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암산(白巖山·741m)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본사인 고불총림백양사가 있는 곳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백양사는 백제 무왕 때(631년) 창건했다고 한다. 창건 당시 이름은 산 이름과 같은 백암사였다. 조선 선조 때 환양선사가 영천사에서 금강경을 설법하는데 수많은 사람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고 한다. 법회가 3일째 되던 날 흰 양이 내려와 설법을 들었고, 7일간 계속된 법회가 끝나는 날 밤 스님의 꿈에 양이 나타나 ‘나는 천상에서 죄를 짓고 양으로 변했는데 이제 스님의 설법을 듣고 환생하여 천국으로 가게 됐다’며 절을 했다 한다. 다음날 절 아래 흰 양이 죽어 있었으니 그 이후 절 이름을 백양사(白羊寺)라 고쳐 부르게 됐다고 전한다. 야생초산행은 백양꽃으로 잘 알려진 백양사가 있는 백암산을 찾았다. 상사화의 일종인 백양꽃은 처음 발견한 곳이 백양사 부근이라 붙여진 이름이지만 최근에 거제도를 비롯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이웃 일본에서도 자생이 확인됐다. 백양꽃을 보기 위해서라면 꽃이 피는 늦여름을 택해 백암산을 찾아야겠지만 더 큰 관심을 끌고 있는 상록활엽수인 굴거리나무와 상록침엽수인 비자나무의 모습이 드러나는 이때를 택하게 되었다. 백양사 위쪽에 있는 비자나무군락은 천연기념물 153호로 지정돼 있는데 높이가 8~10m에 이르는 아름드리나무가 5000여 그루나 자생하고 있다. 사자봉 동쪽 운문암 부근에 자생하는 아열대식물인 굴거리나무의 큰 군락은 이곳 백암산과 인근 내장산이 생육의 북방한계선이 되는 곳으로 학술상으로도 중요하다고 한다.
금창초
산행은 백양사를 출발해 약수암~백학봉~상왕봉(정상)~사자봉~운문암을 돌아 백양사로 되돌아오는 원점 회귀산행이다. 시작은 백양사 뒤쪽 비자나무가 늘어선 계곡 옆으로 따라 오르면 오른쪽으로 약수암과 영천굴, 백학봉과 상왕봉을 안내하는 표시판이 나타난다. 안내하는 방향을 바라보면 돌계단이 급경사의 경사면을 따라 이어져 있다. 하나씩 놓인 돌계단을 따라 오르다 보면 약수암에 닿는다. 등산로는 멀리 백학봉에서부터 떨어져 내려온 잔돌로 가득하다. 약수암을 돌아 오르면 영천굴이 나타난다. 영천굴은 20여 평에 이르는 천연동굴로 영험하다는 영천샘이 아래로 흐르고 관음보살상을 조성하여 기도법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영천에서 석간수로 목을 축이고 앞을 바라보니 바위절벽에 세뿔석위가 외롭게 붙어 있다. 세뿔석위는 고란초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바위 겉이나 늙은 나무껍질에 붙어 자란다. 백학봉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암자를 되돌아 나와야 한다. 절벽 아래로 이어진 길에는 낙석조심이라는 글귀가 여기저기 붙어 있다. 해빙기를 맞아 겨우내 암벽에 위태롭게 붙어 있던 바위가 녹으면서 떨어질 것을 염려해서다. 등산로는 경사를 더하며 위태롭게 암벽사이를 빠져 나가며 높이를 더한다. 절벽에서 떨어진 바위 부스러기들이 쌓인 등산로 변에는 열악한 환경을 마다 않는 금창초와 현호색이 막 꽃잎을 내밀기 시작한다. 추운 겨울 내내 바닥에 바짝 붙어 추위를 이겨낸 금창초는 마디를 늘여가며 꽃봉오리를 키우고 있다. 겨우 한두 송이 열기 시작한 앙증맞은 보라색 꽃과 털이 보송보송한 잎이 어울려 신비감을 더한다. 주변에는 꽃 모양은 판이하지만 비슷한 빛깔의 현호색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음지로는 잔설이 남아 겨울 분위기를 느끼게 하지만 양지에서는 꽃이 피어 봄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백학봉에 올라서면 분위가 사뭇 달라진다. 흰 빛의 암벽이 켜켜이 쌓여 이루어진 봉우리답지 않게 육산의 형태를 하고 있다. 백암산 주능선이 시작되는 백학봉에서부터는 이러한 모습이 연속된다. 백암산의 주봉은 상왕봉이다. 상왕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신갈과 떡갈나무 등 참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그 아래 바닥에는 산죽이 들어차 있다. 가끔 바위가 드러나고 가장자리로 흙이 모여 있는 곳에는 산자고가 꽃봉오리를 수줍게 내밀고 있다. 낙엽을 걷어내자 잎을 채 드러내지 못한 어린 산자고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백합과의 산자고는 햇볕이 잘 드는 양지에 주로 자생한다. 꽃은 꽃자루 끝에 1~2송이가 하늘을 향해 달리고 겉면에는 자주색 무늬가 있다. 이제 막 내밀기 시작한 꽃잎이 더 예쁘다. 상왕봉에서 나누어지는 북쪽방향 등산로를 따라가면 가을단풍으로 유명한 내장산으로 갈 수 있다. 야생초산행은 서쪽으로 계속 진행하여 사자봉으로 향한다. 사자봉은 백암산 종주산행에서 서북쪽 끝단에 위치한 봉으로 여기서부터는 진행 방향이 남쪽으로 바뀌게 된다. 방향은 달라졌지만 크게 변화가 없는 숲속 환경이다. 계속 진행하면 운문암으로 가는 길이 나타난다. 등산로는 산허리를 돌아 운문암으로 향한다. 운문암이 가까워지자 숲속에는 상록활엽수인 굴거리나무가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운문암이 보이는 곳에서부터는 군락을 이루고 있다. 대극과에 속하는 굴거리나무는 푸른 잎을 지니고 있어 울창한 숲속에 있어도 쉽게 구별이 가능하다. 여기가 굴거리나무의 북쪽 경계라니 관심이 더 간다.
얼레지
굴거리나무 아래 숲속 바닥에는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얼레지가 지천이다. 어제 오늘부터 땅을 뚫고 내밀기 시작한 마주보는 얼룩무늬 잎 사이에는 꽃대도 같이 오르고 있다. 하루 이틀이 지나면 볕 좋은 곳부터 꽃잎을 펼치기 시작하고, 한 주일이 더 흐르면 숲속은 온통 얼레지 꽃으로 뒤덮여 꽃 잔치에 하루해가 짧을 것이다. 얼음이 풀린 계곡물 소리만 흥겨운 것이 아니라 숲속 낮은 곳에도 봄은 서서히 무르익고 있다. 수도승들의 요람답게 산문이 닫힌 운문암부터는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야 하는 다소 지루한 길이다. 그러나 계곡을 따르는 길이라 시원한 물소리가 있고 아름드리 비자나무 노거수가 그늘을 만들어 반기니 아늑한 숲속에 뒤질 바가 아니다. 콧노래를 흥을 거리며 내려오다 보니 어느새 출발했던 백양사가 지척에 다가와 있다. 길가에는 아침에 보지 못했던 뫼제비꽃과 개불알풀이 땅바닥에 붙어 저절로 피어있다. 개불알풀은 오전 햇살을 받아 늦게 꽃잎을 펼친 듯하다. 때가 되어야 제 모습이 드러나는 것을 아침에는 철이 일러 꽃은 아직 피지 않은 것으로 잘못 알았다. 백양사를 마저 구경하고 출발지점인 쌍계루로 되돌아오니 산행을 시작한지 5시간이 지나고 있다. 채 10km도 못 되는 거리니 볼거리 만큼 산행시간이 많이 걸린 것 같다. /농협중앙회 진주시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