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 사례 2: 여교수의 사례
이번에는 딸의 자살을 계기로 가족치료를 받은 어느 여교수의 사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가족 문제의 초점을 명료하게 하기 위해 다소 극단적인 사례를 들었습니다.
1. J교수는 사십대 후반으로 대학생 딸과 중학생 아들을 두었는데 그 중 맏이인 딸과 어릴 때부터 문제가 많았다고 합니다. J교수는 딸이 왜 자살을 했는지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치료자에게 온 가장 큰 이유도 딸이 왜 어머니에게 그런 상처를 주며 세상을 떠났는지 알고 싶어서 왔다고 했습니다.
J교수는 누구에게 내세워도 남부럽지 않을 모든 조건을 다 갖추었는데 그 동안 오직 딸 때문에 속을 많이 썩였노라고 했습니다. 그녀가 갖춘 "모든 조건"이란 일류 중고교, 명문대 출신, 미국 박사 학위, 재산, 유능한 남편, 다재다능한 자랑스런 아들, 그리고 얼마 전에 맡게 된 학회장 자리라고 대답했습니다. 스스로 완벽하다고 믿는 J교수의 삶에 딸만은 어릴 때부터 "미운 오리 새끼"처럼 J교수의 완벽함에 흠만 내는 아이였다고 했습니다.
J교수는 처음엔 "남의 일"처럼 담담하게 말했을 꺼냈지만 차차 억제하고 있던 "딸이 완벽했던 내 인생을 망쳤다!"는 분노와 절망감을 표현했고, 그리고 마음속 더 깊이에는 어머니로서 실패했다는 죄책감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자기가 여태껏 쌓아온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질 것 같다고 절규했습니다. 이제 J교수는 문제의 원인을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공부를 뛰어나게 잘했던 J교수는 시험에 한번도 떨어진 적이 없었고 공부와 출세의 외길을 달려 왔다고 합니다. 미국 유학에 앞서 부랴부랴 선배의 소개로 현재의 남편을 만나 결혼식을 올리자마자 혼자 미국으로 간 뒤에 방학 때 잠시 남편을 만나러 왔다가 첫 딸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뜻밖의 임신 소식은 전혀 기쁨을 주지 못했고 오히려 일정표대로 착착 진행되던 학위 계획에 "방해"일 뿐이라고 여겨졌다고 합니다.
J교수가 학위를 받는 동안 갓난 아기였던 딸은 한국으로 보내지고 외가와 친척집에 번갈아 맡겨지는 불안정한 유아기를 보냈다고 합니다. J교수가 공항에서 만난 첫딸은 엄마를 반기기보다 할머니 눈치만 보며 엄마를 피했다고 합니다. 귀국할 때는 딸에게 그동안 못한 어미 노릇을 잘 하리라 다짐했지만 막상 한국에 오자 곧 대학에 출강하게 되면서 딸과는 친밀한 시간을 가질 여유가 없었고, 딸 또한 엄마를 별로 찾지 않는 것 같아 말없이 잘 크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 안정기에 들어서 30대 중반에 아들을 낳게 되었는데 마침 출산이 방학 때라서 이번에는 실수없이 잘 키워보리라 하면서 가능한 모유도 먹이고 둘째에게 정성을 다 했더니 당시 초등학교에 다니던 딸애가 그 때부터 두드러지게 말썽을 피운 것 같다고 합니다. 하는 짓이 모두 예쁘기만 한 늦둥이 아들과는 대조적으로 딸애는 미운 짓만 골라 하고 일부러 엄마를 골탕 먹이고 남 앞에서 난처하게 만들려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J교수는 자신의 관점으로만 보아왔던 문제를 딸아이의 처지에서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아빠는 일중독자처럼 일에 몰두하고, 엄마는 학교 일로 늘 바빴고, 할머니들은 이제 엄마가 돌아왔으니~ 하면서 손녀를 돌봐 주지 않았고, 완벽주의 엄마의 등살에 파출부들은 채 정이 들기도 전에 몇 번씩 바뀌는 등 딸에게는 안정된 밀착감을 형성할 유년기 환경이 주어지지 않았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다 동생이 태어나자 딸은 마음 붙일 곳이 더욱 없어지게 되었던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딸은 우울증과 자폐증에 가까울 정도로 조용한 외톨이로 고등학교를 보내고 부모의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대학에 들어가자 더욱 자기 존재에 대한 무가치감, 무력감, 인생의 무의미함에서 헤어나지 못하다가 결국 죽음을 택하게 되었음을 추측하게 되었습니다.
J교수는 마음 속으로 "쟤는 왜 태어나서 내 속을 썩이는가?" 하는 생각을 수없이 했지만, 아마 딸의 처지에서는,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는데...'하는 자기 부정의 스크립트가 암암리에 새겨졌을 것입니다. 딸의 자살은 J교수가 임신 때부터 마음 속에 가졌던 딸에 대한 거부감에 마지막 확인표를 찍은 채 J교수의 당당하던 완벽주의를 무참하게 허물어버린 것입니다.
2.
J교수의 현재 상태는 정서적 정지 상태였습니다. 앞으로만 달려오던 삶이 딸의 죽음을 계기로 완전 정지 (All Stop) 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녀는 혼란스런 상태를 벗어나고자 더욱 일에 몰두하고 싶어했지만 그럴수록 몸과 마음이 따로 도는 느낌이 든다고 했습니다. 마치 브레이크가 걸린 상태에서 액셀을 밟는 것과 같이 생각과 감정이 서로 상반된 상태를 향한 것입니다.
일단은 정지 상태에서 자기 점검을 시작하기로 하였습니다. 집과 학교에서 맡은 크고 작은 일 가운데 줄일 수 있는 일은 거의 다 줄였습니다. J교수의 첫 과제는 완벽주의에 초점을 두어 그것이 자기와 주변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소모시키는지를 인식하는 것이었습니다. J교수의 완벽주의가 성장기에 100점, 일등, 일류 등 맏딸과 반장으로서 받던 기대감과 조건적 칭찬(conditional love)에서 형성되었다는 연결고리를 찾았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 시점에서도 본인이 계속 그런 "조건적 외부 평가"에 자기의 삶을 맞추고싶은가를 재결정 (redecisioning)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사실 자신의 완벽주의가 스스로도 지겨울 정도이니 다른 사람들은 오죽 싫겠느냐고 했습니다. 공부 빼고 다른 모든 것도 완벽하냐고 하니까 웃으면서 못하는 것이 더 많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아 모른 척 한다고 했습니다. 솔직히 공부도 완벽하게 잘하는 게 아니고 정말 하기 싫고, 교수 일도 마지못해 할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자기의 그런 속마음을 모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J교수의 가장 큰 걸림돌은 생각과 감정이 일치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하기 싫은(감정) 일을 잘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생각)으로 끌어오느라 아예 감정을 꺼놓은 채 머리로만 살아 왔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감정은 어린아이와 어른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감정을 끄고 산다는 것은 건강한 사람에게 공존하는 천진함 (아이)-사려 깊음 (성인)-엄격함(훈육자)의 세 자아 가운데 천진함이 빠졌다는 것이고, "싫어도 해야만 해!"라는 "(내재적) 훈육자"의 비중이 너무 크다는 뜻입니다. 한 마디로 자아의 불균형 상태입니다. 그녀의 이런 습성은 그녀 얼굴과 몸에 고스란히 발현되어 있었습니다. 양미간과 입가에 나이보다 훨씬 들어 보이는 깊은 주름이 있었고 등이 굽었고 어깨 근육이 매우 경직되어 노인의 자세였습니다.
그녀는 완벽주의가 자신을 겉늙게 할 뿐 아니라 자신과 남의 생활을 몹시 피곤하게 한다는 것을 깨닫고 딸의 죽음도 이와 연결되었을 거라는 생각하여 완벽주의부터 고치기로 했습니다. 게슈탈트식 이완 훈련, 바이오 피드백(biofeedback), 인지-정서-감각 치료 등을 통해 유연성을 회복한 뒤에야 딸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온 몸으로 "느낄"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감정과 이성이 일치되고 나서야 그녀의 자아는 부분작동에서 전체작동으로 기능 (functioning)을 회복할 수 있게된 것입니다.
3.
J교수는 자기 점검(self-monitoring)을 통해 일상 생활에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던 완벽주의 말투를 알아챌 (aware)수 있었고 그 때 마다 자기 교정(self-correction)을 했습니다. 완벽주의 말투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결코..."
"절대로..."
"다시 한번만 또 그러면..."
"주제에 감히..."
"이 멍청아!"
"끔찍해!"
"상상도 못하겠어!
"그걸 말이라고 하니?"
이런 식의 말투가 실은 자신과 남을 속박하고, 감시하고, 훈계하는 완벽주의 마음상태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딸아이가 얼마나 답답하고 절망적이었을지 자기 점검을 하고서야 비로소 깨달았다고 합니다)
J교수의 요즘 하루 일과는 딸 방에서 시작된다고 합니다. 딸이 쓰던 책상 위에 놓여진 사진을 보며 마음의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사진 속의 딸은 J교수가 귀국할 때 엄마에게 주려고 꽃다발을 안고 서있는 다섯 살 때의 모습입니다. J교수는 딸에게 "잘 잤니?" "오늘은 기분이 어때?" "비가 와서 학교 안 가고 집에서 놀고싶지? 엄마도 학교 가기가 싫구나..." 등등 딸이 살아 있을 때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미처 해 주지 못했던 다정한 말들과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여과 없이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J교수는 딸의 죽음을 통해 자신이 그 동안 자질구레한 일들에서 완벽을 추구하다가 정작 가장 소중한 보물을 잃은 "큰 바보"였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사시사철 "완벽주의"라는 두터운 외투를 걸치고 사람들을 대하던 마음의 가면을 벗어버리고, 이제는 부족한대로, 있는 그대로 자연스러운 자기를 보여주어도 마음이 편하다고 합니다. 이런 변화가 일어난 것은 딸의 태어남이 자기의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아니라 크나큰 축복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은 후입니다. 딸이 유치원 때 그린 엄마의 초상화, 어머니날 카드에 쓴 정성스런 글에서 얼마나 엄마를 사랑하고, 사랑 받기를 갈망했는가를 "볼" 수 있게 된 후입니다. 치료를 통해 슬픔, 상실, 고통, 죄책감을 극복하면서 딸의 죽음 또한 질책이나 원망이 아니라 딸이 장님 엄마를 눈뜨게 해 준 무한한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J교수는 삶과 죽음이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연결된 것으로 느끼게 되었고 매일 아침마다 딸과 다정한 대화를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요즘 J교수를 보는 사람들은 그녀가 겸허해지고 부드러워지고 "인간다워" 보인다고들 합니다. 그녀는 아들과 함께 주말마다 영아원에 가서 "버려진" 아기들을 돌보는 자원봉사를 시작했습니다. 특히 IMF 직후 "돈 벌면 데리러 올께" 하고 부모가 두고 간 아이들이 3-4년이 지나도록 부모가 찾지 않아 고아원에서 크는 모습을 볼 때마다 자기 딸애가 생각나서 너무나 가슴 아프다고 합니다. 돈은 훗날 벌 수 있지만 한번 자란 아이는 다시 아기가 되지 않는다는 말을 젊은 엄마, 아빠들(특히 자기와 같은 커리어 우먼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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