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치슬라브 피오트로스키 신부
모든 사람에게는 불멸의 영혼이 있다. “정녕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시고 당신 본성의 모습에 따라 인간을 만드셨다."(지혜 2, 23)
불멸의 영혼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사랑, 선함, 도덕의식, 양심, 생각, 자의식, 창조력과 같은 인간 행위의 영적 징후에서 영혼의 존재는 증명된다.
사람이 잉태되는 순간, 하느님께서 그 모든 사람에게 불멸의 영혼을 주신다. 그리고 그 영혼은 죽음의 순간에 육신에서 분리될 때도 사라지지 않는다. 영혼 덕분에 사람은 “이 세상에 하느님을 증언하는 존재이고, 그분께서 존재하신다는 표징이며, 그분 영광의 흔적”이 된다.(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생명의 복음, 34항)
하느님께서는 몸소 당신 실재의 반영으로 인간이 지닌 “한갓 물질로 환원될 수 없는"(사목헌장, 18항) 영원의 씨앗을 비추신다.
불멸의 영혼에 관해 말할 때 우리는 인간의 자의식과 자유, 사고, 사랑, 상상력, 창조력과 더불어 바로 그 “인간 자체"의 신비를 말한다. 모든 피조물 가운데 오로지 인간에게만 이성과 자유의지와 반성의 능력이 있다. 인간은 생각으로 대우주와 소우주를 영적으로 꿰뚫을 수 있고 탐구할 수 있다. 연구하고, 이성적으로 논쟁하고, 판단하고, 평가하고, 추상적인 개념을 발전시킬 수 있다.
영적 실재인 인간의 영혼은 물질세계를 초월하며, 사멸하지 않는 본성을 가진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그 영혼의 존재를 지켜주시기 때문이다. 요셉 라칭거 추기경은, 영혼의 존재가 뜻하는 바가 하느님께서 그 인간을 아시고 사랑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고, 당신과의 영원한 사랑의 대화로 그 인간을 부르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썼다.
하지만 만약 하느님의 사랑을 완전히 거부한다면, 그래서 그분의 자비를 경멸한다면, 그때 그 사람은 영원한 지옥이라는 가장 큰 고통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아무리 스스로 원한다 해도, 자기 자신을 파괴하지 못한다. 영혼은 파괴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육신을 죽일 수는 있어도, 결코 자신의 영혼을 파괴할 수 없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마라.”(마태 10, 28)
영혼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교회는, 사후에 영적 요소가 살아남아서 의식과 의지를 부여받고 존재함으로써 ‘인간 그 자신'이 존재한다고 확언한다. 이 영적 요소를 가리켜 교회는 성경과 성전에서 받아들이고 사용되어왔던 용어인 '영혼'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이 용어가 성경에서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교회는 이 단어를 택하지 않을 아무런 타당한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교회는 그리스도 신자들의 신앙을 지탱해주기 위해서는 전달 수단으로서의 어떤 단어의 사용이 전적으로 필요불가결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로마의 신앙교리성성이 1979년에 종말론에 관한 문제에 관한 서한에서 말한 것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는 인간의 영혼에 관해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교회는 각 사람의 영혼이 - 부모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 하느님께서 직접 창조하셨고, 불멸한다고 가르친다. 죽음으로 육체와 분리되어도 영혼은 없어지지 않으며, 부활 때 육체와 다시 결합될 것이다."(366항)
“육신과 영혼의 분리인 죽음으로 사람의 육신은 썩게 되지만 그의 영혼은 하느님을 만나, 영광스럽게 된 그 육신과 다시 결합되기를 기다린다. 마침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전능으로, 예수 부활의 능력을 통해, 우리 육신을 우리 영혼에 결합시키심으로써 영원히 썩지 않는 생명을 육신에 돌려주실 것이다."(997항)
사람에게는 불멸의 영혼이 있지만, 반면에 육적 영적 결합이기도 하다. 이에 관해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영혼과 육체의 단일성은 영혼을 육체의 '형상'으로 생각해야 할 만큼 심오하다. 말하자면 물질로 구성된 육체가 인간 육체로서 살아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은 영혼 때문이다. 인간 안의 정신과 물질은 결합된 두 개의 본성이 아니라, 그 둘의 결합으로 하나의 단일한 본성이 형성되는 것이다."(365항)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렇게 상기시킨다.
“인간의 이성적 영혼은 그 자체로 그리고 본질적으로(per se et essentialiter) 육체의 형상(forma)입니다. 영적이고 불멸하는 영혼은 인간의 단일성의 원리입니다. 그로써 인간은 일체 -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진 단일체(corpore et anima unus) - 로, 인격체로 존재합니다. 이러한 정의는, 부활을 약속받은 육체가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줄 뿐 아니라, 이성과 자유의지가 모든 육체적ㆍ감각적 기능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켜 줍니다. 육체를 포함하는 전인격체는 인간에게 완전히 맡겨져 있으며, 인간이 그 윤리 행위의 주체가 되는 것은 영혼과 육체의단일성 안에서입니다.”(회칙, 진리의 광채, 48항)
환생은 없다
인간의 영혼은 영속적으로 육신과 연결되어 있고 죽은 후에도 영혼은 “육신”의 부활을 “기다릴” 것이다. 성 바오로 사도는 죽음을 “몸을 떠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불멸의 영적인 “자신”, 즉 영혼이 “몸을 떠나” 주님 곁에 사는 것이다. (2코린 5, 1-10)
육신은 한 번 죽으면 환생하지 않는다.
“죽음은 인간의 지상 순례의 끝이며, 지상 생활을 하느님의 뜻에 따라 실현하고 자신의 궁극적 운명을 결정하라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과 자비의 시간의 끝이다. ‘단 한 번뿐인 우리 지상 생활의 여정을 마친 다음에' 인간은 또 다른 지상 생활을 위해 돌아오지 못한다. '사람은 단 한 번 죽게 마련이다.'(히브 9, 27) 죽음 뒤에 '환생'이란 없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013항)
“한 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집회 38, 21) 이는 힌두교의 카스트제도가 가르치는 환생의 교리와 반대된다. 그들은 지상에서의 인간 삶의 유일성에 대한 진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진리에 의문을 갖는다.
인간 영혼에 관한 성경의 언급
인간 영혼의 불멸에 관해 예수님의 태도는 아주 단호하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마태 10, 28)
예수님께서는, 육신이 죽은 후 인간의 영혼이 계속 존재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 25-2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요한 8, 51)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십자가 오른편 도둑과의 대화에서도 영혼의 불멸에 관해 말씀하신다.
“(그 죄수가)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 23, 42-43)
구세주께서는 죽음 후에 우리의 육신이 부활하기 전에도 삶이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낙원”이란 단어를 쓰셨다. 예수님께서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라는 말씀으로써, 육신이 죽은 후에도 인간의 영혼은 계속 존재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이다. 육신의 부활은 오로지 “마지막 날”(요한 6, 54)에 일어날 것이다.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에서 예수님은 올바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죽음 후의 삶에 대해 말씀하신다.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지상에 살고 있는 자신의 다섯 형제들에게 라자로를 보내서 경고해달라고 청한다는 사실은, 인간의 영혼은 우리 육신이 부활하기 전에도 살아있다는 것을 알려준다.(루카 16, 19-31; 27-28)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에서 우리는 사후의 삶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우리의 영생이 결정될 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경고하신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루카 9, 25) 지상에서의 삶 전체는 분명 이 중요한 순간, 바로 영혼이 육신에서 분리되는 죽음을 위한 준비의 시간이다. 우리는 그때 아무런 중개자 없이 그리스도와 얼굴을 맞대고 만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영생이 그 순간에 결정될 것이다. 구원이냐? 아니면 영원히 지옥에 떨어지느냐? 그리스도께 드리는 "예"라는 응답으로 천국이나 연옥이 될 것이고, 반면에 그분 사랑을 거부하면 지옥이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들을 구원하고자 하신다.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회가 주어진다. 그 누구도 운명이 정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의지 외에, 하느님을 거부하고 지옥을 택할 수도 있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있다는 사실이다.
무신론을 버리고 열렬한 그리스도인이 된 영국의 유명한 학자이며 작가인 C.S. 루이스는 《고통의 문제 The Problem of Pain》에서 지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주받은 자들이란 어떤 의미로는, 마지막 순간까지 반역하는 사람이라고 나는 말하겠다.… 그들은 자신들이 요구했던 그 끔찍한 자유를 영원히 누릴 것이다.”
지옥은 절대적인 이기심과 영원한 증오심을 가진 사탄이 군림하는 장소이다. 끝까지 대죄를 고집하는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비를 거부하고, 죄의 고백을 한사코 거부하고, 자기 자신을 기꺼이 사탄의 지배에 맡기고 사탄의 왕국에 머문다. 이것이 인간의 모든 비극과 불행의 궁극적인 이유이다. 우리는 매일 기도하면서, 가장 고통받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예수님께 기도를 올려야 한다. 하느님의 자비의 메시지를 선포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죄인들에게 아무도 내 손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해다오. 그들이 나의 자비로운 마음으로부터 도망을 쳐도 결국에는 나의 정의로운 손에 잡히고 말 것이다. 내가 항상 그들을 기다리고 있으며 그들의 심장이 나를 위하여 뛸 때, 그 소리를 듣고 있다고 죄인들에게 말해다오. 나는 그들의 양심의 가책을 통해서, 그들의 실패와 고통을 통해서, 폭풍우와 번개를 통해서 이야기하며, 교회의 목소리를 통해서 그들에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기록하여라. 만일 그들이 나의 모든 은총을 헛되이 한다면, 나는 그들에게 분노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들을 그냥 내버려두고, 그들이 원하는 심판을 그대로 내려 줄 것이다.”(파우스티나 성녀의 일기, 1728항)
하느님의 사랑은 당신 피조물의 자유를 완전히 존중한다. 비록 그 피조물들이 완전히 하느님을 거부할지라도 …. 불멸의 영혼과 천국, 연옥, 지옥에 관한 진리는 우리의 지상 삶을 유일무이하고 극히 예외적인 것이 되게 한다. 인간의 모든 비극의 원천인 죄를 쉽사리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 진리가 상기시킨다. 반면에 모든 도덕적 죄가 예수님께 가는 데 필요하다. 고해성사를 자주 받아서,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용서하시고, 하늘 나라로 가는 길을 우리에게 열어주시고, 죽은 이들 가운데 부활하신 가장 위대한 기적의 환희를 우리와 함께 나누신다는 것을 명심하자.
<Love One Another! no. 50>에서 이선영 옮김
마리아지 2024 9.10 통권 247호
"인류 역사의 가장 큰 비극은 고통을 바치지 않는 것이다."
-피에트렐치나의 비오 성인(오상의 비오 성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