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 생명의 다양성과 인간 소멸의 자연학, 리라이팅 클래식 10』,
박성관 지음, 그린비, 2010년 4월, 초판 1쇄.
진화 생물학에 대해 잘 모르는 아마추어가 다윈의 『종의 기원』이 좋아서 열 번이나 읽는 것은 나쁜 일은 아니다. 그리고 자기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해 보는 것도 좋다. 박성관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무려 900쪽이나 되는 책을 썼다. 그
노력이 가상하다. 내용이 엉터리지만 아마추어는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 엉터리 내용 중 상당 부분이
잘난 척이라는 점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박성관은 20세기 주류 진화 생물학계보다 자신이 진화 생물학에 대해 더 잘 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박성관은 진화 생물학자들을 가르치겠다고
나선다. 여기까지는 약간 짜증이 나는 정도다. 뭘 잘 모르면
자신이 뭔가 대단한 것을 안다고 착각할 수도 있는 일이다. 아마추어가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엉터리 책을 <그린비>라는 출판사에서 정식으로 출판해 주었다. 이젠 짜증이 더 커진다. 하지만 이 정도라면 <그린비> 편집부의 안목을 비웃어 주는 것으로 끝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엉터리 책과 저자 박성관이 한국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박성관은 2009년에 TV에 출연할 수 있었다. 거기서 짧은 시간이나마 진화 생물학에 대해
헛소리를 할 수 있었다. 이것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조하라.
『강수돌, 진중권, 박성관, 진화론에 대한 무식을 자랑하다: <TV, 책을 말하다> 327회를 보고』
http://cafe.daum.net/Psychoanalyse/NSiD/370
게다가 여러 신문에서 그의 책을 비중 있게
다루어 주었다.
[Book cafe] '종의 기원, 생명의 다양성…' 저자 박성관
"다윈이 주장한 자연선택설 적자생존으로 좁혀져선 안돼"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004/h2010043022284684210.htm
인문학으로 다시 본 종의 기원
[자연과학] 종의 기원, 생명의 다양성과 인간 소멸의
자연학/박성관 지음
이새샘 동아일보 기자 iamsam@donga.com
http://news.dongascience.com/HTML/News/2010/05/01/20100501100000000102/201005011000000001020110000000.html
무한진화·인간소멸…‘불온한 다윈’을 복권하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18642.html
“모든 존재는 고유하며 특별한 것”
■ 지은이와 함께 / ‘종의 기원’ 다시
쓴 박성관씨
글 한승동
선임기자·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18642.html
[책과 삶]딱딱했던 ‘종의 기원’ 친절해졌네
김재중 기자 hermes@kyunghyang.com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18642.html
<'종의 기원' 친절하게 다시 쓰기>
김지연 기자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0/04/27/0200000000AKR20100427207000005.HTML?did=1179m
다윈과 진화 생물학에 대한 쓰레기 같은
책이 명작으로 둔갑해 버린 것이다. 안 그래도 한국의 진화 생물학은 상당히 취약한데 이제는 막 진화
생물학을 접하는 사람들이 엉터리 정보에 노출되게 생긴 것이다.
박성관을 둘러싼 이런
현상에서 중요한 것은 박성관 자신이 아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뭘 잘 모르는 아마추어가 잘난 척 하는 것은 별로 큰 일이 아니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아주 많다. 문제는 그것이 한국 사회에서도
통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식하거나 돈 밖에 모르는 출판사 편집자들, 방송사
PD들, 신문사 기자들이 그런 일에 한 몫 하고 있다. 이 글은 직접적으로는 박성관의
책이 얼마나 쓰레기 같은지를 비판하고 있지만 그런 책이 상당히 잘 유통되게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내가 박성관을 한심한 아마추어라고
부르는 이유는 진화 생물학과 관련된 학위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학위로 말하자면 나는 아예 학위 자체가
없다. 나는 단지 그의 책이 진화 생물학에 대한 온갖 헛소리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그를 아마추어라고
부르는 것이다.
본격적으로 비판하기 전에 박성관이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먼저 살펴보자.
저명한 과학도서
번역가 이한음 선생의 아주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해 드리겠다. (7쪽)
이한음 선생은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생물학을 전공하고 여러 권의 저서도 낸 바 있으며, 우리 독자들을 위해 수많은
과학도서들을 깔끔한 문체로 번역해 주신 고마운 분이다. (8쪽)
이한음의 번역에 대해 칭찬 일색인데 내 생각은 다르다. 그의 번역은
나의 기준에 비추어 볼 때 수준 이하다. 이한음이 어떤 식으로 번역하는지는 아래의 번역 비판을 참조하라.
『악마의 사도(이한음 옮김)』 번역 비판 - 1장의
머리말
http://cafe.daum.net/Psychoanalyse/82Xi/19
『악마의 사도(이한음 옮김)』 번역 비판 - 1장의 1절
http://cafe.daum.net/Psychoanalyse/82Xi/20
『만들어진 신(이한음 옮김)』 번역 비판 – 6장
http://cafe.daum.net/Psychoanalyse/82Xi/30
창조론에는 이해고
오해고 간에 검토해 볼 수 있는 근거라는 게 없다. 창조론자들은 다만 진화론이 해명하지 못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지적할 뿐이다. (12쪽)
다만 진화론은
이런저런 의문점도 있지만 얼추 수용할 수 있는 데 반해, 창조론은 도대체가 너무 황당해 보이는 것이다. 다수의 사람들이 창조론을 반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13쪽)
이것은 다윈
이전의 창조론의 역사와도 유사한 측면이다(물론 똑같지는 않지만). 창조론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거치면서 녹록지 않은 합리적 근거를 보유하고 있었던 반면, 진화론은 한없이 엉성한
논리에 빈약한 근거들밖에 없는 상태였다. 진화론은 종교에 의해 탄압을 받기 이전에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인
근거에서 창조론에 한참 밀리고 있었다. 천문학의 경우와 다른 점은 다윈의 등장 이후 진화론이 단기간에
전세를 역전시켰다는 사실이다. (15쪽)
현재에는 “다수의 사람들이 창조론을 반대”한다고 했는데 그런
것 같지 않다. 나라마다 다르겠지만 전체적으로 여전히 창조론이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창조론이 대중 사이에서는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12쪽에서는 “창조론에는 이해고
오해고 간에 검토해 볼 수 있는 근거라는 게 없다”라고 말했다가 15쪽에서는 “창조론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거치면서 녹록지 않은 합리적 근거를 보유하고 있었던 반면”이라고 말한다. 뭐
하자는 건가?
19세기 진화론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되기 전에
진화론자는 눈과 같이 고도로 복잡하고 정교한 기관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을 전혀 제시할 수 없었다. 다윈의
자연 선택 이론이 멘델의 유전 이론과 제대로 만난 것은 1930년대다.
따라서 다윈은 유전 문제에 시비를 거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종의 기원』 출간되기 이전이든
이후든 19세기에 진화론이 창조론에게 과학적 기준으로 밀렸다고 보기 힘들다. 진화론이 매우 엉성하게 진화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려고 했다면 창조론은 아예 설명을 하지 않고 “신이 그렇게 만들었다”라는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어떤 사람이 에베레스트 등반을 시도했다가 반도 못 오르고 실패하고 이덕하는 가만히 집에 있었다고 하자. 이 때 에베레스트 등반에 이덕하가
더 성공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당시 창조론자는 진화의 메커니즘과 관련하여 진화론자들이 헤매는 것을 비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진화론의 약점을 보여주는 것이지 창조론의 강점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종의 기원』이 출간되기 이전에도 대진화가 일어났는지 여부에 대해서 진화론자들은 상당한
근거를 쌓았다. 이런 면에서는 진화론자가 창조론자보다 과학적 근거를 더 잘 댈 수 있었다.
지난 150년간 부르주아들(혹은 근대인들)은
다윈의 생각을 근대적 메스로 끊임없이 수술하고 성형하였다. 우선 다윈의 과학 비판은 종교 비판으로 협소화시켰다. 자연선택은 자연도태와 적자생존으로 변형시켰고 생존투쟁과 상호의존은 생존경쟁으로 바꿔쳐 버렸다. 그리하여 다윈은 종교비판가이자 부르주아적 가치의 대변자로 타락했다. 우리가
아는 다윈이 탄생한 것이다. (18쪽)
그럴 때 우리는
그의 생각이 얼마나 불온한 것이었는지, 그리고 왜 그 불온성이 거세되어야 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8쪽)
진화 생물학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는 박성관은
그런 식으로 느낄지 모르겠다. 20세기에 진화 생물학은 다윈의 이론 중 잘못된 부분들을 바로 잡고 성
선택 이론처럼 잠시 묻혀 있던 것을 꺼내서 많이 발전시켰다. 또한 그의 대담한 뜻을 이어받은 진화 심리학자들은
과감하게 인간의 마음에 진화 생물학은 적용시키고 있다.
물론 사회 과학에까지 침투하려는 진화 심리학의 불온성을 거세하려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여전히 있다. 하지만 그런 불온한 정신을 이어받은 사람들은 박성관이
뒤에서 비판하는 소위 유전자 환원론자들 즉 William Hamilton, George Williams,
Robert Trivers, Richard Dawkins 같은 사람들이다.
2010-08-18
저의 반박(질문) 모두 회피하시고서는 뭘 말하라는 겁니까?
'다중이론도 틀린 건 없잖습니까?'
이거면 어떻고 저거면 어떻느냐는 식의 주장은 과학적 추론이 아닙니다. 그런식으로 정의하자면 17세기 코페르니쿠스 시절 아직 증거가 불투명하던 때에 천동설이면 어떻고 지동설이면 어떻느냐는 주장과 다를 바 없습니다. 저는 다중지능이론이 인지능력의 정의를 다시 생각해보게 해준 점에서 나름대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여러 모듈들(언어 수리 공간 음악 등)이 따로 존재한다는 생각에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와 위에 제가 문제삼은 2번 명제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ps:// 먼저 인신 공격성 주장을 펴신 분은 님이지 않습니까?
국어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 다중이론도 틀린 건 없지 않습니까
라고 썼습니다. 이젠 조작까지 하시나요?
일반지능에서 인지 운운하는데 시각작용은 인지활동이 아니냐고 물었지요.
다시 앵무새가 되시려는 겁니까?
'다중이론도 틀린 건 없지 않습니까 '
이 말이 16세기 당시 천동설이 뭐가 틀립니까 라는 질문과 뭐가 다릅니까?
님 주장은 정말 사람을 텁텁 막히게 하는 구석이 있군요.
'시각작용은 인지활동이 아니냐고 물었지요' 이 질문과 아까 제가 진짜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서로 관련이 없다고 누누히 강조하지 않았습니까?
국어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다중이론도 틀린 건 없지 않습니까 /
라는 문장이 어떻게 천동설이 적용이 됩니까?
1. 시각이 인지 활동이 아니거나
2. 일반 지능이 인지 능력 전반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거나
둘 중 하나라는 뜻이지요.
아이큐가 논리적 이해력과는 별 상관이 없나요?
포비즘//아이큐로 자위하고 있다는 둥의 인신공격성 발언은 님이 먼저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천동설 이야기는 예로 든 것 뿐입니다.
1. 시각이 인지 활동이 아니거나
2. 일반 지능이 인지 능력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거나
이 두 점 모두 제가 말씀드린 2번 논제하고 별 상관이 없군요. 님은 자꾸 허상을 두고 공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지 능력의 손실 운운하기에 인지 능력의 범위에 대해 논한 겁니다. 기억나지 않으시면 다시 리플 거슬러 올라가 보시고요.
'인지 능력의 손실 운운하기에 인지 능력의 범위에 대해 논한 겁니다.'
도대체 왜 님은 제 댓글을 제대로 보지 않으시는 겁니까?
뇌의 한 부위가 손상 받으면 상당수의 인지능력이 감퇴되는 것은 명백합니다. 포비즘님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따로따로 조각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특정한 모듈이 따로따로 조각나 존재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죠.
물론 님 말씀대로 '상당히'의 정도가 애매모호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상당수의 인지 능력이 함께 퇴화된다는 것은 모듈들이 군집되어 존재한다는 위계지능이론의 명백한 증거입니다. 왜 님은 그것을 거부하려 드십니까?
또한 그것은 서번트 신드롬이 특정 모듈이 분할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지 않는다는 강력한 논거이기도 합니다.
한가지만 묻겠습니다. 님은 g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단순히 지능검사에서 나온 능력이라 생각하십니까?
hes님 대화 방식이 상당히 문제가 많네요. 결국 한참 고민하다 "상당수"라는 애매한 단어로 포장을 하는 것을 보니 말문이 막히네요. 그만하지요?
현재 지능검사는 '일반지능'을 측정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고 '일반지능' 자체라고 보기에는 난점이 많습니다.
지능검사가 측정한계나 오차를 가진다고 해서 g가 부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거야 지들 자의대로 g 기준과 범위를 설정해 놨으니, 지들 기준에 의하면 부정되지는 않겠지요. 아무 의미 없는 선언입니다.
"상당수"라는 애매한 단어로 포장을 하는 것을 보니 말문이 막히네요.
애매한 단어로 포장하시는것은 제가 아니라 포비즘님이십니다. 만약 포비즘님이 서번트신드롬이 다중지능이론을 증명한다고 생각하신다면 왜 특정 뇌 부위가 손상 받았을 떄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많은(애매모호하긴 하지만) 능력이 감퇴되는 것 역시 설명하실 수 있으셔야 합니다. 님 역시 이에 대해 아무런 합리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말문이 막히는 쪽은 님이 아니라 오히려 저입니다.
그러나 다른 상당수 능력은 감퇴가 되지 않겠지요. 그래서요? 고작 몇몇 모듈이 얽혀있다는 정도로 g 운운이 가능하겠어요?
애당초 지능이 뭔지 정의도 내리지 않고 이런 대화를 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모른다면서요?
저보다 더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말 뿐이군요. g가 뇌 전체의 생리학적 능력의 증거임을 증명하는 근거는 상당히 많습니다.
제가 퍼온 글에 자료를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뇌 전체가 모듈되어 있다는 증거는 별로 없습니다. 님이 만약 그러한 주장을 펼치고 싶으시다면 증거를 대십시오.
저는 많은 자료를 퍼온 반면 님은 이제껏 아무런 증거도 없이 궤변만 늘어 놓고 있을 뿐입니다.
참고로 이덕하님도 g를 인정하고 계십니다.
2.백치 천재는 모듈지능을 지지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저는 애시당초 2번 문제를 지적하려 지금껏 댓글을 쓴 셈인데 정작 논의는 지능의 정의 등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 같군요.
모듈 이론은 진화심리학의 근간입니다. 진화심리학을 공격하세요.
그리고 "상당수"에서 언제 또 "전체"로 건너뛰셧나요? 어처구니가 없네요.
증거 증거 하는데 님부터 증거를 대시죠?
그 조잡하게 퍼온 문장들이 증거입니까?
설사 모듈지능이 존재하더라도 g가 부정되지는 않습니다. 더군다나 서번트 신드롬이 모듈이론을 지지한다는 것은 더욱더 어쳐구니가 없는 주장입니다.
서번트 신드롬이 모듈이론을 입증한다고 생각하시면 그 근거를 제시해 주시죠?
님이 그토록 자신있으시다면 '조잡하게 퍼온 자료'를 한번 반박해 보시죠?
몰론 말도 안되는 억지가 태반일 테지만 말입니다.
자의적으로 설정한 기준에 근거한 g인테 반박이 필요한가요? 맘대로 하면 되지 않겠어요? 그러나 지능이 인지 능력 전반을 드러낸다는 식의 주장을 하려면 시각이 인지인지 명확히 하시고요.
1.인간 지능의 정의
2.백치 천재는 모듈지능을 지지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저는 애시당초 2번 문제를 지적하려 지금껏 댓글을 쓴 셈인데 (1번과 2번은 상관이 없습니다.) 정작 논의는 지능의 정의 등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 같군요.
그리고 최근 뇌신경 관련 책을 보세요. 중앙처리장치는 없다는 이야기가 일반적입니다. 모듈이론은 상식이 되어가고 있어요. 웹이나 뒤적거리며 쓰레기나 긁어 모으시지 마시고요.
그렇다면 관련 자료하나 올려 보세요. 어디 얼마나 지지받고 있는 이론인가 한번 보도록 하죠.
그리고 g 이론에는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님 기준에 쓰레기겠죠 .
저명한 지능 심리학자인 젠슨의 논문(권위있는 과학저널에 실린)은 모두 쓰레기통으로 직행해야겠군요.
하도 잡다하게 쓰레기만 퍼와서 그 중에 누구의 논문이 끼어 있는가 볼 생각도 없었습니다.
미국 심리학회가 요약한 g에 대한 설명도 모두 쓰레기겠군요. 유명 심리학자들을 쓰레기로 취급하시다니 저는 할 말 없습니다.
제가 보기엔 님은 '쓰레기'조차 제시하고 있지 않으신데요.
또또... 이상한 억지..
시각을 지능으로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2번 문제와 그다지 상관이 없다고 계속 말씀드려 왔는데도 인정을 하시지 않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