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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계절은 내 마음을 닮아있다.
하나 -- 여행 떠나기 전의 단상
가을과 겨울이 서로 인사를 하는 그 계절은 바람도 쓸쓸해지고
아침에 일어나면, 찬바람만큼 서글픈 바람이 마음에 들어와앉는다.
어디로라도 어디로라도 바깥이기라도 하다면
알랭드 보통의 마음이 되어 떠남을 계획한다.
삶이 무언가 너덜해진다고 느껴져서 봉합을 필요로 하고
마음 속 어딘가에서 계속 낮고 우울한 음악 소리가 들리면 떠나서 나를 안아주어야 하는 때라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뒤쳐지기 싫어서 한시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고 아등바등하는 그 시간들 속에
질식할 것 같은 자잘하고 가녀린 감성들을 온전히 풀어놓는다.
내 삶은 쉬지 않고 앞으로만 잘도 간다.
그래도 가끔은 내 삶에도 잠시 쉬어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질 때도 있다.
삶의 속도를 늦추고 싶지만 서울에선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다
긴장을 늦추는 나를 본 적이 없다.
책과 음악과 영화와 그림의 곳곳에서 나를 발견하고 탄식도 하고 울어도 보고 깊은 공감도 해보지만
깊숙한 곳의 투정대는 어린아이를 달래기엔 역부족일 때가 있다.
하루 이십 사시간 오로지 나만을 돌보며 나만을 위해 내게 헌신하는 시간
정서적인 돌봄의 시간은 떠나는 곳에서부터 시작한다.
단 며칠이라도 그렇게 나와 대화를 하다보면 다시 시작할 수 있겠지
그래서 여행은 내게 최후의 보루다.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고
보고싶을 때 마음껏 볼 수 있고
듣고 싶을 때 마음껏 들을 수 있는 행운에 늘 감사한다.
아무도 느껴지지 않는 그 텅빈 공간 속에서 보았던 내가 사랑한 흔적들
그대들로 인해 무수히 흔들렸던 그 마음의 자락들
내 마음 속의 어린아이
호기심 많은 어린 아이, 눈물 많은 어린 아이, 보채는 어린아이, 명랑한 어린 아이, 환상 속에 멀리 있는 것을 사랑하는 아이 , 늘 곁에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당연하다 생각하는 어린 아이, 무엇인가가 나를 숨막히게 하는 걸 기대하는 어린아이, 누군가가 내 일을 알아서 다 해주길 바라는 어린아이,산타가 정말 있었으면 하는 어린 아이
그 모습에 생명력을 불어넣아야 내가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진다.
그러나 현실은 늘 이랬다.
모든 상황을 분석하고 통제하느라 지금의 상황에서 즐기지 못하기,좋아보여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기,
비현실적인 기대로 혼자 지쳐하기, 건강한 관심조차도, 간섭이라 거리두기,
내자신의 불완점함도 버거웁고, 타인을 내쪽으로 완벽하게 끌어당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았다.
나는 내자신을 온전하게 받아들인다
그게 여행에서 추구하는 단 한가지이다.
여행은 내 자신에게 보내는 긍정적인 선언문이다.
첫날부터 길을 잃었다.
두울 --긴자 한복판에서
긴자 한복한의 호텔에서 긴자 거리를 자유롭게 방황한다.
긴자거리의 화려함을 사람을 흥분시키고 들뜨게 한다.
미쯔코시도 도토루도 스타벅스도 레코드점 다 잘 있었구나
가다가 발걸음이 멈춘 곳은 긴자 한복판의 레코드 점이 었다.
어느 장소에 가면 하루 종일 그곳에 쳐박혀서 혼자 신나게 지낼 수 있는 곳들이 있다.
동경에 레코드점, 빅 카메라 매장, 런던의 하이드 파크, 피렌체의 우피치,홍콩의 토이러스 ,사사 ,시카고의 시카고 미술관, 텍사스의 티제이맥스, 괌,사이판,시드니의 갤러리아, 비엔나의 빈사 , 프라하의 다리, 북경의 패왕별희 , 루쩨른의 다리 보이는 야외 카페,하얗게 쌓인 눈을 바라볼 수 있는 융프라우 그 카페.
빠리의 베르메르와 함메르쇼이 그림 앞에서
서울엔 한강이 보이는 그 작은 정원에서
오후 스케줄이 나름 있었는데 러시아의 피아니스트와 겨울 연가 포스터와 존 레논으로 인해 길을 일었다.
이쯤에서 그냥 잃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세엣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
거의 글렌굴드의 피아노 연주로 많이 듣는다.
글렌굴드의 허밍 소리에 더 반했고, 그의 느릿느릿한 피아노 연주, 독특한 해석 방법에 매료되었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자폐증 성향도, 그의 독특한 얼굴 ,잔뜩 우울한 표정, 낮게 깔린 그의 손눈썹에 왠지 모르게 더 끌리게 되었다.,
그의 피아노 연주에서 그의 고독까지도 껴안고 있었다.
더 이상의 피아노 연주자는 내게 존재하지 않으리라.
그 레코드점에서에서 이 곡 저 곡을 듣다가 이 레코드를 듣게 되었다.
글렌굴드와는 전혀 다르게 이 곡을 해석하고 있었다.
같은 곡에 대해 이렇게 해석과 느낌을 다르게 해낼 수 있다니.
세상은 그래서 내게 너무도 매력적인 공간이다.
글렌굴드가 차분하고 쓸쓸하고 고독한 가운데에서도 뿜어져나오는 열정이라면
세르게이는 화려하고 자유롭다
굳이 말하자면 세르게이는 내가 추구하는 모습인 것 같고 글렌굴드는 나의 내면적인 성향을 많이 닮아있다.
어느 것 하나 외면할 수 없는 나의 모습들과 닮아 있어서 흠뻑 빠지게 된다.
환율 때문인지 씨디 한장에 삼만원을 훌쩍 넘어버렸는데. 아이폰으로 확인해본 결과 우리 나라에는 아직 출시되지 않은듯하여 질러버린다.
이 곡을 듣던 나른하게 평화로웠던 늦가을, 초겨울의 낭만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시간이 느릿느릿 정지된 화면처럼, 해야할 것이 없는 삶이 주는 여유는 완벽한 평화다.
네엣-- 존 레논 사진전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에 존레논의 사진전을 보았다.
존레논에게 내가 가지는 감정은 미안하다는 거였다.
비틀즈내에 폴매카트니의 음악성을 너무도 사랑하는 나는, 레논에겐 음악성보다는 인간적인 매력에 많이 끌렸기 때문이다.
음악성은 개인적으로 매카트니에 못미친다고 살며시 밀어내기도 했었다.
눈길을 끄는 사진은 존레논의 헤아릴 수 없는 가늠할 수 없는 내면의 깊이가 묻어나는 얼굴이 얼굴이 아니었다.
요코와 편안하게 행복한 모습으로 있는 모습이었다.
고독과 외로움만이 그에게 맞는 옷있는 싶었는데, 누군가와 저렇게 행복한 미소를 띄고 있다니 약간의 배신감과 함께 묘한 질투심까지 어쩔 수 없다.
레논과 요코 코드가 맞았다는 사랑
남녀간의 사랑으로만 해석하기엔 너무 숭고해보이기도 한다.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을 알아내고 그걸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그에게 요코는 거의 스승인듯도 싶다.
주위에 있는 예쁜 여자들을 마다하고 예술적 온도가 맞는 여자를 늘 찾았던 레논
음악을 이해하는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꿈
에술적 상승을 공유할 수 있는 여자 방황하 할 때 곁에 있어주었다던 그녀
보통의 상식으로 잣대로 쉽사리 파악할 수 없는 그들의 사랑앞에 눈물난다.
기존 체제에 대한 반항, 전위 음악가,페미니스트 실천가,베트남전에 대한 치열한 투쟁들의 이력.
모든 지구촌 문제들의 해결은 all you need is love 그의 외침대로 사랑이라는 단어만이 나와 세상을 자유롭게 행복하게 하리라.
그가 그토록 꿈꾸고 있던 나라인 사랑뿐인 나라에서 행복하겠지..
그의 마지막 앨범의 첫곡인just like starting over처럼 오늘 하루도 사랑이 비껴가지 않는 나날이길 .
다섯--서양 국립 미술관
동경을 자주 가보고 싶은 이유 중의 하나 서양 국립 미술관
우에노 공원내의 미술관
우에노 공원으로 가는 길
다른 동경의 느낌보다 조금은 후즐근하고 정겹고 사람냄새 펄떡이는 이 곳이 정겹다
근처의 시장에서의 활력과 생동감, 미술관 주위의 평온함을 너무도 사랑한다.
우에노 공원을 지나가면서 미술관에 다다르게 되는데
그때 내 눈앞에 펼쳐진 황금색의 유혹
심장이 두근거린다
이곳은 아직도 너무도 아름다운 늦가을이구나
이곳에 와서 나는 며칠간의 가을을 선물로 받았다.
바람 불어와 머리칼도 날리고 볼도 차가워지고 마음이 먼저 반응하는 그 가을이 되면
나의 시선은 늘 덕수궁의 돌담길로 고정되어 있다.
은행나무 가득 깔리는 늦가을의 덕수궁길을 너무도 사랑한다.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는 그 풍경들, 너무 짧아서 아쉽기만 했던 그 맘들을 이 공간에서 다시 볼 수 있다니
아프도록 아름다운 건 이런 풍경들이다.
냄새에 민감한 나도 은행나무 열매가 주는 그 고약함마저 신경이 안쓰인다.
미술관
르코르뷔지에 작품
참 단정한 미술관이로구나가 첫번째 느낌이었다면, 이젠 다른 것들도 익숙해진다.
르코르뷔지에의 5가지 원칙들
필로티--흐린 날이 많은 유럽 날씨에 환기가 잘 안되는 중정형 전통 주거의 단점을 보완하고 주거층을 습기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근대 기술을 이용, 건물을 지면과 띄우고자 필로티 사용을 제안했다.
옥상 테라스, 자유로운 평면,수평창의 개념이다.
건물의 하중을 벽이 아닌 기둥이 감당함으로써 단절성, 폐쇄성에서 연속성, 개방성을 보증하는 칸막이로 바뀌게 하야 근대적 공간을 가능하게 한 점, 수평창이 눈에 띄었다.
미술관에서 느끼는 창밖의 풍경이 근사해서 한참을 보았다.
가만히 귀기울여 들으면 나뭇잎들이 흔들거리는 소리들을 들을 수 있다.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였을까, 아니면 내 마음 속에 부는 바람 소리였을까
햇살에 떨리는 작은 잎파리들, 움켜쥘 수 있을 것 같은 햇살의 움직임,
이곳에서 가장 보고 싶은 그림은 피사로의 그림이다.
그림을 보노라면 가만히 기분 좋아지는 그림
요번에 가장 눈에 띄는 그림은 함메르 쇼이 그림이다.
사람의 뒷모습은
앞모습에서 미처 볼 수 없었던 그 사람의 내면이 보이는 것 같다.
누군가는 뒷모습에서 사람에게도 풍경이 있다는 걸 느낀다고 하더니, 나도 그말에 깊게 공감했다.
사람의 뒷모습은 그 사람을 품어주고 싶게 애처롭다.
처음 함메르 쇼이의 그림을 보았을 때 베르메르 그림의 분위기와 너무 비슷하다고 느꼈다.
정지된 화면, 침착한 분위기, 내면을 응시하는 고독한 분위기,
또 다른 누군가는 호퍼의 그림과도 비슷하다고 한다.
미처 내가 느끼진 못했는데, 호퍼랑도 진짜 많이 비슷한 느낌이구나 싶어졌다.
살아가면서 나의 기쁨과 슬프에 대해 나만큼 반응하는 사람이 없고, 누군가와 완전하게 공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문득문득 깨닫게 된다.
롤랑바르트는 자신의 책에 어머니의 사진을 절대로 실을 수 없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롤랑바르틔 어머니 얼굴이 너무 궁금하다)
나는 그 사진을 재연할 수 없다
그 사진은 오직 나를 위해 존재한다.
사람들에게 그 사진은 자신과는 무관한 사진, 일상적인 것을 표현한 수천장의 사진 중 하나에 불과할 것이다.
롤랑바르트에게 그 어떤 것과도 비교불가능한 귀중한 사진이 다른 사람에겐 그저 그런 사진일 뿐이고, 보편적이고 객관전인 잣대로 파악하면 더욱 더 하찮은 사진일 수 있다.
롤랑바르트가 우려했던 것은 어쩌면 어설픈 이해일런지 모르겠다.
불완전한 이해나 소통은 어쩌면 오해보다 더 상처일 수 있다.
재현될 수 없고 논리적으로 소통 불가능은 상실감에 절망하게 된다.
그럴 때 뒷모습의 그 사람도 나와 같은 가녀린 이해와 사랑을 바라는 ,상실을 통해서라도 얻을 수 있는 불완전한 사랑에 아파하는, 기대는 존재임을 느낀다.
무엇이든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이 볼 수 있는 누군가의 등에서 너 아닌 나를 바라본다.
여섯 --롯본기 미술관
가장 하늘과 가장 가까운 미술관이라는 롯본기 미술관
롯본기 힐스의 52층과 53층에 자리잡고 있다..
차가움과 화려한 느낌이 공존하는 이 미술관은 주로 현대 미술을 전시 하는 거 같다.
이번 전시회 기간동안엔 오다니라는 젊은 작가였다.
깜짝 놀라게 하고 일상의 익숙한 것들을 다른 각도에서 해석하는 작품을 볼 때마다 시원한 전율과 통쾌함에 빠진다.
기존에 우리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강요는 일종의 폭력이라 생각한다.
사람에겐 어느 단계에서 어느 나이에서 꼭 해야할 의무가 있는 것인지도 묻고싶다.
모든 사람들이 도덕적이면 평화롭겠지만, 꼭 그렇게 강요해아 하는지, 현대 미술이 물어보는 그 질문들을 좋아한다.
오다니의 파격은 우리가 편견으로 인해 무서워하고 ,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시뮬레이션을 통해 말해주고 있었다.
(오다니에 관한 기사가 있는 이 잡지를 보자마자 얼씨구나 하고 구입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올 블랙인데 지루하지 않고 호감을 주는 이유는 옷의 라인이 살아있어서 그런 것 같다 콧날, 손가락, 다리 길이,머리 스타일, 안경, 가죽 쟈켓의 목라인.. 까지 모두 움직이는 예술 작품 같다. ㅋㅋ)
편견이 주는 생각에 대해 자유롭지 못한 나는 계속 숨을 몰아쉬며 관람해야 했다.
익숙하지 않은 것이 주는 불편함에 몸서리도 쳤다.
아름다움에 대한 환상을 여지없이 몰아내는 가녀린 소녀의 손에 피가 잔뜩 묻어있는듯한 착시 현상, 순수하게 맑게 웃는 소녀가 뱀의 혀처럼 낼름 거리는 모습, 머리까지 달린 모피코트는 어떨까 , 사람의 머리카락을 이용한 옷도 제법 볼만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는은 참 오랜만이다.
유쾌함, 흥분, 아름다움, 떨림, 매혹의 순간, 불편함, 두려움, 분노의 감정까지 작품 하나를 보면서 이렇게 감정이 오락가락하기도 쉽지 않다.
그것도 일관되지 않은, 내 마음 속의 밑바닥을 조롱하는 것처럼, 편안한 모습의 나를 용납하지 않는다.
자신안에 다양함을 그야말로 여과없이 드러내는 작가의 솔직함과 기발함, 대담함이 부러웠고, 상상했던 작가의 모습과 잡지에서 본 그의 모습이 거의 일치해서 또 놀랐다.
편견이나 선입견없이 글이나 작품을 바라보려 해도 느껴지는 정서에서 사람을 상상하려는 버릇은 멈춰지지가 않는다.
(미와 추 공포와 매혹의 경계선상에서 발생하는 불편한 심리를 자극하면서 보이지 않는 존재를 공간 속에 물질화 하기, 이러한 작업은 사실 완전히 새로운 시도라고 볼 수 없을 뿐더러 심오한 사상이나 이론의 조력도 그다지 필요치 않은 듯 보인다,
하지만 전달하려는 명확한 메세지를 통해 우왕좌왕하지 않으며 팔색조같은 다양한 결과물을 제시하는 작가는 영리하다.
세련되고 정교한 만듦새와 기술적 완성도뿐 아니라 머리가 좋아도 손만을 고생시킬 줄 아는 점 역시 오다니 모토히코의 미덕중 하나다 -- 최재혁의 글 중에서 --월간 미술 1월 )
오다니 모토히코
1972년 교토생 도쿄 예술대 조각과를 졸업하고 동대학 첨단 예술 표현과 조교수로 재직중이다.
일곱 --쇼핑은 나의 힘
일본의 매력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쇼핑이었다.
아기자기 하면서도, 섬세한 그들의 정서가 내 지갑을 자꾸 건드린다.
처음 동경을 가기 시작했을 때보다 거의 두배 가까이 환율이 올라간 듯 싶다.
지금은 덥썩 무엇을 집어들기엔 부담이 된다.
자주 가는 선물가게,긴자거리의 가게가 있지만 요번엔 많이 망설였다.
그래도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던 거는 악세사리이다.
취향이 우리나라와 조금 다른 것인지 우리 나라에서 볼 수 없는 것들,조금은 과감한 디자인을 위주로 해서 몇 가지 골랐다.
돌체 앤 가바나나 케이트 스페이트의 상큼 발랄 자유로운 파격의 디자인들이 내 발목을 잡아당겼다.
내가 좋아하는 위트있고 단순하면서도 유아적인 감성을 건드리는 엘리키시모토도 빼놓을 수 없다.
매장의 건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설레고 벅차다.
동경의 호텔은 개인적으로는 긴자쪽을 좋아한다.
늦게까지 소핑하기도 좋고, 교통도 편하고 먹을 곳도 많아서이다.
지하철 두 개의 노선이 있다.
긴자쪽의 음식 가격이 만만치 않은데 ,제일 놀랐던 일은 일식 집에 들어가서 계란찜 하나를 시켰는데 가격이 8000원 정도였다.
호텔에서 밤에 잠깐 나와 먹는데, 카드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카드도 안받아서 돈을 억지로 뒤져서 계산했다. 그때 생각하면 땀이 난다.
이번에는 courtyard by mariott에서 묵었다.
먹고, 자고 움직이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던 호텔
다음에도 또 가고 싶은 호텔이다
여덟-- 여행 후에
프로이트는 (문명과 그 불만)이라는 책에서모든 인간은 스스로 자신이 어떤 특별한 방식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지를 찾아내야 한다는 프리드리히 말을 인용했다.
구원은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야 할 일종의 숙제 속에서 여행이 하나의 치유책으로 다가온다.
여행 안에서 이루어지는 자신안에 타자이면서 혹독한 모습을 유연하게 하기,
쉽게 변화되지 않는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기, 그림을 통해서 귓가에 스치는 음악을 통해서, 거리의 나뭇잎을 통해서 , 스치듯 지나치는 사람들에게서 나를 일깨운다.
함메르쇼이의 뒷모습의 그림을 통해서 그녀가 느꼈을 슬픔이나 고독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고, 세르게이의 피아노 연주를 통해서 자유로운 파격이 주는 통쾌함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시간과 공간이 다른 이곳에서 나를 흔들리게 하는 이유는 그들의 영혼이 내게 말을 걸어주었기 때문이다.
완고하게 닫혀있던 하나의 세계가 그대들로 인해 흔들거린다.
어쩌면 여행을 통해서 느꼈을 감흥은, 소통하기 어려운, 나혼자만의 독백과 비밀일런지 모른다.
부는 바람이 이리 저리 날리는 나뭇잎을 보면서, 문득 느껴지던 황량함
그때마다 나를 어루만져주던 김 광석의 목소리, 그가 말해주던 위로
이 노래만큼 흔들렸던 나의 늦가을의 여행
지친 회색 그늘에 기대어 앉은 오후에는
파도처럼 노래를 불렀지만 가슴은 비어
그대로 인해 흔들리는 세상
유리처럼 잠겨 있는 시간보다 진한 아픔을 느껴
-김 광석의 기대어 앉은 오후에는--
신청곡-- 보즈 스켁스 -- we 're all alone
(노래는 가을 내내 들었던 보즈 스켁스의 위아 올 어론이에요. 리타 쿨리지의 노래보다 보즈 스켁스의 노래가 더 호소력있더군요. 평소 좋아하던 노래인데도 , 어느 날 갑자기 노래에 팍 꽂히는 순간이 있습니다. 몇 년전 가을 간송에서 그림을 보면서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오는데 이 노래의 아름다움에 숨이 탁 막혔습니다. 가을날이면 노벰버레인과 이 노래 그리고 스팅의 노래가 그렇게 생각나네요)
떠나가는 후배에게 --하나 ~ 이 계절은 바람이 유난히 차가웠다. 황량한 바람부는 오늘의 거리에서 불던 바람이 내 마음 속에도 불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하는 계절인가보다. 동경에서 돌아오는 마지막 날, 친구와 나는 항상 유락조 거리에서 헤어진다. 유락조 거리의 은행나무를 항상 물끄러미 쳐다본다. 가까이 있지 못하는, 내가 보고 싶을 때 마음대로 보지 못한다는 그 마음이 항상 서럽다. 그래서 더 그리울거라 생각한다. 그런 안타까움을 가슴에 묻고 바람부는 거리에서 바람을 잡으려는 그 허망함과 이별해야 했다. 오늘은 친구같은 후배를 당분간 보낸다. 언제 볼 지 모른단다. 그냥 틀림없이 내곁에 있어줄 거라 했던 후배인데도 떠난단다. 김두례 작가의 그림을 점심 시간에 보았다. 그 작가가 한 말이 그랬다. 자기 소유는 없는 거라고 잠시 다 내 곁을 스쳐지나가는 거라고 그림에서 작가의 말이 그대로 배어난다. 놓아버린 사람의 그 자유로움과 그러면서도 쉽게 놓아지지 않는 한편으로 알싸한 아픔이 곳곳에 묻어난다. 어쩌면 그림에서 받았던 그 느낌들은, 대상에 원래 실재한 속성으로서의 느낌이 아니라 단지 내 마음을 비춰봤을런지 모른다 그래서 그림이 오늘 날씨처럼, 떠나가는 후배처럼, 헤어져야 하는 친구처럼 그렇게 안타까웠는지 모른다. 가을날 바람부는 거리를 헤매던 마음은 그림에서 느껴지는 그 느낌들, 그림이 무얼 말해주는 지 알겠지. 내 영혼에 상처를 주는 것들을 어쩌면 나는 가장 사랑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베크만의 그림이 가장 아팠고 키스 반 둥겐의 그림도 아팠고 스즈끼 하루보누의 그림도 아팠고 함메르 쇼이 그림 앞에선 한참을 떠날 수 없이 아렸다. 그래서 더 사랑하게 되었나보다. 그래서 그렇게 떠나보내고 말았다. 누군가와 헤어질 때는 타인의 무엇을 삼키지 못해서, 받아들이지 못해서 버거워서 헤여졌었다. 그 차이를 새로움으로 거듭나게 하지 못했을 때 ,힘겨웠지만 그 관계를 놓아버렸다. 그런데 그런 누군가와의 차이나 용납이 어려운 것이 아님에도 그렇게 기약없이 헤어짐을 연습한다.
다시 내 삶에 익숙해지기 위해 많은 시간이 걸릴거라고 그렇게 위로하련다
내 가슴의 어디에서도 낙엽이 지고 있는 것 같다
떠나가는 사람의 모습을 필사적으로 기억하려고 시작한 롤랑바르트의 사진 찾기 경험이
더욱 더 여기없음을 확실하게 깨워준 거라면,
그 철저한 상실감과 맞닥뜨려야 하는 것이 운명이라면,
부재를 확인하는 그 속에서 느껴지는 그리움이 온기라면
어쩌면 그것은 이별이 주는 ,이별의 장벽을 걷어낼 수 있는 선물일런지 모른다.
떠나가는 후배에게 두울~~
봄은 사과꽃의 입김보다 짧고 여름은 너무 아름다워 지체할 수 없고, 가을은 낙엽의 화톳불처럼 빠르고, 죽음의 잠처럼 즐겁다"고 했던가.
내가 너무도 좋아하는 그 가을은 너무 서럽게 짧았다.
매일 누군가를 만날 것 같은 설레임으로 삽니다
가을처럼 일요일 아침처럼 어딘가 비어 있는 마음으로 요즘은 하루를 보냅니다
빈의자 하나를 가슴에 품고있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와서 앉아 주기를 기다리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까닭없이 마음이 비어갑니다
투명해진다고 말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열여덟살 소녀의 마음을 헤집어 놓은 이 문장이 몇 십년 동안 가을이 되면 똑같은분량의 무게와 감성으로 파고든다.
가을은그렇게 투명해지고 기대하게 하고 서러워지는 계절이다.
가을의 입구에서 배롱나무꽃을 만났다.
어릴때 순수하던 마음으로 바라보았던 과꽃과 사루비아꽃지던 날 나의 가을은 떠나가고 있었다.
살구나무꽃이 햇빛을 받으며 흔들리던 그 가녀림에 눈길이 자꾸 머문다.
과꽃, 사루비아꽃, 맨드라미 한창 화사할 때 그들을 보며 속삭였던 대화들, 그날의 온기
어느 날 문득 눈들어보니 그꽃들이 이렇게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같이시름시름 앓는다
과꽃 지던 날, 나의 가을은 지나갔다.
안녕,가을아
잘가렴
가을날 바람부는 거리를 헤메던 사람들은 ,
사람이 주는 온기가 그립다고 선뜻말하지 못한다..
늘 자신의 감정에 자신없음과 그 속절없음, 영원성에 대한 회의와 자책감이 더 클지도 모르니까.
살다보면 정을 많이 들이고 더 사랑했던 사람들은 때때로 나의 뒷통수를 치고
그만큼 사랑했기에 바라는 것 또한 많고 내 식으로 길들이고 싶은 관계여서였겠지.
때로는 별다른 공을 들이지 않은 것 같은데 의외로 술술 풀려서 힘들 주기도 하는 관계들이 있다.
기대치가 없다는 게 오히려 더 편하고, 영원성에 닿는다.
꼭 붙잡아 두고 싶은 사람들은 이렇게 허망하게 떠나간다.
ㅋㅋ
어디에 있든 , 보이지 않아도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 관계들,오히려 더 견고해지는 그런 관계로 거듭날거야.
많이 섭섭해서 눈물날 것 같은데 떠나는 사람은 너무 좋단다.
그럼 나도 좋아해야지
본인이 행복해하는 것에 힘을 실어주는 게 좋은 관계다.
나의 욕심으로 곁에 두려하는, 사랑한다는 명목하에 상대의 발목을 잡는 스탕달의 바니나 바니니가 어리석다는 걸 이젠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근데 이렇게 말하고 가끔은 그리울지 모르겠다.
원래 떠나는 자는 유목민처럼 가벼운 법이고,남겨지는 자가 고독한 법이다. ㅋㅋ
어디에 있든 많이 행복했음 좋겠다.
행복할거야.
첫댓글 정성일 영화 평론가의 첫 영화인 카페 느와르를 봤습니다. 장장 3시간 18분,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의 내용을 토대로한 소년소녀백과 교양사전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다소 딱딱한 영화입니다. 감독의 정서가 저와 비슷하다고 우기곤 있지만, 어쩌면 토스토예프스키, 그것도 가을이면 몸서리치게 읽는 백야와 신하균과 정유미였을까요. 저는 그 긴시간동안 전혀 지루하지 않고 ,초반부터 쓸쓸함이 가득 밀려오면서 눈물을 연신 흘렸네요. 삶은 쓸쓸한 것이라고 되뇌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 한자락 위안을 얻는 건, 겨울이여서 그랬을까요 엇갈리는 사랑, 자신 하나 이해해주는 여자와 엇갈리고 마는,
그런 남자를 한없이 바라보기만 하는 다른 여자..제가 너무 좋아하는 정유미가 카페 아모카에서 망토를 입고 추는 춤-사랑하는 사람 기다리면서 처연하게 추는 춤 아름답고도 참 시린 장면입니다. 해피 투게더에서 장국영이 추던 춤과 함께 기억 될 춤장면일듯 싶네요. 정유미의 그 옷이 신기하게 제가 초겨울에 입었던 스타일하고 너무 똑같아서 깜짝 놀랬습니다. 신하균의 눈빛 연기 가슴 저리고, 정유미 또한 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어요. 조만간 또 보아야겠어요. 영화에서 나오던 남몰래 흘르던 눈물 너무 좋네요
이건 제가 처음 카페 느와르를 봤을 때 감상입니다. 보통 영화를 보고나서 사람들에게 보라고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제가 느낀 감정하고 다를 수 있는데 무턱대고 추천을 할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정말 가끔씩 피튀기며 추천을 해주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작품이나 몇 몇 작품이 그런데 정성일 감독의 이 작품을 빼놓을 수 없네요. 워낙에 이 분의 글 스타일에 무조건 흠뻑 빠지기도 했고. 이 분이 짚어주는 모든 사물들이 있는 자리,. 그 장소, 그 음악, 심지어 배우들이 입고나왔던 옷스타일까지 모두 저의 감성을 지독히 흔들어놓았습니다. 두번 째 보던 날 가슴이 쿵쾅거리면서, 어쩌면 나하고 나이 차이도 제법 나는데도, 나와 이렇게 비슷한 걸 보고 ,느끼시고 계시는지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가까이 뵐 수 있는 기회를 감히 너무 떨려서 포기할만큼, 당분간은 환상 속에 남겨두고 싶네요.단 한사람 , 누군가로 인해 자신의 존재 자체가 휘청거리고 흔들렸던 경험을 해보신 모든 분들, 누군가로 인해 삶이 헝클어지는 것에 진저리를 치신 분들,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대상일지도 모르는데도 빠져드는 치명적인 사랑을 해보신 모든 분들에게 이 영화 꼭 보라고, 느끼고 그리고이 영화의 감정의 해일에 대해 말할 수 있었음 좋겠습니다
정말 오랫만에 글을 읽게 되네요..블로그나 인터넷을 통해선 요새 트위터의 140자의 글의 한계로 인함인지
말도 뜻도 안되는 중요 문장 몇자 남겨두고 중언부언하는 글들을 봅니다.
오랫만에 봐서인가요..넘 기쁘고 설레여서 클릭할 때 가슴이 떨렸습니다. ㅋ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전반적으로 다 읽었는데 다시 읽지 않으며 페르님의
그 파편의 글들을 놓쳐버리고 전체적인 것에 대략 두리뭉실 제 나름대로 해석해서
남겨지는 잔영이 작을 것 같애서요..
감사해요.
페르님이 추천할 강추할 정도라면 보고 난 뒤 이곳에 다시 쓸께요..정성일의 카페 누와르..
아 ㅋㅋ 이건 정말 아닌데 어쩌지요?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분위기가 정말 아닌데요. ㅋㅋ 우연인데요. 우연히 봄왈츠님이 처음으로댓글 쓰신 건데요.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글을 올려서 심판대에 서있는 기분이에요. 정신없이 후다닥 쓰긴 했는데.기억도 안나네요. ㅋㅋ 정성일님의 이 영화는.. 저는 이 영화를 보고 정성일이란 분을 다 이해했고 다 분석해냈고 다 공감할 수 있다고 , 순간 정말 오만한 감정이 들었어요. 그럼 안되는 건데도,, 너무도 감독의 마음이 정서의 세계를 환하게 들여다 본듯했어요. 감독의 마음이 무진장 쉽게 다가온 건, 제가 너무 섣부른 거겠지요 내 마음 속의 모든 열망들, 관계들 속에서 바라는 열망들의 총
집합체였네요. ㅎㅎ 삶이 사랑이 아프지 않은지 아픈지는 모르겠지만 간혹 아프다고 말하고 싶어지는 가녀린 나의 영혼을 조금은 따뜻하게 감싸준 영화로 기억될 것 같아요. ㅋㅋ누군가의 그늘진 영혼을 잔잔히 어루만지는 그런 느낌들이니 사랑하고 싶었던 거 같아요.
'놓아 버린 사람의 자유로움과 그러면서도 쉽게 놓아지지 않는 아픔'을 감득하셨다니, 여행을 통해 얻은 페르소나님의 시야가 얼마나 넓고 깊은지 알 것 같습니다. 기독사상에서도 자기를 비우라며 예수의 '케노시스(kenosis)'를 가르치고, 불교에서도 모든 집착을 내려 놓으라는 '방하착(放下着)'과 내려 놓지 못할 거면 다시 지고 가라는 '착득거(着得去)'를 화두 삼고 있으니, 결국 비움으로써 자유를 얻는다는 이치 아니겠어요? ... 바위 틈에서도 꿋꿋하게 꽃피운 들꽃이 제게 생명을 가르칩니다.
모든 일의 흐름을 안다는 거겠지요.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그 흐름을 바라보고 길을 잃지 않는 거겠지요.
생로병사의 흐름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지나간 것은 지나가게 하고, 또 어떤 사건이 왔을 때는 피하지 않고 오롯이 집중하는 것. 내게 온 것들은 내 삶을 다시 창조하고 열정적으로 매진하여 지나간뒤에는 한치의 회환도 미련도 남지 않게 연소가 되게 하는 것
흘러가는 물을 보면서 그 물의 흐름을 보지 못하고 물만 본다고 말한 정화 스님처럼 , 무상한 것들을 붙잡는게 그만큼 고통아니겠어요. 그 흐름을 유연하게 타고 싶습니다.
집착에서가장 어려운 건 관계내의 집착인데요.그것을 현명하게 대처해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을 다지기도 합니다. 가장 놀라운 관계 중의 하나가 싸르트르와 보봐르의 관계인 듯 싶어요.비움으로써 얻는 자유의 진수이자 극치인듯 싶네요.
보통의 사람들의 방법만으로는 일찍 끝났을 관계였을 거에요. 그렇게 되었다면 이들의 철학이 훨씬 더 빈곤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과꽃은 성공회 성당내에 가을 내에 피어있었습니다. 가을 내내 점심 시간에 과꽃과 맨드라미,사루비아에 빠져서 그곳을 가곤했지요.돌틈 사이로 화려한듯, 애처로운듯 피어있는 그 꽃들은 어린 시절 마당에 가득 피었던 그 시절로 데려다주었구요.
누
기다림 으로 기웃거린 시간이 지나고 ...반가움으로 知步! 하며 마음과 발길이 선뜻 나서기 하고 싶어집니다, 저도...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 감히 그냥 혼자서 많이 기다리지 않을까 생각했었습니다. 제 생각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님께 약간의 행복한 시간이 되셨다면 저 또한 행복할 듯 싶어요. 전 고독해서 글을 쓰는데요.혼자서도 무지 잘 쓰고 친구에게도..그런데 글을 통해서 모르는 다수에게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지요. 나는 바라볼 수 없고 보여진다는 건 정말 공포에 가깝지요. 판옵티콘의 공포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고 자신에게 솔직함으로써 자신을 드러내는 건 스스로 치유 효과도 어느 정도 기대하지만, 아마도 이 글을 읽고 누군가는 진심으로 소통이 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일말의 순수한 기대도 있겠지요.님과 같은 분 만
나면 .. 정말 용기내길 잘 했다 싶어져요. 얼굴 발개지는 것 감수하고도.. 그래 잘 했다 싶어요. 감사하구요. 많이 궁금하지만, 여기 이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소통!을 위해 나눔으로 내어 놓을 수 있는 용기 있는 분 바라보며 죄송한 마음 들었어요 ...여행 이야기의 갤러리 그림감상, 거리 이야기 ..더 잘 ? 보려고 눈을 껌뻑이며 귀 기울이며 뒤 따라 걷다 좋아서 웃다가 기뻐하다 가만히 한숨 쉬며 마음으로 가는 여행 끝내기 하는 영 시니어 ♡♥ 이니 궁금증 한가지 줄여주세요 , 늘 고맙습니다.
궁금증 하나 풀어주셨네요. 감사히 받을게요. 글 쓴다는 게 매우 ...위태롭게 느껴지기도 해요.
저는 글을 쓰면서 자신을 드러내면서 자유로워지고 싶었습니다. 약간의 불안한 심정이 있었음에도.
그럼에도 나를 드러내고자 하는 이유는 관계 맺기를 통해서 성장할 수 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이라는거죠. 관계를 맺는다는 말 속엔 다른 사람이 내게 보여주는 관심,배려,그리고 또하나 신경쓰인다는 것까지 감수하고 용기내는 일입니다. 여러가지 실존적 가능성 가운데 하나만을 고착시키지 않으며 더 나은 존재가 될 것을 믿어의심치 않는 따뜻한 눈..그런 눈,욕심이 좀 많았나요?
그런데 막상 기대해놓고는 누군가 덜거턱 들어오면 또 도망가고 내 세계로 갇혀버리기도 했지요. 나를 정확히 꿰뚫어보는, 냉정한 객관성이 때론 무섭기도 했고, 싫기도 했고..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나인데, 어느 한면으로 파악해서 자리매김하는 걸 참을 수가 없었을까요. 무한한 나를 인정해달라는 무례함..?
타자와 나의 구체적인 관계들 중에서 비극적인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력한 장치로 싸르트르는 언어를 두었습니다만, 내가 말한 것, 주장하는 것들을 그냥 외면할 때, 거절해야 한다고하나 또
또는 내가 말한 것의 의미를 전혀 언급해주지 않는 경우에 느껴지던 그 고독함이 잠시 생각났습니다. 너무 큰 바람이었을테지요.
언어가 가지는 수많은 한계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그러나 그래도, 또....오랜 고생 끝에 이젠 조금 소통의 기쁨이 뭔지 알게 해주는 그런 벗들이 조금씩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조금씩 숨이 쉬어져셔요. 넘 감사하지요. 저도 많이 행복합니다. 제행복함까지 나눠가지시는 겨울 되시기 바랍니다. ㅋㅋ
고맙습니다. 관계맺기!의 어려움에 동의 하며 겨울에 행복하라~는 축복이 실현 되기에 저도 같이 주문 외웁니다,소원은 어느해 삼일절에 오랫동안 꿈에 그리던 우에노 공원을 방문 했었거던요 ^^* 남대문 시장같은 상가 거리를 거쳐 우에노에 왔노라 ...남편과 촌 ? 스러운 샤신 한방이 못마땅 해서 그자리 다시 서면 이번에는 멋지게 인증샷 하려구요. 봄을 기다리는 성급한 삼월 맞이로 제격 이고 최대의 삶의 사치를 즐기고 싶답니다.
우에노 공원 참 친근하지요. 처음 갔을 때도 마치 여러번 가본 것 같은 친밀한 느낌이었어요. 다음번에 가게 되시면 멋진 사진 찍으시구요. ㅋㅋ 벚꽃 피는 계절에 저도 그곳을 꼭 다시 가봐야겠다고 항상 굳게 다짐하고 있는데 그때 기회가 안닿네요. ㅋㅋ 영하 10도라는데 이제 추위에 적응이 되어서인지 따뜻하게 느껴지네여. 삼월이란 말을 듣는 것만으로 기분 넘 좋아지네요. 마음 속엔 삼월을 간직하며. ㅋㅋ,점심 맛나게 먹어야겠어요.
정말 세상 모든 것이 잠시 내곁을 스쳐지나가는 것일 뿐.. 좋은 사람도 소중한 물건도..감동의 장소도..영원히 붙잡을 순 없죠...여행도 순간의 찰나..기억의 뒤안길로 멀어져가는.. 붙잡을 수 없지만...그 기억의 단편들을 하나씩 하나씩 소중하게 담아두고 삶의 쳇바퀴속에서 침체된 자신의 존재를 깨우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게 아닐까 해요..페르소나님의 기억의 단편들을 따라 잠시나마 감성에 푹 빠져 여행을 하다 돌아온것 같습니다.^^ 영화 역시 간접적인 여행이 아닐까 해요..영화속의 장소, 음악에 서린 나만의 추억과 영화속의 스토리가 중첩된다면 그 순간만큼은 영화와 내가 하나가 될거 같네요~
댓글이 넘 이쁘고 가슴이 저려서 뭐라고 써야할 지 모르겠어요. ㅋㅋ 모든 것들이 나와 끝까지 함께 하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을 그냥 냉소적으로 흘려보내라는 말은 아니겠지요. 그냥 저는 어떤 상황에서든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해보려구요. 그렇게 열과 성을 다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 놓아버림을 하려구요. 어떤 것에 최선을 다한 사람은 한치의 미련도 회환도 없으니까요. //여행이든, 영화든, 음악이든.. 다 나와는 다른 세계에 대한 받아들임이 아닐까해요. 교과서가 가르치는 지극히 보편타당해보이는 것들로부터의 도망이기도 하구요. 제겐.. 사회로부터 노동으로부터 규제로부터 그렇게 벗어나보고 싶었나봅니다.
군중속에서 외로운 빈자리를 자유로운 여행과 그림,음악,영화...를 통해서 영혼을 안식시키고 아름다운 삶으로 가꾸어나가는 페르소나님의 사유의 속으로 잠시나마 빠져들어 갈 수 있음에 감사드리네요...항상 행복하세요~
시나브로님, 그동안 잘 지내셨지요? 오랜만에 반갑습니다.
음악, 영화, 그림,패션, 책관계들. 모두 다 일종의 구원에 대한 열망내지 희망이겠지요. 어릴적에 느꼈을 그런 평화에 대한 갈망이요. 그저 누군가에 말을 잘 듣는 착한 딸이기만 하면 세상과는 분리되어서 느꼈을 그런 잔잔한 평화.인생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구원자가 짠하고 나타나길 무작정 기다렸던 것도 같구요. 이젠 어느 한부분이 내게 완벽한 구원을 제시해줄 거라 믿진 않아요.그만큼 완벽하게 현명한 건 있진 않겠지요. 글을 매개로 하는 작은 부분의 소통 고맙고 힘이 되네요. 남은 주말 더 행복하게 누리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