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마음과 뜻을...
엊그제 텔레비전에서는 대구의 특급호텔인 ‘인터불고’ 연회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는 모습들이 방영되고 있었고, 그 가운데에서는 호텔회장님이라는 분이 회의장에서 빈 그릇을 치우는 것이 보였다.
카메라가 돌아가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중앙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던 대구의 유지들인 것 같은 중년 남자들이 회장의 모습을 의아하게 바라보며 무언가 자신들끼리 말을 주고받더니 식사를 하다말고 자리에서 일어나 회장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서는 다시 식사를 계속했다. 그랬더니 그 회장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지금 시간 직원들의 손이 달려서 그럽니다.” 얼마나 사실적이고 겸손한 말씀으로 들리는지...
내가 대구시에 있는 인터불고 호텔을 갔었던 것은 두 해 전이었다. 그곳에서 회의가 있다고 하여 시외버스를 타고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려 택시로 10여분. 우리가 찾아 들어간 곳은 현관 쪽이 아닌 별관 쪽이었는데 호텔 같지 않고 어느 고택을 들어서는 느낌이 들었었다.
그곳에서 회의를 마치고 식사를 하고서는 곧장 돌아오고 말았었는데, 나는 그곳을 찾아가기 전에 호텔에 관한 정보를 알아보고자 하였었다. 그 이유는 교통편을 알아보기 위한 호텔의 위치에 대한 것도 있었지만, 인터불고라는 호텔의 특이한 이름에 관한 것이 매우 궁금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자료를 검색해 보았는데 인터불고(Inter Burgo)란 스페인어로 ‘모두의 마음과 뜻을 함께하는 화목한 마을(또는 화목한 작은 마을)’이라는 것이었다.
호텔이름의 단어가 지니는 의미는 그렇다 하더라도 어떻게 우리에겐 낯선 이러한 이름을 가져다 붙였는지 다소 생소하다는 생각이 들었었고, 어느 곳엔가 그러한 지명이 있을 것만 같아 찾아보았더니 스페인이었던가? 하여간 유럽 어느 곳인지를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조그만 마을이 있는 것 같았었다.
호텔을 다녀 온 그 후로도 나는 한동안 그 호텔의 이름과 조금은 남달랐던 호텔의 분위기에 대한 기억이 머릿속에 한동안 남아있었다.
그랬던 것이 비로소 방송을 보고 호텔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게 되었다.
권영호 회장. 경북 울진에서 태어난 그분은 26세의 나이에 원양어선을 타다가 조금 모은 돈으로 낡아 빠진 원양어선을 사서 수리를 하여 모험에 가까운 첫 조업에서 많은 어획량을 올리게 되었단다.
그 돈을 종자돈(Seed Money)으로 하여 30년간이나 내전을 겪고 있는 아프리카의 앙골라에서 선박사업과 원양어선 사업을 펼치고 있고, 지금은 스페인에 근거지를 둔 인터불고 그룹을 운영하며 수산, 냉장, 관광, 유통, 조선, 조경, 장학재단 운영 등 성공한 사업가로 인정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는 사업을 통하여 어려운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고, 사업을 하는 현지의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나누어주기 위해 수익이 나면 현지에 재투자하여 주민들로부터 많은 칭송을 받고 있다고 하였다.
특히 내가 감명을 받은 것은 사업의 방법이나 내용이 남들이 본받기 어려운 점을 별개로 하더라도 연간 1조원이라는 많은 매출이 달성되는 회장의 신분으로 하급직들이 하는 서빙을 한다거나, 국내 사업체에서 발생되는 수입에서는 한 푼도 자신의 몫으로 되돌려 받지 않고, 외국에 있는 회사에서 매달 지급되는 4백만원 정도의 월급을 아내에게 맡기고 용돈을 타서 쓰는...프라이드 승용차를 직접 운전하며 자신의 호텔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고는 개인 카드로 계산을 하는...
중국 연변동포들에게 해양 기술을 가르쳐 원양어업에 종사케 하여 일자리를 만들어 주고, 그들의 고향을 찾아가 가족들을 위로하며 고향에다 많은 장학사업을 하는 사람.
그러나 전 직원들이 인정할 정도로 깐깐한 그의 절약정신은 시간 관리에서도 엄격하여 하루에 4시간 이상을 잠자본 적이 없다며, 자신의 하루는 24시간이 아니라 28시간이란다.
사무실도 직원들과 같이 쓰다 다른 곳으로 옮겼는데 그저 여느 직장의 평직원 책상머리와 같아 보였다. 집안 가구나 전자제품 또한 그의 성품으로 봐서 그럴 것이란 짐작을 벗어나질 못했다.
그가 돈과 시간을 아끼는 것은 자선사업을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가난해서 공부할 수 없는 학생은 없어야 한다.’며 학교를 설립하고, 장학사업을 하며, 병원을 짓는단다. 그리고 철저하게 그 지역에서 번 돈은 그 지역에 다시 돌려주는 방법으로 부를 사회에 환원하고 있었다.
앙골라의 선박 왕, 중국의 자선사업가, 한국의 호텔 회장님‘ 그분의 명함이란다. 그리고 어디엔가 불려지는 명함이 또 있을 것이다.
지금껏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사업가나 국가 지도자들이 남에게 베푼 것은 과연 그 얼마일까?
나는 그동안 언론을 스쳐간 그나마 훌륭한 사람들도 조금 있긴 하였지만 정말 이 분처럼 몸소 실천하는 분은 처음 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 속담에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라.’라는 말이 있다. 남은 피눈물을 흘려도 좋다는 식으로 돈만 벌면 된다는 것도 말이 안 되겠지만, 요즘세상 그렇게 번 돈을 정승처럼 쓰는 이들도 별로 없는 것 같아 보인다.
‘개처럼 벌어 개처럼 쓴다.’라는 말이 맞지는 않을는지...행동하는 걸 보면 개보다 못한 인간들도 많은 세상이고...
이 세상에 돈 못 버는 사람이 바보이고, 무능력 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돈 버는 것을 절대 욕할 것은 아니다. 솔직히 남에게 베풀려고 해도 자신이 가져야 베풀 것이 아닌가? 나는 개인적으로 그것에는 100% 동의를 하지만 그렇다고 남을 피눈물 나게 해서 번 돈으로 베풀라는 뜻은 아닐 것이라 여겨진다.
그래도 이 세상에 태어나 진정 자신이 그 무엇을 위하여 살아가고 있는가를 깊이 생각해 보면 마음이 달라질 것이고, 그 마음이 달라진 엉겹결에라도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다면 자신에게 무한한 행복이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뿐이다.
티벳, 인도 등지에서는 남에게 무엇을 베풀면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찜찜하고 기분이 별로라고?
이유는 당연히 복 받는 쪽은 베푸는 사람이기 때문이란다.
나는 이러한 분들이 많이 나와 우리사회의 귀감이 되고 또한 사회를 이끌어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썩은 냄새 진동하는 정치인, 임금 착취하여 재물 쌓아두는 기업인, 불의에 잠시 분노하다 언제 그랬나하고 식어 버리는 냄비근성, 덜 정직하고, 덜 공정해도 우리가 남이가 하는 마피아 같은 패밀리 정신...
나는 안 그럴 것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해본적이 없긴 하지만, 몇 만 년을 가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지 못할 감질나는 민족정신, 그런 우리들의 마음에 그분이 하루빨리 다가와 서 있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