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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 연구 자료 스크랩 동영상 1-19 뉴스/ 박정희의 과학혁명 연상시키는 새 만원권 지폐
역사학도 추천 0 조회 192 07.01.20 20:4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새 지폐를 잡아라" 한국은행앞 밤샘 장사진

 

무식한 사람들은 박정희가 일본육사에 입학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사실이 없다. 박정희는 단지 만주국 군관요원으로서 만주국 국비장학생으로서 일본육사 포병학교 3학년에 편입학하였을 뿐이었다. 그 시대 일본육사 포병학교는 오늘날 한국의 카이스트에 비교될 수 있을만큼 그 시대 일본 과학 영재들이 총집결하던 곳이었는데, 바로 이 학교에 3학년으로 편입학한 박정희는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무식한 사람들은 박정희의 경제 개발 모델이 일본식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1960년 말 장면 총리가 미국에 경제개발 자금 지원을 요청했을 때 미국은 일본식 접목이 가능한지 연구단을 보내 살펴보게 하였다. 경제자문단 자격으로 내한한 연구팀은 일본은 전후 이미 과학선진국 위치에서 출발한 반면 한국은 기술도 자원도 자본도 시장경험도 없는 나라이므로 일본식 경제 개발은커녕 경제 개발 자체가 불가능한 나라라고 미국 정부에 보고하였다.
 
 좌익은 박정희가 실학사상가였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사실 서구 과학문명의 역사는 의외로 짧다. 불과 300년의 역사를 가진 서구 과학문명에 비해 위 동영상 사진은 이미 수백, 수천년 전에 우리 민족은 찬란한 과학지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먼저 출발하고도 과학을 발전시킬 수 없었던 이유는 과학자를 장인이라 부르며 천대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조선시대 말에 실학파가 등장하였던 바 박정희는 그 실학정신을 이어받은 사상가였다.
 
 오늘날 한국에서 지식을 가장 많이 보유한 대학은 일본인이 세운 서울(경성) 대학이 아니라, 박정희가 사재를 털어 세워 국가에 헌납한 카이스트(KAIST: 한국과학기술연구소)라고 한다. 일제 시대에 정책적으로 조선인은 과학을 배우지 못하게 하였고 공장에서도 기술을 익히지 못하고 하급 노동자로만 일하게 하였기에 해방 후 한국에는 과학기술이 없었다.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이 한편으로는 KAIST를 설립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각급 학교에서 체계적으로 과학교육을 실시하도옥 지원하여 과학혁명을 일으켰다.
 
 이제 새 한국 지폐에 박정희 대통령의 과학혁명을 연상시키는 전통과학 도안이 들어간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다. 사실, 박정희의 과학혁명이 있었기에 한국 산업혁명이 가능하였으며, 과학혁명이 있었기에 지금도 지속적으로 산업기술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박정희의 과학혁명이 있었기에 한국 화폐가 화폐로서의 가치를 지낼 수 있게 되었기에 새 만원권 지폐가 박정희 대통령의 실학사상을 조금이나마 반영하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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