럼 공동으로 생활을 해야 한다. 이들은 세속적인 금은이 전혀 필요하지 않으며 금은을 다루거나 만지지 말아야 하며 금은을 몸에 걸쳐도 안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들은 자신도 구하고 나라를 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수호자들의 거쳐나 그 밖의 것들과 관련해서 법제화해야 한다(P.102).
제4권
우리가 나라를 수립한다 할 때 가장 유념해야 할 것은 어느 한 집단이 행복하게 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 전체가 최대한 행복해지도록 하는 것이다. 올바름은 그런 나라에서 가장 잘 찾아볼 수 있다(P.104).
법률과 나라를 수호할 사람들이 거짓된 사람들이라면, 이들은 나라를 송두리째 파멸시킬 것이다. 나라를 잘 경영하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수호자뿐이다.
보호자와 수호들이 자연의 기능을 수행할 때 가장 훌륭한 일꾼이 되도록 만들고 설득하는 일이다. 나라 전체가 강대해지고 훌륭하게 기반이 잡힐 것이다.
부와 빈곤의 문제이다. 도공이 가난해진다면, 자기 기술이 필요한 도구 같은 것들을 마련 할 수 없고 그리하여 제품을 더 볼품없게 만들며 자신이 가르치는 다른 사람들도 한결 뒤떨어진 장인들로 기른다. 부는 사치와 게으름과 변혁을 초래하고 빈곤은 변혁도 가져오지만 노예 근성을 낳고 기량을 떨어뜨린다(P.106).
나라의 규모를 어느 정도로 해야 하는지 일러주고, 영토의 크기는 규모에 맞추어 경계를 긋되 다른 땅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않도록 해주는 기준. 나라를 키운다고 해도 어느 한도는 넘기지 않고 그 이상으로는 키우지 말라는 기준이다(P.108).
모든 시민이 저마다 타고난 성향에 따라 한 가지 기능에 맞게 배치되어야 한다. 각자는 한 사람처럼 되고 나라 전체 또한 한 나라로 되는 것이다.
교육과 양육. 훌륭한 교육을 받으면 절도 있는 사람이 되어 모든 것을 쉽게 파악할 것이다. 아내의 소유나 혼인과 출산의 문제이다.
나라의 정치체제는 출발이 좋으면 선순환을 이루며 성장한다. 양육과 교육이 건전하게 유지됨으로써 훌륭한 성향이 생겨나고, 이들 후륭한 성향의 사람은 다시 건전한 교육을 통해 선배들보다 나은 사람으로 자랄 것이기 때문이다.
아데이만토스: 가락이나 법의 위반은 모르는 사이에 행해져 성격과 관행을 슬그머니 바꾸지만, 갈수록 법률과 나라의 정치체제에도 영향을 미쳐 마침내는 모든 것을 뒤집기에 이를 것이다(P.109).
소크라테스: 아이들의 놀이도 법에 따라야 한다. 그 놀이 자체가 위법이고 아이들도 그렇다면, 준법적인 사람들이 자라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이들이 놀이를 할 때 음악을 통해 후륭한 법질서를 받아들이게 된다면 모든 면에서 후륭한 법질서가 배양될 것이다.
좋은 것은 스스로 좋은 것들을 끌어들여 더 커다란 무엇인가를 만든다.
시장 상거래에 관한 자세한 규칙들은 시장조례, 치안조례와 항만조례가 있다(P.110).
델피의 신 아폴론이 보기에는 가장 중요하고도 으뜸가는 것은 신전의 건립과 제물, 신이나 수호신 또는 영웅에 대한 섬김에 관한 것들이 있다. 또 죽은자의 매장에 관한 것이나 죽은 자에 대한 봉사와 관련된 것들이 있다(P.112).
나라가 올바르게 수립되면 나라가 분명히 지혜롭고 용기 있으며 절도 있고 또 올바르다는 것이다.
지혜, 용기, 절제와 올바름 네 가지 가운데 이 나라에서 명백하게 첫째가는 것은 지혜이다. 지혜롭다는 것은 이 나라가 분별 있다는 뜻이고 분별은 일종의 앎이다.
글라우콘: 지식은 나라를 수호하는 기능으로 우리가 완벽한 수호자들로 불렀던 그 통치자들이 그런 지식을 지니고 있다(P.113).
소크라테스: 두려워해야 할 것들은 입법자가 교육을 통해 지시한 것들이다(P.114).
용기는 보전을 뜻한다. 법에 의한 교육을 통해 두려워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와 관련해 생긴 소신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때 유지란 고통과 즐거움 또는 욕망과 공포, 그 어떤 경우에도 이 소신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군인들을 선발해 음악과 체육을 교육시킬 때 이들이 법률을 최대한 받아들이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적절한 교육을 받은 덕분에 강한 쾌락과 고통과 공포와 욕망으로도 이들을 탈색시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두려워해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에 관한소신을 계속 유지하는 것 또는 그 능력을 용기라고 본다(P.115).
절제는 지혜와 용기보다 화음에 더 가깝다. 절제란 일종의 질서이며 쾌락과 욕망의 억제이기 때문이다. 절제를 두고 "자기 자신을 이긴다"고 표현한다.
나쁜 교육 등의 결과 그 반대의 경우가 될 때 우리는 이를 "자기 자신에게 진" 무절제한 것이다(P.116).
어떤 분야에서 한결 나은 부분이 한결 못한 부분을 지배한다면 이를 가리켜 절제 있다고 한다.
지성과 바른 소신에 의해 이끌어지는 단순하며 절도 있는 욕구는 성향도 훌륭하고 교육도 훌륭하게 받은 사람들에게 찾아 볼 수 있다(P.117).
절제란 일종의 화음을 닮았다. 절제는 가장 약한 소리를 내는 사람과 가장 강한 소리를 내는 사람 그리고 중간 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같은 노래를 합창해서 내는 화음과 같다(P.118).
우리가 나라를 수립하자고 하면서부터 늘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 올바름이다(P.119).
올바름이 이 나라의 훌륭함에 이바지하는 무게가 이것들을 필적한다.
"자신의 것을 소유하는 것"과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 올바름이라는 데에 합의한다(P.120).
격정이나 기개를 지닌 계급의 사람들은 트라케나 스키타이 지방의 사람들로부터 유래되었다고 할 수 있고, 배움을 좋아하는 계급을 우리 고장인 아테네로부터, 그리고 돈을 좋아하는 계급은 페니키아나 이집트 사람으로부터 유래되었다(P.122).
이들의 성향은 [첫째] 하나의 어떤 사물을 서로 반대되는 일을 동시에 행하거나 겪을 수 없다, [들째] 동의와 의의, 욕구와 협오, 이끌림과 멀리함 따위는 서로 반대되는 부류다. [셋째] 이런 욕구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목마름과 배고픔 자체에 대해 말해 보자(P.124).
어떤 특징 종류의 지식은 어떤 특정 종류의 대상에 대한 지식이다.
그 쪽으로 이끌고 당기는 것은 어떤 느낌이나 감정이고, 이런 것들을 막는 것은 이성이다(P.125).
어떤 사람이 추론을 할 때 이를 영혼의 이성화 성향이라고 부르고 반면 목마름과 같은 욕구들과 관련해서 흥분 상태에 있을 때 비이성적이며 욕구적인 성향이라 부른다(P.126).
글라우콘: 나라의 보조자들이 통치자들에게 순종한다(P.127).
소크라테스: 영혼에도 격정 또는 기개의 성향이 있다.
개인을 용기 있게 만드는 성향과 나라를 용기 있게 만드는 계급도 같은 부류이며, 개인을 올바르게 만드는 성향과 나라를 올바르게 만드는 계급도 같은 부류이다.
나라와 개인에게 똑같이 세 가지 성향이 있고, 각 성향이 제 기능을 할 때 나라든 개인이든 올바르게 된다는 논의를 계속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음악 교육과 체육교육이 필요하다(P.128).
지혜로우며 영혼 전체를 위해 선경지명을 지니고 있는 이성적 성향에게는 지배하는 일이 적합하고, 격정 또는 기개의 성향에는 이성적 성향에 복종하며 이에 협력하는 일이 적합하다.
음악과 체육 교육이 이 둘을 조화롭게 만든다. 이성적인 성향은 훌륭한 말과 학문으로 키워 주며, 격정 또는 기개의 성향은 말리는 말로써 이완시키며 화음과 리듬으로 순화시킨다(P.129).
이 두 성향은 영혼과 신체를 외부의 적들로부터 가장 훌륭하게 막아보려고 한다.
절제 있는 사람은 세 요소가 서로 화합하며, 지배하는 이성적 성향과 지배받는 기개와 욕구의 각 성향 사이의 역할 분담에 대해 의견의 일치를 보면서, 두 지배 받는 쪽이 반목하지 않는 경우이다(P.130).
올바름의 기원을 찾고 그 윤곽을 잡았다(P.131).
자신의 것들을 잘 조절하고 스스로를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음계의 세 음정 즉 높은 음, 중간 음과 낮은 음이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올바르지 못함은 내분, 참견과 간섭이라 할 수 있다(P.132). 모반이란 복종하는 것이 어울리는 성향이 오히려 지배하려 드는 것을 말한다.
올바름이나 올바르지 못함은 건강한 것이나 병든 것이 영혼에 나타난 것이다.
올바른 것들을 행하면 올바름이 생기고 올바르지 못한 것들을 행하면 올바르지 못함이 생긴다.
건강하다는 것은 신체의 여러 부분이 지배하고 지배받는 관계를 각각의 성향에 맞추어 확립한다는 것이고, 질병이 생긴다는 것은 그 관계가 성향에 어긋난다는 것이다(P.133).
훌륭함이란 영혼의 건강과 아름다움과 좋은 상태를 말하는 반면, 나쁨이란 영혼의 질병과 추함과 허약함을 말한다.
나라의 형태도 다섯 가지이고 영혼의 유형도 다섯 가지이다(P.134).
첫째로 이미 언급한 두 가지 형태가 있다. 뛰어난 한 사람이 통치하는 경우의 군주 정치체제와 여럿이 통치하는 경우의 귀족 정치체제. 양육과 교육을 제대로 한다면, 이 나라의 중요한 법율을 바꾸지 않을 터이다(P.135).
제5권
아데이만토스: 친구들의 것은 공동의 것. 공유에는 여러 방식이 있다(P.137).
글라우콘: 모든 것은 공동으로 해야 한다(P.138)
소크라테스: 여성에 대한 체육 교육이나 음악 교육이 가져다줄 여러 변화라든가 무기의 소지와 승마에 관한 일들을 놓고 사람들이 놀린다고 해도 이를 두려워해서는 안 되겠다. 법을 새로 개척하는 일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P.139).
다른 성향은 다른 일에 종사해야 한다는 것과 여자의 성향은 남자와 다르다는 데에 동의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같은 일에 종사해야 한다(P.140).
어떤 남성과 어떤 여성이 기술이나 일의 측면에서 서로 다르다면, 각각에 맞는 일에 배정해야 한다(P.141).
무엇인가와 관련해 성향에 맞는 사람이란 그것에 관한 것을 쉽게 배우거나, 잠시 배우고도 많은 것을 알아내거나, 신체적 기능이 그 사람의 생각에 충분히 봉사하는 경우이다.
나라를 경영하는 일에서는, 남녀가 따로 없이 성향만 맞는다면 어떠한 일이든 관여할 수 있다.
여성도 성향에 따라, 의술이나 음악 또는 체육이나 전쟁에 능숙한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격정적인 여성도 있고 소심한 여성도 있다(P.142).
나라의 수호와 관련해서는 남녀가 자질이 같다. 이런 자질의 여성은 같은 자질을 지닌 남성과 함께 살면서 함께 나라를 수호하도록 선발되어야 한다.
여성 수호자에게 음악과 체육 교육을 받도록 하는 것은 본성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
수호자의 성향을 가진 사람을 교육할 때, 남성을 수호자로 만드는 교육과 여성을 수호자를 만드는 교육이 다르지 않다(P.143).
여성 수호자들은 옷을 걸치는 대신 훌륭함을 걸쳐야 하며 전쟁을 비롯해 나라의 수호에도 관여해야 하지만, 다른 일을 해서는 안 된다(P.144).
여성도 그 성향이 맞고 자질만 된다면 수호자가 될 수 있다.
모든 남자의 모든 여자는 공유해야 한다. 아이들도 공유해야 한다. 어떤 부모도 자기 자식을 알아서는 안 된다(P.145).
공동 식사를 하며 공동의 주거에서 함께 산다. 체육 훈련이나 양육도 함께 하며 본성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성적 관계도 맺는다.
혼인을 최대한 성스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P.146).
통치자들이 최상급이어야 할 필요성이 크다.
통치자들은 다스림 받는 사람들의 이로움을 위해 많은 거짓말과 속임수를 써야 할 것 같다.
혼인과 출산 문제를 규제하는 데에 그런 것들이 법의 이름으로 많이 필요하다.
최선의 남자들은 최선의 여자들과 되도록 자주 성적 관계를 가져야 하며, 그 자식들은 잘 양육되어야 한다(P.147). 혼인의 수 또한 통치자 재량에 맡겨야 하는데, 이는 전쟁과 질병 등의 문제를 고려할 때 남자의 수를 최대한 일정하게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젊은이들 가운데에서도 전쟁이나 여타의 분야에서 빼어난 사람은 명예와 포상뿐 아니라 여성과 자주 동침할 편의가 주어져야 한다. 용기있는 이런 사람들로부터 최대한의 아이들을 얻어 내기 위해서다.
여자 적령기는 20년이고 남자의 적령기는 30년이라 본다(P.148).
여자는 20살에서 40살 될 때까지 나라를 위해 자식을 낳는 반면, 남자는 절정기인 이때 즉 25살에서 55살이 될 때까지 나라를 위해 자식을 낳는다.
나이가 많거나 어린 사람이 출산에 가담하는 것은 경건하지도 않고 올바르지도 못하다. 이때 태어나는 아이는 무서운 무절제의 산물이다. 남녀가 아이를 낳을 적령기를 벗어나면 자유롭게 성적 관계를 맺도록 내버려두게 되겠지만, 직계 아들 딸이나 손자손녀 또는 직계의 부모와 할머니 할아버지의 성적 관계는 금지되어야 한다.
결혼할 기준으로 7개월에서 10개월 사이에 태어나는 모든 아이들을 너나없이 자식으로 삶고 아이들은 이들을 부모로 삼으며, 마찬가지로 손자 손녀와 할머니 할아버지도 이런 식으로 부르게 될 것이다 또 같은 시기에 태어난 아이들은 모두 서로 형제자매로 부른다.(P.149).
법을 제정하고 나라를 수립 할 때 무엇을 주된 목적으로 삼아야 하는지를 자문함으로써 공통의 기반을 찾을 필요가 있다.
같은 즐거움이나 슬픔을 놓고 모든 시민이 같이 기뻐하거나 괴로워할 때 나라가 단결된다.
내것이나 내 것이 아닌 것에 대한 생각을 최대 다수가 공통으로 갖는 나라가 가장 훌륭하게 경영되는 것이다(P.150).
글라우콘: 가장 훌륭하게 다스려지는 나라는 한 사람의 상태와 가깝다. 적어도 훌륭한 법질서를 갖춘 나라라면 말이다.
소크라테스: 통치자와 국민을 시민이라 부른다.
글라우콘: 통치자는 군주라 부른다. 민주적으로 다스려지는 나라에서는 통치자라 부른다.
평민은 통치자를 구원자나 보호자라 부르며 통치자는 평민을 보수를 주는 자 또는 부양자라 부른다. 다른 나라에서는 통치자들이 국민을 노예라 부르기도 한다(P.151).
소크라테스: 어른을 공경하고 어른 말에 순종할 것이며, 그것을 어기는 행동은 경건하지도 않고 올바르지도 못한 것이 된다고 알려줄 법규 말이다.
생각과 표현이 공유되면 즐거움과 고통도 공유되지 않는다. 같은 일에 같은 관심을 갖게 되고, 공통의 관심은 즐거움과 고통에 대한 공통의 감정을 낳는다. 수호자들의 처자식 공유가 큰 몫을 한다(P.152).
참된 수호자라면 생활비를 수호에 대한 보수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받아서, 공동으로 사용해야 한다.
참된 수호자들은 남들과 따로 가질 수 있는 어떤 것을 내 것이라면서 자신의 집으로 가져간다거나, 아내와 자식들도 따로 갖는 다거나, 사적인 즐거움이나 고통을 생기게 함으로써 나라를 분열시키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신념과 동일한 목표를 바탕으로 즐거움과 고통에 대해 최대한 공감하도록 해야 한다.
서로 조신하게 행동하면서 서로를 지켜 준다는 것은 훌륭하고 올바른 것이다(P.153).
이 법으로 인해서, 모든 면에서 사람들이 서로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이런 분쟁이 없어지는 만큼, 수호자들이나 시민들이 서로 갈라질 위험도 없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들에 대해 하는 아첨, 아이들 양육과 부양을 위한 돈벌이, 빚, 가계를 꾸려 나가느라 겪는 어려움과 고통 등이 그것이다(P.154).
아이들 교육이나 시민의 수호와 관련해서 남성과 여성이 공동으로 관여하는 문제에 찬성하는가?
전쟁과 관련된 갖가지 봉사와 보조 활동과 부모 봉양을 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P.155).
이들이 수호자들보다 더 신중하게 자식들을 경험시키고 관찰시키면서 교육을 해야 한다.
전쟁에 능숙한 사람이 되려면 전쟁과 관련된 일들을 관찰하고 모험을 해야 한다.
인간사란 생각 밖으로 많은 일이 일어난다. 어릴 때부터 이들에게 날개를 달아 주어야 한다. 그것은 승마를 배우게 하는 것이다(P.156). 나이 많은 인도자를 따라감으로써 안전하게 보호를 받을 수도 있다.
비겁함 때문에 대오를 이탈하거나 무기를 버린 자가 있다면, 그를 장인이나 농부로 강등해야 한다.
적에게 생포된 자는 그 적에게 선물이나 노획물로 이용된다. 최고의 무공을 세우거나 평판을 떨친 자는 화관도 받고 인사도 받을 테고 훌륭한 사람에게는 혼인의 기회를 더 많이 주어 자식들이 최대로 태어나도록 해야 한다.
호메로스도 훌륭한 젊은이 누구에게나 이런 식의 영광을 주는 것이 올바른 일이다(P.157).
지혜를 사랑하는 철학자들이 나라의 군왕이 되어 다스리거나 아니면 현재의 군왕이다. 군주들이 충분히 철학을 하지 않는 한, 그리하여 정치권력과 철학이 한데 합쳐지지 않고 다양한 성향들이 따로따로 향해 가는 한, 나쁜 것들의 종식은 있을 수 없다(P.162).
철학이란 철학에 종사하면서 동시에 나라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 성향에 맞지만 누군가는 철학에 종사하기보다는 지도자를 따르는 것이 성향에 맞다는 것을 보여준다(P.163).
우리는 철학자도 지혜를 욕구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일부의 지혜만 욕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지혜를 욕구한다고 보아야 한다.
참된 철학자는 진리를 보기 좋아하는 사람이다(P.164).
우리는 능력을 한 부류로 시각이나 청각을 말한다. 능력 자체는 빛깔도 모양도 없다. 다른 대상에 관계해 다른 작용을 해내는 것을 다른 능력이라 한다(P.167).
의견과 인식이 모두 능력의 일종이지만 다른 종류의 능력이다. 그리고 의견과 인식은 그 본성상 다른 일을 할 수 있으며 각각 다른 대상에 관계한다.
판단은 의견을 갖기 위한 것이다(P.168).
글라우콘: 별개의 능력은 별개의 대상에 관계한다.
소크라테스: 있지 않은 것은 무지를 대응시켰고 있는 것에는 인식 또는 앎을 대응시켰다(P.169).
의견은 인식보다 어둡고 무지보다는 밝다(P.170).
제6권
소크라테스: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의 성향은 늘 존재하며 생성, 소멸하지 않는 것, 즉 본질에 대한 배움을 사랑한다는 데에 합의한다(P.176).
진실로 배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진리에 최대한 이른다.
욕구가 학문과 같은 것들에 너무 기울면 절제가 있어 재물을 좋아하지 않으며, 낭비와 돈에의 열의와는 거리가 멀다.
철학적 자질은 저속함과도 거리가 있어야 한다(P.177).
용기와 고매함과 쉽게 배우는 능력과 높은 기억력 따위가 철학자의 훌륭함을 이루는 본질적 자질임을 더 언급할 필요가 있다(P.181).
청소년기에는 그 시기에 맞는 교육과 철학을 바탕으로 심신을 단련하고 영원이 원숙해지는 나이가 되면서부터 영원의 단련을 중진해야 한다. 이후 정치와 군복무에서 물러서는 나이가 되면 그때는 철학에 전념해야 한다.
소수의 철학자가 나라를 관리하거나, 현재 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에게 철학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생겨나기 전에는 나라든 정치체제든 개인이든 결코 완전해질 수 없다(P.189).
철학이 나라를 장악하면, 우리가 세우려던 정치체제는 실현이 이미 되었거나 되고 있거나 앞으로 될 것이다.
철학자는 절도있는 신 같은 사람이 된다(P.190).
철학자가 어떤 필연성 속에서 찾아낸 것을 바탕으로 자신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이를 인간의 성격 속에 구현하려 할 때, 그는 절제와 올바름과 시민적 훌륭함을 구현하는 사람이 된다(P.191).
정치체제 형태의 윤곽은 두 가지 주목할 것이 있다. 하나는 올바름과 아름다움과 절제 따위의 본성 자체가 무엇인지 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런 것들을 인간 속에 생기게 할 방법을 무엇인지 하는 것이다. 그것은 호메로스가 인간 속에 나타난 "신의 모습"이라고 표현한다.
지혜를 사랑하는 이런 사람들이 나라를 장악하지 못한다면 나라에든 시민에게든 악과 불행 같은 나쁜 일들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P.192).
통치자가 법률이나 관행을 정하고 시민은 이를 기꺼이 이행하는 경우이다.
정치체제의 수호자들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또 그들을 키워 내기 위해서는 어떤 교과목과 활동이 필요한지, 특히 연령에 맞는 교과목과 활동은 무엇인지 따위의 문제이다(P.193).
어떤 사람이 쉽게 배우는 능력과 좋은 기억력과 재치와 민첩성 등의 성향을 지니면서도 조용함과 안정성과 절도 있는 성향을 같이 갖추기는 어렵다.
양쪽 성향을 모두 겸비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교육을 받거나 통치하는 일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P.194).
영원에는 세 성향이 절제, 용기와 지혜로 나누어져 있다(P.195).
대중에게는 즐거움이 좋은 것이지만 세련된 사람에게는 지혜가 좋은 것이다(P.196).
인식되는 것에 진리를 부여하고 인식하는 자에게 인식하는 힘을 주는 것을 나는 좋음의 이데아라고 부르고자 한다. 이 이데아는 인식, 즉 지식과 진리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인식 대상 이기도 하다. 물론 지식과 진리 또한 훌륭한 것들이기는 하지만, 이데아는 그것들보다 더 훌륭한 것이다. 지식과 진리 또한 좋음을 닮은 부류의 것으로 여겨질 수는 있어도 좋음 자체로 보아서는 안 된다(P.200).
아데이만토스: 태양은 사물을 보이게 해 주기도 하지만 그것들에 생성과 성장의 힘 및 영양분을 제공하기도 한다.
소크라테스: 사물을 인식될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좋음인데 그것은 사물을 존제하게도 만들고 사물에게 본질 즉 실제성을 부여해 주기도 한다.
두 개의 지배적인 힘은 하나는 지성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영역을 지배하고 다른 하나는 볼 수 있는 영역을 지배한다(P.201).
보상은 진리가 아닌 것이자 의견의 대상이라 보고, 실물을 진리이자 인식의 대상이라 본다(P.202).
이성 자체는 그것을 변증술의 힘을 통해 파악한다. 이때 이성은 가정이라든가 어떤 감각적인 것들은 전혀 이용하지 않고 이데아 자체만 이용한다(P.203).
지성을 통해 알 수 있는 영역 가운데 변증술을 통해 고찰 할 수 있는 부분이 학술을 통해 고찰하게 되는 부분보다 더 명확한 것이다.
네 부분들에 대응하는 네 가지 지적 상태는 지성에 의한 앎과 추론적 사고와 확신과 상상이라 할 수 있다(P.204).
제7권
소크라테스: 교육과 관련해서 다음 같은 비유를 들면 지하 동굴 모양의 거처에서 어릴 적부터 사지와 목을 결박당한 사람들이 산다고 상상하면, 이들 가운데 누군가가 끌려나서불빛을 바라보도록 강요당한다면 고통스럽고 또 눈이 부셔서 실물울 볼 수도 없을 것이다(P.206-7).
익숙해질 시간도 필요하고 처음에는 그림자를 제일 쉽게 볼 것이고 다음에는 불속에 비친 상들을 볼 것이다, 그런 뒤에야 실물을 보게 된다.
태양을 보고는, 그것이 계절과 세월을 가져다주고 보이는 모든 것을 지배하며 모든 것의 원인이 된다는 결론을 내린다(P.208).
눈으로 보이는 부분이라 했던 것을 동굴의 거쳐로 비유하고 동굴 속의 불빛을 태양으로 비유하는 식으로 말이야. 가파른 오르막은 인간의 영혼이 지성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영역으로 등정하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아무튼 인식할 수 있는 영역에서 최종적으로 보게 되는 것은 좋음의 이데아이네. 그것은 모든 올바름과 아름다움의 원천이다. 그것은 가시적인 영역에 필요했던 빛과 그 빛의 주인인 태양을 낳을 뿐 아니라 지성을 통해 알 수 있는 영역에서도 스스로 주인이 되어 진리와 지성을 제공한다(P.209).
보지 못하는 눈에 시각을 넣어 주듯이 교육이란 것도 영혼에 지식이 없을 경우에 지식을 넣어 주는 것이다.
사람들 영혼에는 이 배움의 힘이 있고 또 그것을 담당하는 기관이 있다. 어둠 속에 있던 눈이 밝음을 향하려면 온몸을 같이 돌려야 하듯이, 영혼 안에 있는 힘과 기관도 영혼 전체와 함께 그 방향을, 생성, 소멸하는 실물의 영역에서 실제의 영역으로 바꾸어야 한다. 가장 밝은 것을 우리는 좋음의 이데아라 한다.
영혼의 다른 여러 훌륭함은 몸의 훌륭함 비슷하게 습관이나 단련을 통해 나중에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똑똑함의 훌륭함은 무엇보다도 신성함에 가깝고 그 힘을 잃는 법이 없다. 이 힘은 유익할 수도 있고 유해할 수도 있다. 똑똑하지만 사악한 사람을 종종본다(P.210).
우리가 할 일은 훌륭한 성향을 지닌 자들로 하여금 배움에 이르고 좋음을 볼 수 있도록 오르막 길을 오르게 하는 일이다.
법이란 나라의 어느 한 계급만 잘 살도록 만드는게 아니라 나라 안 모두가 그리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법이 설득과 강제라는 수단을 쓰기는 하지만 그 목적은 시민들이 화합하고 이익을 나누도록 만드는 데 있다(P.211).
그대들이 아름다운 것들, 올바른 것들, 좋은 것들의 참된 모습을 보면 이 나라는 깨어 있는 상태에서 경영될 것이다.
통치자에게 통치하는 것보다 더 낳은 삶을 찾아주면 나라가 훌륭하게 경영될 수 있다(P.212).
통치하는 일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통치를 맡겨야 한다.
광명으로 인도한다는 것은 밤과도 같은 낮에서 진짜 낮으로 향하는 영혼의 전환이며, 진정한 철학이자 실재를 향한 등정이라 할 수 있다(P.213).
영혼의 눈길을 생성, 소멸하는 실물의 영역에서 실재의 영역으로 돌려세우게 하는 교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체육과 음악을 가르쳐야 한다. 체육은 생성, 소멸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신체의 성장과 쇠퇴를 관장한다. 그래서 체육은 우리가 찾는 교과가 아니다.
글라우콘: 음악은 체육과 서로 관련을 맺으면서 습관을 통해 수호자들을 교육하는 것이다. 화음을 통해 조화로움을 가르치고 리듬을 통해 단정함을 키워 주며 이야기를 통해 또 다른 습관들을 갖게 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찾는 그런 교과는 아니다.
체육, 음악, 기술 말고 또 무슨 교과가 있을까?(P.214)
소크라테스: 수외 계산은 모든 기술과 지식에 공통이 된다.
전술을 펼치는 데에도 수와 계산은 필요하다.
지성을 통한 앎을 요구하지 않는 것은 대립되는 감각을 낳지 않는 것을 말한다. 대립되는 감각을 낳는 경우 감각으로 뚜렷이 분별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P.215).
감각이란 어떤 것을 단단하다거나 부드럽다고 지각하여 영혼에 전달한다.
영혼은 계산의 힘과 지성을 통한 앎을 불러일으켜서 그것이 하나인지 둘인지를 먼저 고찰한다(P.216).
지성을 통한 앎은 시각과 달리 크고 작음을 분리된 것으로 본다.
한쪽은 지성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 다른 쪽은 가시적인 것. 앞의 것은 사고를 불러일으키고 지성을 통한 앎을 불러일으키지만, 뒤의 것은 그런 것들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영혼은 당혹해 하면서 사고작용을 가동하고 탐구를 펼쳐 하나라는 것 자체가 대체 무엇인지를 묻는다(P.217). 그리하여 하나의 대한 공부는 실재에 대한 고찰로 이루어진다.
산술과 수론은 모두 수와 관련된 것이고 진리로 이끄는 것들이다.
수학은 우리가 찾는 교과일 수 있다. 전사는 군대의 배치를 위해 배워야겠지만, 철학자 또는 생성, 소멸하는 것에서 벗어나 존재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배워야 한다.
우리의 수호자는 전사이자 철학자이어야 한다.
이 교과를 법으로 정해서 나라를 위해 중요한 일을 할 사람들에게 익히도록 해야 한다. 이 산술 과목을 익히되, 지성을 통한 앎을 바탕으로 수의 본성까지 고찰하도록 한다. 전쟁을 위해서, 그리고 생겨나고 소멸하는 것으로부터 영혼의 눈길을 진리와 존재의 본질로 돌려세우기 위해서 이다(P.218).
이 교과는 영혼으로 하여금 진리 자체를 추구하기 위해 지성을 통한 앎을 이용하게 만든다. 그래서 필수적인 것이다.
어떤 교과가 수호자들에게 유용할까?
글라우콘: 군대가 주둔할 때나 어떤 지역을 점령할 때 또는 군대가 집합하고 행군할 때, 지휘자가 기하학에 정통할 필요가 있다(P.219).
소크라테스: 문제는 기하학이 좋은의 이데아를 더 쉽게 바라보도록 이바지하는 데 있다. 영혼의 눈길을 실재로 향하도록, 특히 좋은 이데아로 향하도록 만드는지 여부이다. 기하학이 존재의 본질을 고찰하게 만든다면 유용하다 그러나 생성, 소멸하는 것을 고찰하게 만든다면 그렇지 않다.
기하학 용어는 정사각형을 만든다거나 작도한다거나 더한다거나 하는 것이다. 생성, 소멸하는 것들과 곤련이 있다. 하지만 전체 기하학은 영원한 것에 대한 앎과 관련이 있다.
그것은 영혼을 진리로 이끄는 것이다.
기하학은 다른 교과를 배울 때도 학습효과를 크게 차이나게 만든다(P.220).
글라우콘: 천문학은 연월, 계절 따위와 관련이 있는 만큼 농사나 항해에도 유용하고 군사와 전략에도 유용하다(P.221).
소크라테스: 천문학도 마찬가지로 사람들 영혼의 눈길을 아래로 향하게 만든다(P.222).
참된 것이란 실재하는 것들의 운동이 참된 수와 참된 도형의 관계 속에서 이루워진다. 이것들은 이성과 추론적 사고를 통해 파악된다.
하늘의 장식물은 이러한 배움의 본보기로만 이용되어야 한다. 다이달로스 같은 어떤 장인이나 어떤 화가가 매우 훌륭한 그림이나 도식을 왼성했을 경우, 기하학에 익숙한 사람은 이런 것들 속에서 어떤 진리를 파악할 것처럼 진지해질 수 있으나 우습다.
천문학자라면 별들의 운행을 바라볼 때 어떤 느낌일까? 그도 그런 것들이 완벽하게 하늘의 창조자에 의해 구성되었다고 믿지 않을까? 하지만 밤낮의 길이, 이 길이와 달의 관계, 달과 해의 관계 등을 눈에 보이는 실물로 본다거나 한결같은 상태이며 이탈되는 일이 없다고 보아 열심히 연구하는 작업을 천문학자는 어리석게 여기지 않을까?
천문학이 하나이며 천문학과 짝을 이루는 다른 교과가 또 하나 있다. 눈이 천문학에 관련되듯이 귀와 관련된 화성적 운동이 그것이다. 피타고라스학파가 주장했듯이 자매관계이다(P.223-4).
화성학을 논하는 피타고라스학파 사람들이다. 이들은 천문학자들과 또같은 일을 하는데 협화음의 수적 관계를 찾기는 하지만 음을 조화시키는 수가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 때문에 조화가 이루어지는지 따위를 고찰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P.225).
배워야 할 것은 변증술이다. 지성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가 일체의 감각 대신 변증술과 이성적 논리를 사용한다면, 그리하여 개별적인 것들 자체와 좋음 자체를 파악하되 지성을 통한 앎 자체를 이용한다면, 그는 최종 목표에 도달 할 수 있다(P.226).
지금까지 우리가 다루었던 교과들이 하는 이 모든 일은 영혼으로 하여금 실제들 가운데에서도 최선의 것을 보도록 이끄는 힘이 있다.
글라우콘: 변증술의 특성이 무엇인지, 그것은 어떤 유형으로 나누어지는지, 또 그 방식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말씀해 주십시요.
소크라테스: 교과를 배운 자들에게 진실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바로 변증술의 힘이다(P.227).
어떠한 탐구 방법이든 사물 자체를 체계적으로 파악하려 한다. 대부분 교과는 사람들 의견이나 욕망들을 다루지만, 기하학과 천문학과 화성학 같은 교과들은 실재를 지향한다. 하지만 이것들도 실제를 제대로 볼 수 없다. 그 출발점으로 사용되는 원리나 중간의 추론과정이나 결론이 알기 어려운 것들로 짜여 있다면, 그것은 지식이 될 수 없다.
변증술만이 가정들을 폐기하고 원리 자체를 다룬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이것들에게 지식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곤 했지만, 다른 이름이 필요하다. 의견보다 명확하지만 지식보다는 한결 불명확한 어떤 것으로써, 우리는 앞서 추론적 사고라 했다.
첫째 부분을 지식이라 했고 둘째 부분을 추론적 사고라 하고, 셋째 부분은 확신, 넷째 부분을 상상이라 한다. 확신과 상상을 합해 의견이라하고 지식과 추론적 사고를 합해 지성을 통한 앎이라 한다(P.228). 이때 판단은 생성, 소멸하는 것들과 관련이 있지만 지성을 통한 앎은 존재의 본질 또는 실제와 관련이 있다. 또 실재와 생성, 소멸하는 것 사이의 관계는 지성을 통한 앎과 의견 사이의 관계와 같고, 지성을 통한 앎과 의견 사이의 관계는 다시 지식과 확신 사이의 관계 또는 추론적 사고와 상상 사이의 관계와 같다. 그 대상들 즉 의견의 대상과 지성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대상이 서로 다르다.
어떤 실재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 낼 수 있는 사람을 변증술에 능숙한 사람이라 한다.
좋음의 이데아를 다른 것들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실재를 바탕으로 하는 논지를 끝까지 견지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좋음 자체를 모른다(P.229).
이들이 이런 문답식 교육에 참여하도록 입법한다. 그리고 변증술을 다른 교과들 위에 놓는다.
이 교과들을 누구에게 가르칠 것인가?
가장 견실하고 용감한 사람들을 선발한다. 그러나 이에 덧붙여 품격이 고귀하고 강건한 사람들을 찾되, 이런 교육에 적합한 성향 또한 지녀야 한다.
학문에 대한 날카로움도 있어야 하며, 또한 배우는 데에 힘들어하지 않아야 한다. 또 기억력도 좋고 끗끗하며 모든 면에서 열심인 사람이어야 한다(P.230).
첫째 철학에 손을 대는 사람은 확실하게 부지런해야지 절름발이여서는 안된다.
진실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인데, 자발적인 거짓뿐 아니라 본의 아닌 거짓이나 무지한 상태의 거짓에 대해 화를 내지 않는다면 이 또한 절름발이이다
절제와 용기, 고매함과 훌륭함 등과 관련해서도 적자와 서자를 구분해 감시해야 한다.
신체와 영혼이 건전한 사람들을 제대로 교육시키고 수련시킨다면, 올바름이 우리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며 나라와 정치체제도 잘 보전될 것이다(P.231).
수학이나 기하학 또는 변증술에 앞서 배워야 할 예비교육 교과들은 아이들 때 제공되어야 한다. 강제적인 배움은 영혼에 남지 않는다. 아이들 교육은 놀이 삼아 하도록 한다. 그럼으로써 아이들이 저마다 무엇에 적합한 성향인지 잘 알 수 있다.
이 모든 신체적 노력과 배움과 무서운 일의 경험을 통해 가장 민활한 것으로 드러난 아이들을 선발 후보로 등록시켜야 한다.
필수 체육 교육이 끝날 즈음에는 다른 교육을 할 수 없는데, 피로와 잠이 다른 공부에 적이 되기 때문이다(P.232).
이 시기를 지난 20대 가운데 남들보다 뛰어난 자들을 선발하며 여러 교과들을 교육하는 동시에 실재의 본성을 포괄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길러 주어야 한다.
변증술의 자질을 지녔는지 여부를 살펴 볼 최대의 시험이기도 하다. 포괄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변증술에도 능숙하다.
그런 자질도 많이 보이고 공부뿐 아니라 전쟁이나 기타 법적 의무에 대해서도 확고한 사람을 뽑되, 그들이 서른 살을 넘어서면 선발되었던 사람들 가운데서 다시 선발해야 한다. 변증술을 시험하여 누가 실재 자체를 통해 진리로 향해 나아가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올바름이나 아름다움과 관련해서 어릴적부터 일종의 신념을 갖고 양육된다. 그래서 그것들에 복종하고 그것들을 존중하게 된다. 절도있는 사람들은 이런 즐거움에 빠지지 않고 전통적 관습을 존중하며 따른다(P.233).
30세가 된 사람들을 이렇듯 연민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변증술을 가르치는 데에 조심해야 한다.
나이가 든 사람은 변증술을 진실한 것을 고찰하는 데에 사용해야 한다. 이런 사람은 또 절도 있게 행동할 텐데. 이에 따라 그 활동은 명예로운 것이 되어야 한다.
변증술에 참여할 사람은 예절 바르고 진실해야 한다(P.234).
다른 일들을 하지 않고 변증술을 익히는 데에 전념할 기간은 체육 교육 기간의 두 배면 된다.
5년으로 정한다. 동굴(현실) 속으로 다시 돌아가 생활하면서 전쟁을 지휘하고 젊은 나이에 걸맞은 관직을 맡아야하고 경험을 쌓아야 한다.
50세쯤 되면 갖가지 시험을 무사히 치르고 실무적으로나 학식으로 가장 훌륭한 사람들을 따로 뽑아 최종 목표로 이끌어야 한다. 좋음의 이데아를 바라보게 만들어야 한다. 그들은 좋음의 이데아를 본으로 삼아, 나라와 대중들 그리고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 이들은 남은 삶을 철학에 바치지만, 필요에 따라 나랏일을 맡기 위해 통치자가 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을 교육시켜 나라의 수호자로 만들기도 해야 한다(P.235).
여성 통치자의 모범도 만들어냈다.
참된 철학자들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되어 세속적인 명예 같은 것들은 무가치한 것으로 경멸하는 한편 올바름을 가장 필요하고 중대한 것으로 여기면서 이를 바탕으로 나라의 질서를 잡아 나갈 때, 우리가 말했던 나라와 정치체제가 가능하다.
10세 이상의 아이들을 모두 시골로 보내 부모의 관습에 젖지 않도록 하고 법률 안에서 자라도록 한다. 나라와 정치체제는 가장 빨리 확립되고 번영을 이루면서 민족 전체에 혜택을 주는 체제가 될 수 있다(P.236).
제8권
완벽한 나라에서는 여성과 아이들을 공동 소유이고, 교육과 전시 활동도 공유의 것이며, 또 통치자도 군인처럼 공동생활을 해야 한다(P.238).
네 가지 정치체제에는 하나는 스파르타식 정치체제로 많은 사람의 칭찬을 받고 있다. 둘째 것은 과두 정치체제로 칭찬도 많이 받지만 나쁜 요소가 많다. 셋째 것은 민주 정치체제로 과두 정치체제와 화합하기 어려운 정치체제. 넷째의 것은 참주 정치체제로서 아주 특출하며 말기 증상을 나타낸다.
나라의 형태가 다섯이면 영혼의 유형도 다섯이 있다.
스파르타식 정치체제와 관련된 자는 승리와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기질이나 성향이 개인보다는 정치체제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명예욕이 지배하는 정치체제를 명예정치체제로 부른다(P.239).
이렇게 구성된 나라들은 변혁되기 어렵다. 생성된 모든 것은 쇠퇴하기 마련이니 그 구성도 해체가 될 것이다. 그대들은 나라의 지도자로 교육할 사람을 낳을 좋은 출산의 시기와 붙임의 시기를 제대로 적중시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P.240).
통치자들 가운데 철과 철동의 성분을 지닌 두 계급은 소유를 중시해 정치체제도 그리로 이끌겠지만, 황금과 은의 성분을 지닌 두 계급은 정신적으로 부유한만큼 훌륭함을 바탕으로 옛날 정치체제로 이끈다. 이들은 서로 격렬하게 다루다가 적당히 합의를 보고는 토지와 가옥을 분배하여 자유화하는 한편 자신들이 수호하던 대중을 노예로 만든다. 이런 정치체제는 민주 정치체제와 과두 정치체제의 중간이라 할 수 있다. 그 정치체제는 통치자들을 존중한다거나 전사들로 하여금 농사와 수공업 등의 돈벌이를 멀리하게 한다거나 체육과 전쟁 훈련에 영혼을 쓴다거나 하는 점에서 군주 정치체제를 흉내 낸다.
전쟁과 관련된 계략과 전술을 중시하고 전쟁을 치르는 일로 세월을 보내는 그 체제 사람들은 과두 정치체제 사람들처럼 재물에 욕심을 내고 금은을 우러러 모시면서 금고와 개인 창고를 갖고 있는 한편 집을 담으로 둘러쌓아 놓고는 그 안에서 낭비하며 산다. 이들은 나아가 철학을 갖춘 무사 여신들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여 음악보다는 체육을 중시하는데, 그것은 설득이 아닌 강제에 의한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혼합된 정치체제는 승리에 대한 사랑과 명예에 대한 사랑만이 뚜렷이 나타난다(P.241).
최신의 수호자는 음악과 이성을 모두 갖춘 사람이고 그래야 훌륭함을 평생 유지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은 명예를 지상의 가치로 여긴다(P.243).
과두 정치체제는 재산을 바탕으로 하는 정치체제로 부자들이 통치하고 가난한 사람은 통치에 관여하지 못한다.
황금으로 가득한 개개인의 금고가 명예 정치체제를 무너뜨린다. 사람들이 자신의 황금 소비를 위해 법률을 왜곡하거나 법률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훌륭함과 부는 상반된다. 부와 부자들이 귀한 대접을 받고 훌륭함과 훌륭한 사람들은 덜 귀하게 대접을 받는다. 그래서 승리와 명예를 사랑하던 사람들이 마침내는 돈과 돈벌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되고 부자는 찬양하는 반면 가난한 사람은 멸시하게 된다. 이들은 자산액을 산정해 과두 정치체제의 기준을 법으로 정한다. 이 정치체제의 특성은 재산을 근거로 한다(P.246).
거지들이 많은 나라라면 어딘가에 도둑과 소매치기와 절도범처럼 나쁜 짓을 하는 자들이 숨어 있다(P.247).
교육이 부족하고 양육이 잘못되었으며 정치체제가 나쁘기 때문이다.
명예 정치체제에 어울리는 사람의 아들은 처음에는 아버지를 모범으로 삼는다. 하지만 아버지가 나라와 부딪쳐서 비틀거린다거나 재산과 인생을 허비하는 모습을 목격할 때 그는 과두 정치체제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바뀐다(P.248).
과두 정치체제에 어울리는 인간은 첫째, 재물을 가장 귀하게 여긴다는 점. 둘째, 인색하면서도 부지런하다는 점. 자신의 필수욕구만 충족시킬 뿐 다른 비용은 전혀 대지 않는 점. 셋째, 무엇에서든 이윤을 남겨 창고에 쌓아 두면서 대중의 칭찬까지 받는다는 점(P.249).
민주 정치체제가 생겨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이겨서 나머지 시민들에게 평등하게 시민권과 관직을 배정할 때라고 생각한다.
민주 정치체제는 어떤 것이며, 또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 사람들은 무엇보다 자유롭다 할 수 있다. 이 나라 또한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와 언론 자유가 있을 것이고, 또 그런 까닭에 이 나라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삶에 대해 개인적 대책을 마련해 놓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온갖 부류의 인간들이 생겨난다.
이 정치체제에서는 다른 여러 정치체제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모든 종류의 정치체제를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P.253).
이런 까닭에 나라를 수립하려는 사람은 민주적으로 통치되는 나라로 방향을 잡아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자기 영혼에 드는 형태를 고르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는 통치자가 되거나 피치자가 되어야 한다는 강제 규정은 없다. 전쟁을 한다거나 평화롭게 지내야 한다는 강제 또한 없다. 관직을 맡거나 배심원 노릇을 하라 마라 하는 강제도 없다.
정치를 하려는 사람은 대중에 호의적이면 높이 칭송하곤 한다. 요컨대 민주 정치체제는 무정부 상태의 다채로운 정치체제이며 모든 사람들에게 일종의 평등을 배분해 주는 정치체제이다(P.254).
교육도 받지 못하고 인색한 환경에서 자란 젊은이가 꿀맛과 온갖 다채로운 쾌락을 제공 받을 때, 이 젊은이의 내면에 있던 과두 정치체제인 요소는 민주 정치체제에 어울리는 요소로 변하기 시작한다. 외부 동맹세력을 지원 받을 때 나라가 바뀌듯이, 이 젊은이 내부에 있던 요구의 일부가 외부의 닮은 욕구로부터 지원을 받을 때 그도 또한 바뀐다는 것이다(P.256).
평등한 권리를 누리는 사람의 삶의 사람은 민주 정치체제 자체처럼 복합적이고 다양한 성격을 지닌 것이다(P.257).
참주 정치체제와 참주. 참주 정치체제는 어떻게 생겨날까? 민주 정치체제에서 바뀐다.
참주 정치체제가 민주정치체제에서 생겨나는 방식은 과두 정치체제에서 민주 정치체제가 생겨나는 방식과 같다.
과두 정치체제를 수립하는 원인이 된 것은 부였다. 그런데 부에 대한 만족 할 줄 모르는 욕망과 돈벌이는 다른 것들에 대한 무관심을 받으면서 오히려 이 정치체제를 파멸시켰다.
민주 청치체제에서 내세우는 좋은 것은 자유에 대한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과 그것이 낳은 다른 것들에 대한 무관심이 민주 저치체제를 바꾸어 버리고 참주 정치체제가 필요하도록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P.258).
통치자에게 순종하는 사람은 노예라고 비난한다. 이런 나라에서 자유가 대폭 확장 될 것은 필연적이다.
이런 나라에서는 자유가 극대화되어, 노예가 주인 못지않게 자유롭고 여자들도남자 못지않게 자유롭다. 지나친 자유가 시민들 영혼을 민감하게 만들어 어떤 형태의 굴종에도 참지 못하게 하며 마침내는 법률조차도 아랑곳하지 않게 한다(P.259).
과두 정치체제를 낳았지만 그것이 지나침으로써 과두 정치체제를 망쳐 놓은 질병이 있듯, 민주 정치체제를 낳은 자유가 오히려 사람들을 노예화한다는 것이지, 무엇이든 지나친 것은 반대쪽으로 큰 변화를 낳는 법이다.
과두 정치체제와 민주 정치체제를 무너뜨린 공통 요인은 게으르고 낭비적인 사람들 부류이다.
이 부류는 어떤 정치체제에서 생기든 혼란을 일으킨다. 그런 까닭에 이들에 대비하는 훌륭한 의사와 입법자가 필요하다.
민주 정치체제 사람들을 세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부류는 여태 말했던 부류로서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지니고 있으며 과두 정치체제 못지않게 민주 정치체제에서도 크게 자라난다(P.260). 과두 정치체제에서는 이러한 부류가 존중되지 않고 관직에서도 배제되는 까닭에 강해지지 않지만, 민주 정치체제에서는 이들이 앞장서서 말과 행동을 하며 모등 것을 조종한다.
둘째 부류는 대중과 구분되는 부류로서, 모두가 돈벌이를 할 때 가장 알뜰한 모습을 보인다. 대개 가장 부유하게 되지만, 수벌들이 꿀을 가장 쉽게 얻는 것은 이들로부터이다.
셋째 부류는 민중이다. 손수 일하고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재산도 그리 많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집회라도 하면, 민주 정치체제에서 최대 다수이자 주도권을 갖는 부류가 된다.
이 부류의 지도자들은 가진 자들로부터 재산을 빼앗아 민중에게 나누워 줄 것이다. 재산을 빼앗긴 자들은 민중 앞에서 자신을 방어하게 될 것이다.
민중은 언제나 어떤 한 사람을 내세워 자신들을 이끌도록 만드는 한편 그 사람을 보살피고 키워 주는 버릇이 있다. 여기서 참주가 자라나게 될 싹이 튼다(P.261).
민중의 선봉에 선 자는 사람을 부당하게 고발한다거나 추방하는 일을 서슴치 않는다.
민중의 선도자는 많은 사람들을 타도하고도 나라라는 전차에 올라타니, 그가 바로 완벽한 참주 된다.
이런 사람은 실제로도 많은 것을 약속하고 빚을 탐감해 주며 따을 나누어 주기도 한다(P.262).
민중에게 지도자가 필요하다 전쟁에는 다른 효과도 있는데, 전쟁을 위한 세금을 내야 하므로 민중은 가난해지고 이에 따라 그들은 하루 생계에 매달려야 하고 지도자에 대한 음모를 꾸밀 틈이 없어진다.
의사는 몸에 나쁜 것은 제거하고 좋은 것은 남겨둔다. 참주는 거꾸로 한다(P.263).
시민들로부터 노예를 빼앗거나 자유를 준 뒤에 자신의 경호원을 채용한다.
그들은 다른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군중을 설특해 그런 나라를 참주 정치체재나 민주 정치체제로 이끌고 갈 것이다 또 이런 일들을 했다고 보수도 받고 존중도 받는다(P.264).
이 정치체제는 신전에 보관해 둔 재화나 참주가 파멸시킨 자들의 재화를 사용하고 민중에게는 적게 세금을 물릴 것이다.
자신들이 참주를 입신시켜 준 것은 자신들이 노예에 예속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자유로워지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P.265).
참주를 아버지의 살해범으로 만드는 것이 널리 알려준 참주 정치체게의 본모습이다(P.266).
민족적인 사람은 돈벌이 등의 욕구만 중시하고 다른 욕구는 멸시하는 인색한 아버지에 의해 양육되었다. 양쪽 기질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면서 적정하게 즐길 것이다. 부자유한 삶도 아니고 불법한 삶도 아니다. 이것이 과두 정치체제에 어울리던 사람이 민주 정치체제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바뀌는 과정이다(P..269).
이 사람 안에 있던 유익한 의견이나 절제 따위는 내쫓기고 광기가 영혼을 채울 것이다. 그래서 옛날부터 욕정을 참주에 비유하곤 했었다.
욕정이 참주로서 그 사람 안에 거주하면서 영혼의 모든 것을 조종하게 되면, 축제나 술자리 또는 기녀들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욕정 곁에는 수많은 무서운 욕구들이 자리하게 된다(P.270).
그가 그동안 지니고 있던 민주 정치체제에 어울리는 체질은 욕정 때문에 참주 정치체제에 어울리는 체질로 바뀌고 이제는 살인이나 그 어떤 행동도 삼가지 않으면서 무정부 상태와 무법 상태에서 참주처럼 살아 간다(P.271).
참주는 아첨꾼들과 사귀거나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이면 스스로 엎드려 무릎을 꿇지만 일단 필요한 것들을 얻으면 남이 되어 버린다. 그는 아무하고도 친구가 되지 못하고 늘 누군가의 주인이 아니면 누군가의 노예 노릇을 할 뿐이며, 자유와 참된 우정은 결코 맛보지 못한다(P.272).
참주 정치체제는 대부분의 선량한 사람들이 비참한 노예 상태에 놓여 있다.
영혼의 가장 선량한 부분은 노예 노릇을 하고 가장 사악하고 광적인 부분은 주인 노릇을 한다(P.274).
참된 청치체제에 어울리는 영혼도 늘 궁핍하고 만족 할 줄 모르는 상태이다. 나아가 비탄과 고통이 이 이상적인 나라가 없다(P.275).
참주는 올바르지 못한 사람으로서, 질투하고 믿지 못하며 친구도 없고 온갖 악을 다 받아들이는데, 집권하면서 그런 것들은 더욱 심해진다.
군주 정치체제, 명예 정치체제, 과두 정치체제, 민주 정치체제, 참주 정치체제 따위와 어울리는 사람들이 각 어떤 순서로 행복한가?
글라우콘: 훌륭함과 나쁨, 행복과 그 반대의 것을 바탕으로 판정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 가장 올바른 자가 가장 행복하다 할 수 있으니 이 사람은 군주 정치체제에 어울리는 인간으로서 자신을 군왕처럼 다스리기 때문이다(P.277). 가장 나쁘고 올바르지 못한 자가 가장 비참하다 할 수 있으니 이 사람은 참주 정치체제에 어울리는 인간으로서 자신과 나라를 참주적인 방식으로 다스리기 때문이다.
어느 한 나라가 세 계급으로 나뉘었듯이, 사람들의 영혼도 세 성향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배움을 주는 성향이고 둘째는 격노를 불러일으키는 성향이며, 셋째는 한 마디로 말해서 욕구와 관련된 성향으로써 돈을 좋아하는 성향이라 할 수 있다.
셋째 부분은 이득을 탐하는 부분이고 둘째 부분은 기개와 관련된 것으로 승리와 명예를 좋아하며, 첫째 성향은 진리와 배움과 지혜를 사랑한다고 할 수 있다.
영혼은 대체로 특정 성향이 지배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혜를 사랑하는 계급, 명예를 좋아하는 계급, 이득을 탐하는 계급으로 나눌 수 있다. 또 즐거움도 각각에 어울리는 세 가치가 있다(P.278).
세 계급의 사람들에게, 이들 세 종류의 삶 가운데 어느 것이 가장 즐거우냐고 차례로 묻는다면, 돈벌이를 하는 사람은 명예나 배움을 가치가 없다고 할 것이며,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은 재물을 천하게 여기고 배움도 허무하다 할 것이며,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즐거움들을 무언가 못미치는 것으로 간주할 것이다(P.279).
판단은 경험과 지혜와 추론적 사고에 의한 것이다.
세 가지 즐거움 가운데 영혼의 지적 부분과 관련된 즐거움이 가장 즐거운 것이다.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의 즐거움이 둘째이다. 이득을 탐하는 자의 즐거움이 마지막이다(P.280).
괴로울 때는 괴로움에서 벗어나 평온을 찾는 것을 가장 즐거운 것으로 찬양한다. 평온은 괴로움과 즐거움 사이에 있다(P.281).
냄새로 생기는 즐거움이나 육체적 쾨락은 괴로움과 무관하다.
배고품과 목마름은 몸과 관련해서 어떤 비움현상이다(P.282).
음식물을 섭취하고 지성을 사용하는 것은 채움이라 할 수 있다.
순수한 존재에 더 많이 관여하는 것은 빵이나 요리 등의 음식물인가, 아니면 참된 의견과 지식과 지성과 훌륭함 따위인가?
적합한 것으로 채우는 것이 즐거움이라면, 더 충실하게 존재하는 것들로 채우는 일은 참된 즐거움이자 진실한 기쁨이 될 것이다(P.283).
기개나 격정의 성향을 지닌 영혼의 경우는 어떻게 될까? 이성을 저버린 채 분노를 터뜨리고 명예와 승리를 얻으려 한다면, 그는 명예욕과 질투심과 불만에 빠져 폭력을 행사한다.
부와 명예를 탐하는 사람이지만 이성과 지식의 인도를 받으면서 즐거움을 추구하는 경우에는 분별이 있는 까닭에 가장 진실하고 좋음이라는 특질을 지닌 즐거움을 추구할 수 있다.
영혼 전체가 지혜를 사랑하는 부분을 따르고 반복을 하지 않는다면 올바르고 최선이며 가장 참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P.284).
법과 질서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들이야말로 이성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것이다. 참주가 가질 법한 정욕과 욕구들이 이런 것들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것들이며, 반면에 군주에 어울리는 절도 있는 욕구들이 가장 덜 떨어져 있다.
즐거움에는 세 가지 있는데 하나는 진짜이고 다른 두 가지는 가짜이다. 참주는 법률과 이성을 피해서는 가짜이자 세 번째인 노예적인 즐거움과 동거하는 셈이다(P.285).
군왕은 참주보다 훨씬 더 즐겁게 살고 참주는 그만큼 군왕보다 훨씬 더 괴롭게 산다(P.286).
아름다움이란 야수적인 것으로 하여금 인간적인 것이나 신적인 것에 종속하게 만들고, 추함이란 온순한 것을 사나운 것에 굴종하게 만드는 것이다(P.288).
고집스럽고 고약한 성미가 비난을 받는 것은 사자와 같고 뱀과 같은 부분을 키워준 때문이다. 사치와 나약함이 비난을 받는 것은 이 부분이 완화되어 비겁함이 생긴 것이다. 아첨과 비굴함이 비난을 받는 것은 기개의 부분을 광포한 짐승에 종속되게 만든 때문이다. 재물에 대한 욕망으로써 그를 젊을 때부터 모욕한 까닭에, 사자가 원숭이로 변한 것이다. 신적인 것이며 슬기로운 것의 지배를 받는 것이 모두를 위해 낫기 때문이다.
최선의 통치자와 수호자를 아이들 영혼에 심어 주기 전까지는 아이들에게 자유를 허용하지 않다가 그것들을 심어 준 뒤에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P.289).
올바르지 못한 것을 하는 것이나 무절제함 또는 부끄러운 것을 저지르는 것이 어떤 논거로 이익이 된다고 할 수 없다. 몰래 올바르지 못한 짓을 하여 발각되어 벌을 받는다면 이수적인 부분은 순화되고 유순한 부분은 자유롭게 되어 영혼 전체가 훌륭한 본성을 찾게 된다. 그래서 건강한 육신이라는 아름다움보다 더 귀한 상태 즉 절제와 지혜와 올바름을 다 갖춘 상태가 된다. 영혼이 육신보다 귀한 만큼이다.
첫째. 그는 영혼의 이런 상태를 위해 학문을 귀하게 여긴다. 다른 것은 무시한다. 둘째. 그는 신체를 야수적이고 비이성적인 즐거움에 맡기며 살지는 않는다. 그는 오히려 유신의 조화는 영혼의 화합을 위하는 것이라고 여긴다(P.290).
그는 재물을 소유할 때도 질서와 화합을 유지하려 할 것이다. 명예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여서 자신을 더 나아지게 만드는 것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인다(P.291).
제10권
음악 가운데서도 특히 모방적인 것은 배제하자는 것이다.
두 개의 이데아가 있다. 그 하나는 침상의 이데아이고 또 하나는 식탁의 이데아이다(P.293). 그는 가구 외에 흙에서 나는 모든 것들과 모든 동물들뿐 아니라 자기 자신과 자연과 신조차 만든다.
자네는 해와 하늘에 있는 모든 것과 땅과 자네 자신과 여느 동식물도 만들 수 있다. 그것은 보이는 것만 만들 수 있다.
침상에는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본질 자체가 침상인 것으로써, 신이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둘째는 목수가 만드는 것, 셋째는 화가가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 화가와 침상 제작자와 신이 세 종류의 침상을 관할하는 자들이다(P.294).
신은 참된 침상의 참된 침상 제작자가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우리는 신을 본질의 창조자라 불러도 된다. 무엇인가의 본질로부터 세 번째인 실물의 제작자를 모방자라 부른다는 것이다. 비극 작가도. 모방의 기술은 진실한 것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P.295).
어떤 사람이 모든 것을, 그것도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에게 어리석은 사랑으로써 모방자에게 속은 것이라고 말해 주어야 한다.
사람들은 시민이 훌륭함과 나쁜 등 모든 인간사를, 심지어는 신들의 일까지도 알고 있다고 말한다.
선구적 비극 작가 호메로스가 언급하려는 가장 중대한 문제들에 관해서 즉 전쟁, 전략, 나라의 경영, 인간의 교육 따위의 문제에 관해 이렇게 질문하는 것이 정당하다(P.296).
호메로스가 지휘하거나 해서 잘 치러진 전쟁으로 어떤 것이 있는가? 아니면 그의 행적에 어울리게 독창적으로 발행한 것이 있는가? 그가 교육 지도자가 되어 사람을 가르치고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후대에 전한 일이 있는가? 피타고라스처럼 말이야.
호메로스가 앎을 지니고 있어 진정 사람들을 교육해 더 훌륭한 사람들로 만들 수 있었다면 그는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지 않았을까? 프로타고라스는 사람들을 교육시켜 그들로 하여금 가정과 나라를 잘 경영하도록 만들어 사람들이 그를 떠받들고 돌아다닐 지경이었다(P.297).
호메로스를 비롯한 모든 시닝들은 훌륭함의 영상들을 모방하는 사람들일 뿐이지 진리를 파악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경우든 세 가지 기술, 즉 사용하는 기술과 만드는 기술과 모방하는 기술이 있다고. 온갖 도구나 생물 또는 행위의 훌륭함과 아름다움과 옮음 따위는 그것이 만들어지거나 생기게 된 쓰임새와 관련된 것이다.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가장 경험이 많겠지(P.298). 악기 연주자는 어떤 악기가 제대로 소리를 내는지 알게 되고 이를 제작자에게 알려 주면 제작자를 이에 따라 악기를 만든다.
모방은 일종의 놀이이고 진지한 것이 못되며 진리에서 세 번째로 떨어진 것에 관한 것이다(P.299).
같은 크기의 것인데 가까이에서 보느냐 멀리서 보느냐에 따라 달리 보이고, 물속에 있을 때는 굽게 보이기도 하며, 색체를 사용하면 오목하게 또는 볼록하게 보이기도 한다. 이런 혼란이 인간 영혼에 있음은 분명하지 않을까? 화가의 화법은 이런 영혼 상태를 이용한 것이니 마술이나 다름없다.
측정과 계산을 신뢰하는 부분이 영혼으로서는 최선의 부분이다.
온갖 모방 기술은 진리 또는 우리의 지혜와 멀리 떨어져 있다(P.300).
시각과 관련된 모방인 회화만 그러할까? 청각과 관련된 모방, 즉 소위 시는 어떨까? 괴로움에 저항하게 만드는 것은 이성이며, 그리로 이끄는 것은 감정이라 할 수 있다. 서로 상반되는 경향이 한 사람 안에 있다.
최선의 부분은 이런 헤아림에 따르고자 하는 반면, 고통이나 비탄 쪽으로 이끄는 부분은 비이성적이고 게으르며 비겁한 것이다.
화를 잘 내는 성격은 온갖 모방을 받아들이지만, 분별있고 침착한 성격은 모방을 잘 하지 않는다(P.301).
시인이 바로 화를 잘내고 모방하기 쉬운 성향이 있다. 서민은 화가와 같다. 그는 이성의 부분을 파멸시키고 진실과 아주 멀리 떨어진 영상을 제작함으로써 영혼 안에 나쁜 통치체제를 만들어 낸다.
호메로스 같은 시인들이 영웅들을 그려내되, 비탄에 잠겨서 제 가슴을 치는 모습을 모방하는데, 우리는 그런 시인을 훌륭한 시인이라 칭찬한다. 반면 현실에서 그런 슬픈 일이 생기면, 침착성을 유지하며 견뎌 낼 때 우리는 이를 칭찬한다.
익살에 관한 것도 이치에 맞지 않다고 말 할 수 있다. 자신은 그런 것을 부끄러워하면서도 남이 하는 희극적인 모방은 듣기 즐겨한다(P.302).
정욕과 격정을 비롯한 모든 욕구나 괴로움과 즐거움들과 관련해서 시 짓기를 통한 모방은 마찬가지다. 우리가 더 비참하게 되기보다 더 행복하려면 그런 것들을 우리가 지배할 수 있어야 하는데, 모방은 그런 것들을 오히려 지배자로 만든다.
우리는 시 중에서도 신과 훌륭한 사람에 대한 찬양 만을 받아들여야 한다. 즐거움을 위한 음악은 이성 대신 즐거움과 괴로움이 왕 노릇을 하게 한다.
진실을 배반하는 것은 옳지 않다.
시가 즐거움을 줄 뿐 아니라 나라의 체제와 인간생활을 이롭게 증명되면 우리는 그런 변론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P.303).
인간의 영혼에는 올바르지 못함이나 무절제, 비겁함, 무지가 그런 것들입니다(P.305).
영혼 그 자체의 것에 의해서든 다른 것에 속하는 것에 의해서든 파멸되지 않는다. 영혼은 항상 존재하며, 항상 존재한다면 죽지 않는다.
사멸하는 것에서 불멸의 것이 되다 보면 모든 것이 불멸의 것이 된다.
영혼은 불멸의 것이다. 그 영혼은 가장 훌륭한 구성물이어야 하지만 많은 것들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P.307).
우리가 있는 그대로의 영혼을 보려면, 이성의 눈으로 영혼 본래의 순수함을 바라보아야 한다. 영혼의 아름다움도 드러날 것이며 올바름과 올바르지 못함뿐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논의해 왔던 모든 것들도 더 명확하게 모습을 들어낸다(P.308).
올바른 사람은 가난이나 질병 등의 곤경에 빠졌다 해도 결국에는 좋은 일로 끝을 맺는다. 올바른 자는 끝까지 달려 상도 받고 화관도 받는다(P.310).
올바른 사람은 나이가 들어 원하기만 하면 나라를 통치할 수도 있고 원하면 가문과 혼인을 맺을 수 있다(P.311).
유익한 삶과 무익한 삶을 구분해 최선의 것을 선택하도록 해 주는 학문, 모든 것에서 더 못한 삶과 더 나은 삶에 대한 결론을 얻고 선택하도록 해 주는 학문, 영혼을 더 올바르지 못하게 인도하는 삶과 올바르게 인도하는 삶을 구분할 수 있게 해 주는 학문이다. 언제나 중용의 삶을 선택하여 양극단의 지나침을 피할 줄 알려면 이런 소신을 굳건히 지녀야 한다. 마지막에 오는 자라도 이성적으로 선택하면 만족할 만한 삶을 살 수 있다(P.316).
저승에서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이승에서 건전하게 철학을 할 경우 생전이든 사후이든 행복이 이어질 것이다(P.317).
플라톤의 국가는 소크라테스, 케팔로스, 폴레마르코스, 트라시마코스, 글라우콘, 아데이만토스와 클레이토폰의 대화로 이루어지고 주도권은 소크라테스가 갖는다.
소크라테스의 올바름이란 영혼의 뛰어난 상태이며 올바르지 못함이란 그 나쁜 상태라는 것. 올바른 사람은 행복하지만 올바르지 못한 사람은 불행하다. 내 의견은 올바름이란 남에게 피해를 안주고 항상 옳고 정당해야 한다.
글라우콘에의하면 법은 강제력 때문에 평등을 존중할 뿐이다.
소크라테스는 많은 사람이 필요에 의해 같은 곳에 모여 나라 또는 도시국가를 형성한다고 한다. 배움을 좋아하는 것은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다. 훌륭한 수호자가 되려면 지혜를 사란하면서도 기개를 지녀야 한다.
교육에는 몸을 위한 체육과 마음을 위한 음악이 있다. 체육보다 음악교육을 먼저 실시해야 한다. 어린이에게는 처음부터 훌륭함에 관하여 가장 훌륭하게 지어진 것들만 들려주어야 한다. 시민들이 이야기를 지을 때 따라야 할 규범을 만들어야 한다.
신은 선이고 선함은 이로운 것이며 따라서 행복의 원인이 된다. 신은 모든 면에서 가장 훌륭하다 그리고 이미 완벽하게 아름답고 훌륭한 존재이다.
희극과 비극은 모방으로 이야기 할 수 있다. 시가는 시인 자신의 단순 화법으로 이루어지고 또 서사시는 같은 것은 양쪽 모두 이용한 것이다.
절도가 없고 비천한 사람은 모든 것을 모방하려 한다. 프로그램에서는 새소리, 악기소리, 팡파레, 춤곡 그리고 인간의 감정을 모방하기도 한다. 훌륭한 사람의 말투를 모방해야 한다.
노래는 노랫말과 화음과 리듬으로 이루어진다. 용감한 사람의 어조와 억양을 모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복잡 미묘한 리듬이나 온갖 종류의 운율을 취할 것이 아니라 예절바르고 용감한 삶을 나타내는 리듬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이 좋다. 그들 리듬이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의 노랫말을 따르도록 해야 한다. 음악에서는 가사의 운율을 따르고 리듬도 따른다. 좋은 리듬과 나쁜 리듬은 좋은 말투와 나쁜 말투를 닮고 화음과 불협화음도 말투를 닮은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원칙에 의해서 리듬과 화음의 노랫말을 따른다. 노랫말과 말투는 다시 영혼의 성품을 따른다.
말투의 아름다움과 화성의 우아함과 좋은 리듬은 좋은 성품을 따른다. 좋은 성품이란 어리석움을 완곡하게 표현할 때의 순진함이 아니라 진정 훌륭한 성품을 말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작품을 접하게 됨으로써 어린 시절부터 아름다운 말을 닮고 이에 친근해지도록 해야 한다.
음악 교육이 중요한 것은 리듬과 화음을 마음의 내면 깊숙이 젖어 들어, 옳게 교육받는 사람은 우아한 사람으로 만들며 또 음악 교육은 제대로 받은 사람이라면 좋지 못한 것들을 잘 알아채서 이를 싫어하는 반면 좋은 것들을 칭송하면서 마음 속에 받아들임으로써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한다.
수호자가 되는 교육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음악에 밝은 사람, 교양이 있는 사람이 되는 과정도 같다. 절제와 용기와 자유로움과 고매함 따위의 것들이 어디에서 나타나고 어디에 담겨있는가를 깨달아야 한다.
올바른 사람은 본디 질서 있고 아름다운 것에 대해 절제 있고 교양 있게 사랑하는 것이다.
체육교육도 어릴적부터 올바르게 받아야 한다. 훌륭한 마음이 몸을 훌륭하게 만들어 준다.
식사와 일상생활을 화음과 리듬으로 만들어진 노래에 비유한다. 다양성은 음악과 관련해서 마음에 무절제를 낳고 체육과 관련해서는 몸에 병은 낳지만, 단순성은 마음에 절제를 낳고 몸에 건강을 낳는다.
스스로 음악에 내맡기고는 달콤하거나 비단조의 화음으로 이루어진 노래를 평생 흥얼거린다면 그가 만일 기개를 지닌 사람이라면, 처음에는 쓸모없이 단단하던 그의 성향은 차츰 부드러워져 갈수록 쓸모있는 것이 되어 갈 것이다.
신이 음악과 체육이라는 교과목을 인간에게 주었다면 기개의 측면과 지혜를 사랑하는 측면을 위한 것이다. 음악과 체육을 가장 훌륭하게 혼합시켜 이를 영혼에 제공해 주는 사람은 가장 조화로운 사람이다. 이것이 교육과 양육의 규범이라 하겠다.
누가 좀처럼 유혹에 빠지지 않고 의젓하며, 자신과 스스로 배운 음악의 훌륭한 수호자로 보이며 단정하고 조화로운 모습을 잃지 않는다면 임명할 통치자와 수호자이다. 이것이 통치자와 수호자의 선출 및 임명 방법이다.
통치자들과 수호자들은 땅 속에서 만들어지고 양육되었으며, 그들의 어머니인 대지가 그들을 지상에 올려 보냈다는 이야기이고, 그래서 누군가 그들의 고장을 공격해 오면, 그들이 마치 어머니를 위하듯 자기네 고장을 위해, 그리고 마치 같은 흙에서 태어난 형제들을 위하듯 시민들을 위해 적을 막아 내도록 설득한다.
소크라테스는 삶의 방식이나 거주생활을 첫째 어떠한 사유재산을 가져서는 안 되며, 아무나 출입할 수 없는 집이나 곳간을 갖고 있어도 안된다 라고 주장하는데 현재의 정치체제에서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는 있을 수 없는 주장이다. 공산주의를 소크라테스는 옹호한다.
훌륭한 교육을 받으면 절도있는 사람이 되어 모든 것을 쉽게 파악할 것이다. 양육과 교육이 건전하게 유지됨으로써 훌륭한 성향이 생겨나고, 이들 훌륭한 성향의 사람은 다시 건전한 교육을 통해 선배들보다 나은 사랑으로 자랄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놀이도 법을 따라야 한다.
지혜외 용기와 절제와 올바름 가운데 첫째가는 것은 지혜이다. 절제는 지혜나 용기보다 화음에 더 가깝다. 절제는 가장 약한 소리를 내는 사람과 가장 강한 소리를 내는 사람 그리고 중간 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같은 노래를 합창해서 내는 회음과 같다.
이성적인 성향은 훌륭한 말과 학문으로 키워주며, 격정 또는 기개의 성향은 달리는 말로써 이완시키며 화음과 리듬으로 숭화시킨다.
올바르지 못함은 내분, 참견과 간섭이라 할 수 있다.
훌륭한이란 영혼늬 건강과 아름다움과 좋은 상태를 말하고 나쁜이란 영혼의 질병과 추함과 허약함을 말한다.
나라의 형태도 다섯가지이고 영혼의 유형도 다섯가지다.
여성도 그 성향이 맞고 자질만 된다면 수호자가 될 수 있다.
남녀가 동등하다하며 모든 남자의 모든 여자와 아이들은 공유해야 한다는 것은 모순이 있다. 소크라테스의 시대와 지금을 비교하면 동의 할 수 없는 것이 많다.
법으로 인해서 모든 면에서 사람들이 서로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자는 모든 지혜를 욕구한다.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의 성향은 본질에 대한 배움을 사랑한다.
철학이 나라를 장악하면, 우리가 세우려면 정치체제는 실현이 되었거나 앞으로 될 것이다.
통치자가 법률이나 관행을 정하고 시민은 이를 기꺼이 이행하는 경우이다.
인식이 되는 것에 진리를 부여하고 인식하는 자에게 인식하는 힘을 주는 것을 나는 좋음의 이데아라고 부르고자 한다. 그것은 모든 올바름과 아름다움의 원천이다. 이성은 이데아 자체만 이용한다.
교육이란 영혼에 지식을 넣어주는 것이다.
법의 목적은 시민들이 화합하고 이익을 나누도록 만드는 데 있다.
음악은 체육과 서로 관련을 맺으면서 습관을 통해 수호자들을 교육하는 것이다. 화음을 통해 조화로움을 가르치고 리듬을 통해 단정함을 키워주며 이야기를 통해 또 다른 습관들을 갖게 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찾는 교과는 아니다.
교과에는 체육, 음악, 기술, 수(산술과 수론)와 계산, 수학, 기하학, 천문학과 변증술이 있다.
산술과 수론은 모두 수와 관계된 것이고 진리로 이끄는 것들이다. 수학은 영혼으로 하여금 진리 체계를 추구하기 위해 지성을 통한 앎을 이용하게 만든다. 그래서 필수적이다. 기하학은 영원한 것에 대한 앎과 관련이 있다, 영혼을 진리로 이끈다. 천문학은 연월, 계절 따위와 관련이 있는 만큼 농사와 항해에도 유용하고 조사와 전략에도 유용하다. 화성학을 논하는 피타고라스학파의 사람이다. 이들은 천문학자들과 똑같은 일을 하는데 협화음의 수적 관계를 찾기는 하지만 음을 조화시키는 수가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 때문에 조화가 이루어지는지 따위를 고찰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변증술은 누군가가 일체의 감각 대신 변증술과 이성적 논리를 사용한다면, 그리하여 개별적인 것들 자체와 좋음 자체를 파악하되 지성을 통한 앎 자체를 이용한다면, 그는 최종 목표에 도달 할 수 있다.
대부분 교과는 사람들 의견이나 욕망을 다루지만, 기하학과 천문학과 화성학은 실재를 지향한다. 하지만 이것들도 실제를 제대로 볼 수 없다. 그 출발점으로 사용되는 원리나 중간의 추론과정이나 결론이 알기 어려운 것들로 짜여 있다면, 그것은 지식이 될 수 없다.
변증술만이 가정들을 폐기하고 원리 자체를 다룬다.
확신과 상상을 향해 의견이라하고 지식과 추론적 사고를 합해 지성을 통한 앎이라 한다. 판단은 생성, 소멸하는 것들과 관련이 있지만 지성을 통한 삶은 존재의 본질 또는 실제와 관련이 있다.
이 교과를 배울 사람은 학문에 대한 날카로움도 있어야 하며, 또한 배우는 데에 힘들어 하지 않아야 한다. 또 기억력도 좋고 끗끗하며 모든 면에서 열심인 사람이어야 한다.
수학이나 기하학 또는 변증술에 앞서 배워야할 예비교육 교과들은 아이들 때 제공되어야 한다. 아이들 교육은 놀이 삼아 하도록 한다. 그럼으로써 아이들이 저마다 무엇에 적합한 성향인지 잘 알 수 있다.
20대 가운데 남들보다 뛰어난 자들을 선발하며 여러 교과들을 교육하는 동시에 실제의 본성을 포괄적으로 볼 수 있는 눙을 길러 주어야 한다.
30세 때에 변증술에 참여할 사람은 예의 바르고 견실해야 한다.
다른 일을 하지 않고 변증술을 익히는데 전념할 기간은 5년이다. 동굴(현실) 속으로 다시 돌아가 생활하면서 전쟁을 지휘하고 젊은 나이에 걸맞은 관직을 받아야하고 경험을 쌓아야 한다.
50세가 되면 갖가지 시험을 무사히 치르고 실무적으로나 학식으로 가장 훌륭한 사람들을 따로 뽑아 최종 목표로 이끌어야 한다. 그들은 좋음의 이데아를 본으로 삼아, 나라와 대중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 이들은 남을 삶을 철학에 바치지만, 필요에 따라 나랏일을 맡기 위해 통치자로 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을 교육시켜 나라의 수호자로 만들기도 해야 한다.
10세 이상의 아이들을 모두 시골로 보내 부모의 관습에 젖지 않도록 하고 법률 안에서 자라도록 한다. 나라와 정치체제는 빨리 확립되고 번영을 이루면서 민족 전체에 혜택을 주는 체제가 될 수 있다. 이런 생각은 아이들이 귀한 이 때에 아동 방임죄가 될 수있다. 이와 같이 교육에 대해 소크라테스가 이론을 정립했는데 현대 사회와는 거리가 멀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경제적으로 뒷바침없이는 교육이 불가능한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도 해야 하고 자녀가 생기면 생활비를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체제에는 1) 스파르타식 저치체제로 많은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있다. 2) 과두 정치체제로 칭찬도 많이 받지만 나쁜 요소가 많다. 3) 민주 정치체제로 과두 정치체제와 화합하기 어려운 정치체제 4) 참주 정치체제로써 아주 특출하여 말기 증상을 나타낸다.
최선의 수호자는 음악과 이성을 고루 갖춘 사람이고 그래야 훌륭함을 평생 유지할 수있다. 그런 사람은 명예를 지상의 가치로 여긴다.
과두 정치체제는 재산을 바탕으로 하는 정치체제로 부자들이 통치하고 가난한 사람은 통치에 관여하지 못한다.
민주 정치체제 하에 사람들은 무엇보다 자유롭다 할 수 있다. 이 나라 또한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와 언론 자유가 있을 것이고, 또 그런 까닭에 이 나라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삶에 대해 개인적 대책을 마련해 놓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온갖 부류의 인간들이 생겨난다.
민주 정치체제는 무정부상태의 다채로운 정치체제이며 모든 사람들에게 일종의 평등을 배분해 주는 정치체제이다. 민주 정치체제는 자유, 대중과 구분되는 부류 그리고 민중으로 이루어졌다.
민주적인 사람들은 돈벌이 등의 욕구만 중시하고 다른 욕구는 멸시하는 인색한 아버지에 의해 양육되었다.
참주 정치체제에서는 영혼의 가장 선량한 부분은 노예 노릇을 하고 가장 사악하고 광적인 부분은 주인 노릇을 한다.
한 나라는 세 계급으로 나뉘었는데 셋째 부분은 이득을 탐하는 부분이고 둘째는 기개와 관련된 것으로 승리와 명예를 존중하며 첫째 성향은 진리와 배움과 지혜를 사랑한다고 할 수 있다. 즐거움은 1, 2, 3 순으로 이다.
음악 가운데에서도 모방적인 것은 배제하자는 것이다. 모방의 기술은 진실한 것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피타고라스는 사람들을 교육시켜 그들로 하여금 가정과 나라를 잘 경영하도록 만들어 사람들이 그를 떠받들고 돌아다닐 지경이었다.
호메로스를 비롯한 모든 시인들은 훌륭함의 여상들을 모방하는 사람이고 진리를 파악하는 것은 아니다.
기술에는 사용하는 기술과 만드는 기술과 모방하는 기술이 있다.
모방은 가장 처음의 배움의 단계로 배우고 나면 단점을 보완하여 더 좋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모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초보자에게는 꼭 필요한 단계이다.
이성의 눈으로 영혼 본래 순수함을 바라보아야 한다.
올바른 자는 끝까지 달려 상도 받고 화관도 받는다.
언제나 중용의 삶을 선택하여 양극단의 지나침을 피할 줄 아아야 한다.
학문은 모든 면에서 최선의 길을 선택하도록 한다.
소크라테스는(470-399 B. C) 고대 아테네의 철학자이다. 이 책에는 그의 의견이 주를 이룬다. 그는 공산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찬성 할 수 없는 이론이부분적으로 있다. 민주주의는 세월을 두고 발전해 온 것이다. 이 대화에서 토론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어른을 공경하는 것은 동서양이 같다. 장인이나 농부는 하급시민이다. 플라톤의 국가는 교육을 다루는 책이고 크게 교육과 정치체제를 다루었다.
참고문헌
플라톤의 국가/플라톤/최광열 편역/아름다운날/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