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의 도전과 절반의 완주
그 날은 모든 게 괜찮았다.
대회 2,3주 전 두 번에 걸친 30km 장거리주 기록도 괜찮았고, 대회 당일 컨디션도 좋았다.
날씨는 약간 쌀쌀했지만 걱정했던 황사는 없었다. 오버페이싱 없이 출발도 좋았고 5km부터는 오히려 목표했던 페이스보다 2~3초 빠르게 몸이 잘 적응해 주었다. 좁은 청계천 주변로를 돌아 나와 탁 트인 종로에 들어서면 어느새 17k 지점이다. 대회 1주 전 마무리 훈련으로 부주산을 세 바퀴째 돌다 마지막 내리막에서 삐끗한 오른쪽 무릎이 점점 묵직해지는 것만 빼곤, 정말 다 괜찮았다.
20k 지점을 코앞에 둔 흥인지문(동대문) 앞 교차로.
오른 무릎에서 “뚜둑” 소리가 나더니,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걸음이 멈춰 섰다. 몇 걸음 더 뛰어보는데, 통증으로 뛰기는 커녕 걷기도 힘들었다. 여러 명이 단체로 상경, 대회에 참가했던 지라 혹시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반바지에 챙겨놨던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들고 동대문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땀에 젖을 대로 젖은 지폐가 승차권 자동 발매기에 들어가질 않아, 옆 사람에게 간신히 다른 지폐로 바꿔서 잠실행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어찌나 미안하고 창피하던지…… 멋지게 뛰어 들어오리라 기대했던 잠실 스타디움 결승 아치를, 앞이 아닌 뒤에서 바라보며 동료들을 기다리는데, 만감이 교차했다.
그 대회가 4년 전, 처음으로 참가했던 2013 서울 동아 마라톤 대회였다.
2013년 동.마: 20km 지점 포기
2014년 동.마.: 허리 디스크로 신청 포기
2015년 동.마.: 첫 완주. 4:26:44
2016년 동.마: 신청 후 준비 부족으로 참가 포기
그리고 2017년 동아 마라톤 - 4주 전
그 동안 몇 번의 풀 참가 경험으로 나름의 대회 전 훈련 일정과 징크스가 생겼다.
특히, 2016년 중앙 마라톤에서 기록을 많이 단축시킨 경험으로, 동마를 준비하면서도 그 루틴을 그대로 따르고자 했다. 보통 대회 3주 전 일요일 30km 장거리주로 시작, 2주 전 20k, 1주 전 10km, 그리고 대회를 앞 둔 마지막 주중에는 2번의 6~7키로 가속주로 대회 준비를 마무리 했다. 올해에는 3주 전 30k를 뛸만한 대회가 마땅치 않아, 4주 전 장흥 대회를 목표로 했으나 이마저도 AI로 연기. 마침 존경해 마지않는(^^) 우리 클럽 윤대원 회장님께서 같은 날 33K 장거리 대회를 주최해주셔서 “축소판 동마”라고 생각하고 뛰어 보았다. 결과는 2:42:24/33K. 4분 52초 페이스.
목표한 330 페이스이긴 했지만 마지막 3km 구간에서 페이스가 5분 30초 대로 현저히 떨어졌다는 것과 큰 맘 먹고 마련한 타사 재팬 운동화 바닥이 너무 얇아 충격이 그대로 발바닥과 무릎으로 전달되는 문제가 있었다. 페이스 조절 문제의 경우, 실제 대회에서는 1km마다 정확한 구간 표시가 있기 때문에 일정한 페이스로 뛰는 연습을 좀 더 하면 해결되겠지만, 신발 문제는 고민이 많이 되었다. 기존에 신던 아식스 님버스 시리즈는 바닥 충격을 잘 막아 주지만, 거꾸로 다리에서 바닥으로 전달되는 힘까지 흡수해버려 힘이 더 들어가는 반면, 속도 내기 좋은 타사재팬은 은근히 요철이 많은 동.마 주로에서 돌멩이 하나라도 잘못 밟는 날이면 그대로 부상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고민고민하고 있는데, 그 날 우연히 똑같은 신발을 착용했던 조윤희 전재무님이 한 마디 툭 던진다.
“어, 난 그거 다른 밑창 깔았는데……”
“유레카!!! ^^”

집에 와서 뒤져보니 못쓰는 님버스 밑창 중에 타사에 딱 들어맞는 밑창이 있다.
바로 넣고 달려보니…… 님버스의 편안함과 타사의 경쾌함이 다 살아 있다. 재무님, 감사!!! ^^
7.7.7. vs 2.2.2 – 2주 전
작년 중마 때도 그랬듯, 대회 2주 전에는 대회 페이스를 확인하는 날이다.
마침 본가에 일이 있어 이번에도 여수 망마 경기장을 찾았다. 오늘 목표는 정확한 거리를 알 수 있는 400m 트랙에서, 이번 동마 때 맞춰야 하는 초-중-후반 페이스로 2k-16k-2k, 총 20km를 뛰어보는 것이다. 3시간 39분을 목표로 했던 작년 중앙 마라톤의 목표 페이스가 5:17-5:07-5:27 였다면 이번 동마에서 330 안에 들어오려면 5:02-4:52-5:12에 맞출 수 있어야 한다. 중마에서는 각 페이스 마지막 숫자인 7.7.7만 기억하고 뛰었다면, 이번에는 2.2.2만 생각하고 뛰자! 가장 부담스러운 건 아무래도 중반 4:52 페이스. 이 페이스로 25키로 이상을 과연 뛸 수 있을까? 오늘 뛰어 보면 감이 오겠지!
기분 좋게 첫 1km를 돌고 시계를 보는데, 4분 46초. 다음 1km는 무려 4분 42초가 찍힌다. 어라?! 이게 아닌데?! 분명한 오버페이스임에도 몸이 가벼우니 10km까지 4:42~4:50 페이스로 계속 돌게 된다. 문제는 10km 이후… 아니나 다를까 1키로를 추가할 때마다 정확하게 1초씩 기록이 늦어지더니 18k 랩 타임은 딱 5:00. 달리기를 멈췄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마지막 3k는 페이스를 좀 더 올려서 마무리를 해야 하는데, 가속은커녕 숨이 이미 턱까지 차올라 더 이상 달리는 건 아무 의미가 없었다. 연습 결과는 암울했지만, 정말 좋은 교훈 하나를 얻는다. 아, 초반 오버 페이스가 이렇게 무섭구나…
한 번의 물리치료와 소염진통제 – 1주 전
대회는 다가오는 데 2주전 20k 페이스 주에서 오버페이스로 목표를 못 채우고 나니 불안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그랬을까, 마지막 주 토요일 오전, 오후 10키로씩 총 두 탕(ㅡ.ㅡ;;)을 뛰고 일요일 유달 경기장에서 15키로까지 뛰고 나니 주말에만 총 35키로를 달렸다. 좀 쉬어줘도 모자랄 판에 다리에 피로만 잔뜩 쌓였다. 특히 토요일 오후 봄나들이 나온 인파로 미어 터졌던 평화광장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사람들과 자전거 피하면서 달리느라 충격이 있었을까? 심하진 않지만, 그래서 더 기분 나쁜 통증이 오른쪽 무릎에서 간간히 느껴져, 월요일 가까운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와 약 처방을 받았다. 이제 일주일 남았으니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더 이상 상황이 나빠지지 않기만을 바라며, 가끔씩 가던 헬스장에서 조심조심 7k(화)와 6k(목)를 달리며 대회 준비를 마무리 했다.
광주 상무 시민 공원 – 대회 당일 새벽
이번 동마는 목포에서 참가 인원이 적은 관계로 광주 챔프 마라톤 클럽과 동행하게 되었다. 마침 현익형이 미리 소개를 해준 덕에 클럽 재무님과 나, 두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출발 장소는 광주 상무 시민 공원 주차장 새벽 2시. 처갓집에 집사람과 애들을 재워놓고 조금 서둘러 1시쯤 약속 장소에 나갔더니 벌써 버스 한대가 와있는데 광주철인클럽 푯말을 달고 있다. 야, 많이들 가시는 구나. 잠시 후 또 다른 리무진 관광 버스 한 대가 들어오고, 목포에서 12시 버스를 타고 왔다는 재무님과 조우하여 버스에 오른다.
한명, 두명… 어느새 28인승 버스가 낯선 이들로 꽉 차니, 그나마 옆 좌석에 우리 클럽 식구가 함께 동행을 한다는 게 반갑고 든든하기 그지없다. 이번 동아 마라톤이 처음이자 풀코스 도전 또한 처음인 김영집 재무님. 클럽에 가입한지는 겨우 5개월이지만, 실력만큼은 신입이 아닌 신입. 일주일 전 토달 때 잠깐 뵙는데, 토달 코스 15k를 1시간 4분에 달렸다고 하니, 오늘 기록이 정말 기대된다. 그래도 동마를 한 번 뚸 봤다고 이것저것 훈수도 해주고, 미리 챙겨두었던 파워젤과 아미노바이탈도 건넸다. 예상 페이스 및 기록을 물어보니, 아직 정한 게 없단다. (역시 고수는 달라… 누구는 한 달 전부터 죽어라 계산기만 눌렀는데...^^;;) 하프 기록이 35분대라고 하니, 풀은 15분 페이스를 따라보라고 했다.

손목에 페이스표 적고 있는 “all new 신동” 재무님
어느덧 새벽 2시, 버스가 출발하니 광주 챔프 마라톤 클럽 총무님이 노란 비닐 봉지를 하나씩 나눠준다. 펼쳐보니 간식용 인절미와 파워젤, 초콜렛, 완주하고 먹으라고 큰 오렌지 하나까지 실제로 대회 때 필요한 일용할 간식들이 잔뜩 들어있다. 포장이며 구성이 얼마나 꼼꼼한지 어째 남자 사람 솜씨가 아니다 싶었더니, 함께 대회 자봉 가시던 미모의 여성분이 바로 챔프 클럽 회장님이셨다. (우리 클럽도 도입이 시급합니다!!!ㅋㅋ)

종합 선물 셋트
광주까지 올라가느라 피곤했는지, 잠깐 눈감았다 싶었는데 어느새 죽전 휴게소에 도착했다. 중마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관광버스와 사람들로 북적인다. 모두 동아 마라톤 참가자들이다. 관광버스 교통비로 6만원 정도를 냈는데, 아침식사 비용도 포함되어 있단다. 미리 클럽에서 준비를 했는지, 아님 휴게소 식당에서 사먹는 건지 모르겠지만 함께 아침을 먹자고 권하는데, 입맛도 없고 해서 늘 그랬던 것처럼 준비해간 인절미와 자판기 커피 한잔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6시쯤 다시 출발하니 오늘의 목적지 광화문에는 6시30분 경에 도착한다. 마침 친절한 경찰관 분이 알려준 포시즌 호텔 지하 화장실에서 편안하게 몸과 마음을 비우고 현익이 형과 승희 형을 만나기로 한 이순신 동상으로 간다.


시국이 시국였던것 만큼 이순신 동상 아래가 조금 지저분(?)하다….ㅎ

목.마.클, 힘!
확실히 버스를 이용해 상경하니, 전날 미리 도착해 근처에서 자고 다시 광화문으로 나오는 것보다 훨씬 시간이 여유롭다. 약속된 시간에 반가운 얼굴들과 상봉, 기념 사진 몇 컷 찍고 소지품을 이동 차량에 맡긴 다음, 몸을 충분히 풀었는데도 시간이 조금 남는다. 마지막으로 화장실 한번 더 다녀와서는 출발선이 있는 A 그룹으로…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