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12 [더 나은 것 선택하기] (눅10:38-42)

[김명현]

더 나은 것 선택하기

2023.11.12.(성령강림후제24주일)

선한목자교회 김 명 현 목사

38/ 그들이 길을 가다가, 예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마르다라고 하는 여자가 예수를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39/ 이 여자에게 마리아라고 하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 곁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 40/ 그러나 마르다는 여러 가지 접대하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마르다가 예수께 와서 말하였다. "주님,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십니까? 가서 거들어 주라고 내 동생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41/ 그러나 주님께서는 마르다에게 대답하셨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며 들떠 있다. 42/ 그러나 주님의 일은 많지 않거나 하나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다. 그러니 아무도 그것을 그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누가복음 10:38-42)

들어가는 말

한 여자가 예수님과 일행을 위해 자신의 집을 오픈하면서 영접합니다. 우리 생각에는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당시의 풍습으로 보면 매우 기이한 일입니다. 여자가 남자들로 이루어진 일행을 초대하는 것이니 말입니다. 이 여인 마르다에게는 시대와 그 시대를 지배하는 풍습을 아랑곳 하지 않으면서까지 진실을 찾고자 하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입니다. 더 놀라운 일은 마리아에게서 보입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발 곁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발 가까이에 앉아 있다는 사실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성립되어 있음을 표현하는 것인데 그 제자가 다름 아닌 여자인 것입니다.

누가복음이 예루살렘을 향한 예수님과 제자들의 여정 가운데 마르다와 마리아를 등장시킨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새로운 시대가 동터 옴을 알리는 표지입니다. 유대교 율법의 시대에 여자의 주인 됨과 여자의 제자 됨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새롭게 다가올 미래를 향한 더 나은 길을 사람들에게 제시하고 인도하십니다. 더 나은 길을 선택한 사람은 뒤로 돌아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과거와 결별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마르다와 마리아는 서로 다른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과거로 돌아가거나 미래로 나아가는 전혀 다른 선택의 상징이 됩니다.

의무와 책임이 과거에 붙들리게 한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퇴행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지닌 태도 때문입다.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습관화된 태도가 지배한다면, 그는 새로운 것을 따른다면서도 과거로 치닫게 됩니다. 하지만 그 습관마저 과거와 결별한 것이라면 그는 다가오는 미래를 선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이러한 ‘태도’가 무엇인지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향한 길을 가다가, 어떤 마을에 들어갑니다.(1) 누가복음은 여기서 치유나, 선포나, 휴식 등, 일행이 마을로 들어가는 목적을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목적을 밝혔다면 그 목적에 누가 더 적합했는지가 이 이야기의 핵심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태도에 집중하게 합니다. 그 마을에는 마르다란 여인이 살고 있는 집이 있었습니다. 여기서도 이 집은 주인인 남자의 집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이 집을 요한복음 11장에 나오는 베다니의 나사로와 여동생들인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과 동일한 곳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의 일행을 집으로 맞아들이는 것은 나사로여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누가복음에서 집을 개방하고 예수님의 일행을 맞아들인 사람은 마르다였습니다. 이것이 이 이야기를 파격적이게 만듭니다.

여기서 마리아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마르다는 집을 오픈했지만 마리아는 자신을 예수님께 오픈합니다. 그녀는 ‘주님의 발 곁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39) 그런데 마르다는 말씀을 듣지 못합니다. 집을 개방한 것은 마르다이지만 말씀을 듣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듣지 못한 차이는 어찌 보면 분주함과 게으름의 차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마르다는 ‘여러 가지 접대하는 일로 분주하였습니다.’(40) 하지만 마리아는 그것이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대접하는 일에는 게으를 수 있었고 예수의 말씀을 경청할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새로운 시대는 게으른 자가 맞이합니다.

분주함은 더 나은 일을 선택하지 못하게 한다.

예수님이 시작하신 이 일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에 의해서 유지되고 지속될 것입니다. 제자들의 모든 일은 이 말씀에 붙들려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예수님을 더욱 극진히 대접한다고 해서 예수님의 뜻이 더 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르다의 접대는 예수님이 가야할 길을 예비하거나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목사를 대접하는 일이 큰일처럼 여겨지는 한국교회가 안타까울 뿐입니다. 예수님에게 중요한 일은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이 그분의 말씀에 따라 과거와 단절하는 의지로 새로운 미래를 여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르다는 자신의 태도로 인해 예수님을 방해합니다.

마르다는 예수님께 와서 그분의 말씀을 끊습니다. “주님,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십니까?”(40) 마르다는 예수님께 항의하고 있습니다. 동생의 태도가 미워 죽을 지경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뭐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집안에 남자 형제들이 있었다면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해서 자신의 일을 돕지 않는다며 푸념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문제는 자신과 같은 처지라 여겨지는 여동생이 자신을 돕지 않는다는 데 있었습니다. 마르다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도움을 받아야만 해낼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마르다의 태도는 정당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어떤 기준에 정당한 것일까요? 그것은 전형적인 현실의 기준에서 그렇습니다. 그것은 현실을 지배하는 과거로부터 내려온 풍습과 남녀의 역할, 제도적이며 종교적인 기준 등이 그녀의 판단 속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기준은 깨어져야 할 것이지만, 오히려 그녀를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녀도 처음에는 그러한 관습에서 벗어나려고 자신의 ‘옛’ 집을 개방하고 ‘새로운’ 예수님을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그녀의 꿈은 자신의 뼛속 깊이 습관화된 태도에 의해 순식간에 무너져버렸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께 요청합니다. “가서 거들어 주라고 내 동생에게 말씀해 주십시오.”(40)

빼앗기지 않으려면 더 나은 것을 선택해야 한다.

마르다는 마리아마저도 과거로 끌고 들어가려 합니다. 예수님에게 요청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요청이 무엇을 말하는지 정확하게 꿰뚫고 계셨습니다. 마르다는 자신을 감싸고 있는 무의식적인 습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 역시 마르다처럼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면 해야 할 일은 누가 한단 말인가?’ ‘누군가는 예수님과 일행을 시중드는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것은 습관에 사로잡힌 생각일 뿐입니다. 마르다의 집에서 아무도 시중들지 않았다고 해서 예수님께서 말씀을 안 하셨을 리 없습니다. 그렇다고 식사를 거르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동시에 두 가지를 일을 할 수는 없지만, 더 나은 것을 먼저 할 수는 있습니다. 마르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며 들떠 있다.”(41) 마르다를 두 번씩이나 부르신 것은 그녀에 대한 애정과 안타까움이 묻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문제는 그녀가 많다고 생각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많은 일은 기존의 세상이 여인에게 부과한 것들입니다. 보수적인 세상은 여자들에게 점점 더 과중한 일을 부과해 왔습니다. 그것에 길들여지고 익숙한 여자들은 한도 끝도 없는 일들이 자신의 의무라고 느끼며, 자신과 같은 여자들의 숙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강한 연대감이 더해지는데, 이러한 연대감은 연대적 의무감을 갖도록 한 남자들에 대한 적대감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연대 속에 있는 여성을 향한 억압으로 드러납니다. 실제 해야 할 일은 많습니다. 집안 일만 하더라도 육아, 청소, 빨래, 등 온갖 것들이 있습니다. 손님을 대접하다 보면, 상을 차리고 차려도 준비할 것은 여전히 보이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점점 많아지는 일이 염려를 가져옵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일은 많지 않거나 하나뿐이다.”(42) 새번역은 ‘주님의 일’이라는 주어를 사용하지만, 성경은 ‘적은 일이 필요할 뿐이거나, 단지 하나만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나가는 말

여기서 소수라 함은 할 일이 적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 할 일은 선택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다. 그러니 아무도 그것을 그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42) 좋은 몫은 빼앗길 수 없는데, 그것은 그녀가 선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자신이 진정으로 선택한 것이라면 빼앗길 수 없습니다. 사실 마르다도 더 나은 것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사람들의 시대적이며 관념적인 시선을 무시하고 예수를 맞아들이지 않았던가요? 그런데도 그 맞아들임이 중요한 것을 선택하는 데 실패하면서 습관에 매몰됨으로써 과거로 되돌아 가버린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돌아가서는 안 될 길을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선택이 확고하다면 빼앗길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선택을 포기하고 되돌아갑니다. 사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되돌아갈 때, 겉으로는 예수를 배반하면서 돌아가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충성한다면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신격화되며 그분을 감싸는 건물은 화려해집니다. 예수님을 대접하는 일은 한도 끝도 없이 많은 일이 되어가며 경쟁적으로 숭배에 앞장섭니다. 하지만 우리의 일은 예수님의 말씀에 기초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많은 일들 가운데서 우선 선택해야 하는 일입니다.