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쥐 엄마의 부엌/ 전수림
엄마의 부엌은 내게 지겨운 부엌이다. 엄마가 앓아눕는 날이면 다 죽어가는 신음소리로 새벽같이 나를 깨워댔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최대한 버틸 때까지 버티다가 심통이 가득한 얼굴로 툴툴거리며 일어났다. 그건 엄마가 진짜 아파서가 아니라 아버지에게 시위하는 것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괜히 애꿎은 나만 골탕 먹는다는 생각에 몹시도 억울했다.
그날도 나는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부엌으로 떠밀려왔다. 가마솥에선 물이 펄펄 끓고, 부엌은 훈훈하지만 잔연기가 남아 매캐했다. 그때 부엌으로 들어가는 나를 보고 아버지가 “엄만 상기 안 일어난?” 하고 물었다. “아프데…” 불만스런 말투로 말끝을 흐리며 쌀을 씻어 솥에 안쳤다. 그러면 아버지는 끌끌 혀를 찾다.
이런 일은 엄마가 골을 낼 때마다 있어온 익숙한 일이다. 한번 골이 나면 이삼일은 가니, 어쩔 수 없이 아침 짓는 일은 내차지가 되곤 했다. 콩나물시루에서 콩나물을 크게 한 움큼 뽑아 국을 끓이고, 김치를 썰어 놓고 학교 갈 채비를 한다. 그리고 부뚜막에 걸터앉아 뜨거운 콩나물국에 밥을 한술 말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학교로 내달렸다.
그런 날은 학교가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가 일어났을까. 조심스레 방문을 열면 엄마는 여전히 누워 있었다. “엄마! 아직도 아퍼?” 하고 물으면 다 죽어가는 소리로 찬장에 뭐가 있고, 어디에 뭐가 있고를 가르쳐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우울하고 힘이 없고 재미가 없다. 나는 책가방을 팽개치고 부엌으로 간다. 화풀이라도 하듯, 다소 거칠게 문을 열어젖히자 부엌문 사이로 비스듬히 비친 햇빛에 가마솥이 반짝하고 빛이 났다. 어찌나 반질거리는지 볼 때마다 한 번씩 만져보고 싶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부엌이 전부 다 그렇게 깨끗한 것은 아니다. 단지, 무쇠가마솥과 그 솥이 걸린 부뚜막만 반질거렸을 뿐이다. 천정과 벽은 오랫동안 연기에 그을려 거무튀튀했으며, 찬장 속에는 반찬뚜껑이 덮인 것도 있고, 열린 것도 있었다. 찬장 문을 여니 온갖 냄새들로 뒤범벅이 된 고약한 냄새가 났다. 배도 고프고 먹을 게 뭐 없을까 찾아보지만, 먹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직 아침밥상 설거지가 그대로 있을 뿐이었다.
엄마는 누워있으면서도 부엌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엄마 옆에 있던 동생이 수시로 드나들면서 엄마에게 연락병 노릇을 했다. “누나! 왜 연기가 나?” “엄마가 젖은 나무 때서 그렇대!” “누나! 가마솥 먼지도 닦으래!” 등등 잔소리를 해댔다. 설거지하고 찬정청소하고 시렁까지 행주로 훔쳐내고, 땔감까지 준비하고 나면 나는 기진맥진 인데, 누워있는 엄마보다 엄마 앞잡이 노릇하는 동생 녀석이 더 얄미웠다.
소득도 있었다. 시렁위에 작은 항아리에는 동전과 지폐가 들어있었는데. 나는 용돈이 필요할 때마다 야금야금 꺼내다 쓰는 호사를 누렸다. 물론 들켜서 쫓겨나 하루 내 밖에서 기웃거리기 전까지 말이다.
엄마의 시위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비로소 나는 부엌에서 해방되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밥하고 청소하는 일에서 벗어나면 새삼 건강해진 엄마가 좋았으며 더불어 나도 신이 났다.
어느 날 엄마가 가마솥을 훔치는 것을 보고 물었다. “엄마! 왜 그 가마솥만 그렇게 빤질거리게 닦아?”라고. 엄마는 당황한 얼굴로 “가서 나무나 더 가져오라마!”라고 윽박을 질렀다.
어느 날 우연히 알게 되었다. 집안을 깨끗이 하라는 의미에서 가마솥을 거울처럼 닦으면 밖으로 나돌던 서방이 집으로 들어온다고 했던, 이웃집 할머니의 농담을 믿고 엄마는 그렇게 윤기 나도록 닦아댔다는 것을. 아버지를 집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엄마만의 방편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엄마가 하던 대로 솥뚜껑을 열심히 따라 닦았던 나는 웃음이 났다. 아버지가 집을 나간 것도 아닌데…. 엄마가 왜 그러는지 이상했다. 그런데 뭔지 모르게 엄마가 짠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우스꽝스런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는 것이 만만해 보이기도 했다.
그 후로도 엄마의 꾀병이 잦은 것으로 보아 두 분이 티격태격 했던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소소한 싸움으로 늘 아버지의 일방적인 승리였기 때문에 큰소리가 담을 넘는 일은 별로 없었다. 엄마의 앓는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미쳐죽을 것 같다고 팔짝뛰기도 하고, 징징거리며 울어도 봤지만, 엄마는 끄떡도 않고 날 부엌으로 내몰았다.
그것이 습관이 되어 엄마는 평상시에도 나를 자주 부엌으로 불러들였다. 매번 고분고분 끌려가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덕분에 사춘기에도 아궁이 앞에서 보내는 일이 더 많아졌다. 불을 지피는 일도 익숙해졌고, 의도치 않게 부엌 대청소는 자연히 내 몫이 되어버렸다. 그러다보니 깨끗이 치우고 나면 개운함을 맛보기도 했다.
부모님 싸움에 내 손등은 터졌지만, 그래도 그것을 감내했던 이유는 긴 겨울 밤, 뜨개질 하면서 시계를 흘깃흘깃 쳐다보던 엄마의 모습 때문이다. 기다림이란 저런 모습이구나 싶었다. 이불 속에서 엄마를 훔쳐보면서 나 역시 잠들지 못했다. 바람이 창호지 사이로 윙윙거리는 겨울밤이 꼭 엄마마음이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2014년 5월 낭송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