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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국수 한 그릇]
일본작가 ‘구리 료헤이’
음력 섣달 그믐날이 되면 메밀국수를 파는 음식점들은 일년 중 가장 바쁜 날이 된다. 사람들이 해 넘기기 국수를 먹으러 몰려들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음력 12월 31일 저녁이 되면, 온 가족이 함께 ‘길게 오래 산다’는 의미에서 메밀국수를 먹는 습관이 있다. 그런데 오늘이 바로 그 섣달 그믐날이다.
메밀국수 전문 음식점인 「북해식당」도 오늘 하루는 눈코 뜰새 없이 바빴다. 평소 같으면 밤 12시가 되어도 거리는 오가는 사람들로 번잡했다. 그러나 오늘은 초저녁부터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로 부산스럽더니 밤 10시를 넘기면서 거리는 한산해졌다. 그리고 북해식당의 손님도 뜸해졌다.
북해식당의 주인은 사람은 좋았지만 성품이 원래 무뚝뚝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상대하기보다는 그의 아내에게 ‘주인 아줌마’라고 부르면서 주문을 하거나 말을 걸었다. 그렇지만 단골손님들은 주인의 훌륭한 인품을 잘 알고 있었다.
북해식당은 오늘이 얼마나 바쁜 날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임시 종업원을 몇 명 더 썼다. 일이 거의 끝나가자 주인아줌마는 그들에게 특별 보너스와 선물로 메밀국수를 싸서 보냈다. 종업원들이 음력 설을 쇠기 위해서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자, 북해식당의 내외도 슬슬 문닫을 채비를 했다.
마지막 손님이 나가고 식탁을 치우려는 참에 출입문이 드르륵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부부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출입문에는 어떤 여인이 두 명의 사내아이를 데리고 서 있었다. 아이들은 여섯 살과 열 살 정도 되어 보였는데, 새로 산 듯한 옷을 입고 있었다. 식탁을 훔치던 여주인이 고개를 숙이면서 그들을 맞았다.
『어서오세요!』
반코트를 입은 여인은 머뭇머뭇거리면서 부부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저어…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네, 무슨…?』
『메밀국수를 일인분만 주문해도 괜찮을지…』
여인이 부끄러운 듯이 더듬더듬 말을 하는 동안 두 아이는 걱정스런 얼굴로 주인 내외를 쳐다보았다. 여주인은 얼른 눈치를 채고 환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럼요, 되구말구요! 여보, 메밀국수 일인분 있어요!』
여주인은 주방을 향해 소리쳤다. 그리고는 그들을 2번 식탁으로 안내했다.
주방 안에서 그들의 말을 듣고 있던 주인은 큰소리로 외쳤다.
『메밀국수 일인분,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메밀국수 일인분 반을 넣고 삶기 시작했다. 둥글게 뭉쳐진 메밀국수 한 뭉치가 일인분이었지만 그는 한개하고도 반 개를 더 넣었던 것 이다.(세 사람에 일인분이라? 몹시도 어려운 집안인 모양이군…)
따끈한 메밀이 김을 모락모락 피워올리면서 식탁 위에 놓였다. 세 사람은 아주 만족한 얼굴로 이마를 맞대고 메밀국수를 먹기 시작했다. 가만가만 속삭이면서 메밀국수를 먹는 소리가 주방 안에까지 들렸다.
『맛있어요. 엄마!』
『그래. 어서 먹어라. 원래 이 집 메밀국수가 맛있기로 소문이 났단다.』
『엄마도 잡수세요.』
『오냐. 어서 많이 먹어라.』
또다시 어머니의 입에 메밀 몇 가락을 집어넣어 주었다.
두 아이들이 먹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던 어머니는 마지못해 그것을 받아 먹고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메밀국수 한 그릇은 금방 비워졌다. 두 아이는 약간 아쉬운 표정으로 어머니를 쳐다보았지만 셋다 만족한 얼굴이었다. 어머니는 주머니에서 150엔을 꺼내서 값을 지불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면서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새해에는 복 많이 받으십시오!』
부부는 목소리를 합쳐서 인사했다. 그리고 세 모자가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을 닫았다.
새해에도 맛있기로 소문난 북해식당의 메밀국수는 많은 사람들이 즐겨 먹었다. 그렇게 바쁜 나날 속에 어느덧 한 해가 가고 다시 섣달 그믐날이 되었다.
오늘도 북해식당 주인 내외는 정신없이 바빴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모를 지경이었다. 그렇게 쫓기다보니 어느새 저녁 10시가 되었고, 겨우 손님이 뜸해지면서 숨을 돌릴 여유가 생겼다. 예년처럼 종업원에게 특별 보너스와 선물을 주어서 돌려보내고 마악 문을 닫으려고 할 때였다.
출입문이 드르륵 열렸다. 그리고는 작년에 왔던 그 부인과 두 아이가 들어왔다. 여주인은 그 여자가 입고 있는 체크무늬 반코트를 보고는 대뜸 지난해에 왔던 그 마지막 손님들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서오세요! 올해에도 잊지 않고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자,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여주인은 그들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2번 식탁으로 안내했다.
『…메,메밀국수 일인분인데 괜찮겠습니까?』
『물론이죠. 여기 메밀 일인분 있어요!』
여주인이 안에다 대고 소리치자 주방 안에서 활기찬 대답이 들려왔다.
『메밀 일인분, 알았습니다!』
그도 세 모자를 알아보았다. 그래서 방금 꺼버린 화덕에 다시 불을 붙이면서 올해도 많이 주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부인이 주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남편의 귀에다 대고 속닥거렸다.
『여보, 3인분을 주는 게 어떨까요?』
『쉿! 나도 그러고 싶지만 만약에 그렇게 되면 저들이 몹시 거북하게 생각할거야.』
주인은 이렇게 말하면서 메밀국수 일인분 반을 삶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여주인은 흐뭇하게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뚝배기처럼 무뚝뚝하기만 한 줄 알았더니 그래도 그런 자상한 구석도 있었구랴?』
부인의 농담에는 대꾸도 없이 주인은 열심히 메밀국수 한 그릇을 만들어 내놓았다. 커다란 그릇에 넉넉하게 담긴 메밀국수는 하얀 김을 모락모락 피워올리면서 아주 맛있는 냄새를 풍겼다. 여주인은 그것을 2번 식탁으로 내갔다.
세 모자는 낮은 목소리로 가만가만 얘기를 나누면서 후루룩후루룩 먹기 시작했다.
『아, 맛있다! 올해에도 북해식당의 맛있는 메밀국수를 먹게되네요. 엄마.』
『그래, 많이들 먹어라.』
『엄마! 내년에도 올 수 있을까요?』
『그럼!』
『엄마도 좀 잡수세요! 자. 아! 아,하세요.』
『원 애도 참…, 아,아!』
메밀국수 한 그릇을 놓고 맛있게 먹은 세 모자는 만족한 얼굴로 150엔을 내놓고는 저무는 한 해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북해식당 부부는 그들의 뒤에 대고 이렇게 소리쳤다.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해가 바뀌면서 북해식당의 메밀국수가 더욱 잘 팔렸다. 장사가 잘되니 돈벌이가 잘되고, 돈벌이가 잘되니 눈코 뜰 사이없이 바쁘고, 그렇게 바쁘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어느새 또 한 해가 저무는 섣달 그믐날이 되었다.
북해식당 부부는 말을 하지는 않았어도, 밤 9시 반이 지나자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했다. 자꾸만 눈이 시계로 갔다. 그리고는 어김없이 출입문을 살피는 것이었다.
10시가 넘었다. 종업원들을 다 보내고 부부는 나무로 만들어진 가격표를 뒤집었다. 올 여름에 메밀국수 값이 200엔으로 인상되어서 지난해의 가격표 뒤에 인상된 가격을 적어놓았던 것이다. 가격표를 뒤집자 메밀국수는 한 그릇에 150엔이 되었다. 부부는 서로 쳐다보면서 미소를 짓고는 2번 식탁에 놓아둔 「예약석」이란 팻말을 돌아봤다. 부부는 그들이 올 것으로 생각을 하고 벌써 한 시간 전부터 2번 식탁에 예약석 팻말을 내다놓았던 것이다.
그들 세 모자는 밖에서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일까? 10시 반이 넘으면서 북해식당 손님이 끊어지자 출입문이 드르륵 열리고 그들이 들어섰다.
형은 이제 중학생이 되었는지 중학생 교복을 입고 있었고, 동생은 작년에 형이 입던 잠바를 입었는데 아직 맞지 않아서 헐렁했다. 두 아이는 몰라보게 성장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어머니는 여전히 낡은 체크무늬 반코트를 입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주인은 주방에서 반가운 눈으로 그들을 내다봤고, 여주인은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그러자 아이들 어머니는 여전히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어, 메밀 2인분도 괜찮…을까요?』
『2인분, 알았습니다.』
여주인은 얼른 예약석 팻말을 치우면서 그들을 2번 식탁에 앉도록 했다. 한편 주방 안의 주인은 신이 났다. 그래서 그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메밀국수 세 뭉치를 넣고 삶기 시작했다.(올해는 살림이 좀 나아졌나보구나! 그러게 메밀 2인분씩이나 시켰지…)
그는 그것이 마치 자기 일이나 되는 것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메밀국수를 말아서 내놓았다. 여주인도 환한 얼굴로 갖다 주었다.
메밀국수를 먹는 세 모자의 말소리도 한결 밝아보였다. 두 아들이 맛있게 먹는 것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어머니가 조용히 말했다.
『오늘은 내가 너희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구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어머니?』
형이 먹다말고 얼굴을 들었다.
『너희들에게는 말을 안했었다만, 사실 돌아가신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일으켰을 때 여덟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다쳤단다. 그런데 그들에게 지불하는 치료비가 보험금만으로는 부족했지. 그래서 엄마가 매달 생활비에서 5만엔씩을 지불했단다.』
『사실은 저도 알고 있었어요. 어머니.』
『오, 그랬었니?』
북해식당 주인 부부는 안 듣는 척하면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어머니의 말이 어어졌다.
『그 기간이 내년 3월까지였는데, 오늘 전부 지불을 마쳤단다.』
『우와, 그게 정말이세요?』
형이 눈을 크게 뜨고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동생은 메밀국수를 먹다말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래, 너희들이 신문배달을 하고 집안 일을 엄마 대신 해준 덕분에 그게 가능한 일이었다. 너희들 덕분에 엄마가 회사에서 마음 놓고 일을 할 수가 있었고, 회사에서는 열심히 일을 했다면서 특별수당을 주었거든. 그걸로 지불을 마칠 수가 있었단다.』
두 아들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기쁘기는 북해식당 주인 내외도 마찬가지였다. 동생이 큰소리로 말했다.
『으아, 신난다! 엄마, 그리고 형! 앞으로도 집안 일은 내가 다 할께요!』
『그래,그럼 나는 신문배달을 계속할께!』
두 아들이 서로 즐거워하며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어머니의 눈에 반짝 이슬이 맺혔다. 그때 형 다로가 동생 지로에게 눈을 찡긋해 보이고는 어머니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사실은 어머니…, 우리도 어머니한테 감춘 사실이 있어요.』
『뭘 말이니?』
『11월 첫째 일요일에 지로의 학교에서 수업참관을 하러 오라는 통지가 왔었어요. 지로가 쓴 작문이 북해도의 대표로 뽑혀서 전국대회에 나가게 되었는데, 수업참관일에 그걸 읽게 됐거든요. 그렇지만 선생님이 보낸 편지를 어머니가 보게 되면 회사를 쉬게 될 것이고…, 그래서 지로는 편지를 감췄었대요. 저도 몰랐는데 지로의 친구들한테 우연히 들어서 알게 되었죠.』
어머니는 두 아이를 바라보면서 눈물을 훔쳤다.
『…그래서 어떻게 했니?』
『제가 대신 갔었어요. 선생님을 만나보았는데 작문 제목이「메밀국수 한 그릇」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대뜸 북해식당에서 해마다 한 번씩 먹는 메밀국수 얘기를 썼구나 하고 생각했죠. 저는 속으로 「이 녀석이 어쩌자고 그런 부끄러운 얘기를 썼나」했어요. 그렇지만 내용을 듣고 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지로가 쓴 작문의 내용을 차근차근 들려주는 다로의 말을 듣는 어머니의 눈에서는 쉬임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 내용은 대충 이런 것이었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내고 돌아가셔서 많은 빚을 남겼고, 그래서 엄마는 하루 종일 회사에 나가 일을 하고, 형은 아침 저녁으로 신문을 배달하며, 자기는 집안 일을 한다는 것을 사실대로 숨김없이 적었다.
그리고 섣달 그믐날 저녁이면 세 식구가 북해식당에서 메밀국수를 먹었는데, 비록 셋이서 한 그릇밖에 먹지 못하지만 비할 데 없이 맛 있었다는 것과, 메밀국수집 주인 내외의「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삿말은 마치「좌절하지 말아요! 참고 이겨내면 일어설 수 있어요!」라고 격려해주는 것처럼 들렸다는 것, 그래서 지로는 이 다음에 크면 일본에서 제일 큰 메밀국수집의 주인이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다는 것을 솔직하게 적은 글이었다.
여태 주방 안에서 조용히 귀를 기울이던 북해식당 내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다로가 들려주는 지로가 쓴 작문 내용을 엿듣다가 주방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참을 수 없이 솟아나오는 눈물을 어쩌지 못하고 밖에서 들리지 않도록 숨을 죽여 훌쩍이고 있었다.
다로가 말을 계속했다.
『지로가 작문을 다 읽고나자 선생님께서 제가 어머니 대신 왔으니까 인삿말을 하래요.』
『그래서 어떻게 했니?』
어머니가 물었다.
『갑자기 그런 요청을 받았기 때문에 당황이 되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이렇게 말했어요. …언제나 우리 지로와 다정하게 지내주어서 고맙습니다. 내 동생 지로는 매일 저녁 우리 가족 식사 당번을 맡아야 합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여러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일찍 돌아가야 합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그런 동생을 늘 위로하고 감싸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조금 전에 동생이 「메밀국수 한 그릇」을 읽을 때 사실 전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나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자기가 쓴 작문을 읽는 동생을 보니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그릇의 메밀국수로 우리 세 식구가 한 끼를 때웠다는 것이 부끄러운게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는 마음이 더 부끄러운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한 그릇의 메밀국수를 주문할 수 있었던 어머니의 용기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형제는 어머니의 용기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형제는 그런 어머니를 지켜드릴 것입니다. 앞으로도 우리 지로를 따뜻하게 대해주기 바랍니다.』
세 모자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웃다가는 금방 눈물을 훔치기도 했고, 또 눈물을 흘리다가도 금방 배꼽을 쥐고 웃으면서 손을 잡기도 했다. 북해식당 주인 내외는 그러는 세 모자와 함께 울고 웃고 했다.
『맛있게 먹었습니다!』
아직도 한 그릇에 150엔인 줄 알고 있는 것을 보면 그들 세 모자는 일년에 딱 한 번 메밀국수를 먹는 게 틀림없었다. 주인 내외는 그들의 뒤에 대고 예년과 같은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다시 일년이 지났다.
북해식당 주인 내외는 올해의 섣달 그믐날에도 밤 9시가 지나자 2번 식탁에 예약석 팻말을 갖다 놓았다. 그러나 10시가 지나고 11시, 12시가 지나도 그들 세 모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북해식당은 이듬해에 내부수리를 했다. 장사가 번성하여 실내 장식과 식탁, 의자 등을 새롭게 바꾼 것이었다. 그러나 2번 식탁만은 그대로 두었다. 산뜻하고 반짝이는 새 식탁과 의자들 사이에 골동품처럼 남아 있는 2번 식탁을 보면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니, 이 식탁은 특별한 것이기라도 합니까?』
『물론이죠!』
주인 내외는 「메밀국수 한 그릇」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면 손님들은 누구나 감동을 하면서 그들 세 모자의 생활태도를 본받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언젠가는 그 손님들이 다시 오실 것으로 믿습니다. 그 때는 그들이 앉던 이 식탁에 맞이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것 참 훌륭한 생각이십니다. 이 식탁이야말로「행복의 식탁」입니다. 허허』
이렇게 소문이 나다보니 일부러 멀리서 북해식당까지 찾아와서 그 식탁에 앉아 메밀국수를 먹고 가는 여학생이 있는가 하면, 어떤 손님은 굳이 그 식탁이 비기를 기다렸다가 주문을 하기도 했다. 이제 2번 식탁은 북해식당 명물이 되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그러나 여전히 세 모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해 섣달 그믐날 밤이었다.
북해식당에는 인근 가게의 주인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들은 북해식당 주인과 친목회를 맺은 회원들이었는데, 섣달 그믐날 밤에 각자 가게문을 닫은 뒤에 북해식당에서 모임을 갖기로 했던 것이다. 그들은 5,6년 전부터 이렇게 모여서 해넘기기 메밀국수를 먹은 다음에 친구, 가족과 함께 제야의 종소리를 들었다.
9시 반이 지나자 맨 처음 생선가게 부부가 생선회를 가득 담은 접시를 두손으로 들고 들어왔다. 그러자 그것을 신호로 삼은 듯이 회원들 30여 명이 술과 안주를 들고 나타났다. 가게 안은 금방 꽉 차는 듯했고, 분위기는 사뭇 들뜨기 시작했다.
2번 식탁은 여전히 비워져 있었다. 그들도 섣달 그믐날 밤 10시에는 2번 식탁이 예약석이 된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그 자리에는 앉지를 않았다. 모두들 좁게 앉아서 메밀국수를 먹기도 했고, 동료들이 가져온 안주에 술을 마시는 사람도 있었으며, 주방 안에 들어가서 일을 돕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이 한참 즐겁게 먹고 마시면서 지난 한 해의 이야기들로 꽃을 피우고 있을 때 출입문이 드르륵 열렸다.
갑자기 가게 안이 조용해지면서 모든 시선이 출입구 쪽으로 쏠렸다. 그러나 입구에는 코트를 손에 들고 양복을 단정하게 입은 두 청년이 서 있었다
그들을 본 회원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다시 말을 계속했다. 그리고 주인 내외가 죄송하다는 뜻을 전했다.
『이거 죄송합니다. 손님이 만원이라서 자리가 없는데 어떻게 하죠?』
그때였다. 화사한 기모노를 차려 입은 부인이 들어오면서 머리를 숙였다.
가게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기모노 차림의 부인이 말했다.
『메밀국수 3인분만 어떻게…안 될까요?』
여주인의 얼굴이 삽시간에 변했다. 키가 훤칠한 두 청년 사이에 서 있는 부인을 바라보는 여주인의 눈에 십수년 전의 세모자가 환하게 떠올랐다. 바로 그들이었다. 여주인은 금방 안을 돌아봤다. 북해식당 주인도 세 모자를 알아봤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다보고 있었다. 여주인이 세 사람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남편에게 말했다.
『여, 여보! 2번 식탁의 그 예약 손님이에요.』
그러자 두 청년 가운데 한 사람이 여주인에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14년 전에 처음 이곳 북해식당에 들어와서 메밀국수 한 그릇을 시켜 세 모자가 먹고 간 그 사람들입니다. 그때의 북해식당 메밀국수 한 그릇이 우리에게 힘을 주어서 지금껏 열심히 살 수가 있었습니다.』
『아니, 그런데 그 동안 왜 한 번도 들리지 않았었지요? 우리는 해마다 섣달 그믐날 밤이면 저 2번 식탁을 비워 놓고 당신들을 기다렸는데…』
『사정이 있었습니다. 아주머니. 그 뒤로 우리 식구는 외갓집이 있는 시가 현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곳에서 열심히 노력한 결과 저는 금년에 의사 시험에 합격을 해서 교토 대학병원에서 근무하고 있고, 동생은 교토 은행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메밀국수집 주인이 되겠다던 동생의 꿈이 바뀌었습니다만, 어쨌든 우리는 서로 의논을 해서 이곳에 계신 아버지의 산소도 찾아뵐 겸, 일생일대의 사치스런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것은 북해식당을 찾아와서 메밀국수 3인분을 먹자는 것이었습니다.』
주인 아주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솟구쳤다. 주방에 있던 주인도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그때 입구 옆의 자리에 앉아서 메밀국수를 먹고 있던 야채가게 주인이 입에 문 메밀국수를 꿀꺽 삼키고는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소리쳤다.
『아니,뭣들 하고 있어요? 지난 10년간 이날을 위해 준비해 놓고 기다린 섣달 그믐날 저녁 10시 예약손님이잖아요?』
그제서야 여주인은 제정신으로 돌아온 듯했다.
『잘 오셨습니다! 어서 이쪽으로 오세요. 여보, 2번 식탁에 메밀 3인분!』
『메밀 3인분! 알겠습니다!』
주방에서 주인이 소리치면서 메밀국수 3인분을 넣고 삶기 시작했다.
어느덧 밖에서는 새해를 축복이라도 하는 듯이 하얀 눈이 소담스럽게 내리고 있었다.
- 끝 -
첫댓글 잔잔한 감동입니다.
북해식당 주방장된 기분이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