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여대 식품영양학과 성미경(41) 교수는 지난 1년을 ‘피가 마르는’ 긴장 속에 지냈다. 일은 지난해 농림부 농안기금 연구개발 용역과제에 응모해 선정되면서 시작됐다.
성 교수가 낸 과제는 ‘제2형 당뇨병 환자의 혈당조절을 위한 고려홍삼의 효능 및 안전성 연구’. 자신이 박사 학위를 공부한 캐나다 토론토대의 블라드미르 벅산 교수와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하기로 했다.
불안한 시작이었지만 토론토대 부속병원의 당뇨병 환자 40명을 대상으로 홍삼을 복용시키는 임상시험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지난 8월 초 성 교수에게 캐나다에서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홍삼분말을 하루 6g씩 꾸준히 3개월 동안 복용한 환자들의 인슐린 농도가 홍삼 섭취 전보다 30% 가량 줄어든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핏속의 당분을 조절하는 인슐린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말이고, 홍삼이 당뇨병 치료보조제로 효능이 입증됐다는 뜻이다.
성 교수와 벅산 교수의 연구 논문은 29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8회 국제인삼심포지엄에서 기조강연으로 발표됐다. 심포지엄을 주최한 고려인삼학회 한용남 회장(서울대 천연물연구소 소장)은 “성 교수팀의 연구는 고려인삼이 ‘생명의 약초’임을 재입증하는 귀중한 성과다”고 말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고려홍삼의 ‘뛰어난 능력’을 재조명한 또다른 연구로 고려대 의과대학 서성옥 교수의 위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과 한국암화학예방연구원 윤택구 원장(전 원자력병원 원장)의 폐암 동물실험 결과가 소개됐다. 서 교수는 위암 수술환자 92명을 대상으로 홍삼 복용 임상시험을 한 결과 홍삼분말을 항암 치료제와 함께 먹은 사람들의 5년간 생존율이 76.4%로 홍삼을 먹지 않은 그룹의 38.5%에 비해 두배 가까이 늘어났다고 보고했다.
인삼학회가 4년 주기의 이번 심포지엄에 특별히 신경을 쓰는 이유는 고려인삼의 효능이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서다. 우리나라의 대표 천연물 상품인 인삼의 수출이 해마다 줄어들고(<그림>) 한때 10%대까지 차지했던 세계 시장 점유율이 2.5%로 떨어져 인삼 효능 발굴과 국제적 홍보가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인삼은 크게 우리나라의 고려인삼과 미국·캐나다쪽에서 생산되는 ‘화기삼’, 중국 고유 품종인 ‘삼칠삼’(전칠삼)으로 나뉘는데, 고려인삼은 전통적으로 최고품으로 평가받아왔다. 가격도 중국의 10배, 화기삼의 3~4배를 받고 있다. 한때 일본의 야쿠자가 한국의 홍삼을 싹쓸이하기로 했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고려인삼은 인기를 누려왔다. 그러나 최근 중국의 고려인삼과 캐나다내 한국동포들의 화기삼 재배가 크게 늘어나 시장에서 가격경쟁에 밀려나면서 ‘고려인삼 종주국’의 위치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인삼 연구는 제품 개발쪽에 치우쳐 순수 성분 연구나 임상시험엔 소홀했다. 특히 유럽쪽은 인삼을 의약품으로 분류해놓아 수출 장벽이 두텁다. 한국인삼연초연구원의 남기열 책임연구원은 “국내에서 학회에 보고된 임상시험은 20여편에 불과하고, 그나마 국제 저널에 소개된 경우는 5편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한국인삼공사 박찬일 수출2팀장은 “유럽에서는 표준화된 인삼 엑기스에 비타민을 첨가한 G115라는 제품이 막대한 매출을 올리고 있다”며 “우리도 1998년 독일에 홍삼을 캡슐 형태의 약품으로 등록하려고 신청했지만 아직 허가를 못 받고 있다”고 말했다.
한용남 회장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선삼’처럼 인삼이 직접 질환을 치료하는 약품이기보다는 증세를 완화하고 치료약의 효율을 높이는 치료보조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며 “대체의학에 관심이 높아진 유럽과 미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인삼의 품질을 표준화하고 고품질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