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포대지는 연희동 서편 해안 용두산에 위치하고 있어 일반적으로 용두포대라고 불리고 있다. 당초에는 인천 앞바다를 향하여 3좌의 포대가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포대는 없어지고 축대만이 남아 있다.
연희포대는 부평연안의 여러 포대와 함께 고종 16년(1879) 7월 1일에 어영 대장 신정희와 강화 유수 이경하에 의하여 축조되었다. 이 포대들은 화도진, 연희진과 함께 해운 요충인 인천, 부평 연안이 개항지로 제시될 것에 대비하기 위하여 축조된 것이다. 당시 부평 연안에는 연희 포대(일명 용두포대) 외에 원창동에 2좌의 포대가 있었고 가좌동에도 1좌의 포대가 있었다고 하나 인천개항을 허용하기로 결정한 뒤인 1882년에 혁파되었다. 연희포대는 3좌의 포대가 설치되었고 갯말(포리, 원창동)에 2좌 봉우동에 1좌가 있었다고 전하나 포좌는 없어지고 봉우재와 용두산에는 축대를 쌓았던 돌무더기 흔적이 남아 있으나 개발에 밀려 그 흔적조차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연희진이 없어진 뒤 그 관할권이 어디에 있었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고종 21년(1884) 1월 4일 연안해방영이 부평부에 설치되었다가 그 다음해 3월 24일 한성부 용산 만리창기지로 이설되었는데 함께 이속된 것으로 보인다.
포대와 진사를 축조한 여영대장 신정희는 신미양요 직후인 고종 11년(1874)에 강화 진무사로서 강화도 해안에 포대를 축조한 신헌의 아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종은 신정희가 포대와 진사를 축조하기 위하여 인천, 부평 등지로 떠나기에 앞서 <강화도의 포대는 어영 대장의 아버지가 강화 진무사 시절에 훌륭하게 설치한 것이니 어영 대장은 마땅히 그것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고 당부하였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