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산행일지
05:12 “때르릉, 때르릉~~~~”
“동주형, 저 철언인데요 술이 안 깨서 도저히 못가겠네요”
05:30 ‘뫼가람’과 ‘아멜리에’와 함께 셋이서 전주를 출발한다
오랜만에 남의 차를 탄 덕분에 한 숨 붙여보려고 눈을 감아도 도저히 잠이 안 오는데
뒷좌석을 돌아보니 ‘아멜리에’는 고개를 떨구고 잘도 자고 있다.
07:10 불이 꺼진 반선의 일출식당을 두드리니 홀에서 자고 있던 이사장이 눈을 비비며 일어나 반갑게 맞아준다.
시원한 맥주로 텅 비고 뉘엇뉘엇한 뱃속을 달래고 일출의 트레이드마크인 시원매콤한 버섯탕으로 아침 해장을 한다.
버섯탕을 보니 버섯탕만 보면 환장해 하는 ‘만복대’가 생각나 전화를 걸어본다.
“어이, 반선으로 오소 자네 오면 산행은 빠방시키고 일출서 술이나 푸게”
“아이고, 도저히 못 일어나겠어요”
“알았어 그럼 그 대신 오후에 내려가면 하산주 사!”
“알았어요”
그러고 보니 12월 첫 산행인 것 같다.
첫째 주는 향적봉 대피소에서 날 새고 술 푸고 담날 곤도라로 휭~ 내려와 버리고....
둘째 주는 뱀사골대피소에 물품 보급해준다고 휴지며 부식, 옻닭 등등 준비해놓고 ‘만복대’ 갈비뼈가 금이 가는 바람에
여관 잡아 여관에서 옻닭 삶아 먹고 일요일까지 진종일 술로 떡칠을 하고....
어제도 남원 아영에서 똥돼지 잡아 점심부터 소주로 젖다가 ‘뫼가람’은 오늘 산행 때문에 좀 일찍 들어가고...
그 덕분에 ‘만복대’는 저렇게 퍼져있고....
김사장은 맥주 2병 값은 받지도 않고 그냥 밥값만 받는다.
맨 날 신세 지는 것 같아 미안하다.
배낭 위에 저번 주에 가져다주기로 한 두루마리 휴지 10개들이 한 세트를 동여매고
영하 10도로 싸늘하지만, 파랗게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일출식당을 나선다.
08:10 출발
석실, 와운으로 가는 길은 눈이 많이 쌓여 있지는 않지만 차량 통행이 어려울 정도로 미끌거린다.
요룡대가 다가오는데 요룡대 부근의 화장실 앞에 츄리닝 차림의 3사람이 서성거리고 있다
우리가 다가가자 맨 앞에 있는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실례지만 부식 있으면 좀 얻을 수 있을까요???”
내가 듣기로는 분명히 그렇게 들었다 (나중에 결국 나만 사오정이되었지만...)
황당하다 이제 산행 시작하는 사람에게 부식을 달라니....
더구나 차림으로 등산객도 아님이 분명한데...
나는 스틱으로 와운마을 쪽을 가리키며 불쾌하게 말했다
“우리는 없고 저기 가면 마을에 상점들이 있으니 거기 가면 구할 수 있을거요”
산행 도중 두고두고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뫼가람’과 ‘아멜리에’에게 투덜거렸다.
잿빛의 뱀사골계곡은 그 웅장했던 물소리를 감추고 고요하게 동면을 취하고 있다
군데군데 흐름이 빠른 곳만 생명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차갑고 맑게 노출되었다가 다시 얼음 속으로 들어간다.
물이 녹은 부분이 묘한 형상이다
09:34경 이끼폭포 초입을 지나친다
철다리 전후로 몇 개의 시그널이 걸려있다
이제는 이끼폭포도 일반적인 코스로 널리 알려진 모양이다.
뱀사골 대피소로 가는 동안 몇 팀의 등산객들과 스친다 모두 대피소에서 자고 오는 사람들이다.
그 중 대피소 주인의 선배라는 순천 사는 분 일행과 마주쳤는데 화장지를 메고 가니 대피소에
공급해주는 걸 알고 아는 체를 하신다. 나와는 처음이지만 ‘만복대’를 통해서 늘 말을 들었던 분이다.
대피소가 가까워오자 장군이 짖는 소리가 은은히 들린다
10:32 뱀사골대피소
대피소는 텅 비어있고 산장지기 영호와 등산객 3명만이 장군이를 얼르고 있다.
가져간 화장지와 달력, 고무장갑을 전해주고 커피를 한잔씩 얻어 마신다
학생인 듯한 여자 2명과 남자 1명이 일행인 3명의 등산객은 원래는 백무동쪽이 목적이었는데
시간이 빨라 공단측에서 통과를 안 시켜준 모양이다
1시간을 기다리라해서 방향을 이쪽으로 틀었단다
‘만복대’와 동행이었다면 보나마나 여기서 산행 끝내고 또 젖기 시작하겠지
우리도 흔들린다 목적을 달성했으니 그냥 눌러 앉아 술이나 퍼???
10:45 마음을 잡고 대피소 출발
하산 코스를 어디로 할까 고민이다
묘향대-이끼폭포나 하점골삼거리-이끼폭포로 할까 하다가 이끼폭포 초입에서 내려가는 길이 너무 지루해 포기,
심원이나 달궁능선은 차량회수가 곤란하고....
에이 그냥 심마니나 타자 재수 좋으면 전인미답의 러셀 맛을 볼 수도 있고....
주능에 올라서자 조망이 무한대다.
이렇게 조망이 좋았던 기억이 별로 나지 않는다.
주능 길엔 눈도 상당히 쌓여있다.
11:13 삼도봉
양지라서 눈은 모두 녹고 바위가 깨끗이 드러나 있다.
조망이 너무 좋으니 처음 와 본 곳 같이 생소하다
‘뫼가람’도 자기가 지리산 다닌 후로 이런 조망은 처음이라며 배낭에서 카메라를 꺼내 정신없이 눌러댄다.
불무장등의 허리 위로 남해가 보인다
묘지육거리에서 반야봉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묘지육거리 : 1.천왕봉(주능) 2.노고단(주능) 3.반야봉 4.묘향대 5.불무장등 6.용수암골)
발목에서 정강이사이 정도 쌓인 눈이 아직 러셀이 안 되어 있다.
2-3분 올라가자 노루목쪽에서 올라간 듯한 20여명 정도의 단체 등산객들이 내려온다.
11:56 반야봉
바람이 제법 세차다
반야봉도 양지인데다가 나무가 없으니 눈은 녹고 없다
광양만의 바닷물이 보석처럼 빛나고 무등산, 덕유산, 내장산이 신기할 정도로 가까이 있다.
반야봉 헬기장에서 우리는 스패치를 찬다.
헬기장부터 중봉까지는 어느 곳은 눈이 허벅지까지 빠진다.
중봉에서 ‘뫼가람’이 뭐 좀 먹고 가잔다
어제 숙취 때문에 올라 올때 말은 안했지만 무지 힘들어 했는데 이제 좀 풀리니 배가 고픈가 보다
그래봐야 얼어붙은 빵쪼가리 밖에 없지만....
주저앉아 맛있게도 먹는다.
혼자 먹기 미안한 듯 ‘아멜리에’에게 사정하며 한쪼가리 먹인다.
배낭 옆에 끼어 온 물은 얼어붙어 물이 나오지 않자 배낭 안에 수통을 넣는다
빵을 먹고 GPS로 찍어 보던 ‘뫼가람‘이 정령치 위로 아스라이 보이는 산을 가리키며 전주 모악산 같다고 한다
아닌게 아니라 산세를 보니 분명 모악산이다
더불어 운장산도 보인다
재수 없게도 카메라 줌의 타이트 기능이 고장나 모악산과 운장산은 당겨지지가 않는다.
내려가면 바로 카메라부터 맡겨야겠다.
이 산행기의 모든 사진이 분실되고 ‘뫼가람’이 찍은 천왕봉 사진 한 장만 남아 있다
12:30 중봉 출발
심원삼거리를 지나 새 눈길을 러셀하는 맛이 쏠쏠하다
달궁삼거리로 가는 도중 배낭도 안 멘 2명의 남자 등산객을 만난다.
달궁 봉산골에서나 올라오는 모양이다
뒤이어 같은 일행인 여자 1명이 올라온다.
13:06 달궁삼거리를 지나 본격 심마니능선으로 들어선다.
갈수록 쌓인 눈이 엷어진다
어중간하게 눈이 쌓이니 낙엽과 섞여져 엄청 미끄럽다.
이렇게 미끄러운건 아이젠도 소용없다.
우리가 내려갈 심마니능을 타고 올라오는 등산객 1명을 만난다
약 45-50ℓ의 배낭이 빵빵하다.
우리도 심마니로 내려간다니까 정겹게 웃으며 한마디 던져준다.
“내가 눈 다 털고 왔네요..”
나도 힘차게 대답한다.
“감사합니다...”
하점골 삼거리를 지나면서부터 길은 더 미끄러워지고 내 고질인 무릎에 통증이 오기 시작한다.
호박 떨어지듯 텅~텅~ 떨어지기를 4-5번, 미끄러운 내리막에 발에 힘이 들어가니 무릎에 무리는 더 가중된다.
처음에는 왼쪽 무릎에 통증이 오다가 계속 오른발에 힘이 실리니 두 다리 모두 아파온다.
아픈 것은 이미 길이 들여져 참고 갈만 하지만 미끄러워 자꾸 넘어지니 짜증이 난다.
모두들 갈증까지 나지만 물은 이미 떨어졌다.
하긴 영 못 견디면 눈이라도 집어 먹으면 되지...
아직 그 정도 까지는 아닌 것 같다.
좌측에 서북능과 우측의 영원령(중북부능)이 호위하듯 심마니능을 따라온다.
만복대와 삼정산이 그 능선들 중에서도 우뚝하다.
좌측 아래에는 달궁마을과 덕동마을이 보이고 우측으로 와운마을이 다가오기 시작한다.
정면으로는 멀리 산내 소재지가 보인다.
당초 반야봉에서 4시간 정도를 예상했는데 내 무릎과 미끄러움으로 5시간이 가까워 와도 아직 30여분은 더 가야 할 듯....
‘뫼가람’과 ‘아멜리에’에게 미안해서 난 천천히 갈 테니 먼저가라고 길을 내 준다
하기는 둘도 몇 번이나 넉장구리하며 넘어졌지만 유독 내가 제일 많이 넘어진 것 같다.
‘아멜리에’는 내 무릎이 항상 아팠으면 좋겠단다.
천천히 가니까 좋으니.,....쩝....
반선이 내려다 보이는 묘지에 도착
두 사람은 좌측 전적기념비 쪽으로 내려갔나 보다 난 한 걸음이라도 덜 갈려고 우측의 뱀사골 입구 다리로 떨어진다
17:27 다리를 끌며 도로로 내려오니 둘은 이미 차 옆에서 여유를 부리고 있다.
일출식당에서 갈증을 풀려고 맥주를 한 사발씩 들이킨다.
난 냉면기에 따르니 한 병이 다 들어간다. 단칼로 때리려 했으나 너무 차다.
‘뫼가람’은 운전 때문에 딱 한 컵만 마신다
일출에서 황당한 얘기를 듣는다.
이사장 : “아침에 휴지 메고 가셨죠??”
어제 모임이 있어 창원에서 손님이 와서 늦게 까지 술 먹고 와운에서 잤는데 아침 산책하다가
갑자기 화장실을 가게 되었는데 화장지가 없어 난처해하고 있는 참에 마침 우리가 올라오더라는 것
“실례지만 화장지 있으면 좀 얻을 수 있을까요??” 하니까
화장지를 1세트나 멘 놈(나) 왈,
“우리는 없고 저기 가면 마을에 상점들이 있으니 거기 가면 구할 수 있을거요”
1세트나 메고도 없다고 하는 것도 황당한데 없다면 그만이지 와운 가면 구한다는 말은 왜 해??
누구는 거기 가서 구할지 몰라서 그러나???
그러면서 투덜거렸다는 것이다.
이사장은 그 사람들 그럴 사람들이 아닌데??? 하며 말을 해줬지만....
그 말이 통했을 리가 없다 이사장이 그 사람들이 욕한 것을 액면 그대로 말은 안했지만
안 들어도 알만하다 나 같으면 그 자리에서 하고도 남았을 걸...
그 말을 듣고 내 뱉는 ‘아멜리에’ 말이 더 가관이다.
(아침 요룡대에서...)
‘아멜리에’ : “‘뫼가람님’, 선생님은 화장지를 한 짐 지고도 어떻게 없다고 하실 수가 있대요??”
그런데 내가 가면서 계속 미친것들이 아침부터 부식을 달라고 한다고 되뇌이니 자기도 잘못 들었나 했다는 것이다.
난 이사장에게 신신당부했다.
꼭 그 분들에게 연락해서 ‘화장지’를 ‘부식’으로 잘못 들었다고 사과드린다고 전하라 했지만 과연 그 말을 믿어 줄지....
돌아오는 차 속에서 ‘만복대’에게 전화를 한다.
“7시20분 까지 전일수퍼로 와, 하산주 사야지....”
첫댓글 당시 츄리닝 3인조가 입었을 육체적 고통과 심적 갈등을 생각하자니 가슴이 아려옵니다. 조망이 기가 막히는 군요.
야! 이제 다됐어. 보링 할 곳이 한두군데야지..... 웬만하면 수선해서 써야 할턴디.... 중고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