靈川治西一長亭有書齋洞洞窈而廓水淸駛脩林薈蓊如園墻隱者之所盤還也故齋原丞李公居之學者稱弦窩先生我
고령 소재지 서쪽 10리 거리에 서재동이 있는데 동이 그윽하면서 넓고 물이 맑게 흐르고 긴 숲이 우거진 것이 두른 담장 같으니 은자가 소요하는 곳이다. 옛 제원도찰방 이공이 이곳에 살았는데 배우는 사람들이 현와선생이라고 일컬었다.
憲文王十五年天下大亂虜師逼京和盟松坡江水不能湔靑邱之衊陪臣尙節義者多裂冠進山谷間公又銀潢之別籍也以不得一死報國爲平生慟Ο門屛踵相羊泉瀑而沒世搆小齋扁以四友盖嘐嘐然古之人古之人而古之人世遠心融所何尙友者在周得魯仲連在晉宋得陶元亮胡邦衡於東得百結子特抗節義而樂貧賤者日對軒楣千古而朝暮遇也
헌문왕[인조] 15년에 천하가 크게 혼란하여 청나라 오랑캐 군사가 한양까지 닥쳐 송파에서 화친의 맹약을 체결하니 강물이 청구[조선]의 더러움을 씻어낼 수 없었다.
임금을 모시는 신하로서 절의를 숭상하는 사람은 많이들 갓을 찢고 산골에 숨었다. 공은 또 왕족으로서 한 번 죽음으로 나라에 보답하지 못한 것을 평생의 지극한 통한으로 여겨 문을 닫고 자취를 숨겨 泉石과 폭포에 사이에 한가로이 노닐면서 세상을 마치고자 작은 재사를 지어 사우재라고 편액을 걸었다.
이는 대개 큰 뜻으로 "고인이여, 고인이여!"라고 하는 의미였는데, 고인은 세대가 멀고 마음이 합하여 위로 벗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주나라에서는 노중련, 진나라에서는 도연명, 송나라에서는 호방형을 얻고 동국에서는 백결선생을 얻었는데 특별히 절의를 높이고 빈천한 가운데 도를 즐거워한 사람이었으니 날마다 문 위의 편액에서 대하여 천고 후에 조석으로 만났다.
歲旣久齋圯而墟至後孫興百築復古齋感古宅名古洞而慕古行古之義也人又古巋然古齋鞠爲草萊己丑冬諸宗鳩工財復其古制而繕葺之堂櫺霤戺井井輪奐焉相與謀曰齋是四友古墟而中歲之名以復古只爲書齋洞之復古號非四友齋之復古墟也地名必因人而闡昔吾先祖居四友齋也 人皆知書齋古洞以有四友齋也今重修古齋仍以復古明齋而不復四友齋之古稱是先齋之重反不如古洞之書齋烏可乎哉 遂以四友復其古而揭走遠祥來屬余作文以記之余亦恨不死者敢以名姓汚華楣乎旣辭不獲告以耄語曰齋名之不復復古復古四友得之矣雖然保守先齋之道在實不在名居祖先所居之室念祖先命名之義行祖先所行之實則 今之齋卽古之齋也古之友卽今之友也 嗚乎天下之亂久矣未知弦翁之刱是齋也冠裳文物果如今日之歸地者乎弦翁之去魯仲連殆數千載而猶且尙友之况今去弦翁只三百年眞源活水尙有龜潭一畝鑑諸君得涵泳餘波滌去淆漓之塵想日誦東海無邊莽空濶一句語以弦翁求四友之義求之弦翁則弦翁之四友亦諸君之可與友卽是四友齋之實其名也請歸語夫齋居諸君子
庚戌半夏生仁州張錫藎記
세월이 이미 오래되어 재사가 무너져 폐허가 되었는데, 후손 흥백에 이르러 옛 재사를 지어 복원하니 고택에 감회를 붙이고 古洞을 이름하여 고도를 사모하고 고도를 행하는 뜻이었다. 사람이 또 고인이 되니 우뚝한 옛 재사가 황폐하여 잡초가 덮혔는데, 기축년 겨울에 여러 종인이 공인과 재물을 모아 옛 규모를 회복하여 수리하니 재사의 규모가 정연하여 반듯하게 장대하고 빛나게 되었다.
후손이 서로 도모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재사는 곧 사우재가 있던 옛 터에 지었는데 중년에 이름을 복고재라고 한 것은 다만 서재동 옛 이름을 회복한 것이고 사우재 옛 터를 회복한 것이 아니다. 지명은 반드시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나는 법이니, 옛적에 우리 선조께서 사우재에 기거하실 때 사람이 모두 서재동 옛 마을에 사우재가 있는 줄 알았다. 지금 옛 재사를 중수함에 있어서 그대로 복고로 재사 이름을 삼고 사우재라고 옛적에 부르던 이름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이는 선조 재사를 중수하는 일이 옛 마을의 서재만 못하니 어찌 가하겠는가?
드디어 사우재라는 이름으로 그 옛 것을 회복하여 편액을 걸고 원상을 보내와서 나에게 글을 지어 기록하기를 부탁하였다. 나 또한 망국의 화를 당하여 죽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하는 사람이니 감히 나의 성명으로 훌륭한 집의 門楣를 더럽힐 수 있겠는가? 이미 사양해도 받아들여지지 않기에 늙어서 혼미한 말로 다음과 같이 고하여 말한다
재사 이름을 다시 복고재라고 하지 않고 사우재라고 옛 이름을 회복한 것은 잘 된 일이다. 비록 그러나 선조 재사를 보호하고 수호하는 방도는 실상에 있지 이름에 있지 않다. 선조가 기거했던 방에 기거하여 선조가 이름을 정했던 뜻을 생각하고 선조가 행했던 실상을 행한다면 지금 중수한 재사가 곧 옛날에 창건했던 재사이고, 옛날의 벗이 곧 지금의 벗일 것이다.
오호라! 천하의 혼란이 오래되었으니, 현와옹이 이 재사를 창건했을 당시의 의관 문물이 과연 오는날 땅을 쓴 듯 허무한 것과 같았겠는가? 현와옹은 노중련의 시대와 거리가 거의 수천 년인데도 오히려 또한 위로 벗을 하거늘, 하물며 지금은 현와옹의 시대와 거리가 다만 3백 년일 뿐인지라 당시의 眞源活水로서 거울처럼 맑은 龜潭 하나가 여전히 있다.
여러분은 그 여파에 깊이 젖어 혼탁한 속진의 생각을 씻어내고 날로 "동해는 한없이 넓고 아득한 하늘은 공활하네.[東海無邊莽空濶]"라고 한 현와 옹의 시 한 구절을 외우고 현와옹이 네 벗을 구했던 뜻으로써 현와옹에게 구한다면 현와옹의 네 벗을 또한 여러분이 함께 벗할수 있을 것이니, 바로 이것이 사우재가 그 이름을 실상에 맞게 하는 일이다. 청하건대, 돌아가서 재사에 기거하는 여러 군자에게 말해주기 바란다.
경술(1910)년 5월 인주 장석신은 기문을 적다
대구문우관 한학자 김홍영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