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님,
옛날 산행기 올려도 되나요?
게시판 성격에 맞지 않으면 삭제 부탁드립니다.
월출산 신령님께 간절한 소원 빌었습니다.
2003. 9. 20(토) 22:30
우리 회원 74명은 월출산을 만나러 낭주골(영암의 옛 이름)로 떠났다.
두 대의 버스는 서쪽으로 달려 진영, 섬진강 휴게소......
이어 도착한 “기러기 휴게소”에는 주유소까지 잠이 들어 고요한데
하늘엔 동요 속에 나오는 바로 그 조각배......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별빛 쏟아지는 밤바다를 항해 하고 있었다.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나라로.......”
순천, 보성을 지나
03:30 낭주골 천황사 주차장에 도착,
버스 안에서 잠시 쉰 후
05:00, 둥글게 둘러서서
국군 도수체조 “팔 벌려 뛰기로” 몸을 풀고
아직 깜깜한 산길로 접어들었다.
돌, 바윗길로 오르막 내리막 한다는 정보에
무릎을 50년 가까이 사용하신 ㅇㅇ님은
탤런트 오지명이 TV에서 선전하던
“깨스 통(?)” 인지 뭔지 노란 약을 무릎에 붙이고.....
헤드랜턴 밝히고 길게 늘어서
앞뒤 회원님들과 이슬 머금은 돌길 오르며
즐거운 이야기 속 주워들은 소중한 정보 하나!
“작업”은 “work”가 아니라 요샛말로
“남녀 누군가가 상대방과 사귀려고 시도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05:00 를 조금 넘어 아직 사방이 깜깜하니
ㅇㅇ님이 지금 시도하려는 것은 그럼 “야간작업(?)”이네........^)^
30분쯤 땀 흘려 오르다 뒤를 돌아다보니
저 멀리 산 아래 드리워진 우유 빛 양탄자 구름이 여명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그 아래 옹기종기 도시의 불빛이 꿈속인양 아득하다.
왼쪽 머리위에는 삿갓모양의 바위가 절묘하고
오른 쪽 위로는 안개인지 천막인지 어둠속에 뿌연 막이 쳐있어
모두가 신비감에 빠져들었는데
가까이 오르고 보니 모두가 바위였다.
마치 미끄럼틀처럼 아래로 길게 줄무늬가 그려져 있고........
철 계단, 바윗길을 오르내려 06:00
월출산의 으뜸인 구름다리가 깎아지른 바위계곡을 가로질러
당당하게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높이 120m, 길이 52m, 폭 60cm
군대 유격훈련 받던 시절
계곡과 계곡사이 외줄타기 하던 생각이 난다.
계곡 중간쯤에서 롤링으로 뒤집어져
팔 힘으로 매달려 도하했었다.
그때도 현기증 나는 계곡아래 경치는 정말 멋졌었다.
어느 공주님, 구름다리 중간에서 무서워 어쩔 줄 몰라 할 때
누군가 마중 나갔더니 다 건너고 나서는 몹시 아쉬워했다고
오마이 뉴스는 훗날 전했단다.
“애인과 함께 왔으면 만인 앞에서
그 넓은 왕자님 품에 덥석 안길 수 있었는데......”
무섭다 아찔하다 하면서도 모두가 함박웃음이다.
구름다리 건너 난간에 서니 발아래 펼쳐지는 절경,
섣불리 표현하다가는 월출산 명예에 누가 될까 두렵다.
신선께서 하얀 운무를 낮게 드리워
사람 사는 세상과 천상의 세계 간 경계로 삼으려는 듯하다.
이 몸은 바로 천상의 세계에서 신선님 옆에 서있는 느낌이이고......
운무사이로 보이는 저 아래는 가오리 모양의
멋진 스텔스 전투기가 잿빛 모습으로 앉아 있어
궁금해서 못살 지경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들판 가운데 저수지의 고운 물빛 이였다.
06:30
저 멀리 운무와 어우러진 겹겹산들의 바다 위에서는
장엄한 일출이 시작되었다.
머리 위 하늘에는 아직 눈썹달이 떠있고
동해바다에 몸을 씻은 선홍 빛 둥근 해가
새로운 하루를 여는 엄숙한 순간
이 자리에 서있을 수 있게 해준 모든 분들께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계단에 바윗길로 계속 이어진다.
이 험한 곳에 수많은 계단을 만든 사람들을 생각하면
힘들다 생각하기가 민망스럽지만 등에 땀은 흐른다.
철계단, 누드 철계단, 나무계단, 나무에 고무를 덧댄 계단을
몇 번인가 오르내리고 나면
봉우리는 절경과 시원한 바람을 선사하고는 다시 등을 민다.
좁은 통천문을 당당하게 통과하니
월출산 비경, 그 두 번째 마당이 운무와 어우러지고 있었다.
08:00 천황봉(809m)이다.
산 아래 드리워진 솜털구름, 그 위에 누워 보고 싶고
벼 익는 노오란 들녘엔 구름 그림자 깔리는데
들판 여기저기엔 정겹고 그림 같은 집들.......
눈을 들면 오른쪽엔 목포, 왼쪽엔 강진 앞바다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아침을 먹고 사진을 찍는데
70명이 넘어 뒷줄에 선 내 얼굴 비칠 가망 없어
등산용 하얀 스틱을 하늘 높이 치 들었다.
“허허 그놈, 스틱이 오늘 대접 받네그려....... ^)^ ”
좁은 길 체증에 맨 뒤에서 쉬엄쉬엄 내려가
다시 땀 흘려 고개에 오르니 먼저 도착한 일행이 쉬고 있고
저만치 구정봉 위에도 일행 몇이 보인다.
쉬고 있는 일행은 구정봉에 오르고 왔단다.
그새......
구정봉 아래 도착,
10척이 넘는 수직 바위봉우리에 오르는 길을 찾지 못해
좁은 바위구멍을 두 번씩이나 통과 해보고서야
겨우 찾아 올랐다.
어휴! 멀건 대낮에 구멍 찾아 이렇게 헤매기는......
배낭에 달렸던 물 컵이 떨어지는 줄도 몰랐다.
뒤에서 챙겨 준 ㅇㅇ님께 거듭 감사!
구정봉(738m) 머리 위 코발트 빛 높은 하늘엔
햇님과 눈썹달님이 마주보고 고운 미소 짓는데
시샘하는 듯 여객기 한 대가 은빛 몸채를 반짝이며 난다.
발아래 산허리, 들판 위에는 솜털 구름 두둥실......
아홉 개 바위 웅덩이에는 구름이 흐른다.
편편한 바위에 팔 벌려 드러누우니 눈앞엔 온통 허공뿐이고
바위가 등에서 숨쉰다.
지구를 등으로 받쳐 업은 것이다.
구정봉에서 내려와 다시 고갯마루,
오른쪽 길로 오르내린 후
억새밭 갈림길에서 다시 오른 쪽 도갑사로 향했다.
12:00 도갑사 도착,
팽나무 그늘아래서 돼지 수육에 소주잔으로 피로를 풀고
부산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영암 보성 순천 광양.......
동으로 동으로 칠백리길
이제 월출산은 점점 멀어지는데
가슴으로는 낭주골 월출산
수많은 계단 길을 오르고 있었다.
그 빼어난 절경에 홀딱 반해 그만 잊고 온 소원을
월출산 천황봉에 다시 올라
신령님께 두 손 모아 빌었다.
“우리 회원님 중 처녀총각들은 우짜던지
하루 속히 훌륭한 배필 만나
아들 딸 구별 말고 쑥쑥 낳도록 해주시고
이왕이면 LOTTO 복권 1등도 점지해 주십사하고.......”
첫댓글 갈바람님 재밌는 산행기 감사합니다...시간 나실때 함 오세요...
훌륭한 글솜씨........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