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하집 제12권 / 서발(序跋)
《백사북천록》 발문〔白沙北遷錄跋〕
이상은 정금남(鄭錦南) 충신(忠信)이 쓴 《백사선생북천록》 1책이다. 선생의 증손인 세귀(世龜)가 교열ㆍ산정(刪正)하고 〈정사헌의(丁巳獻議)〉 및 금남의 행사본말(行事本末)을 덧붙였으니, 이 《북천록》이 비로소 완전한 책이 되어 오래도록 전할 수 있게 되었다.
선생께서는 모후(母后 인목왕후)가 장차 폐서인 되는 것을 애통해하여 발분하여 헌의했다가, 정사년(1617, 광해군 9) 12월에 북청(北靑)으로 귀양을 가서 다음 해 5월에 세상을 버리고, 그해 8월 포천(抱川)의 선묘 곁에 반장(返葬)되었다.
금남은 선생 문하의 선비로서 유배 가서 생사가 위태로운 즈음에 선생을 따라 여정을 함께하고 주선하며 시종 곁을 떠나지 않았고 그를 위하여 방상(方喪)을 하였다. 처음 유배를 떠날 때부터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를 때까지 전후 몇 개월의 기간 동안 살펴서 상세히 기록하였으니, 크게는 당시 세변(世變)의 개략 및 선생의 충의의 대강과 언동이나 웃음의 작은 부분과 인정의 후박(厚薄)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부분을 모두 기록하였다.
유배지[嶺海]의 험난한 길에서 언덕과 습지를 포복한 점은 마음을 아프게 하고 눈물을 훔치게 할 만한 점이 있으니, 참으로 그의 고심이 지극히 정성스러우며 의리를 사모함이 무궁한 사람이었도다. 아, 우주에 환히 드러난 선생의 큰 절개가 당초 헌의(獻議) 1편에 담겨 있으니 진실로 이 기록에 기댈 필요는 없지만, 백세 후에 선생의 풍모를 듣는 자가 선생의 가르침을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으며 직접 받드는 듯하여 감동에 목이 메어 그치지 못한다면, 이 기록이 도움이 없지 않을 것이다.
어찌 그대로 없어져 전하지 않게 할 수 있겠는가. 기록이 혹 사소하고 비속하여 선생의 뜻이 아닌 것 같음을 면치 못한 것은 보는 자가 마땅히 스스로 변별해야 할 것이니 같이 놔두는 것도 무방할 것이다. <끝>
[註解]
[주01] 백사북천록 : 이항복이 광해군의 인목대비 폐모를 극력 반대하며 헌의(獻議)를 올렸다가 북청에 귀양 갈 때 정충신이 수행하며 적
은 일기로, 1617년(광해군9) 11월 1일부터 다음 해 8월 7일까지의 기록이다.
이후 57년이 지난 1685년(숙종11)에 이항복의 증손인 이세귀(李世龜)가 교정하고, 북청 부사 정내상(鄭來祥)과 함경도 관찰사
이수언(李秀彦) 등이 협력하여 간행하였다. 정충신이 이항복을 수행하고, 배소에서 죽은 그의 유해를 포천에 모셔 안장하기까지의
내력이 상세히 수록되어 있다. 《백사선생북천일록(白沙先生北遷日錄)》이 국립중앙도서관ㆍ규장각ㆍ장서각 등에 소장되어 있다.
[주02] 정금남(鄭錦南) 충신(忠信) : 금남은 정충신(1576~1636)의 봉호이다. 본관은 하동,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晩雲)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에 17세의 나이로 광주 목사 권율(權慄)의 휘하에서 종군하였다.
어느 날 권율의 장계를 가지고 의주에 있는 행재소에갔는데 병조판서 이항복이 정충신의 범상치 않음을 알아보고 그에게 사서(史
書)를 가르쳤으며 이해 가을에 행재소에서 실시하는 무과에 응시하여 합격하였다. 이러한 인연으로 이항복의 유배길을 수행하여 기
록으로 남겼다.
[주03] 방상(方喪) : 《예기(禮記)》 〈단궁 상(檀弓上)〉에 “임금을 섬기는 데는 직언(直言)으로 면쟁(面爭)할 수는 있으나 숨김은 없어야
하며, 좌우에서 돌보면서 죽을힘을 다하여 복근(服勤)하고, 방상 삼 년을 입는다.”라고 하여, 임금의 상을 당하여 부모의 상에 견주
어 삼년상을 입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정충신이 이항복을 위하여 부모의 상처럼 삼년상을 입었음을 가리킨다.
[주04] 유배지 : 원문의 ‘영해(嶺海)’는 광동(廣東)ㆍ광서(廣西) 지방을 가리키는데 그 지방이 북쪽으로는 오령(五嶺)에 의지하고, 남쪽으
로는 바다에 임했기 때문에 이렇게 칭하게 된 것으로, 궁벽한 유배지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ㆍ한국고전문화연구원 | 전형윤 채현경 장성덕 (공역) |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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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文]
白沙北遷錄跋
右鄭錦南忠信所記白沙先生北遷錄一冊。先生曾孫世龜檢校刪正。附以丁巳獻議及錦南行事本末。是錄始爲完書。可以傳示久遠矣。蓋先生痛母后之將廢。發憤獻議。丁巳十二月。謫配北靑。明年五月捐館。其八月返葬于抱川先墓之側。錦南以門下士。從先生於遷謫死生之際。跋履周旋。終始不離傍。仍爲之方喪。自始遷至卒葬。首尾大閱月之間。審視而詳記之。大而一時世變之梗槩及先生忠義之大方。以至言動嬉笑之微。人情厚薄之際。纖悉畢錄。若乃嶺海間關。原隰匍匐。有可以刺心而抆涕者矣。眞苦心至誠慕義無窮者哉。嗚呼。先生之大節耿著於宇宙者。初議一篇在焉。固若無待於是錄。而百世之下聞先生之風者。如目見如身履如親奉先生之警咳。感慕嗚咽而不能已則是錄不爲無助。何可使沈滅而不傳也。至其所記或不免瑣細俚俗。似若非先生之意者。則觀者當有以自卞之。不害其並存也。<끝>
ⓒ한국문집총간 | 1995
▲필자 소장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